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23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
“야야, 저기좀 봐봐.”
“아, 왜 또. 이 새끼 존나 귀찮게 하네.”
“빨리 보라니까, 씹-”
“어어- 왜? 어디?”
“야 저기- 저기 서 있는 사람 존나 예쁠 거 같지 않냐?”
“올, 그러게? 우와— 가슴도 존나 큰데?
시발 저거 수술한 거겠지? 젖탱이 존나 크잖아. 미친년이네 저거-”
“킥킥, 번호 따볼까?”
“니가 번호를 딴다고?”
“어. 나 정도면 마스크미남임. 안 그러냐?”
“미친놈이네 이거~ 가서 번호따오면 내가 술 쏜다.”
“좆밥이지. 잘 봐라-”
⋯⋯⋯
“아하하핫- 이 새끼 까였네~”
“아 좆같네 진짜- 시발년, 존나 비싸게 굴드라.”
“응~ 빻아서 그런 거죠? 안봐도 뻔하지~”
⋯⋯
⋯⋯
※
학교 앞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중. 자취방에 들렀다 왔는데도 시간이 남아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
주말인데도 사람이 정말 많다. 아무리 방역지침으로 제한을 해도 외출은 막을 수 없나 봐.
흐흠- 흠~
우와아— 꽃 진짜 많이 폈구나. 예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난 꽃이 좋더라.
“예쁘다-”
기분 좋아. 꽃 보니까 미소가 나온다.
응, 꽃을 좋아해. 색깔도 예쁘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노력도 정말 좋아해.
꽃 구경이나 하면서 음- 이거 괜찮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왠지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뭐지⋯? 나 보는 건가?’
뭐야? 아무래도 날 보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다. 뭐지? 나 뭐 잘못하고 있나?
앗, 나 뭐 묻었나?
어.. 아닌데. 고개를 낑낑대며 돌렸는데도 옷에 묻은 건 전혀 없었다.
“저기요-”
한참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모르는 남학생이 와서는 말을 걸었다.
“네에⋯?”
여자 목소리로 말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마스크를 낀 탓인지 목소리가 작게 나온다.
“제가 계속 그쪽을 보고 있었는데요—”
앗-
이거, 이거 사이비지? 사이비 같은데?
“아아앗.. 죄송합니다, 관심 없어요⋯!”
“아뇨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제가 아까부터 그쪽을 보고 있었는데, 너무 제 이상형이셔서⋯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하?
이 새끼 뭐야. 나 남잔데? 미친 새끼인가?
“..네에?”
싸늘하게 식은 시선과 경멸하는 목소리로 차갑게 대답했지만, 남자는 포기하질 않는다.
“부담 갖지 마시구요. 저희 그냥 번호 교환하고 친구나 해요. 핸드폰 주세요 빨리.”
꺼져 병신아.
“..싫어요. 가세요.”
미친 새끼.
※
웬 또라이가 번호를 따길래 남자 좋아하는 게이인 줄 알고 기겁을 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후로도 몇 사람인가 와서 계속 번호를 물어봤고, 그때마다 나는 싫다고, 거절하겠다고 말하며 진땀을 빼야 했다.
‘저기,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 죄송합니다.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시간 되시면
저랑 이야기나 잠깐—’
- 남자친구 있어요.
‘첫눈에 반했습니다! 제 마음을—’
- 안 받아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자들이 꼬이진 않더라. 하-
처음엔 진짜 오늘 무슨 날이라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내 모습이 완전히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나 근데 마스크 썼는데, 뭘 보고 자꾸 번호를 달라고 그러는 거야?
남자일 때도 번호 주고받는 건 상상도 못 해봤는데, 정작 원치 않게 여자로 변하고 나서야 무수한 번따의 요청이 들어오니까 기분이 참 뭐 같잖아.
안 그래도 열 받는데 심지어 어떤 자식은 대놓고 성희롱을 하더라.
“야, 오빠랑 재밌는데 가서 놀까? 따라와!”
“죄송합니다. 가세요.”
“아 씨발년.. 젖탱이만 큰 년이, 시-발 이거 얼마짜리인 줄 알어?
