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41화. aftermath (42/80)



〈 42화 〉41화. aftermath


[미션 완료]
남자와 키스를 주고받는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더이상  미션으로 인해 몸의 발정도가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미션 완료]
남자와 몸을 섞는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더이상 이 미션으로 인해 몸의 발정도가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
...
...







으윽—.


읏, 또다시 아침이다.

항상 일어나는 그 시간인  같다.
습관이 된 덕분에 굳이 알람이 울리지 않더라도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좀 낯설다.

“으⋯⋯.”


머리가 아프다. 몸이 찌뿌둥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하다.


눈을 뜨고 보니 옆에는  남자가 있었다. 난 그 남자한테 안겨 있었고. 음.. 좀 익숙한 사람인데.


“뭐야⋯?”


뭐지. 꿈인가? 혹시나 해서 혀를 살짝 물어보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으음⋯?”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지는걸 참고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 침대에 걸터앉는다.

이제  잠에서 깬 탓일까, 머리가  돌지를 않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뭔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걸⋯.
어제 뭘 했길래 이런 낯선 곳에서 깨어난 건지, 남자에게 안겨서 자고 있던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 따끔한 통증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온몸이  쑤시고 너무 무겁다. 마치 격렬한 운동을  것처럼⋯.



내가 왜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발가벗고 알몸으로 있는 거지? ..모르겠다.


어째서인지 온몸이 헐벗은 채로, 끈적하게 땀에 젖어있다.

“어⋯?”


조금씩 들어오는 시야에 주변을 둘러보니, 엄청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손으로 대충 구긴 것처럼 뭉쳐져있는 휴지라던가, 무언가 액체가 들어있는 반투명한 고무들이 묶인 채 버려져 있었다.




“아⋯?

왠지 익숙한 옷들도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저기 벗어둔  내 속옷 같은데. 그리고 저것도... 내  맞지? 분명 어제⋯.

“윽—”


아프다. 머리도 그렇고,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힉⋯!?”


좀 이상해서 내 몸을 살피는데, 순간 너무 놀라서 짧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어째서인지 다리 사이에 하얗게 말라버린 거품과 애액들이 눌러붙어 있었다. 비부 근처에는 빠알간 무언가가 말라붙어 있었고, 그 밑에 깔고 있는 수건 역시⋯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거... 피야⋯?”


이거, 피 맞지? 아무리 봐도 피였다. 그러니까, 내 다리 사이에 흘러내린 것도, 그리고 수건을 온통 적시고 있는 것도⋯ 피였다.
그리고 그 피가 나한테서..?



“아⋯⋯?”

그러니까 이게 내 피라고?
나한테 피가 났다는 건, 설마..?




바닥에 널려있는 고무들을 자세히 보니, 그건 분명 콘돔이었다. 안에 하얀 액들이 가득  있었고⋯.



“아-”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길 시작한다.


다리 사이에 흐른 선혈, 그건 파과혈이었다. 그리고 다 써버린 콘돔들⋯. 비부 사이에서는 백탁액같은건 흘러나오고 있지 않았다.
아, 몸이 이렇게나 아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잠에서 깨니까 옆에 누워있는 남자도 누군지 알겠다. 제법 괜찮게 생긴 얼굴에 나보다  체구, 그리고 고간에 달려있는 큰 물건⋯.



“아아..?”

말문이 막혀버렸다. 밤사이에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린 건지 떠올리고 말았다. 내가  여기서  거고,  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며칠 동안 미션이란걸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정이 난다는 말도 안되는 거에 시달렸다. 그거 때문에 성욕이 해소되질 않아서 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지.

그걸 못참고 결국 친구를 불러냈고, 같이 식사하고,  마시고, 거기서 그대로 여기까지 와서—




“아아아....”

이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해버린 건지 실감이 되었다.

원래 여자가 아니었다며 그동안 참고 지켜왔던 것들을, 본능에 잡아먹힌 채 한순간에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고개를 살짝만 내려도   있을 정도로 가슴과 목덜미 곳곳에 나 있는 키스 자국이 그 증거였다. 몸을 허락했다는 흔적을 곳곳에서   있었다.




