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25화. 아기새. (26/80)



〈 26화 〉25화. 아기새.

“어.. 저러면  되는데⋯”

그들이 어떻게 생겨난 건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봐봐- 내가 뭐랬어?”
“그치만— 이럴줄 몰랐단 말이야⋯ 어떡해-”

스스로도,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른 채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뿐이다.

“고장 나면 안 되는데. 어쩌지?⋯ 

누구는 그저 구경만 할 뿐이고, 누구는 짓궂은 장난을 치며 재밌는 일을 찾아다닌다.

“진작에 내 말을 들었어야지~”


다툼이 일어나는 걸 보고 즐거워하기도 하며, 달콤한 말들로 속여 점점 망가뜨리는 걸 즐기기도 한다.

“내가 도와준다니까-?”

“도와준다고⋯?”


뭘 해야 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 너처럼 하면 얼마  가서 망가져 버리고 말 거야—”
“망가져?”

망가진다는 게 무슨 말일까. 인간의 감정은 잘 모르겠다. 기뻐하는 것 같다가도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인간은 나약해서, 갑자기 변화가 생기면 혼란스러워한단 말이야.”


다짐을 하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순식간에 힘없이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그치만 결국 스스로 선택하던걸⋯?”

인간들이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른다. 인간들도 그저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아닐까. 뭘 위해 사는 건지 모른 채로⋯


“아하하~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자기가 선택한 거라고 착각하게 되면서, 점점 더 망가지는 거야—!”

그러면 내가 저지른 일들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질 않았는걸.  그냥 아무런 악의 없이 장난을 쳐본 건데.

“그럼 어쩌지? 이미 저질러 버렸는걸⋯”

일부러 그런  아닌데, 일이 왜 이렇게  거지?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저 심심해서,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루해서 그런 건데.

어떻게 살고 있나- 구경을 하다 보니 왠지 눈길이 가서 조금 장난을 쳐본 건데.


“그러게, 나한테 맡겨봐- 응? 내가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줄 게—”


넌 정말 도와줄 수 있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눈을 떴을 때는 너무 당황스러웠단 말이야.

눈앞에 들어오는 건 기억에도 없는 낯설음 뿐이었단 말이야.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게 놔두면 안 되는 거야- 벌도 주고, 고통도 주고 그래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받아들이게 된다구—”

어떻게  건지 전혀 감도  잡고 어리둥절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는데, 그때 처음 말을 걸어주었던 게 생각난다.

그때 분명, 자기는 재밌는  좋아한다고 했었지. 재밌는 걸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래서 나도 재밌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건데-

“어,어⋯? 벌을⋯ 줘? 고통을.. 주라는 거야?”

아프게 하는 거, 싫어하지 않을까? 처음에 내가 잘못해버려서 엄청 아파하던걸. 그렇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과는 너무 다르던걸.

벌은 어떻게 줘야 하는 거야. 그런 거는  모르겠어. 네가 말하는 대로 해도 되는 거야?

그럼, 그럼- 고개를 흔들 때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날카로운 뿔이 허공을 가른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줄 테니까, 응? 너 혼자 하면 금방 재미없게 되어버릴 테니까. 내가 하는  보고 잘 따라 하면 될 거야.”


응⋯ 너한테 맡기면, 계속 재밌는 일이 생기는 거지? 망가뜨리지 않고 즐거워질 수 있는 거지? 분명, 잘 해줄 거지—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도와줄게?”







인간들은 참 바보 같아.

자기들이 엄청 잘난 줄 알면서도, 정작 내가 조금만 손을  버리면 어쩔 줄 몰라 하잖아.

멍청해. 왜 이렇게 생각이 짧아? 갑자기 상황이 변하면 허둥지둥대면서, 당장 닥쳐온 일밖에 생각을 못하는 게 바보 같아.


“킥킥-”

건방지게 말도 안 듣고.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거야?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바로 한눈을 팔아버리는 게 건방져.

“그렇게는  되지. 응, 절대 안 돼-”

조금 혼내주면, 이렇게 바로 벌벌 떨잖아. 귀여워. 아픈 걸 두려워하고, 주변의 시선에 두려워하고, 고통받는 걸 두려워하고, 어쩌지 못할 때마다 두려워하는 게 역시 귀여워.

“이히히. 킥킥-”


아하하, 너무 즐거워.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장난감들 뿐이야. 봐봐-!


‘아흑- 앗, 악, 아앗, 흑⋯’

‘더, 더 주세요- 하윽, 주인님의 자지⋯ 더 주세요, 건방진 보지에, 읏, 박아주세요—!’


