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4화. 우정초밥-!
“..여기 오늘의초밥 두 개랑 우동 두 개, 회덮밥 하나 주세요.”
“네- 5번 초밥 둘, 우동 둘, 회덮 하나요!”
“...”
“...”
어색한 침묵은 내 잘못이 아니다. 아무튼 아니라고.
쟨 또 왜 이렇게 내 눈치를 보는 거야? 남자새끼 맞아?
“..안궁금해?”
“어?”
어휴, 니가 물어봐야 내가 대답을 할 거 아니야. 나 혼자 썰을 풀라는거냐.
내가 대뜸 얘기하는 거, 못할 거는 없지만 너무 민망하다. 이래서 만나기 전부터 걱정했던 건데.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이렇게 얼타버리면 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냐고. 갑자기 ‘나 여자 됐어!’라며 뜬금없이 말하고 하하 호호 웃을 수는 없잖아.
평소엔 저렇게 안 답답했는데 오늘 유독 눈치가 없는건지 왜 저러는 거야. 나 진짜 민망하고 부끄럽다고.
“나 여자 된 거.. 왜 이렇게 된 건지 안 물어봐?”
“어어.. 어. 물어봐야지. 미안, 딴 생각 좀 하고 있었다.”
뭔 생각을 하는데!
혼자 생각하지 말고, 나한테 말을 하라고. 응? 당사자한테 물어봐야 할 거 아니야⋯.
“하아.. 일단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말해봐. 다 대답해줄게. 오늘 진짜 각오하고 나온 거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된 거고? 병원엔 가봤어? 혹시, 뭐 병이 있었다던가 그런 거냐?”
“아니면, 혹시 수술이라도 하고 온 거냐? 그⋯ 너 혹시 남자 좋아해? 아니, 난 다 이해할 수 있는데⋯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거든. 그래서 수술한 거야? 아님, 어쩔 수 없이 그랬다던가?”
아이— 하나씩 물어봐야 할 거 아니야.
“야야.. 어지러워. 하나씩 물어봐. 다 대답해줄게..”
“어, 미안하다. 너 여자..된 거 언제부터 그랬냐.”
“이거 얼마 안 됐어. 일어나보니까 이렇게 됐더라. 사실—”
왜 이렇게 된 거냐, 어디 아픈 거 아니냐- 이런 질문에도 다 대답해줬다.
처음에 신이란 여자랑 엮이게 된 일부터, 악몽 같은 날들을 보내다가 순간 여자가 되는 길을 선택해버린 것까지, 전부 다.
너랑 친해지기 전부터 이미 내 몸이 변한 거 같다고.
처음 자취를 시작하자마자 고간이 사라졌고, 그 다음에 여자 꺼를 달게 되었고.
또 옷을 사라니, 운동을 하라니 이런 저런 거를 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어느 순간부터 외모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상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 병원에 다녀온 후, 멘탈이 깨져버린 상태에서 홧김에 일을 저질러 버린 거라고.
얘기를 하다 보니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도 한참을 더 말해주어야만 했다.
신이라니— 처음에는 못 믿던 눈치였는데, 내가 자꾸 정말이라고 얘기하고 실제로도 그 결과가 눈앞에 있으니 그제서야 조금 믿어주는 눈치더라.
하.. 설마 나 미쳤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 진짜, 겨우 멘탈 추스르고 여기까지 나온건데⋯ 그래도 친구니까, 혹시 날 이해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나온 건데⋯
불안해⋯.
“너.. 내가 이렇게 된 거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아니.. 그렇잖아. 남자가 갑자기 여자로 변했는데, 이게 다 신 때문이라 그러고—”
“어.. 솔직히 다 믿는 건 아닌데, 니가 하는 말이니까 그냥 속는 셈 치고 믿어보려고.
너네 부모님도 다 아시는 일이라니까, 수술 같은 걸로 거짓말치는 것도 아닌거 같고⋯”
이걸 믿어준다고..?
“..정말이야?”
“그래. 하⋯ 좀 심란하긴 한데, 실제로 보니까 달리 할 말이 없네.”
너 너무 잘 믿어주는 거 아니야? 너무 착한 거 아니야⋯? 아냐, 혹시 모르니까 다른 거도 물어보자.
“너 그럼⋯ 나 어떻게 생각해?”
“뭐? 그, 그게 무슨 뜻이야⋯?”
앗, 잘못 물어봤다. 그런 뜻이 아닌데. 친구가 당황하는 걸 보니 좀 미안해진다.
뭐 여자로서 어떻게 보이냐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느냐고. 여전히 친구냐고. 친구로 생각해줄 수 있냐고.
“아앗..! 미안⋯ 그런게 아니고, 날 친구로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미안, 진짜.”
“아⋯ 그런 뜻이었구나..”
응, 날 친구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줘. 나한테 네 마음을 들려줘. 날 어떻게 할 건지 알려줘.
“그냥.. 뭐 별거 있나? 니가 변해버린 건 좀 예상 밖이긴 한데, 그래도 내가 알던 희준이 맞잖아. 그치?”
