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20화. 아기새 (1) (21/80)



〈 21화 〉20화. 아기새 (1)

거울은 나를 노려본다.


미션은, 하지 않을거다. 여자처럼 옷을 입고, 화장하고, 머리를 꾸미는  내가 지켜야할 선을 더 넘어버리고 마는 거니까.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는 것⋯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이름, 내 얼굴, 내가 살아온 삶을 잃고싶지 않다.

나의 내면이 어떻든 간에, 여자처럼 치장하는 순간 사회적으로 포장되고  모습이 진짜 나를 먹어치우고  거다.


그래서, 애써 편해지고 싶은 마음을 꾹 꾹 눌러담으며, 내 마음을 노려보는 저 거울로부터 도망친다.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 것만 같다가도, 눈 깜짝할 새에 수면으로 끌어올려진다.



아—.

[강석현] 이번 주말에 시간됨?
[강석현] 니 아팠대서 내가 비싼거사준다ㅋㅋ


오늘도 어김없이 톡이 왔다. 날 계속 신경써주는게, 이런게 진짜 친구인걸까 싶다. 고등학교때 친구들은, 점점 소원해지고 있는데⋯


▷ 뭘 니가 사냐ㅋㅋ 그냥 N빵하자.


[강석현] 존나 이게 우정의힘임 걍 처먹으셈
[강석현] 초밥사드림 ㅇㅋ?


아⋯ 정말 사줄건가봐. 미안해서 따로  내서 밥먹자고 그러는데, 계속 자기가 사주겠단다.


미안해서 어떡해. 예전에도 친구들이랑 밥 먹으러 다니면 얻어먹는 사람이 커피 사고 그랬는데. 커피라도 사줘야할까봐.

근데  이번 주말에 외출할 수 있을까⋯?

아직 부모님과는 친구랑 만날 지도 모른다고 말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허락해주실지는 모르겠다.


안된다고 그러면 어떡해야 해? 사람을 안 만나니까 너무 답답한데, 위험하다고, 그 모습으로 어쩔거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지잖아.

대학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자립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허락을 구해야 하는 어린아이가 되고있다⋯
.

윽— 또다시 침전한다. 우울감이 날 덮쳐오는데 친구에게서 온 톡을 보고 정신을 차린다.


[강석현] ㅇㅇ그럼 일단 학교 앞으로 ㄱ 늦지마라 ㅅㅂㅋㅋ
▷ ?
▷ 너나 시간 지켜라ㅋㅋ


아하하-, 내가  늦어. 난 시간 잘 지켜. 너나 잘 하라고—


마침 신종 바이러스의 유행도 조금 잠잠해져서, 방역 지침도 좀 완화가 됐다더라. 외출할 때 마스크는 써야 하지만 식당 출입도 가능하고, 사람들도 조금 활기를 찾았다고-

으응, 역시 누군가와 관계되는건 즐겁다. 무너져가던 마음이 고작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회복되어간다.



—부모님께 주말에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


“괜찮겠니 아들? 아직 몸 안좋은거 아니야⋯?”
“어. 나 괜찮을거 같아. 자꾸 집에만 있으니까 더 안좋은거 같아서, 친구 좀 만나려고.”

“그으래—.. 엄마는 네가 또 쓰러지고 그럴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진짜 괜찮아-! 봐봐, 이제 적응도 좀 된거 같으니까. 아하하—, 다시 학교 수업도 열심히 듣고 그럴거야.”

자꾸 걱정을 하길래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웃는거 맞나-? 왠지 웃는게 낯설고 어색하다.


갑자기 변해버렸지만, 원치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장난이라는 거에 놀아나고 있지만 기운차리고 씩씩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한다.

“휴우⋯ 엄마는 우리 아들이  대견하고 기특해. 응,? 엄마 마음 알지? 엄마는 항상  편이야-”


나도 알고 있어. 항상 고마워. 나, 열심히 버텨볼거야. 열심히 이겨내 볼거야.

겉으로 보이는게 내 전부는 아니니까. 여자처럼 보이지만 난 여전히 나일 뿐이야. 그동안 잘못 생각해왔던 거야. 몸이 변해도, 마음을 지키면 되는거야—






아, 어떡하지—!


다시 일상을 회복하려고 친구랑 만나기로 한 것까지는 참 좋았다.


근데  여자모습이잖아..! 아무리 다짐을 해도, 걔가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신경쓰인단 말이야.


뭐라고 말해야하냐고 진짜-!!

날 알아볼 지도 의문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처음부터 다 말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해진다.



으으⋯ 그리고 입을 옷도 없다는게 문제였다. 자취방에서부터 입고 왔던 옷은 너무 커서 더이상 맞질 않는다고.

엄마가 안입던거라고 준 옷도, 경황이 없을 때나 급한대로 입었던 거지 그걸 입고 돌아다니기는  그렇잖아.

