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7화. live, worry
“이 빙신시키!!!!”
지금 나,나,나한테 예쁘다 그런 거야⋯!?
이 미친놈! 뭐라는 거야 진짜!
“야,야..야야-! 븅신 진짜!”
난 여자가 아니라고! 빙신! 갑자기 왜 저래-!
“빙신!! 미쳤어 진짜?!”
“아, 아니⋯ 잘 어울리길래.. 미안-”
“입다물엇-!!”
뭐냐구 진짜! 갑자기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너무 당황한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선 석현의 팔을 파앗- 하고 때렸다.
에이씨, 쎄게 쳤는데, 왜 이렇게 타격감이 안 나는 거야!
“너..너너⋯ 그 소리 한 번만 더 하기만 해봐. 알었어!?”
“어, 미안⋯ 갑자기 말이 튀어나와서. 칭찬이었는데 미안하다-”
“조용히햇, 진짜!”
으으. 날 여자로 보는 거도 아닌데 왜 저딴 말을 해버린 거야. 씨, 나만 민망한 거야?
씨익- 씨익-
콩콩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질 않는다. 으⋯ 열받아.
“하아, 진짜. 쓸데없는 말 하지 말어. 공부나 하러 가자.”
“어, 미안⋯ 그래, 빨리 가자. 너 도서관 예약해놨어?”
예약은 또 무슨 소리야.
“어.. 아니? 도서관 예약해야 돼?”
“너 한 번도 안 와봤구나?”
“오늘 처음 와본 거야-”
신종 바이러스다 뭐다 해서 학교 올 일도 없었는데 도서관에 와봤을 리가 없잖아.
얘는 또 언제 와보기라도 한 건지 도서관을 어떻게 쓰는 건지 다 알고 있구나.
역시 생긴 거처럼 인싸가 맞는 거 같다. 지금 당장은 신종 바이러스로 비대면 수업만 해서 아는 사람이 없지만, 인싸의 기운이 너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잖아!
대충 투덜대면서 예약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핸드폰 앱으로 좌석 확인하고 자리를 잡으면 되는 거란다.
앱 이름이 Library라니⋯ 너무 성의 없다. 그냥 도서관앱이라고 하던가.
“나 그 앱 안 깔았는데.”
“괜찮아. 나한테 있어. 잠만— 됐다. 방금 두 명 예약했어. 봐봐, 이렇게 뜨거든? 여기 우리 두 명 붙여서 잡은 거고, 비어있는 건 이렇게- 파란색으로—”
오. 실시간으로 잔여 좌석이 나오는구나. 나도 미리 깔아둬야겠다.
“편하네~ 빨리 올라가자-”
“우리 들어갈 때 체온 재고 가야 돼. 너 열 없지?”
“열? 나 열나나?”
혹시 몰라서 이마에 손등을 대보는데 열 같은 건 당연히 안 난다. 난 안 나는데 넌 어때—
친구는 좀 어떤가 싶어서 까치발을 들고 이마에 손등을 대본다.
“음— 안나네? 다행이다!”
혹시라도 친구한테 열이 나면 오늘 공부는 파토나는 거니까 걱정이 되어서 체온을 재 줬더니만, 갑자기 펄쩍 뛰며 당황을 해버린다.
“어어- 야야야, 하지마—!”
뭐야, 얼굴은 왜 저렇게 빨개? 이걸 부끄러워한다고?
“어휴, 가자.”
“이렇게 복수하는 거냐? 휴우⋯”
복수라니. 자꾸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진짜..
“와— 도서관 괜찮네.”
“그치? 몇 번 와봤는데 자리도 많고 나쁘지 않더라.”
“야 근데, 어디로 올라가?”
“저—기로 가면 돼. 가자.”
오- 생각보다 시설이 괜찮다. 인터넷에서는 우리 학교 보고 투자 좀 하라고 난리던데 실제로는 나쁘지 않잖아.
근데 승강기가 고장 나 있다. 방금 칭찬한 거 취소. 제발 돈 좀 써라.