“으응⋯”
아⋯ 좋게 말해주려는 거야? 날 버릴까 봐, 외면할까 봐 걱정했는데 희망이 보인다.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지고 더 따뜻한 말을, 더 상냥한 말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로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대학 친구 생겨서 좋았고, 너랑 말도 잘 통해서⋯ 나 진짜 네 걱정 많이 했다니까?”
다행이다. 정말.
“앗, 으응⋯ 미안해. 말 안 하고 사라져서 미안해.”
“그래 짜샤, 갑자기 왜 이렇게 소심해지냐? 걱정하지마. 우리 친구잖아. 응?”
응. 친구 맞아⋯ 우린 친구야.
“맞아⋯ 나.. 솔직히 말하면 학교 친구 너밖에 없어. 친구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기운차게 웃으면서 우린 친구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데 너무나도 여린 목소리만이 나올 뿐이다.
“우리.. 앞으로도 친구 맞지? 응⋯? 나, 더이상 안 변할 테니까,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거지?”
누가 쫓아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윽,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해서 안심이 되질 않는다. 확인받고 싶어진다.
“응? 응, 제발, 우리 친구로 계속 지내는 거지?”
순간 흥분해버려서 몰아치듯 말을 해 버렸다. 급발진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친구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놀라더니 이내 후- 하고 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어준다.
“야, 그렇다니까- 뭘 걱정하냐! 걱정하지 마 임마. 응? 남자 새끼가 걱정도 많아—”
응 고마워. 날 여자로 보지 않아 줘서 고마워. 날 계속 친구로 여겨줘서 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울음이 나오려고 하는데, 꾸욱 참는다. 아냐, 여기서 울면 안 돼. 뭘 이런 걸로 울어. 참아. 울지 말고 참아.
흑⋯ 흐윽.. 흑흑—
“야야야— 너 우냐- 왜 이런 걸로 우냐⋯ 울지 말어, 응? 야 이 새끼- 아, 참— 진짜.
어휴, 그래 울어라 울어. 다 털어버리고, 다 잊어버려. 그동안 걱정했던 거 다 잊어버려.
새끼, 뭐 이런 걸로 걱정을 해. 우리 친구 맞으니까 앞으론 걱정하지 마라—”
“흑, 흐윽—”
서러움이 복받쳐서 울음을 터뜨리다가, 친구의 위로 덕분에 한참을 울고 나서 간신히 마음을 추릴 수 있었다.
※
“크흥.. 흑, 미안⋯”
갑자기 울어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서러움을 털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우정이 더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하⋯ 갑자기 울고 그래. 괜찮다니까.
그래, 네가 제일 힘들겠지만,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널 도와줄 거니까 혼자서만 이겨내려고 하지 마. 알았지?”
“후우- 그래, 고마워.. 울고 나니까 좀 낫다. 아하하⋯”
“그래, 그래. 이제 초밥 좀 먹자. 너도 빨리 먹고. 배고프겠다.”
“응, 먹자. 에이, 우동은 다 불었네—”
나 때문에 우동이 다 불어버렸다. 아까워. 그래도 먹어야지. 일단 초밥부터.
초밥은 맛있는데 혼자 먹으러 다니기도 그렇고 가격도 싼 편은 아니라 자주 먹지는 못하던 거였지.
음— 오늘 시킨 건 모듬으로 나오는 초밥이라 그런지 먹을게 다양해서 좋다.
덕분에 초밥도 먹고, 고민도 털어놓고⋯ 쟨 진짜 좋은 친구야.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성격 좋고, 이해심도 넓은 것 같다. ..너무 고마워.
“올, 너도 초밥 좋아하는구나? 그래 사줄 때 많이 먹어라-”
“하하⋯ 얻어먹으니까 맛있네. 고마워, 진짜.”
“아 또 시작이네~ 고마운 줄 알면 빨리 마저 먹어라-”
아하하—
초밥도 먹고, 불어터진 우동도 가끔 먹어주고, 회덮밥도 같이 나눠 먹고. 참 맛있다.
근데, 좀 먹다 보니까 평소보다 빨리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최근에 입맛이 없어서 대충 먹고 다녀서 그런가? 입이 평소보다 짧아진 것 같은데.
“야.. 미안한데 나 더 못 먹겠어.”
“엥? 벌써?”
“배불러 진짜.”
“와- 이거밖에 못 먹어? 니 원래 이렇게 조금 먹었냐.”
“아니 원래 더 먹었지. 근데 이상하네. 입이 짧아졌나?”
초밥은 다 먹지도 못하고, 우동은 거의 그대로. 회덮밥은 어느 순간부터 석현쓰 혼자 먹고 있었다.
“미안해 진짜. 더 못 먹겠다.”
“아니 뭐⋯ 배부르면 됐어. 내가 남은 거 먹는다?”
“어어?”
앗, 내가 먹던 건데?
어⋯? 뭐지. 원래 이런 거 신경 안 쓰는데, 얘가 내가 먹던 걸 자기가 먹겠다니까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넌 배 안 불러? 너도 그냥 남겨.”
