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6화. hurry (삽화有) (27/80)



〈 27화 〉26화. hurry (삽화有)




미션 같은 건 잊고 학교 수업이나 들으며 며칠을 보냈다. 아, 물론 자취방으로 다시 돌아왔지.


사실 부모님께 처음 말을 꺼낼 때만 해도 허락해주실지 몰라서 불안했다.

친구한테도 내 사정을 밝혔고,  멘탈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데 계속 집에서만 있어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신종 바이러스가 잠잠해져서 학교에 다시 가게 되면 통학을 해야 할 텐데.


겨울부터 계속된 신종 바이러스는, 계속 확진자가 발생하며 방역이 강화되고 있었다.



좀 괜찮은가 싶으면 다시 확진자가 수백 명씩 늘어나고, 그랬다가도 잠시 줄어들고.

계속 줄어들고 늘어나는 걸 반복하니까 사람들도 점점 지쳐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어쩔  없는 건지 방역지침은 계속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조정을 거듭하고 있었고.


어쨌든 신종 바이러스가 끝나긴 할 거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조만간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교수님들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지켜보자 그러고, 학교 측에서도 방역 지침에 따라 수업 방식을 변경할 수도 있다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갑자기 수업 방식이 변경돼서 강의실로 오라고 한다던가,
시험 기간에만 예외적으로 부르는 등 학교에 갈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먼 거리를 힘들게 통학하는 건 부담이 됐다.

그리고 솔직히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내 진짜 모습을, 내 모든 사정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겠다는 친구와 멀어지게 될까봐 그게 더 두려웠다.


아무리 우정이 깊어도,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지면 소원해지는 법이니까.


봐. 안 그래도 이미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연락이 뜸해졌잖아.

아무리 죽고 못 사는 연인들도 원거리 연애를 하면 관계가 파탄 나는 경우가 많다는데 친구 사이라고 별  있을 리가 없어.

그래서 부모님께, 그런 걱정 때문에 자취방으로 다시 올라가고 싶다고 사정을 했다.

“나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어⋯”
“학교 근처에 있는 게 편하기도 하고, 혹시 시험 보러 오라 그러면 가깝기도 하고⋯ 그리고..”
“..그리고, 친구도 자취해서, 만나기도 좋고⋯”


이유는 많았다. 그만큼 자취를 계속 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자취하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부모님을 두 분 다 불러놓고 사정을 하는데, 당연히 반대부터 하셨다.

“후우⋯ 희준아, 네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일단 좀 있어 보는  낫지 않겠냐.”
“그래, 엄마도 같은 생각이야. 지난번에 네가 쓰려졌을 때 얼마나 걱정했는줄 아니⋯”


안돼. 반대하실 줄은 알았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아니이⋯ 나 그래도 이젠 괜찮고, 자취 계속하고 싶단 말이야..”


자식이 걱정된다는데 뭐라  말이 없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원룸 그거,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았잖아. 안 살고  달 동안 방치하기는 너무 아까워서, 응⋯?”


“또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혼자 살면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이젠 괜찮은데. 괜찮을 텐데 자꾸 걱정을 한다. 아냐, 이제 그럴  없어.


“나 괜찮아. 응? 진짜로 괜찮아. 이제 몸도 많이 좋아졌고 더이상 흔들리지 않을 거야. 씩씩하게 이겨낼 거라구.”


그래. 씩씩하게 이겨낼 거야.  다짐을 말하면서도 목소리는 너무도 여려서 잘 매치가 되진 않는다.


“에휴⋯ 엄만 잘 모르겠어.  아빠랑 얘기해봐라.”
“아⋯”

엄마는 복잡한 표정으로 잘 모르겠다며, 아빠랑 마저 얘기하라면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

“아.. 아빠...”
“후우—”


아, 정말.. 뭐라 말해야 해.



“아빠..?”
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빠? 아빠-?만 반복하고 있는데,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아빠의 결정을 들려주었다.

“희준아.”
앗.


“너 정말 계속 자취하고 싶은 거냐.”

네, 하고 싶어요. 정말 하고 싶어요. 내 이름을 부르는게 왠지 죄를 짓는 거 같아서 놀랐지만, 자취를 하고 싶다는 대답만은 분명히 한다.


“정말이야, 진짜로, 진심이야.”

“네 엄마 걱정대로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고, 혼자 지내다 보면 버티기 힘든 일이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겠냐.”


모르겠어. 그래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겨낼  있을 것만 같아.

“응, 아무리 힘들어도 지지 않을 거야- 나한텐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친구도 있으니까—”

“후우— 그래, 네 마음은  알겠다. 난 오히려 네가 그렇게 의지를 보이는 게  마음에 든다.”

“대신, 하나만 약속하렴.”


