소설리스트

〈 44화 〉43화. Heffy (44/80)



〈 44화 〉43화. Heffy

[나] 잠깐 만날 수 있어?

미리 학교 광장에 나가서는 톡을 보냈다. 만나면 도망쳐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야지⋯.

옷도  차려입었고, 좋은 향기 나게 깨끗하게 씻었으니까 진심을 담아서 말만 잘하면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마디를 어떻게 꺼내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으니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톡이 울렸다.



[석현] 지금?

아, 답장이 왔구나- 지금 만나자는 거냐고 묻길래, 할 말이 있으니 지금 만나자고 대답을 했다.
하려고 했는데—

또톡-


[석현] 오늘은 안될  같은데? 미안;
[나] 응.  말이 있어서..



아⋯?
내가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다른 톡이 와 버렸다.

그러니까, 오늘은.. 안된다고⋯?

으음.. 바쁜가? 그나저나 그렇다고,  말이 있다고 답장을 보내는 타이밍이 어긋나버렸다. 으, 민망해⋯.

[나] 많이 바빠?

창피한 마음을 감추며 많이 바쁘냐고 다시 물어봤다. 오늘, 수업 더 없을 텐데⋯.



[석현] 어.. 오늘 다른 약속이 있어서. 다음에 얘기할까?




다른 약속을 먼저 잡았다는 걸 듣고는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얘도 나처럼 아는 사람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약속도 잡고 그러는구나⋯.
왠지 배신자인  같기도 하고, 아는 친구 있으면 소개나 좀 시켜주지 싶기도 하네.

다짜고짜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섭섭한걸⋯.

에이-

그런 생각을 하며 땅을 차고 있는데 멀리선가 눈에 익은 남자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어?”

왠지 눈에 익는걸. 멀리서 처음 봤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점점 다가올수록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석현이..?”


아, 약속이 있다는 게 지금 있다는 얘기였구나⋯. 그래도 이왕 마주치는 김에 인사라도 할 까 했는데, 이번에는 옆에서 바짝 붙어서 걸어가는 웬 여자가 눈에 띄었다.


 여자는 누구지..?


잘 모르겠다. 처음 보는 여자이다. 나야 물론 학교에 아는 사람이 달리 없지만, 석현에게도 여자인 지인이 있다는 말을 딱히 들은 적이 없어서 아리송했다.



“앗—”



한동안 쳐다보다가, 점점 둘이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주변에 숨어버렸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지금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자리를 피했다.

“...서, 응, 아는 친구.”
“으응- 그럼 됐어. 빨리 가자—”

친구와 모르는 여자가 지나가며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는  들려온다.




아는 친구? 날 말하는 건가..?

친구 옆에 딱 붙어서 걸어가는 여자는, 한눈에 봐도 몸매가 괜찮은 편이었다. 얼굴도 예쁜 편이었고. 그런데, 탈색이라도 한 건지 머리가 연노란 빛을 띄는 게 좀 튀었다.

으, 그동안 모범생처럼 살아와서 그런가 저런 머리는 별로야.

그런 생각을 하며 쳐다보는데  여자가 친구에게 팔짱을 끼고는 가슴을 들이대는 게 눈에 띄었다.


“...?”


뭐지, 왜 저렇게  달라붙는 거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옷도 야시꾸리하게 차려입고, 머리도 탈색해서는 왠지   것 같이 생긴 여자가 내 친구한테 저렇게 붙어있으니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왜 자꾸 저렇게 팔짱을 끼고 얼굴을 들이미는 거냐고—!



“아, 진짜-”


오늘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다시 이어지려고 했는데 저런 여자가 붙어있다고 생각하니 점점 화가 났다.




석현이는 내가 몸을 허락한 사람인데,  마음을 줄 사람인데 왜 네가 옆에서 알짱거리는 거야?


질투가 난다. 생뚱맞게 모르는 여자가 옆에 붙어 있는걸 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샌가 둘은 저 멀리 떠나버리고,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아..”

아, 진짜 뭐야—.


오늘은 못 만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나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취방에 돌아오면서 둘은 대체 무슨 관계였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친척? 친구? 선후배 사이? 그냥 아는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게, 세상에 어느 친구 사이에 저렇게 팔짱을 끼고 다녀?




“...”


아니지..?


응? 아니지?
그런 거 아니지?


그도 그럴 게, 내가 있는데.
나도 옆에 있는데 그런 거 아니지?



응? 아니라고 말해줄 거지?

순간 떠오른 생각에 너무 너무 너무 불안해져서 바로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나]  너 봤어
[나] 옆에 누구야?

누구야? 응? 누구냐고—.

그렇게 초조해하며 손톱을 뜯고, 입술을 이로 베어 물고 있으니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석현] 아
[석현]  여자친구 생겼어ㄷㄷ;

뭐?

[나] 여자친구?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그런 뜻 아니지?

[석현] 응ㅋㅋ; 얼마 전부터 사귀기로 했음
[석현] (민망해하는 이모티콘)


“..”



여자친구?
성별이 여자인 친구가 아니라, 서로 연애하는  여자친구?

지금 분명 그렇게 말했다. 사귄다고.


아니, 왜?

왜?


날 놔두고 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사귄다는  갑자기 알게 된 것도 충분히 충격적이지만, 그러니까 대체   말고 다른 사람이랑 사귀는 건지 그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있는데.. 왜..?”


[나] 어떻게 알게  거야?