읏- 다리 사이가 계속 욱신거린다.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신 탓인지 머리도 깨질 것 같고, 심란한 마음이 진정되질 않는다.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미션을 두 개나 완료했다는 걸 문득 떠올렸지만, 하나도 기쁘질 않았다.
애초부터 전혀 달갑지도 않았다. 게다가 남자랑 입을 맞추고 몸을 섞으라는 미션이 완료되었다는 거 때문에 빼도 박도 못 하게 되었으니까.




나, 어떡하지—.

 지경까지 와버린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아니 애초에 왜 그런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

그렇게 내가 저질러버린 미친 짓을 후회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친구가 일어나서는 뒤에서부터 나를 꽈악 껴안았다.



흠칫—

갑자기 껴안아 오는 거에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린다. 가만히 멈춰선 거를 눈치채지는 못했다는 듯이, 나를 큼지막한 몸으로 꼬옥 껴안은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잘 잤어?”



아-

 목소리를 들으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갑자기 혐오스러워진다. 아니, 친구가 싫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에 대해서 엄청난 후회가 밀려온다. 진짜 미쳤었나 봐⋯.

“아니야.. 아니야..”

미션을 해버려서 일시적으로 패널티가 사라진 탓일까. 발정 났던 몸이 진정된 탓인지 내가 남자에게 몸을 내줬다는  부정하고 싶어진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중얼거리는데 친구는 그걸  들었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어디 아픈 데는 없고?”



히익-
남자에게 껴안긴 채로 머리를 쓰다듬어지니까,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남자의 손길을 원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소름이 끼쳐온다.


“으,, 아으⋯.”


남자한테 안겼다. 처음으로 혀를 섞었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다리를 벌리고 남자의 물건을, 그러니까 자지를 내  안에 받아들였다.


어떻게든 참았어야 하는 마지막 선을 넘어버렸다.

“아.. 아⋯”


내가 저지른 일로 인에 몸이 덜덜 떨려오고, 멘붕이 온다는 말처럼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반응이 심상치 않자 친구가 이상하게 여기며 걱정을 해준다. 여전히 내 몸을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면서⋯.


“왜 그래? 먹을 거  사다 줄까?”

아.. 아냐.. 이건 아니야..!


“아으.. 아, 악.. 아악—!!”

그리고 난 비명을 지르면서 침대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닥에 여기저기 내팽개쳐져 있는 속옷을 급하게 주워입는다. 브래지어의 후크를 허겁지겁 채우고, 축축하게 젖어있는 팬티를 다리 사이에 다급하게 끼워댄다.

어제부터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계속 흘려댄 땀과 체액 때문인지, 바지가 잘 들어가지 않아  다급해지기만 한다.

그리곤 블라우스를 급하게 입고 나서, 단추를 제대로 채우지도 않은 채로 핸드폰을 챙겨서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가 허둥지둥대며 옷을 입는 동안 석현은 그걸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자 급하게 날 불러세웠다.


“야.. 야..! 왜 그래—!!”

왜 그러냐고, 멈추라고 불러세우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아니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모텔. 사방에는 모텔뿐이었다. 온통 빨간색 간판. 온통 빨간색 건물. 온통 남녀가 몸을 섞기 위한 공간들뿐이었다.




“윽—”

현기증이 난다. 어질어질해지는 걸 겨우 참은 채 어딘지도 모를 골목으로 도망갔다.


골목 사이로 뛰는 내내 밤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계속 생각났다.

술을 마시다가 친구의 고간이 커진 걸 보고 좋아했다.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입맛을 다시고, 옆에  붙어서는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유혹했다.


귀 안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아양을 떨었다. 고간을 어루만지면서 수컷을 자극했고, 가슴을 드러내면서 여자임을 어필했다.


그렇게 유혹한 끝에, 모텔로 끌려가서는 뜨거운 키스를 주고받았고 씻지도 않은 채로 정사를 나눴다.

남자의 몸을 꼬옥 껴안고, 애무를 받고, 다리를 벌리고, 남자의 물건을 받아들이고⋯⋯.


“우윽—”

역겹다. 완전히 암컷이 되어선 남자를 탐했던 게 떠올라 속이 매스꺼워졌다.

어딘지 모를 골목의 구석에서, 전봇대를 붙잡고 멈추어  채 구역질을 했다.


