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28화. burry
결국 공부는 다 하지도 못하고 석현에게 업힌 채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하아-”
한숨만 나온다. 배도 콕콕 찌르는 것 같고.
“야야, 괜찮아? 금방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
내 자취방보다는 친구네가 더 가까워서 일단은 거기로 가기로 했다.
가서 좀 쉬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얘, 등이 참 넓네—
남의 등에 업히는 건 또 색다른 경험이 아닌가 싶다. 어릴 때야 부모님한테 업혔겠지만 커서는 그럴 일이 없으니까⋯.
그도 그럴 게 여자아이가 아닌 이상 남한테 업혀 갈 일이 별로 없잖아.
운동을 많이 해서 듬직한 몸이 되고, 여자친구에게 자랑하고, 여자친구를 등에 업고, 여자친구에게 참 넓다며 칭찬받고— 이런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꿈꿔왔지만 지금 내 모습으로는 어림도 없게 되었다.
여자가 되었다는 게 또다시 실감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등에 기대어 업혀 가려니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아픈 사람이 업혀 가는 것처럼 보일까?
아니다. 대학 청춘들은 그렇게 순진하게만 생각하지 않을 거다.
분명 여자친구가, 듬직한 남자친구의 몸에 얼굴을 부벼대며 자기들의 자취방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연인이 자취방에 있으면 할 일은 그리 많지가 않기 때문에 거의 뻔하고.
등에 업혀 길에서 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친다.
삼삼오오 모여서 가는 사람들, 저 멀리서부터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들, 혼자 걸어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들-
내 모습을 보고 속닥속닥 자기들끼리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부끄러워.
꼴사납게 등에 업혀서는 친구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야 하는 게 부끄럽다. 길게 내려오는 머리칼이 살을 간지럽힐 때마다 부끄럽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내쉬는 것도, 커다란 가슴이 남자의 등에 짓눌려 있는 것도 다 부끄럽다.
그냥, 다 부끄럽다.
남자의 몸에서 올라오는 체취가 코에 스며들어서, 심장이 콩- 콩- 뛰는 게 느껴져서 더 부끄럽다.
“하아—”
가슴이 답답해서 한숨을 내쉬는데, 친구가 움찔한다.
앗. 친구가 내색은 안 하지만 깜짝 놀란 걸로 보였다.
뜨거운 숨이 애달프게 목가로, 귀 안으로 들어갔지만 애써 모른 척 해준 걸까.
“으우⋯⋯”
민망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끙끙대고 있으니까 친구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많이 안 좋아?”
“아니야.. 괜찮아..”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가줬으면. 그냥 내 심장이 콩닥콩닥하는 걸 몰라줬으면 좋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참고 있다가도 또 입이 간지러워져 말을 걸어본다.
“야⋯ 나 무겁지는 않지?”
남자일 때보다 체구가 작아졌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나,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큰데⋯ 많이 불편하게 느낄까?
“혹시.. 많이 무거우면 내려줘..”
“야— 너 하나도 안 무겁다. 너 업고 등산도 할 수 있어.”
“푸흣-”
바보 같은 소리하네. 날 어떻게 업고 산을 오르겠다는거야— 산을 오르는 건 또 왜 말한 건지, 정말 바보 같은 소리지만 그래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바보.
그렇게 중간중간 짧은 대화를 하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친구 자취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날 도서관 계단에서부터 업 고온 탓인지 도착했을때 친구의 등은 땀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어떡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나 봐.’
날이 더운 탓일까, 아니면 긴장했던 탓일까. 그도 아니면 단순히 내가 몸 상태가 안 좋기 때문일까—
내가 갑자기 아파 버려서, 몸 상태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멍청이라서 친구한테 민폐를 끼쳐버린 거야.
—친구는 물론이고 나 역시도 땀투성이로 온몸이 젖어있었다.
언제나 은밀하게 감추고 싶은 비부에도, 가녀린 팔 사이로 접혀 들어가는 겨드랑이에도, 복숭아처럼 탐스럽게 익은 엉덩이에도 뜨거운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직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커다란 가슴 사이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후우— 거칠게 숨을 내쉬는 친구를 보니 미안함에 가슴이 또 콩닥콩닥하기 시작한다.