그나저나 우리 몇 층으로 가야 하는 거더라?
“야, 우리 예약 몇 층에 해놨어?”
“5층. 근데 저거 고장 나서 걸어가야겠다.”
“귀찮게 정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걸어가야 한다니. 꾸준히 운동하기로 마음먹은 거랑 상관없이 너무 귀찮은 일이다.
“계단으로 다니는 거 귀찮은데, 그나마 둘이서 가니까 낫다.”
“그러게? 수다라도 떨면서 가면 되니까.”
족보는 챙겨왔냐, 너네 수업은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 이런 질문들을 주고받으면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빨리 숨이 찼다.
“헉-헉- 야. 나 힘들어. 조금만 쉬었다 가⋯”
“벌써 힘들어?”
“어. 내 다리 좀 봐라. 한 대 치면 부러질 거 같아—”
흐악- 진짜 힘들다. 이제야 3층에 올라온 건데 벌써 숨이 차니까 열 받아. 원래 이렇게까지 체력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게 다 몸이 바뀐 탓이다.
“나 운동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 너 딱 보니까 비실비실해서 가다가 쓰러지겠어.”
에이, 그 정도는 아닌데. 과장이 심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팔다리만 얇은 거지 다른 데는 튼실하다고.
“쓰러지긴 뭘 쓰러져? 됐으니까 다시 올라가자.”
“손 잡아줘?”
뭐?
얘 오늘 진짜 왜 이래?
“야, 부끄럽게 무슨 손이야-!?”
“힘들다며. 빨리 잡아. 너 맞춰서 가니까 나까지 힘들어지는 거 같아.”
어어?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자꾸 손을 내밀고, 잡으려고 한다.
“야야야, 손 풀어줘-”
“됐으니까 빨리 따라오기나 해라.”
놔줘, 놔줘! 쪽팔려!
창피해 창피해 창피해—!!
####
콩- 콩-
심장이 콩콩 뛰어.
이거, 계단 급하게 올라와서 그런 거야.
흐읏- 빙신.
천천히 좀 가지, 억지로 손 붙잡고 끌고 가니까 가슴이 콩콩대잖아. 빙신.
“다 왔다. 저쪽으로 가면 돼.”
“응⋯”
부끄러워서 말도 잘 안 나와.
“자, 여기.”
“으응⋯”
나도 자리 어딘지 다 알아.
“여긴 정보열람실이니까 말해도 돼.”
“응? 아⋯ 응.”
콩콩대니까 자꾸 말걸지마 이 빙신아.
“야, 너 덥냐— 그거 올라왔다고 그래?”
“아냐⋯”
더워. 콩닥콩닥해. 얼굴이 화끈거려.
아으— 안되겠다.
“나, 화장실 갔다 올게⋯.”
너무 후끈거려서, 아무래도 세수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
솨아아—
“으으⋯”
세수를 하면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너무 부끄럽다.
아니, 여자화장실 들어온 거 말고. 그건 이젠 좀 익숙해서 아무래도 좋아.
그냥 그런 거 말고, 아까⋯ 도서관 오기 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응, 그거⋯
“나.. 오늘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이런 건 내가 아닌데. 친구를 만난다고 너무 들떴나 봐.
아무래도 좀 진정해야 하는 걸까? 좀 있으면 중간고사라서 공부를 하러 온 건데, 자꾸 엉뚱한 거에 시간 뺏기고 있잖아.
“이제부턴 진짜로 공부할 거야⋯”
후⋯
화장실에서 나와서 복도를 지나는데 자판기가 보인다. 마침 목이 말라서 음료수를 마시고 싶어졌다.
“뭐 마시지-”
“펩X는 거르고⋯”
아까 계단 올라오느라 지금쯤 목이 마를 텐데, 친구 것도 사다 주는 게 맞겠지?
“뭘 좋아할까?⋯”
무슨 음료수를 좋아할지, 사다 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지난번에 밥 먹을 때 사이다 사 먹던데, 그거 사다주면 될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사이다를 두 개 뽑았다.