일단, 일단 좀 침착하자. 다짜고짜 화내지 말고⋯.

[석현] 조별과제 하다가 친해졌어ㅋㅋ;
[석현] 미안한데 담에 자세히 말해줄게; 옆에 여친 있어서 쏘리


“어..?”


이게 끝이야?
더 말해줄  없어?

그러니까, 왜 날 놔두고 다른 여자랑 사귀는 거냐니까?




응?



나 기다려준다고 했잖아.
 이해해준다고 했잖아.
 괜찮으니까, 마음 진정되면 연락하라고 했잖아.

근데 왜 날 놔두고 다른 사람이랑 사귀는 거야..?


“농담이지?”

장난치는 거지? 아하하-, 말도 안 되잖아. 응, 봐봐, 오늘 날짜가, 아..? 4월 1일 아닌데..? 이상하다..?




“아하하..?”


진짜야?
나 놔두고 다른 사람이랑 사귀는 거야?


나 기다렸다가, 내가 고백하면 제대로 사귀어주는거 아니었어?


그런 거 아니었어?
그도 그럴 게, 난 너밖에 없는데 우리 둘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거잖아?

나, 밀당한  아닌데.
그냥, 좀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 건데.

내가 너무 늦게 찾아온 거야⋯?

  말고 아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변해버린 걸 알려준 사람도 가족 말고는 너밖에 없고, 그리고⋯


그리고,  몸 준 거도 너밖에 없는데..?


첫키스도 너랑 했고, 손도 너랑 잡은 게 처음인데?

응? 네가 처음이란 말이야.
내 알몸 보여준 것도, 침대에 같이 들어간 것도, 섹스한 것도 너밖에 없단 말이야⋯⋯.

근데 왜  말고 다른 사람이랑 이어진 거야?



나- 아니, 우리.. 우리 좋았잖아. 응? 내 입술도, 젖가슴도, 보지도 다 너한테 줬잖아. 서로 기분 좋았잖아. 너랑 섹스하는 거, 기분 좋았는데. 너도 좋았던 거 아니었어?

아침에 일어나서 날 꼬옥 껴안아 줬잖아. 다정한 목소리로 감싸줬잖아. 너도 나 좋았던 거 맞잖아⋯!

근데 왜, 왜, 왜, 왜,  나 말고 다른 여자냐니까—?!



혹시, 내가 그때 밤에 너무 싸게 굴어서 싫었던 거야? 술 먹자 그래놓고 막 단추 풀고, 옆에 가서 앵기고, 네 몸 만져대서 정 떨어진 거야?

키스하면서 순간 혀 내민 거, 그거 때문에 그런거야? 네 자지 보고 기뻐해서 그런 거야? 아니지..? 천박해 보였던 거 아니지?


나 처녀인데, 너한테 처음을 준건데 그런 걸로 싫어진 거 아니지? 좀 아파하다가 좋다고 신음을 내질러서 정 떨어진  아니지?  번  하자고, 계속하자고 졸라대서 질린 거 아니지..?

설마, 나랑 섹스한  별로였던 거야?
내가 너무 못해서..? 나 처음인데,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그런 거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날 놔두고..?



아니, 이런 거 절대 이해 못 해.


아까 그 여자,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불량스럽게 머리 물들여가지고는, 그런 여자가 마음에 드는 거야? 옷도 야하게 입고, 대놓고 옆에서 알랑대고⋯.


그런 여자보다는, 나처럼 말 잘 통하는 사람이 더 좋지 않아..?
우리, 취미도 비슷하고 취향도 잘 맞잖아. 잘 통하잖아?


응..? 그래- 얼굴, 얼굴도 내가  예쁘잖아. 가슴도 내가  크잖아. 엉덩이도 내가 더 예쁘잖아. 허리도 내가 더 얇고 비율도 더 좋은데, 왜- 대체 왜  여자인 거야?

대체 뭐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응? 나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다른 아는 사람 없다고 했잖아. 조별과제에서 친해졌다고..? 그 사람들 자꾸 참여 안 해서 짜증 난다고 그랬었잖아. 근데 우리 둘은 항상 잘 맞고 서로 즐겁게 대화했었는데, 왜 내가 아니라  사람인 거야?



...그 여자 누구야...?




우리 학교야? 과는 어디야? 나이는 몇 살이야? 선배? 아니면 동기? 왜 옆에 붙어있지..? 자취하는 거야? 설마, 걔도 가까이 사는 거야? 원래는 어디 사는 거지? 일부러 자취하는 건가? 왜? 부자야? 자기랑 친해지자고 그랬어? 다른 아는 사람은 없나? 혹시 동아리는? 아니면 학회는? 언제부터 친해졌어? 같이 듣는 수업이라도 더 있어? 조별과제 때문에 만난 거 맞아? 톡은  번 했어? 문자는? 전화는? 몇 번이나 만났어? 이번이 처음? 아니면 몇 주 전부터? 데이트는 몇  했어? 손잡았어? 키스는..? 설마, 같이 잠도 잤어?








...




그년.. 이름이 뭐야⋯⋯?



왜  옆에 있는 거야..?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왜 새치기하는 거야..?

 키스도, 첫 경험도 모두 내가 먼저 했는데 왜 끼어드는 거야..?




왜 내 남자한테 꼬리 치는 거야...?


왜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눈치 없이 껴서 남의 남자를 채가는 거야....?





내 남자,  뺏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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