밤사이 나눴던 정사의 흔적을 옷으로 대충 가렸지만, 몸에 마킹되어버린 수컷의 진한 냄새가 계속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윽-, 우엑—”


내 몸 안에 들어왔던 남자의 물건을 다시 토해내기라도 하듯, 밀려오는 혐오감에 속을 게워냈다.


“윽, 으흑⋯ 흑⋯”

눈물이 나온다. 혐오감이 눈물로 빠져나온다. 암컷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를 유혹해서 섹스까지 해버렸다. 친구와의 우정을 하루 아침에 망가뜨려 버렸다.

그렇게 자책하는 와중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흑, 흐윽—”


핸드폰이 울리는걸 애써 무시하며, 자취방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내 곁을 쫓아오는  누구 탓을 하지도 못할 눈물 뿐이었다.


머리는 산발이 다 되어 있고,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않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옷을 입은 채로⋯.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 자취방까지 가는 동안에도 핸드폰은 계속 울려댔다.



[석현] 야 왜 그래?
[석현] 어디야 지금?

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껴안고 있었던 걸 뿌리치고 도망쳐 버렸잖아.




[석현] 자취방이야?
[석현] 집앞으로 갈게



안돼— 자취방 앞으로 찾아오겠다는 말에 바로 안된다며 톡을 급하게 보냈다.


[나] 아니야


‘그냥, 잠시-’
톡을 치다 말고 지워버린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영문도 모른 채 괜찮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 혼자 멘탈이 깨져서 이러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잠시 시간을 달라고, 지금은 그냥 찾지 말아 달라고 거절했다.

[나] 정말 미안해..



“으흑, 흑, 흐윽⋯.”


바보같은 내 모습이 너무 속상했다. 무작정 집까지 왔는데도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알 수가 없었다.

처음을 너무 쉽게 준 건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앞으로 계속 여자로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몰라.

밤사이에 몸을 섞었던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몸과 마음이  끌려버려서 스스로 남자를 받아들인 거였으니까.


파과의 아픔도 잠시뿐이었고 이내 쾌락을 느끼며 교성을 내지른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계속 졸라대며 여러 차례 정을 받아내기까지 했으니까⋯.


미션 때문에 발정이 났던 게 아니라, 사실 스스로도 이런 걸 원하고 있던 게 아닐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아, 아으⋯⋯.”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이면서도, 미션 때문에 원치 않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못 이겨낸  떨어진 스스로가 미웠다. 미우면서도 연민이 들고, 안타까우면서도 혐오감이 몰려왔다.


 지지해주겠다며 옆에 있어 주려  친구를 이용한 셈이었다. 발정  걸 못 참고 친구를 유혹해서 몸을 섞었으니까.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는 완전히 뒤바뀐 태도로 친구를 뿌리쳐버렸다.



그렇게 자책하고 있기를 수 시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여보세요⋯.”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왜 이래?”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 여전히 날 걱정해주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

“아니, 그런게 아니고, 읏⋯”

말문이 막혀버렸다. 남자친구처럼 다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음이 풀어지다가도, 내 잘못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 때문에 다시 속상해진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응? 내가 너네 집 앞으로 찾아갈게.”


안돼, 지금 얼굴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단 말이야—


“아니야, 오지마⋯!”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응? 어제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어제 있었던 일, 난 다 이해하니까. 나도, 좋았으니까—”


괜찮다고 자꾸만 날 위로해주려는 목소리에 짜증이 솟구친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화를 내버렸다.


“됐으니까, 어제 일은 그러려고 했던  아니니까..!! 연락하지 마. 그냥, 연락하지 마—!!”


“왜-, 후우—
...그래 알았어. 며칠 있다 다시 연락할게.”


뚜- 뚜- 뚜—



전화를 끊으면서도 여전히 날 걱정해줘서, 화를 내버린게 너무 부끄러워졌다.


“아, 진짜⋯!”


미안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복잡해서 도저히 진정이 되질 않았다.

샤워라도 하면 좀 나을까. 마음을 좀 가라앉히려고 무작정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찬 물을 맞다 보면 뭐라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좀 정리되지 않을까.



하지만 몸에 남아있는 정사의 흔적을 아무리 씻어내려 해도, 그렇게나 뜨거웠던 시간을 잊을 수는 없었다.
씻고 나와서도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

분명 좋았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면 후회되기도 하고, 이 복잡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너무 복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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