여자처럼 입고 싶다는게 아니라, 하다못해 평범하게는 입고 다녀야 하지 않겠어—? 급하게 물려받은 엄마 옷은, 솔직히 나한테 너무 안 어울린다. 이건 얼굴 문제가 아니고 옷 자체가 너무 낡았잖아, 정말.




그리고.. 그리고 속옷⋯ 아 씨, 진짜-!!!!
속옷 어쩔거야 진짜.  정말로 그딴거 하기 싫은데, 그.. 가슴이 너무⋯ 너무 커서..!!! 가슴이 너무 커서 출렁거린다고, 아오 씨—!


얇은 천 조각 하나만으로는 커져버린 가슴과 볼록하게 튀어나온 유두를 가릴 수 없게 되어버렸잖아.
읏, 옷이 스칠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만다.

브레지어 하기 싫은데, 가슴이 너무 흔들려서 집에서도 제대로 걷기가 어색하고  모습이 민망해진다.


팬티는, 에휴— 속옷에 살이 쓸리면 너무 아프긴 하다. 좀 익숙해지려나 싶더니 그래도 불편한건 사실이더라. 묘하게 까슬까슬하고 살에 닿을 때마다 아린게 아무래도 팬티도 여자껄 입어야하는 건가 싶고⋯
정말⋯ 현실적으로 문제되는거 많아서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 옷을  입으면 또 미션에 굴복하고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셈이잖아. 더이상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단 말이야.

분명 새로 주어진 미션에서는 다른 여자들처럼 옷을 꾸며 입으라고 했었다. 그래. 다른 여자들처럼 입으라고.


그렇다면 난 미션의 빈틈을 찾아서 피해가면 될 뿐이다. 이런건 생각도 못했겠지.
허술해보이는 미션의 내용을 곰곰히 되뇌이면서 여자처럼 입지 않으면서 내 몸에 맞는 새 옷을 사 입을 방법을 생각해본다-



⋯여자처럼 입어보랬으니까, 난 반대로 여자들처럼만 안 입으면 되는거 아닐까? 하하— 별 거 아니지만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여자들은 보통 자기 몸매의 강점을 살리고,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입는다. 귀여운 옷, 어른의 매력을 뽐내는 옷, 지적으로 보이는 옷.. 모두 각자의 개성에 맞춰 장점을 어필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거니까.

그으래—! 그냥 무미건조한 옷을 사면 될  같다. 여자처럼 되기 싫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어. 그냥, 아무 느낌도 안 들게 평범하고  아주 평범한 그런 옷들을 입으면 될거야.

처음에는 살랑 살랑 흔들리는 원피스, 쭈욱 달라붙는 타이트한 블라우스, 허벅지를  드러내는 못된 스커트같은게 생각나서 싫었던 건데, 이런 거라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입고 다닐  있는 거잖아.


근데,  사이즈 잘 모르겠는데.. 그냥 지금 입고 있는 옷이랑 비슷한 걸 사면 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도 다음 주에나 배송이 시작된다고 안내가 나오는데,  당장 이번 주말에 입어야 한단 말이야.


아무래도 밖에서 직접 사와야 할 것 같다. 어디로가지— 아무래도 가까운 백화점에라도 들려야 할 것 같은데⋯.


근처에 시장도 없고, 가끔 있는 갤러리들은 온통 여성미 넘치는 옷들 뿐이라서 내가 살 수 있는게 없을거 같더라.

생각난 김에 바로 사러 가는게 좋을거 같아서 일단은 부모님께 문자를 드렸다. 음⋯ 잠깐 나갔다 오는건 괜찮겠지.
주말에도 친구 만나는 걸 허락받긴 했지만, 연락도 없이 나갔다오면 걱정하실게 분명해서 말씀을 드리고 나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저  사러 밖에좀 다녀올게요.’

평소에 말을 높여서 하지는 않지만, 왠지 문자할때는 이렇게 존댓말이 나올 때도 있더라.

하여튼 문자를 보내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엄마한테 답장이 온다. 원래 이렇게 타자가 빠른 분이 아닌데.


‘아들괜찬겟어’

하하⋯ 맞춤법을 틀리시는게 뭉클뭉클하면서 기분이 묘하다.


네 괜찮아요. 잘 갔다 올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 돈·잇어?’


아.. 지갑에 돈이 있었나? 여자 옷은 얼마나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비싼 옷은 안 살거지만..
현금이 없어서 앱을 켜서 계좌를 확인해보니, 한동안 용돈을 받지 않아서 남은 돈이 별로 없었다.

‘죄송한데 용돈 조금만 보내주세요’

음⋯ 뭔가 미안하다. 용돈 받아서 하는 일이 여자 옷을 사는거라니. 기분이 이상해.

다행히 엄마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용돈을 보내주셨다.