“읏, 차거—”
다시 열람실로 돌아가니까 집중해서 책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
확실히 저러니까 이미지가 좀 달라 보이긴 한다. 생긴 건 괜찮아서 인기 많을 거 같은데, 막상 나랑 친하게 지내면서 게임 많이 하고.
또 지금 보니 집중해서 공부하는 게 얘가 이런 모습도 있구나, 싶었다.
“야.”
고개 돌려보니 손가락으로 찌르고 있고, 그런 거 안 해.
“먹어.”
“올- 땡큐.”
“사이다 괜찮지?”
“좋지. 잘 마실 게-”
빙신, 혹시라도 생각 없다 그러면 섭섭할 뻔했잖아.
“비겁하게 혼자 공부하고 있었냐?”
“어⋯ 너 알려줄 거 찾고 있었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날 왜 알려줘?”
“너 몸 안 좋아서 수업 제대로 못 들었을 거 아니야.
교수님 달라도 내용은 비슷하니까 모르는 건 내가 알려주려고.”
오, 그럼 나야 좋지.
그래도 나도 고등학교 때 공부 좀 했으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그럼 나 중요한 키워드 좀 알려줘.”
“여기 일단 족보랑⋯ 이 단원에서 중요한 거 체크해놨거든? 밑줄 친 거.”
앗— 키워드만 알려달라니까 갑자기 옆에 딱 붙어버렸다.
“봐봐. 이건 탄력성이라는 건데, 입실론이라고 부르거든. 근데 이게⋯⋯”
너무 가깝잖아. 조금만 저리 갔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대체재의 수가 많아질수록 탄력적으로 바뀐단 말이야. 여기 밑줄 친 게 그거니까 알아두고⋯”
너무 가까워.
혹시, 나 땀 냄새 나는 건 아니겠지?
‘킁—’
“⋯그밖에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의 지출에서 비중이 커질수록 탄력성이 커지고⋯”
옆에 얼굴이 딱 붙어있으니까 숨이 멈춰버리잖아. 괴롭히지마아⋯
가슴이 콩닥콩닥해버리잖아. 나, 숨 이상하게 쉬고 있는 거 들켜버리잖아.
“⋯이건 꿀팁인데, 곡선이 눕혀져 있을수록, 더 탄력적이라고 생각하면 비교하기가 편해.”
귀 간지러. 옆에서 말하면 바람들어오잖아. 귀도, 목도 간질간질해.
으으⋯⋯.
“..듣고있어?”
앗,
“어.. 응⋯! 듣고있어. 탄력성!”
딴생각하고 있던 거 다 티 났나 봐.
어떡해. 바보같이 보였으면 어떡하냐구.
“그래? 하여튼 여기가 중요한 개념이니까 잘 알아둬야 할 것 같아. 족보도 있으니까 연습 많이 해보고.”
“응.. 알았어⋯”
미안해, 사실 하나도 못 들었어. 옆에서 계속 말해줬는데 다른 생각 하느라 미안해. 그치만, 가슴이 너무 콩콩거려.
“중요한 건 다 체크했으니까 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난 교양도 공부 좀 해놔야겠다.”
“응⋯”
읏.. 바보 같아 진짜. 별것도 아닌데 혼자 부끄러워하고 있잖아.
으으, 열 받아- 마음속이 몽실몽실해서 집중이 안 되잖아.
‘정신차리잣-! 집중하는 거야!’
그래. 기껏 알려줬는데 나만 딴짓하고 있으면 안 돼. 집중해서 공부 좀 하자.
⋯
⋯
‘탄력성은 자극에 대한 반응⋯ 수요와 가격, 수요와 소득⋯’
머릿속으로 내용을 정리하며 책을 읽다 보니까 미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대로라면 나쁘지 않아.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다 잘 풀려가고 있어.
‘역시 털어놓길 잘했어⋯’
엄마, 아빠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하나뿐인 학교 친구에게도 다 털어놨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걱정이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마음을 좀먹던 우울한 감정들도 녹아내리기 시작했잖아.
