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4화. 중간 (1) (35/80)



〈 35화 〉34화. 중간 (1)


“하아.. 흐⋯”


다리가 달달달, 떨려온다. 애써 참아내며 비틀비틀 걸어가지만 애타게 내쉬는 뜨거운 숨을 참아낼 수는 없다.


결국 몸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상태로 중간시험을 보게 되었다.


주말 동안 공부는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매일같이 이상한 꿈에 시달리며 마지막 인내심으로 욕구를 겨우 참아낼 뿐이었다.


 분명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그걸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있었다.

미션을 해내기 전까지 계속 발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패널티—

그리고 심지어는 그 미션들을 하더라도 이미 발정 난 욕구는 사라지질 않는다고 한다.

조금씩 심해져 가는 욕구에 약해지고, 종일 고민하지만 엄청난 후회가 닥쳐올 것임을 알기 때문에 겨우 참아낸다.


절대 안 돼. 적어도 이것만큼은 안된다. 남자와 사귀고, 입을 맞추고, 몸을 섞으라니⋯⋯.

마지막 남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지키기 위해 중간시험의  날이 다 되도록 버텨오고 있었던 것이다.

[강석현] 시험 잘봐라 ㅋㅋ 개쫄리네;



읏⋯ 친구는, 적당히 시간을 두면서 나에게 계속 톡을 보내고 있었다.

혹시 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봐 걱정해 주는 거겠지⋯.


하지만 자꾸 톡을 보내올 때마다 친구의 얼굴이 생각나고, 날 업어주었던 믿음직스러운 등이 생각나고, 친구의 이불을 덮고 자면서 머릿속에 새긴 친구의 냄새가 자꾸만 생각난다.


자꾸 톡을 안 보냈으면 좋겠다. 애써 짜증을 내보며, 시험 끝날 때까지 톡을 보내지 말라고 말해볼까 고민하다가도— 그러기엔  심한 거 아닌가, 아무래도 미안하다 싶어서 소심하게 접는다.



“아우으⋯”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친구의 톡이 올 때마다, 친구의 톡을 읽을 때마다,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좀이 쑤셔온다.

 손으로 핸드폰을 꼬옥 쥐고 친구의 말을 되새기게 되고, ‘으우⋯’ 짧은 신음을 애달프게 내뱉게 된다.



톡이 언제 다시 올까 기다리며, 괜시리 친구의 프로필 사진을 열어보고,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다시 닫았다가, 금세 또 열어본다.


들뜬 한숨을 내쉬며 거울을 한 번 쳐다보고, 예전 같았으면 잘 켜보지도 않았을 카메라 앱을 켜 셀카모드로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본다.


“석현아⋯⋯”



앗, 그러다가도 화들짝 놀라서는 내가 미쳤지— 뺨을 두들기며 화장실로 달려가선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후, 밥 먹고 시험 보러 가야지⋯⋯.”


자꾸 다른 생각을 하면, 늦고 말 거다. 정신 차리고 시험 보러가야 할  아니야.


정신 차리자면서 아자-! 화이팅을 혼자 외쳐보고는, 미리 사다 둔 반찬과 햇반을 꺼내다가 책상에 올려놓는다.



설거지하기가 싫어서, 편의점에서 얻어온 나무젓가락을 꺼내 든다.


젓가락의 길이는 적당하다. 예전 같았으면 다소 짧은 듯한 느낌도 받았을 텐데, 이제 와서야  작은 손에 딱 맞게 들어와서 편하기만 하다.

손을 꼼지락, 꼼지락- 젓가락을 잡은 채로 쥐었다 폈다 하면서 괜시리 그걸 쳐다본다.


“아⋯”


역시, 적당한 길이이다. 꿈에서 봤던 그가 떠오른다.  물건은, 아무래도 나에겐 너무 커다랬다. 그러니까,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그저 적당하고, 꿈에서 봤던 건 엄청 컸고⋯⋯.


그러니까  우람한 물건이, 내 여기에 넣어진다면 어떨까⋯. 분명, 처음에는 너무 컸지만, 나도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훨씬 더 잘해드릴 수 있고⋯⋯.

“아..?”