“몸 관리는 당연히  해야 하고, 앞으론 몸 안 좋아지면 바로 우리한테 알려야 한다.
혼자 끙끙대면서 숨기지 말고 가족한테, 주변 사람한테 꼭 말해야 해.
알아들었니.”

—!
지금, 허락해준 거 맞지? 자취해도 좋다고 말한 거지?


“앗⋯ 약속, 약속 꼭 할게⋯! 절대 숨기지 않을 테니까,  관리도 잘  테니까!”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아빠. 고마워, 고마워요 아빠—”



너무 고마워서, 아빠에게 달려가 와락- 안기는데 아빠는 여자로 변해버린 내 몸이 어색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건지 연신 헛기침을 터뜨리며 부끄러워하셨다.




또톡.
▷ 나 자취방 돌아왔어.


자취방에 돌아오고 나서, 대강 정리를 해두고는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또톡.
바로 답장이 오네⋯.

[강석현] 지금 집이야? 허락받았어?

응, 허락 받았어.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말했어.  믿어서.
 응ㅋㅋ 지금 자취방.

또톡.
[강석현] 잘됐다. 몸은  어때?


▷ 당연히 괜찮지. 너 덕분인듯?
아 부끄러워. 이상하게 생각  하겠지? 네 덕분에 잘 이겨내고 있다고 톡을 보내본다.

또톡.


[강석현] 그래 알면 됐음ㅋㅋㅋ
[강석현] 중간고사 보고 내가 술 사준다 ㅋㅋㅋㅋ


술?  술 못 마시는데. 부끄럽지만 아직 많이 안마셔봤다. 아예 안 마셔본  아니고, 수능 끝나고 조금⋯

근데 중간고사라니, 벌써 그럴 때가 된 건가?


▷ 헐; 중간고사 언제지?


[강석현] ㅋㅋㅋㅋㅋㅋㅋㅋ
[강석현] 중간고사 2주남음 ㅋㅋㅋㅋ


어⋯ 벌써? 아 진짜. 그동안 너무 정신없어서 신경을 전혀  쓰고 있었다.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대충 들었고.

 까먹고 있었어;


또톡.
[강석현] 공부 하나도 안 했냐 ㅋㅋ

▷ 교수님이 공지 안 해줘서 생각도  하고 있었지.

[강석현] 우리도 아직 말도 안해줬음ㅋㅋ 대학교 원래 이런거냐ㅅㅂ


아. 원래 이런가, 진짜로?
각자도생 뭐 그런 거인가 봐.


▷ 어떡하지, 나 진짜 큰일났네?

[강석현] ㅋㅋㅋㅋ
[강석현]  시간 되면 도서관이나 가자. 니네 족보 줄게


앗, 도서관 가자고?
▷ 학교? 같이 공부하자고?

[강석현] ㅇㅇㅇ
[강석현] 니네 김원론 맞지? 우리 선배가 몇개 줬거든. 니네꺼 찾아서 갖고갈게.

오⋯ 친구 좋다는  이건가 봐. 족보를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럼 언제 만나자고 할까.

▷ 오키오키
▷ 도서관 언제 시간돼? 나 진짜 공부 시작해야 할듯..


또톡.
[강석현] 좀따 점심먹고 만날래? 복학한 선배랑 밥약있어서 점심 이후로 시간 되는데.
[강석현] 니네 족보도 갖다줄게.

▷ 그래 ㄳㄳ

아, 밥약도 하는구나⋯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랑 밥은 못 먹어봤는데.

쟤는 그래도 조별과제도 하고 그러니까 아는 사람이 있겠지?

원래는 선배들이 알아서 밥 약속도 잡아주고 그런다는데,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너무 아쉽다.






—따로 밥을 먹고 만나자 그래서, 대충 즉석도시락을 사다 먹고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이거 괜찮나? 음, 이건?

거울을 보고 휙- 휙 돌아보며 코디를 해본다.

“음- 이건 아니고, 어렵네⋯”


아직 옷 입는 감각이 부족해서  입어야 어울릴지 한참을 고민해봐야 했다. 마침 옷도 늘었고.
지난번에 친구 만날 때 입었던 옷 말고도 몇 벌이  생겼는데 엄마가 주변에서 얻어오기도 했고, 내가 편하게 입을만한 걸  사 오기도 한 거다.

특히 엄마가 주변에서 안 입는 옷들을 받아온 거는 정말이지 여자 옷다운 게 많았다.

프릴이 달려있질 않나,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심지어는 소매가 아예 없는 나시 티까지⋯

이런 걸 어떻게 입으란 거야!?
부끄러워서 화 아닌 화도 내봤지만, 옷이 너무 없어도 사람이 우울해진다며 자꾸 건네주더라.