“아니 지금 무한흡입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너 우는 거 달래주다가 힘 다 썼다니까? 하하⋯ 그리고 너랑 친구 하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고-”
아니, 배고프다고 다 먹어버리지 말라고⋯ 으,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괜히 신경 쓰인다.
“좀만 기다려- 금방 먹을게.”
“⋯그래.”
에휴, 결국 내가 남긴 걸 친구가 다 먹어버렸고 자기가 계산까지 대신해준 뒤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야, 미안하니까 커피는 내가 살게.”
그냥 얻어먹기만 하기엔 너무 미안하잖아. 커피 정도는 내가 사는 게 맞다.
“오키, 조앗쓰. 존나 비싼 거 시킨다?”
그래, 내가 살게. 날 이해해주려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의도적으로 기운차게 외쳤다.
“그래- 앞으로도 친구 해준다는데, 내가 사야지—!”
※
커피는, 솔직히 말하면 많이 마셨다가 화장실을 또 가야 할 거 같아서 일부러 적게 마셨다.
그런데도 시간이 좀 지나니까 여지없이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더라. 하아⋯ 한숨만 나온다.
차마 말도 못 하고 끙끙대고 있었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 주는데 말하기가 너무 부끄럽고 내가 동물이 된 것 같아서 싫었다.
“나 그거⋯ 마려워..”
“어? 아⋯ 어떻게 하지? 화장실 갈 수 있겠어?”
모르겠다. 화장실 들어가면 또 어지러울 것 같은데.
“아으⋯ 어떡하지. 너 잠깐 망 좀 봐줄래?”
“망을 보라고? 설마 밖에서 싸게?”
“모르겠다 진짜. 어쩌지.”
“나 일단, 한번 화장실부터 가볼게.”
아무래도 밖에서 그러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 일단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동안 멘탈이 롤러코스터를 타기는 했어도,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애초에 남자 화장실을 들어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칸막이를 열을 때까지만 해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근데 뚜껑을 올리자마자 돌아버리겠더라. 여전히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가빠져왔다.
“안되겠다⋯ 미안한데 너 커피 다 마셨으면 컵 좀 줘봐.”
“어? 여기.”
후— 여기는 종이컵을 주는 곳이라 다행이지. 밖에 나와서까지 이래야 하나 싶은데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칸막이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컵에 해결을 해야 할 듯싶었다.
시발, 이거 진짜 어떻게 안 되나.
오늘 하루 친구를 만나고 치유를 받는 좋은 순간들뿐이었는데 마무리가 이상해진다.
...
...
이런 거까지 다 이해한다고 넘어가 주는 쟤는 성자인 게 분명하다. 으, 쪽팔려.
말을 붙이기가 민망해서 우물쭈물하는데, 헤어지기 전에 게임 좀 한판 하자고 그런다.
“좀만 하고 가자—”
뭐 둘이서 할 게임은 월드 오브 탱X 말곤 없다. 난 애초에 잘하는 게 저거밖에 없고.
근데 이 게임도 샷빨 이라던지 순간적인 상황 판단이 굉장히 중요해서 며칠 쉬면 감이 떨어진다.
탱크마다 설계가 다르고, 장갑의 두께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약점을 노려서 쏴야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사격을 할 때는 랜덤으로 명중률이 결정되기 때문에 영 엉뚱한 곳으로 발사될 때가 있다.
거기다가 상대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계속 움직이니까, 소위 샷빨이 부족하면 잘하기가 어려운 거다.
“아 미안- 잠깐 안 했다고 샷빨이 너무 딸리네.”
“괜찮아 임마, 부담 갖지 말고 걍 즐기자—”
그리고 자주포라고, 초장거리에서 저격을 하는 포지션이 있는데 이 게임을 많이 하다 보면 번-쩍 느낌이 들면서 자주포를 맞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십중팔구 몇 초 후에 자주포가 떨어지기 때문에 느낌이 쎄하면 진작에 피해줘야만 한다.
“아- 맞았다 진짜. 자주포 좀 없애면 좋겠네.”
“나도 피했는데 스플뎀맞았어!”
⋯⋯
“후- 레이팅 떨군 거 다 복구했다.”
“미안⋯ 괜히 나때문에 지기만 했네.”
에휴. 오늘 너무 못했다. 약점에 대고 쏴야 하는데 자꾸 이상한 데다 날리고, 정찰도 제대로 못 돌고, 라인 전도 망치고.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니까? 오늘은 그냥 같이 만나서 게임하고 그랬으면 되는 거야.”
“하여튼 미안해. 다음에 다시 하자. 그땐 내가 캐리할게.”
“올- 기대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같이 게임을 하니까 즐겁다. 난 역시 사람과 만나고, 친구와 어울리는 걸 원하고 있었어.
그렇게 밤이 될 때까지 게임을 하다가, 다음에 또 보자면서 헤어지기로 했다.
“야, 다음에 부르면 또 나와라?”
“알았어. 오늘 재밌었어. 고맙고.”
“그래 임마, 나 진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평소처럼 지내자.”
“응⋯ 나 그리고, 자취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결정 나면 말해줄게.”
“어. 니 없으니까 혼밥이 늘었단 말이야. 다시 서울로 빨리 올라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