미쳤다.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무슨 생각을 해도 전부 음란한 욕구로 바뀌어버린다. 꿈이 떠올라버린다. 남자의 몸이 생각나 버린다.

누군지도 모를 꿈속의 남자에게 굴복하고 있다. 현실이 아닌데도, 꿈속을 떠올리며 봉사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그 악마 같은 년의 농간 때문에 내가 이상해져 버리고 있다.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이다.

읏, 참아. 참아. 참아—.

몸이 또다시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시간만큼은 확인하 정신이 남아있다. 이제, 시험 보러 가야해⋯⋯.



그래서, 그렇게 겨우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거다.


“흐아.. 읏, 하으⋯”

애써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다리가 달달달 떨려온다. 크게 심호흡을 해보고는 다음 발걸음을 옮기지만, 몸이 비틀비틀 흔들려버린다.


왠지 더 더운 것 같고, 거칠게 내쉬는 뜨거운 숨결이 마스크 안을 답답하게 만든다.

“숨막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로 벅차 온다. 잠깐, 마스크를 살짝 들춰내고 바깥 공기를 맡아보지만 몸살이 난 것처럼 땡겨오는 온몸이 진정되질 않는다.

신종 바이러스가 조금 잠잠해졌다고, 바로 대면 시험을 강행해버리는 학교가 원망스럽다.

그런 원망을 꾸욱 눌러가며 다음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서, 학교에 도착했을 때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려 있었던 거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강의실 401호’


다행히 늦지는 않았지만, 이미 강의실의 뒷자리는 가득 차 있었고 맨 앞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경사를 타고 배치된 여러 줄의 좌석들—.

맨 앞에 앉는 순간 뒤로부터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분명, 일부러 보려 하지 않아도 시야 자체가 개방되어 있어 뒤에서 앞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왠지 날 보는 것만 같아⋯.’

내 뒤통수를 보는  같고, 내 목덜미를 보고 있는 것 같고, 내 등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앗⋯”


나 혹시, 옷이 젖어버린 거 아니야..?


달아오른 몸이, 거기에서 흘러내리는 땀들이, 혹시  옷을 적셔버린 건 아닌지 갑자기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저 사람들, 지금 날 보고 있는 거 맞지? 아,앗- 아니지? 아닌 거지?

모르겠다. 왠지 날 보고 있을 것만 같다. 날 욕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뒤늦게 통로 사이를 지나가며 남는 자리를 확인하는  사람도, 왠지 날 한 번 쳐다보고 가는 것만 같다.




너무 불편하다. 못 참겠어서 괜히 일어나서는 자리를 옮긴다. 아까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자리를 옮기고 싶었다.




‘아⋯!!’

앗, 나 어떡해. 후끈한 열기를 내뿜는 몸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의자에 자국이 나 있을까봐 민망해진다. 몸이 다 축축한  같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다리 사이가 젖어있을 거라는 건 분명했다.

그러니까, 방금 일어난  자리에, 혹시라도 나의.. 내 몸.. 자국이 나질 않았을까 걱정된다. 으.. 뭐라도 닦고 자리를 옮길 거 그랬나⋯⋯.

그때, 다른 사람이 들어와 아까 전까지 내가 있었던 자리에 착석한다.

“아..!”

더 민망해진다. 내가 앉아있었던 그 자리에서 후끈한 열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너무 민망하다.




그리고 지금 옮긴  자리도, 후회가 밀려온다. 괜히 일어서서 자리를 옮긴 탓에,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시선이, 부담스럽다. 분명  시선들이 날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아 미쳐버릴 것 같다.


‘내 착각이야. 착각이야. 착각이야. 이건, 내가 착각하고 있는거야⋯⋯’

전부 다 나만 쳐다보고 있는  말이 안 되잖아. 말도  되는 망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시험지가 가득 담긴 봉투 두 개를 들은  교수가 걸어온다.

“자, 여러분. 시간이 다 된 것 같군요. 책상 정리 하시구요.”


심장의 맥박이 빨라진다. 강의실에 들어와서 요점 정리는  번도 보질 못했다. 혼자 쩔쩔매느라 귀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시험 시간이 다 되어버렸다.