그동안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해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바뀐 모습을 보면 남들한테 미움받을 거라는 걱정은 쓸데없는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남들한테는 더이상 말 안 해도 날 아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차피 미션이라는 것도 시간을 정해준 것도 아니고, 내가 안 하면 되는 거니까 그냥 이대로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지금 이대로라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얻고 있는데 어디선가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미션을 할 생각이 전혀 없구나—?’
읏, 누구야?
뭐지—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제자리에서 책상만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말을 건 사람이 아무도 안 보인다.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야—?’
뭐야, 뭐냐고. 누가 말하는 거야. 예전에 들려왔던 목소리도 아니잖아. 대체 누가 말하는 거냐고—!
‘킥킥킥- 별다른 간섭을 안 하니까 그렇게 허술하게 보였니?’
우리라니? 넌 누구야? 누군데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대체 누구냐고, 크게 소리치고 싶어도 너무나도 적막해진 공간이라 차마 그러질 못한다.
‘뭐 됐어—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앞으로는 미션이 더 힘들어질 테니까.’
미션?
너, 설마 그 빌어먹을 여신이라도 되는 거야? 정체가 뭐냐고!
어서, 대답해줘-! 대체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계속 물어보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윽—.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왠지 몸도 아파오는 것 같고, 좀이 쑤셔서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진다.
띠링—.
[ 미션의 내용이 수정됩니다. ]
—!
익숙한 소리가 나며, 갑자기 미션의 내용이 바뀐다는 말이 들려온다.
‘미션이, 수정된다고⋯?’
윽⋯ 자리에 앉아있는 게 점점 불편해진다.
알 수 없는 느낌이 계속 차오르는 게, 배가 아픈 거와는 다르지만 짜증이 올라올 정도로 불쾌하다.
[ 메이크업하기 ]
>> 미션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몸에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 보상이 여성 메이크업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으로 변경됩니다.
[ 헤어스타일 꾸미기]
>> 미션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몸에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 보상이 여성 헤어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으로 변경됩니다.
읏⋯! 미션의 내용들이 이상하게 바뀌어버리고 있다.
원래는 미션을 하지 않았을 때의 패널티 같은 게 전혀 없었단 말이야!
보상도 저딴 게 아니고, 자존감이 올라간다느니 그런 거였는데 완전히 방향이 바뀌어버렸어—
빌어먹을 새끼들, 한동안 기분이 좋아져서 완전히 방심하고 말았다.
내 몸을 갖고 노는 쓰레기들, 이젠 완전히 노골적으로 날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잖아.
큭—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합리함에 이를 갈고 있는데, 점점 더 통증이 심해지길 시작했다.
‘뭐..야.. 배가, 이상해⋯’
너무나도 급격하게 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고, 그러면서도 짜증이 올라오고, 몸에서 뭔가가 나올 것 같고—.
다리를 가만히 둘 수 없게 되고, 자리에 가만 앉아있기가 힘들어진다.
‘읏⋯ 더이상은 안될 것 같아—’
몸이 영 좋질 않아서 친구를 힘없이 부른다.
“야.. 나, 몸 안좋아⋯⋯”
“어? 갑자기 왜 그래-
언제부터 안 좋았어? 많이 안 좋아?”
아이씨— 아프다니까 자꾸 물어보는 게 너무 짜증 난다.
“아프다고-!”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다.
“읏, 나 진짜 몸이 안 좋아⋯”
“어어, 미안, 어떡하지? 일단 나가자. 걸어갈 수 있겠어?”
으윽-
나가자는 말에 바로 짐을 가방에 대충 쓸어 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짜증과 찝찝한 느낌, 잠잠해졌다가 다시 심해지는 고통이 뒤섞여서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미안한데 못 걸을 거 같아..”
어쩌면 좋냐는 표정으로 친구를 애타게 올려다본다.
올려다보는 내 표정에는 짜증과 애달픔이 뒤섞여 있다.
“아으⋯”
내 상태를 확인하던 친구는 이내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더니 내 몸을 끌어당기며 다급하게 말했다.
“야, 일단 업혀-! 우리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