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8화. 트라우마 (삽화有)
—!!
“무슨 일이야, 괜찮니—?”
“정신차려봐, 응, 아들, 괜찮아?⋯”
⋯
⋯
화장실에서 쓰러지자마자 바로 달려온 엄마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간호를 하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얼마나 끙끙댔던건지 몸이 온통 땀 투성이었다.
“으으⋯ 지금 몇시야?”
“아이구, 밤이 다 됐어. 왜 갑자기 쓰러진거니— 지금은 좀 어때, 응?”
아.. 바깥이 좀 어둡길래 물어봤는데 밤이라니. 참 오래도 쓰러져있었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 꼬박 하루를 날린 셈이다.
사실 화장실에 가면서도 몸이 안좋긴 했지만 내 모습을 보고, 속이 메스꺼워 변기로 달려갔더니 숨이 가빠지더라.
트라우마인가-
자취방에 이사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고간이 비어있었는데.
볼 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갔다가 배가 너무 아파서 119에 전화했었고.
그 때의 고통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아직도 날 괴롭히고 있는거야.
“엄마, 끙.. 나 일단 밥 좀⋯”
“어어, 그래애— 죽 끓여놨다. 천천히 먹고, 속 안 좋으면 말 하고-”
침대맡에 머리를 기대고 죽을 떠 먹는데, 숟가락을 잡는 감각도 달라진 것 같았다.
으음, 뭐야.
왠지 다른 숟가락을 잘못 잡고 있는 것만 같고, 느낌도 묘하게 어색하다.
아닌데- 이거 내가 자주 쓰는 숟가락 맞단 말이야. 손에 익어서 이거 말곤 거의 안썼는데 왜 이러지?
아무래도 이상해서 숟가락을 좀 더 내려서 잡아보고, 으음- 다시 올려서 잡아보고.
엄청 거슬린다. 숟가락도 손 안에 편히 잡히질 않고 자세를 고칠 때마다 대롱대롱 하는데?
혹시, 말도 안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숟가락이 더 길어져버린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말도 안돼. 숟가락이 길어졌을리는 없다. 엿가락도 아니고 늘어날리가 없잖아.
뭔가 적응이 안돼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끙끙대다보니 이내 숟가락을 잡고있는 오른손에까지 시선이 닿는다.
어어?
손이 뭐 이렇게 작아?
손을 보니 완전 여자 손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반 애들이랑 손뼉을 대보면서 누가 더 큰지 자랑하곤 했었는데⋯.
손가락이 너무 가늘잖아. 이래서는 어디가서 힘도 못 줘볼거야.
이런 손으로는 이제 아무도 이길 수 없다. 중학생이랑 대결해도 분명 내 손이 더 작고 약할게 분명하다.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여자아이 앞에서 으스대고 싶어서 은근슬쩍 손을 맞대보곤, 너 엄청 작다—며 자랑하고는 하는데.
나름 남자였다고 조금 거칠었던 손은 이젠 완전히 부드러운 살갗으로만 뒤덮혀 있었다.
아.. 이젠 나도, 은근 뽐내며 손을 대보자고 할 처지가 더이상 아니게 됐다. 여자 손이라니⋯
—그러고보니, 내가 누워있던 사이에 부모님 두 분이서 말을 많이 나누신 것 같았다.
걱정을 많이 하셨겠지.
당장 아빠만 해도 엄청 진지한 척, 가벼운 걸 싫어하는 척 하며 가끔 정색을 하다가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는게 다 티난다.
왜 아니겠어.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인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가족이고, 하나 뿐인 자식인데.
아빠는 내가 쓰러져있던 사이, 내가 왜 이렇게 되어버린거냐며 화내고 따지기보다는 정말 몸에 큰 일이라도 난게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아하하⋯, 잠깐 쓰러질 수도 있지. 괜히 미안하잖아.
하여튼 그런 아빠도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고 끓는 한숨을 내쉬더니, ‘난 그래도 네 편이다.’라며 별 말을 안하셨고.
많이 속상해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엄마도 다 괜찮다며, 아들은 언제까지나 내 아들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아⋯ 엄마 울었구나. 나 때문에, 얼마나 울었길래 눈이 탱탱 부어버린거야. 엄마- 뭘 이런거갖고 그래에—
엄마가 울면 나도 슬프단 말이야. 으응,? 아이, 왜 또 울려고 해. 그러지 마.
엄마는 날 위로하면서도 가끔씩 훌쩍이는게 아직도 슬픔이 가시질 않은 듯 했다.
그치만, 내 편이 되어주겠다며 내 몸부터 추스르라고 다독여주는데, 그런 부모님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또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내가 갑자기 몸에 변화가 생기고, 여신을 만났던 것들을 말하긴 했지만 그걸 다 받아들여준 부모님이잖아.
“엄마, 아빠⋯ 미안해.. 고마워⋯”
너무 갑작스러운 일들만 일어나고 있는데.
사실 처음에 내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님께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도, 너무 말도 안되는 일이고 또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
집에서 떠나 멀리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데, 우리 아들 잘 있냐고 자주 톡을 보내며 걱정해주시는 부모님인데.