건방진 년이  말을 들은 채도 안 하길래 그냥 확, 노예로 떨어뜨려 버렸어!

‘읏, 갑자기 힘을 쓸 수가 없어? 큭, 오지 마-!’


‘제성헤요⋯ 제성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키히힛. 건방지게, 나랑 계약을 했으면 끝까지 말을 잘 들어야지-! 너도, 너도, 너도—! 건방진 생각을 하는 인간들은, 다 저렇게 만들어버릴 거야!-


‘읏⋯ 너, 누나한테 무슨 짓이야-’
‘헉.. 헉⋯ 누나, 누나, 원하는 거지? 누나도⋯ 원하는거지—?’


‘안대에,, 안댓⋯ 읏, 우리 남매 사이인데.. 흐읏, 피가 이어진 사이인데..♡ 아앙, 앗, 앗♡, 앗♡, 아앗♡, 하앙♡—’


벗어나려고 하지 마-! 보잘것없는 인간들 주제에, 감히 머리를 쓰려고 해?-


‘큿, 내 순결은 뺏을  없다-! 절대 너 같은 놈들에겐⋯ 어? 엇, 뭐 하는 거냐! 거긴 아니란 말이다! 이, 쓰레기가-’

‘아니닷, 아니란 말이닷! 이건 네놈이 수작을 부린 탓이다-! 비겁한.. 네놈이 이렇게 만든 게 아니더냐- 그러니까, 그러니까앗⋯ 안댄다, 거기, 거기 제발⋯’

‘힉- 안대, 안댓, 거기 너으면 고장나, 흐잇♡, 거기 아냐, 거기 아닌데, 아닌데에- 들어와써, 들어와써어-♡’

으히히히-!!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인간들 괴롭히는 거, 망가뜨리는 거, 엉망진창으로 떨어뜨리는거 너무 재밌엇—!!

‘빨리, 빨리 줘!  필요 없으니까- 됐으니까 그거 빨리 달라고-!! 돈, 돈  줄 테니까, 시키는 거 다 할 테니까!’

‘앗, 그거! 빨리- 빨리 줘! 빨리!! 앗, 아앗?, 아?, 앗?, 으힉?’

‘헤옥— 으헷♡, 으헥- 헥, 헤엑♡, 몰라♡, 이런 거, 몰라♡, 헥, 헥♡- 더 주세요-, 빨리, 빨릿♡,   주세욧, 헥-, 야악, 약- , 으힉♡, 으힛, 힉♡—’

여기, 여기, 여기, 온통 재밌는 일들  뿐이야-!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저것도..!!

‘읏, 내 몸 왜 이렇게 된 거지?’
‘고간이⋯ 사라졌어?’
‘이게 뭐냐고. 화장실⋯’
‘아아악-! 크으읏, 배가, 배가 너무 아파—’

‘안녕-’
‘그래, 난 신이야. ⋯아니, 좀 재밌을 거 같아서.’
‘미션 다 하면 마지막에는 원래대로 돌려줄게?’


그래!  인간도, 이제  장난감으로 만들어버릴 거야-! 키히힛, 멍청한 여신 주제에, 인간을 데리고 있으면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면 내 말을 들으면 될  아니야!


‘정말, 미안해⋯. 일부러 이러려던 건 아니었어.’
‘미안하다고..? 날 이렇게 만들어놓고. 빨리 날 원래대로 돌려줘!⋯’


키힛, 괜찮아. 혼자 재밌는 인간이랑 놀고 있었어도 괜찮아. 재밌어 보이는걸 데리고 있으니까, 이 정도는 용서해줄게!
히히힛, 이제 나도 계약에 간섭할  있게 됐으니까, 더 즐겁게 만들어줄게-!




다른 생각 못 하게 만들어줄게..!
잔머리 못 굴리게, 시키는 대로만 하게 되도록 몰아세울 테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마.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도 의심하지 마. 애써 무시하려고 다른 생각조차 하지 마!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도 하지마. 옆에서 힘이 되어줄 사람을 찾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그딴거에 기대서, 재미없는 짓 해버리면 다 망가뜨릴 테니까!

그래, 온통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줄게...!! 친구도, 가족도, 우정도, 사랑도, 인생도 전-부, 전—부 망가뜨려 줄게. 전부 박살 내줄게!




다 망가뜨리고 지옥으로 떨어뜨려줄게—!!




⋯⋯



※※※






삐빅-

앗!

오우. 6시 30분. 오케이, 딱 좋고.
오늘은 일어난 직후인데도 정신이 맑고 기분이 좋다. 첫 알람 소리가 들리자마자 한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잠에서 깬  그 증거이다.