“하으..”
“미안해-”
미안한 마음에, 친구의 목덜미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사과를 전했다. 그 얼굴은 홍조로 물들어 있었다.
“다 왔다—”
“으응⋯ 내려줘. 걸어갈 수 있어..”
다 왔는데 계단에 또 업혀 가기는 싫어서 내려달라고 하지만, 친구는 한사코 거절하며 좀만 더 있으라고 말해주었다.
“아냐- 다 왔는데 안까지 업어줄게.”
“끙-차—”
마지막 기합을 넣으며, 등을 한번 들썩이고는 계단을 오르는 친구의 모습이 듬직하게 보였다.
====
“음, 열은 안나네.”
“응, 근데 나 좀 배가 쿡쿡 쑤시는 것 같아.”
“일단 괜찮아질 때까지 좀 누워있어 봐.”
친구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눕혀진 나는 일단은 좀 있어 보며 회복될 때까지 누워있기로 했다.
여기가 석현이 사는 방이구나⋯
친구는 나를 침대에 눕혀둔 채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찾아보고 있다.
그걸 잠시 쳐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가 살고 있는 자취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옷들, 막 벗어놓은 듯한 빨래 더미와 속옷, 아직 미처 설거지를 하지 못한 접시 몇 개⋯
그 반대쪽으로는 컴퓨터가 있고, 전공책이 쌓여있고, 급하게 메모한듯한 필기가 몇 장 놓여있었다.
‘아하하⋯ 사람 사는 거는 다 똑같구나.’
나보다 잘생기고, 키도 체격도 다 크고, 성격도 좋아서 나랑은 좀 다르게 살 줄 알았다.
근데 나랑 비슷하게 사는 걸 보니 무언가 마음이 놓이고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저쪽에 놓여있는 남자 속옷들은, 이제 더이상 내 자취방에는 없는 것들이지만⋯.
읏—
배가 또 찌릿찌릿 아파온다. 마려운 것도 아닌데, 자꾸 몸 안에서 뭔가를 밀어내는 것처럼, 뭔가가 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불쾌한 감정으로 몸을 뒤덮여간다.
딱히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에 몸이 너무 불편해졌다. 그리고, 몸에서 나는 것 같은 묘한 땀냄새도 거슬린다.
땀을 한참 흘렸던 탓일까, 부끄러운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찝찝하다.
“석현아⋯”
몸이 찐득찐득하니 기분도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친구에게 샤워 좀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어, 왜? 어디 안 좋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 화장실 좀 빌려도 될까?”
“당연하지- 난 또 뭐라고, 휴지 부족하면 저기서 갖다가 써.”
아, 그런 건 아닌데. 샤워한다고 바로 말을 안 하니까 착각했나 봐.
“아니이⋯ 그런게 아니고 샤워 좀 하려고⋯”
“샤워? 어⋯ 어, 그래. 당연히 해도 되지. 너 근데 몸은 괜찮겠어? 안 힘들어?”
몸⋯ 아직도 찌릿찌릿하지만 참고 씻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참을만 해⋯ 찝찝해서 좀 씻으려고.”
“그래, 수건 챙겨가라. 여기.”
“응.. 고마워-”
화장실 안에 옷걸이가 따로 없다는 말을 듣고, 겉에 입고 있는 옷들을 미리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음⋯, 돌아보고 있을 테니까 미리 벗고 들어가-”
수건을 받아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여느 자취방과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좁고, 평범한 물건들이 들어서 있었다.
거울이 달려있는 작은 세면대와 남자가 앉기에는 작은 변기, 그 위로 선반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칫솔 하나와, 불편한 위치에 달려있는 수건걸이. 물이 다 튈 것만 같은 기묘한 위치의 샤워기—
“끙—”
불편한 몸을 움직여 다리를 들고 팬티를 벗어낸다. 이젠 여성 속옷을 입는 게 더 익숙해진 탓인지, 과정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웠다.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내니, 컵 안에 꽈악 들어차 있던 커다란 가슴이 푱, 하고 앞으로 튀어나온다.