“시험지 한 장, 답안지  장씩 배부하겠습니다. 다 마친 사람은 저한테 제출하시고 먼저 퇴실하셔도 좋습니다. 부정행위를 하는 경우는 학칙에 따라⋯”

교수가 미리 준비한 대사를 쏟아내며 시험을 안내한다.

맨 앞줄에 앉은 탓인지, 교수와 시선이 자주 마주친다.


‘ 으..’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다. 시험 안내를 마친 교수가 시험지를 나누어준다.

“자, 다 받으셨으면 뒤로 넘기세요.”

뒷자리로 시험지와 답안지를 넘겨주어야 한다. 그런데,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버려서 종이가 잘 벗겨지질 않는다.

“읏.., 으⋯!”

왜이래. 왜이래. 왜이래. 부끄럽게 왜 이래.

손이 덜덜 떨려가며 종이 위에서 미끄러진다. 앗, 됐다—!
내가  시험지와 답안지를 한 장씩 뽑아내고는 나머지를 뒤로 넘긴다.

“어..?”

실수했다. 종이가 두 장씩 붙어있는 걸 보고는, 급하게 그걸 뒤로 넘긴다.


‘으.. 어떡해.  왜 이러는 거야.’


자꾸 긴장이 되어서 바보 같은 짓만 계속하고 있다.

“학번 이름 잘 쓰도록 하세요. 질문 있는 사람? 없으면 시작합시다.”

시험지가 다 전달된  확인한 교수가 이제 시험을 시작한다며 시간을 알려온다.

시험지에 이름을 쓰고, 앗.. 잘못 쓴 글씨를 급하게 지워내고⋯.

문제는, 생각보다는 몇  없었다.

글도 그렇게 길지 않았고.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머리가 돌질 않았다.


아무리 문제를 읽어도 글자가 튕겨 나오고 있었다.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어야  지식들이, 떠오르질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다.


1번. 1번부터 풀지를 못하고 있었다.

‘특정 재화에 일정한 금액을 지출하는 경우 그 수요함수는 어떻게 되는지 서술하고 이때의 수요곡선을 도출하라.’



‘으-’


그래, 여기에 너무 시간을 뺏기면  되잖아.

다급한 마음으로 1번을 포기하고는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다음 문제는, 아- 알 것 같다.


친구가 중요한 키워드라면서 정리해줬던 내용들이었다.


그래, 이거였지. 응, 이런 내용이었고—.


그런데.. 한참을 읽다가 또다시 눈동자가 멈춰선다.


‘아.. 안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결국 어떻게 푸는 건지를 전혀 모르겠다.

분명, 분명 공부했던 건데—.


마음이 더 초조해진다. 알 것 같은데 끝내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마음을 몰아세운다.

갑갑한 마스크 때문일까, 살짝 들어서 바깥 공기를 마셔보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오는 건 뜨거운 숨결뿐이다.

‘미치겠네, 정말⋯⋯’

도저히 풀리지 않아서  다른 문제로 넘어간다. 그 문제도, 그다음 문제도 풀리질 않는다.



‘아..아아⋯’

핀치에 내몰린 정신력이 급격하게 소모되어 간다. 볼펜이 미끄러질 정도로 손에 땀이 가득 차고, 이가 덜덜 떨려오기 시작한다.


얼굴이 후끈거리고, 겨드랑이가 축축해져 오고, 등이 뜨거워져 온다.

몸을 너무 떨어서, 배의 근육들이 다 아파져 온다. 미션 때문에 아픈 건지, 경련이 너무 심해서 아픈 건지 구분조차 못  지경이다.


‘안돼.. 진짜,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보려 해도 이미 무너져내린 걸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게,



대학교에서의 나의  시험은,



단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시험을 망쳐버리고 집에 돌아왔을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갈되어버린 정신력과 바닥난 체력, 부끄러움, 자괴감, 후회, 원망⋯⋯.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몰아친다.


왜 그랬을까, 왜 그것밖에 하지 못했을까. 아니, 애초에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엄청난 후회가 밀려오고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날  힘들게 하고 있었다.



공부할 시간은 충분했는데, 친구도 공부하는 걸 도와줬는데.


이제야 첫 시험을 하나  것뿐이었지만, 왠지 다음 시험들의 결과도 예상이 되어서 막막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달아오른 몸이 날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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