하— 시발, 됐다, 됐어.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너처럼 젖통만 크고 골빈 년들이 이런 걸 알겠냐.”
⋯죽빵을 날려버리고 싶은데, 키가 너무 커서 참았다. 시발!
진짜 뭐냐고. 내 가슴이 뭐 어때서. 씨이— 가슴 큰 게 죄야? 어? 죄냐고-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저딴 소리를 하는 거야⋯!
—더 열 받는건, 내 옆에 서 있는 저 남자가 한참동안이나 그걸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빠직-
하,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니까 고개를 돌려버리곤 외면하더라.
후우⋯ 내가 참아야지. 후우, 후우.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응.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어. 다 이해해.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쟤가 내가 누군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내가 여자 모습이 되고 나서 처음 보는 거일 텐데,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응.
근데..
음..
....아는척 해야겠지?
약속시간 다 됐는데, 한참 시계를 쳐다보고 핸드폰으로 타자를 타닥 타닥 치는 걸 보니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해야겠다.
이 씨, 근데 안 도와준 거 좀 얄밉네.
참나. 보통 여자가 곤란해하면 도와주지 않나? 난 도와줄거같은데⋯ 근데 나 삐친 건 아니다, 절대?
[강석현] 어디냐
[강석현] 파토임 설마?
파토 아닌데?
▷ 와있는데?
빙신. 지 옆에 있어도 몰라요.
[강석현] ?
[강석현] 어딘데
▷ 학교앞
[강석현] 구라치지마셈 시발 빨리와라
얘 진짜 상상도 못 하고 있구나. 우리 부모님도 알아봐 주길래, 친구란 놈도 아예 못 알아보는 건 아니지 않을까 기대했단 말이야. 묘하게 섭섭해.
하⋯. 톡만 보내서는 답도 없겠다. 바로 옆에서 핸드폰 해도 눈치를 못 채네.
음..
막상 부르려니까 좀 자신감이 사라진다. 얘랑 나는 남자일 때 친구인거지 지금처럼 모습이 변해버리면 그 관계가 다 사라져버린 거 아닌가?
어떻게 불러야 할지,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도 참 답이 없겠다 싶어서 조용히 친구를 불렀다.
“저기..”
고개 돌리고 있는 친구 녀석의 옷자락을 살며시 끌어 잡고는 소심하게 말을 걸어본다.
“저기요..”
너무 작게 말했나? 손가락으로도 콕콕 찔러서 불러본다.
※
‘아 진짜, 얘 왜 이렇게 안 와?’
한참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가 그동안 아팠다길래 위로나 좀 해주려고 밥을 사준다고 했다.
이왕 사주는 건데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초밥 정도면 괜찮겠지.
‘학교 앞에서 만나자—’
연락도 잘 안 되는 트롤러 투성이의 팀원들에게 시달리면서 조별과제를 하다 보니 벌써 약속한 토요일이 되었더라.
진짜, 오랫만에 보겠네.
몇 주 만에 보는 건데 만나서 밥 좀 먹이고 같이 PC방에 가서 게임할 생각을 하니 즐겁다.
이런 저런 말 하면서 마음도 잘 맞고, 하는 게임도 똑같고, 같이 플레이해보니까 결과가 좋아서 즐겜이 되는 친구다.
음-
먼저 와서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서 곤란해하는 게 보인다.
번호따는 거 같은데⋯ 괜히 안 엮이는게 낫지. 번호따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까 정확한 건 아니지만, 저 여자도 어느 정도 외모가 되니까 저렇게 번따를 받는건가 싶다.
뭐, 내 여자친구도 아닌데 괜히 싸움 날 필요는 없는 거다. 됐다, 됐어.
..
..
근데, 얘 언제 오는 거냐. 그동안은 시간 잘만 지키더니, 집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좀 늦는 건가?
‘어디냐’
파토내는건 아니겠지? 새끼, 밥 사준대도 못 받아먹으면 진짜⋯
근데 답장이 참 생뚱맞다. 이미 와 있다고?
아무도 없는데? 건너편에 있나?
[박희준] 학교앞
?
뭐라는 거야 진짜. 장난칠 시간 있으면 빨리 오기나 해라.