스윽-
이불을 벗겨내는 소리와 함께, 긴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얼굴을 간질인다.


가벼워진 몸이, 무거운 이불을 들춰내느라 낑낑대지만 그마저도 괜찮게 느껴진다.

몸은 작아졌지만 답답했던 가슴이  뚫려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넓기만 하다.

‘다 괜찮으니까, 우린 앞으로 계속 친구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히힛.
변해버린 목소리가 쿡쿡, 웃음을 터뜨리며 앙증맞은 소리를 낸다.


‘어제는 참 좋았지. 친구 만나기 잘했어.’
응. 진짜 잘했어. 진작에 만나볼걸 그랬다. 웃음이 나온다.

‘다 믿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널 믿을 테니까. 우린 친구잖아.’

믿어준다 그랬어. 날 믿어준다고 말해줬어. 기분 좋아. 마음이 콩콩거려.

짹- 짹-
이른 아침에도 새는 언제나 노래하고 있다.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은 노래가  안으로 스며들어와서 포근하기만 하다.

읏,샤—!
아기새가 앙증맞게 날갯짓을 하듯이, 기지개를 주-욱 펴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홀가분해. 걱정이 다 사라진건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겨운 동네  풍경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언제나 날 응원해주는 가족도, 믿음으로  지켜주고 기다려주려는 친구도.

역시, 오늘 아침도 부모님이 함께 식사하자며 기다리고 계신다. 미리 출근 준비를 하면서, 언제나처럼 TV를 보고 있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일어났니? 밥 먹어라. 참, 세수부터 하고-”
“네—”

흐흐흥—
이 상쾌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세수하러 화장실에 들어간다.

솨아-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게, 손잡이를 들어 올리고, 적당히 돌리고, 적당히 차가운 물을 받아낸다.


솨아아-
시원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려는 듯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손에 받아 얼굴에 끼얹는다.

푸우- 푸우—

하루가 지나며 쌓여있는 어제의 흔적을 물로 씻어내도, 여전히 상쾌하기만 하다.
고민으로 상처받았다가 다시금 치유된 마음이, 어제의 기쁨이 여전히 남아있다.


개운해!
이제부터는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새롭게, 하지만 원래의 마음은 그대로. 몸은 변해버렸지만, 내가 원래 누구인지는 잊지 않을 거니까. 그래서 새롭지 않으면서도 또한 새로운 시작이다.

가장 최근에 주어졌던 미션 세 개 중에, 하나는 의도치 않게 해버렸지만 아직 두 개가 남아있다.

날 바꾸어가길 원하는 듯한 내용들이지만, 내가 안 하면 되는 거기 때문에 당분간은 잊어버릴 작정이다.
그냥, 무시하고 있어 버릴 생각이다.


달칵,
간밤에 물을 마셔버리면 다음날 마려워진다. 음, 그치만 별일은 아니야.

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리는  멈출 수가 없다. 즐겁잖아.
원래대로라면 있었어야  남자의 물건이, 더이상은 없다. 그치만 괜찮아.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이젠 여자께 달려있는 것도 눈에 익어간다. 그치만 괜찮아. 언젠가는 돌아갈 테니까. 응, 돌아갈 거니까.


탁- 소리와 함께 올라간 커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 여자 힘이 약하긴 해도 이런 거까지 살살 소리가 나는 건 아니구나. 뭐, 됐지. 이건 그냥 잡스러운 생각일 뿐이다.

솨아아-
물줄기가 흘러내려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 시원해—

개운하다. 쿵, 쿵⋯ 시원하다. 콩닥, 콩닥.

...?

그러고 보니 나, 쓰러지지 않고 화장실에서 볼일까지 보고 있네?

놀랍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화장실에 들어가면 심장이 가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볼일이라도 보려고 하면 숨을 헐떡거리면서 버틸 수가 없게 됐는데.

그런데 지금은 버텨냈다. 무심결에 아주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원래 내가 살아왔던 대로 잠자고, 일어나고, 화장실에 가는 걸 해냈다.

가슴이 콩- 콩- 뛰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나, 이겨낸 거야?


순간의 기쁨이, 불안하지만 내 마음에 희망을 비춘다. 내 목을 죄어오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있게 되는 건가?


여자의 몸으로 흘러내려 보낸 소변이, 조금은 가랑이 사이로 묻어버리지만 다 괜찮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끈적한 물이, 하아얀 액체가 같이 묻어나오지만, 애써 신경쓰지 않는다.

아기새는 위험 같은 건 모른다. 그저 미션 따위는 시간을 질질 끌며 하지 않으려는 생각뿐이고, 아름다운듯한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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