‘지금입금해줄게’
‘조심해서갓다와’


꽤나 많이 보내주셨구나. 집에서만 우울하게 있다가 밖에 나가겠다는 말을 해서 그런지, 날 챙겨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고 너무 고마웠다.






부르릉—


우리 집에서 백화점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몇 분 정도 타고 가야한다.
좀 허름한 옷이지만 일단은 그대로 입고, 대충 헐렁한 츄리닝을 위에 걸쳐 입은채 집을 나섰다.

맞는 운동화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신고 다니는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어색한 발걸음을 옮긴다.

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마스크를 썼지만 길을 갈 때마다 다들  쳐다보는 것만 같고 차마 고개를 위로 들지 못하겠더라.


‘저 사람 뭐야?.’
‘야야. 저기, 저기—’
‘킥킥. 가슴 흔들리는거 존나 병신같네.’
‘옷 입은 꼬라지 좀 봐.’


머릿 속으로 사람들이 말하는게 들려오는 것만 같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길을 살피려고 고개를 잠깐 들었다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이고.

읏⋯ 날 쳐다보는 것만 같아.
콩닥- 콩닥- 심장이 쿵, 쿵 거려서 가슴이 진정되지를 않는다.



몽글몽글한 젖가슴이 출렁이는게 너무 부끄럽다. 위에 츄리닝을 하나 더 입었건만 가슴이 너무 커서 옷이 볼록하게 올라와버렸다. 싫어⋯⋯ 천박한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창피해.

어떻게든 출렁이는 가슴을 부여잡으려고 어깨를 오므리고  팔을 모아 팔짱을 껴보지만 오히려 그럴 때마다 유방을 점점 더 부각시키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못된 엉덩이가 이리저리 실룩이게 되는게 너무 민망하다. 읏,... 부끄러운 마음에 보폭이 좁아지고,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골반의 움직임이 점점 소심해진다.



으— 이렇게 먼 길이 아닌데.
몸을 한껏 웅크리고 한차암 걸어가고 나서야 겨우 버스에   있었다.

누가  까봐 맨  구석으로 가 창가 자리에 앉는다. 보지 말아줘⋯ 누가 볼 새라 몸을 창가 쪽으로 돌리고, 고개를 푹 숙인다.

—오래된 버스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맥박을 가쁘게 만들고 있다. 요철을 지날 때마다 덜컹— 흔들리는 버스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하읏⋯ 몸에 진동이 전해져올 때마다, 예민한 몸이 불편한 속옷에 쓸려 아픔을 전해오고 있었다.




분명 옷을 사러 온건데, 내가 입을 옷을 사야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 1층 ] 해외유명브랜드, 화장품, 잡화
[ 2층 ] 구두, 여성
[ 3층 ] 여성, 모피, 란제리, 핸드백
[ 4층 ] 캐주얼
......


평소엔 고민도 하지 않았을 수많은 층들이다. 난 쇼핑같은거 잘 모른단 말이야⋯.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어⋯

윽—!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을  감고 승강기의 버튼을 눌렀다.


[ 4층 ] 캐주얼


절대 여자들이 입는 화려한 옷은 안 입을거니까, 평범하고 눈에  띄는 중성적인 옷을 입을 거니까 캐주얼이 맞을거야—

드으으—
승강기가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너무나도 긴장된다.

‘어떡하지, 진짜⋯’




드으으—

띵-동.
“4층. 문이 열립니다.”

아앗..! 승강기에서 내려서 어디로 가야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안절부절 못하던 사이에 어느새 4층 캐주얼 층에 도착해버렸다.


“어, 어⋯ 어떡해—”
어디, 어디로 가야해..?!
인터넷에서 여자들이 당황하는 걸 비웃으며 낄낄댔던 적이 있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누가 쫓아올 새라 고개를 황급히 돌리면서 옷을 파는 곳이 어딘지 다급하게 찾는다.


여기도- 여기도—
전부 옷을 팔고 있다. 너무 당황해서 그런 당연한 사실이 나를 더 몰아세우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옷과 신발들로 가득차 있다. 남자 옷, 여자 옷, 남자 신발, 여자 신발⋯



평소에는 그냥 무시해버리고 지나쳤을 코너들이, 여자 옷을 사야 한다는 압박감이 되살아나서 너무 많은 정보로 바뀌어 내 머리 속에 들어온다.

아아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본능적으로 눈에 띄는 옷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통로를 지나는데 온통 자켓, 가디건, 블라우스, 스커트, 청바지, 여성 단화들로 가득하다.


“고객님, 어서오세요—”
매장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 직원이 나를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네,네?,네에⋯!
머리 속이 백지가 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아서 인사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채 매장을 두리번 거릴 수밖에 없었다.


“손님, 혹시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실까요-?”

앗, 그, 그⋯!
“저, 저기⋯ 그..! 제.. 제가 이, 입을, 오, 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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