두꺼운 옷을 입더라도 볼록 튀어나올 정도로 커다랗지만, 탄력이 넘쳐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흐우⋯”
몸이 찌릿, 찌릿, 아파오는걸 참고 벗은 속옷을 적당히 접어 자그마한 수납장 안에 넣어준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 집에서 샤워를 한다니—.
친구 집이긴 해도 떠올리기엔 너무나도 부끄러운 사실이다. 그래도, 너무 찝찝하니까 씻긴 해야겠지⋯
샤워기는 아주 이상한 위치에 달려있었다. 화장실이 너무 좁은 탓일까? 이 위치에 샤워기를 그대로 걸어둔 채 물을 틀어버리면 주변으로 다 튀어버리게 될 거야-
알몸으로 남의 집에서 샤워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주변에 물을 다 튀게 했다가 친구에게 민폐를 끼치기라도 하면 더 부끄러울 것 같아서, 샤워기를 벽 한 구석으로 돌려놓은채 조심스럽게 물을 틀었다.
솨아아—
적당하게 따스한 물을 맞으니 기분이 나아진다. 수압이 세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상냥한 손길로 몸을 어루만지는 것 같아서 몸이 이완된다.
“후우—”
친구가 쓰던 샤워솔을 같이 쓰기는 부끄러워서, 한 손에 바디워시를 덜어낸 채 온 몸에 펴발라준다.
가녀린 목을 손으로 한 번 쓸어주고, 유선형으로 솟아있는 가슴을 어루만져준 후에 양옆의 갈빗대로 거품을 밀어낸다.
흘렸던 땀을 깨끗하게 닦아내려는 움직임으로 배를 타고 내려가 사타구니를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비부 위에는 아주 약간의 보드라운 털들만이 있어서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흐으⋯”
거품이 비부에는 닿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주변부만을 닦아낸 손이 이내 탐스러운 엉덩이 뒤로 넘어간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힙업이 되있는 엉덩이 위로 손을 크게 돌려가며 닦아내면 그 위로는 비너스의 보조개가 움푹, 들어가있다.
가녀린 몸에 맞지 않게 풍만한 둔부에 거품을 묻힌 후에는, 양팔을 크게 들어 겨드랑이를 드러낸다.
“아-”
어느샌가 약간의 보드라운 털들이 올라와있다. 여자가 아니었을 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부위인데, 이제와서는 너무나도 부끄러워진다.
아직은 아주 연하게만 올라와 있지만, 매끄러운 겨드랑이 살과 조금씩 대비되려는 게 민망하다.
‘이런 거도, 관리를 해야 되는 걸까⋯
읏—!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을 붉히고 있다가, 찌릿- 하고 또다시 아파져 와 몸이 움찔거렸다.
아으, 이 느낌은 뭐지⋯.
뭔가가 찝찝하게 몸 안을 휘젓는 느낌이 사라지질 않는다.
“일단, 빨리 씻어내고⋯”
솨아아—
이상한 느낌이 올라올수록 마음이 다급해져, 마지막에는 결국 주변에 물이 튀길 정도로 급한 손길로 거품을 닦아냈다.
“아으- 왜 이래⋯”
자꾸 이상하게 뭔가가 나오려는 느낌이 들어서 거칠게 변기 뚜껑을 열고 물기도 닦아내지 않은 채 급하게 앉는다.
“읏, 으응..!”
이상해, 느낌 이상해..!
“머야, 머야아.. 이거, 이상해에—”
읏, 배가 아픈 거랑은 묘하게 느낌이 다르지만 계속 뭔가가 안에서부터 밀어내지고 있다.
“흐읏, 나와, 뭔가가 나와⋯!”
..
..
..
—!!
한참을 씨름하다가 나온 그것은, 내가 평생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덩어리였다.
“뭐..뭐야⋯?”
이거,
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