늦어서 민망하면 그냥 솔직히 말하지 뭐 이런 구라를 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옷을 잡아당긴다.
아 뭐야..
실수겠지, 싶어서 애써 무시하는데 이번엔 등을 쿡- 쿡- 찔러댄다.
“..기요”
“..저기요⋯”
??
누구세요?
“네?”
“..인데요..”
아. 잘 안 들리는데. 좀만 크게 말하지.
“네??”
“희준...인데..요?
나.. 희준.. 인데.., 어.. 음.. 하, 나 박희준이라고.”
누구요?
※
날 대뜸 부르더니 자기가 박희준이란다.
이거 뭐 신종 보이스피싱 같은 거냐?
“사람 잘못 찾으신 거 같은데요? 저 아세요..?”
“.....나 박희준이야.”
“아니, 전 그쪽 처음 뵙는데요. 모르는 분인데 저 누군지 아세요?”
“..강석현.”
엥? 내 이름 어떻게 아는 거지.
“..제 이름 어떻게 아셨어요?”
“나 희준이라니까. 네 친구.”
아니, 내 친구 중에 희준이라는 여자는 없다. 대학교 와서 사귄 친구가 박희준이긴 한데 걘 남자고.
근데 갑자기 모르는 여자가 내 친구래. 뭐냐 이거?
어디 아픈 사람인가? 얼굴 보니까 마스크 껴서 잘은 모르겠어도 꽤 반반하게 생겼는데. 몸매도 좋고. 근데 머리가 이상하다니, 안됐다.
“사람 잘못 찾으신 거 같네요?”
나 아니라고, 저리 가라고 그러는데 그 말을 들은 여자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소리쳤다.
“아이 진짜— 나 맞다니까? 아, 답답해! 증거 보여줄게. 핸드폰 이리 줘봐!”
어어어? 갑자기 내 핸드폰을 달라 그러는데 이거 주면 안 될 것 같다. 무조건 들고 튀는 각이다.
“아, 좀-! 빨리 줘보라고!”
“안 줄 거니까 딴 데 가세요-!”
“니 친구라는 증거 보여줄 테니까 핸드폰 줘보라고. 왜 이렇게 답답하냐—”
뭔데 이렇게 끈질겨? 슬슬 짜증이 나서 화를 내려는데 여자가 우이씨- 하면서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야! 내가 지금 톡 보낼 테니까 바로 봐라. 알았어-?!!”
타닥- 탁- 타다닥—
또톡.
어..
또톡— 또톡.
어어..?
※
▷ 나 맞다고.
▷ 나 여자됐음
▷ 니 앞에 있는거 나 맞으니까 믿어라
답답해!
못 믿는 게 석현쓰 잘못은 아니지만 너무 답답하다. 성질나-!!
실시간으로 톡을 주고받아서 나 맞다고 증명하려 했는데 자꾸 핸드폰도 안 준다.
어휴, 그냥 톡 보낼 테니까 바로 보라고 말해버리고 나 맞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친구 표정이 바로 변한다.
“저기.. 진짜로 희준이 맞아..요?”
거참, 맞다니까 그러네.
“장난 문자 아니죠?”
“..나 맞다고.”
‘무슨⋯ 말도 안돼. 다른 증거 더 있어요?’
자꾸 맞냐고 물어봐서, 아예 둘만 아는 스토리나 예전에 나눴던 얘기 같은 거, 둘이 게임 하면서 있었던 일 같은걸 말해줬더니 그제서야 믿기 시작한다.
그래, 민증도 보고 다 봐라. 자, 여기—
“뭐야, 너 진짜 희준이 맞아? 너 원래 여자였어?”
“아니 나 원래 남자 맞는데—”
어쩐지 너 갈수록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거 같더라. 뭐 성정체성 그런거냐-
“그런 거 아니야. 나 진짜 갑자기 이렇게 됐어-”
“갑자기 여자가 됐다고? 무슨 소리야, 그게.”
“하아.. 뭐부터 말해야 하지. 야, 일단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 나 진짜 이거 생각만 하면 돌아버리겠다.”
“어어⋯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어. 밥부터.”
..이걸 뭐라고 말하냐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