아 진짜- 지난번에 산 크롭티도 창피했는데 옷장 안에 여자 옷이 점점 늘어나고 있잖아—


한참을 투덜대며 옷을 고르다 보니까 좀 마음에 드는 조합이 나온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품이 널널한 흰색 데님 팬츠.

가슴 부분에는 무언가 디테일이 있고 퍼프 소매가 달려있어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음- 가슴 부분의 그건⋯ 쪼글쪼글한게, 소매와 매치가 되어 귀여운 여자아이의 느낌이 물씬 난다.

목 언저리에 달려있는 진주장식이 여자 옷이라는 느낌을 확 살려주고 있었다.

옷도, 내가 싫어하는 답답하고 불편한 소재가 아니라 통풍도 잘 되는 것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거, 엄청 편할  같아—”


흰색의 데님 바지는 언뜻 보면 삼베 바지인 거처럼 까슬까슬해 보이면서도, 그 안이 너무나도 보드라워서 여자아이를 위한 옷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와아⋯’
예쁘다. 내가 봐도  어울려서 외모가 더욱 부각된다.


 스스로 여자가 된 몸이 예쁘다고 자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차마 외모가 가려지지 않는다.


“나, 이 정도면 엄청 괜찮은 거 맞지⋯?”

화장이나 머리를 한껏 치장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라는 거에 은근한 희열을 느낀다.

난 여자가 아닌데, 다른 여자들보다도 우월해—.


“흐흥~”
절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 흥얼거리면서 뒤로 휘익- 돌아보고, 어디 이상한 부분은 없나 살펴보게 된다.

가슴이 콩쾅, 콩쾅, 두근두근거린다. 역시 엄마 말이 맞아. 잘 어울리는 옷을 입으니까 기분이 좋아지잖아.

음- 지난번에 미션이 깨져서 그런가, 그 보상으로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그랬지. 미션을 더 할 생각은 없지만, 이거 은근 효과가 좋은  같다.

지금은 그냥, 다 잊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이 기분이 좋다.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을 혼잣말까지 하며 한껏 높아진 톤으로 외쳤다.
“좋았어, 이걸로 결정!”






역시 이번에도 내가 먼저 도착했다.


“어휴,  이렇게 늦는 거야—”
얘는 나보고 늦지 말라더니 자기가 더 늦는다. 남자 새끼가 약속도  지켜?


“언제  거냐고, 진짜아-”


에이씨— 기껏 옷을 잘 입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막 서운해지려고 한다. 친구를 기다리게 하면  되잖아.

같이 밥을 먹는다는 선배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괜시리 원망스러워졌다.

‘설마, 여자는 아니겠지⋯?’
여자 선배는 안돼. 여자 만난다고 친구를 기다리게 하다니. 그건 배신이잖아!


남자면 모를까 여자랑 밥 먹으면서 시시덕거리는 거, 도저히 못 참아. 그도 그럴 게 질투 나잖아. 자기 혼자 이성이랑 밥을 먹다니.


▷ 너 어디야 ㅡㅡ

[강석현] ㅈㅅㅈㅅ간느중
[강석현] 가ㅣ의다왓늠


기다리다가 지쳐서 어디냐고 톡을 보내니까 지금 막 오고 있단다. 으휴.


“씨이- 진짜. 확 놀래켜줘야지.”


지가 먼저 약속해놓고 늦는 건 대체 뭐야? 너무  받아서 좀 놀려주려고 근처의 벽에 몰래 숨어버렸다.


헉— 헉—
‘온다!’

멀리서 친구가 뛰어오고 있다.
뒤에서 확! 놀래켜버려야지.

“헉, 헉— 아 뭐야, 어디 갔지?”


푸흡. 깜짝 놀라겠지?
살금- 살금- 조심히 걸어서⋯⋯

“어흐응—!!”

 




“우와아아악-!!”

이히힛, 놀랐지-!
응? 깜짝 놀랐지! 갑자기 확, 나타나 버려서 놀래켜주니까 서운했던 게 풀린다.

“아하핫, 야아아~ 놀랐지!”
푸흡, 깜짝 놀란듯한 표정을 보니까 속이  시원해.


“어어어? 너, 너 뭐야. 깜짝 놀랐잖아!”

“그러게~ 누가 늦으래? 응? 나 한참 기다렸다니까—”
니가 늦은 게 나쁜 거지-! 늦지  말라며 토닥토닥거리고 있으려니까, 왠지 친구녀석 얼굴이 붉어 보인다.
그렇게 놀랐나?

“어휴, 심장 떨어질 뻔했다. 근데, 너⋯”
..? 뭐.

“너 옷⋯ 예쁘게 잘 입었네⋯”

.......갑자기?
“어? 어.. 고맙다 야.”




“야, 그⋯ 크흠, 이상하게 듣진 마라?”
“아,  뭐.”

“너..  예뻐보인다⋯⋯?”



..
.....


이 미친.


“빙신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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