전부 이해는 못하셨을지 몰라도 부모의 사랑으로 자식을 품으려는 것이겠지⋯
몸이 완전히 변해버리고, 덩치도 줄다보니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자취방에서부터 입고 왔던 내 옷도, 새로 산 청바지랑 맨투맨같은거는 이미 맞지도 않을거 같다.
나도 몰랐는데 쓰러진 사이 엄마가 안입는 면티와 츄리닝 바지로 갈아입혀놨더라.
하하⋯, 별 것도 아닌데 웃음이 나오려 한다. 엄마도 참, 새 옷 좀 사입지. 이런거까지 다 보관하고 있었구나—
몸이 줄어들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이 몸에 맞는 남자옷은 이젠 없을거아니야. 나 진짜 여자가 되어버린거구나.
결국 그날은 수업도 못 듣고 기진맥진한 채로 바로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
—습관. 그래, 습관.
습관 덕분인지 관성적으로 아침에 일어나기는 했다.
매일 일어나는 그 시간, 그 기분, 그 찌뿌둥함, 하품, 기지개, 슬픔.
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다. 오히려 우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습관이라는게 나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밥 좀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오늘은 수업을 들을거니까..
모처럼 다같이 모여서 하는 아침식사에, 나도 부모님도 애써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들, 많이 먹어.”
“그래. 많이 먹어야 그런 거도 다 이겨낼 수 있는거다.”
“네⋯”
밥 먹는다고 내 몸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우울한 감정을 털어내고 잘 드시라고 대답을 건냈다.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 다들 심란할텐데 원인인 내가 더 조심해야지-
그래도 어제 한참을 고생하다가 밤에 겨우 죽만 먹었던 탓인지 꽤나 배고프더라. 결국 아침밥을 다 먹기는 했다.
그런데 밥이 안넘어가서 물을 좀 많이 마셨더니, 금새 소변이 마려워지기 시작했다.
읏, 벌써—?
명절이나 휴가 때마다 다같이 여행을 떠나면 유독 엄마가 화장실이 마렵다며 자주 차를 멈춰세우고, 휴게소를 급히 찾았던 기억이 난다.
여자는 요도가 남자보다 짧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 몸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방광도 줄어들어버린 걸까?
‘급해—’
조금 참아보려다가, 오줌이 점점 더 마려워지길래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려는데, 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바지를 부끄럽게 내리고 어색한 크기의 변기 위에 앉으려는데, 식은 땀이 나면서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으윽.
나 요즘 왜이래. 이상하게 작은 거가 마려워서 볼 일을 보려하면 머리가 너무 어지워진다.
윽⋯
안돼, 나 또 쓰러지기 싫어—
도와줘, 엄마⋯ 겨우, 겨우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 화장실, 마려운데⋯ 못 가겠어, 나 좀 이상해⋯”
“나 일단, 빈 통이라도 줘⋯ 아니이, 그릇 말구⋯ 그냥, 페트병 같은거라도—⋯”
지금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릇은 아니야. 고속도로같은데서도 가끔 그렇게 하니까, 페트병같은건 괜찮겠지.
“읏, 고마워⋯ 나 방에 들어갈테니까, 문 열지마아⋯”
창피해. 부끄러우니까 문 열지 마.
말은 이렇게해도, 차에서라도 페트병에 오줌을 쌌던 거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잘 안난다.
아, 짜증나⋯ 빨리, 빨리이⋯
찐득찐득하게 음료수가 굳어버려서, 잘 안 열리는 뚜껑을 딴다고 혼자 낑낑대는 꼴이 우습다.
끄응, 으으우—
아니야. 이게 뻑뻑해서 그런 거라구.. 힘이 약해지고 그런거, 절대 그런 거일리가 없어-
“하아, 읏, 급해⋯”
오줌을 어떻게 싸야 할 지 몰라서, 급한대로 의자 위에 올라탔다. 어떻게든 병 안에 봐야하니까 자세를 잡아야만 한다.
옷- 옷도 벗어야 해⋯ 마음이 급하다. 바지, 바지 빨리 벗어버리고- 읏, 왜 이렇게 안 벗겨지는거야.
바지가 무릎에 부닥쳐 잘 안 내려가고, 발뒷꿈치에 걸려버린다. 아, 왜 이러냐구 정말—!
고개를 숙이면 윗도리가 자꾸 벗겨져 내려온다. 이것도, 잠시만 벗어야지— 너무 부끄럽다.
입고있었던 옷가지들을 모두 벗어버린 나는, 다시 의자에 올라타곤 위태롭게 자세를 잡으며 끙끙댔다.
두 손을 손잡이에 받치고 팔에 힘을 꼬옥— 으, 병은 이렇게, 이렇게 세우고-
혹시라도 세워둔 페트병을 잘못 건들까봐 조심, 조심 발을 옮기고 다리를 움직인다.
삐그덕— 가벼운 몸이지만, 체중이 쏠려 의자가 삐그덕거린다.
흐앗. 혹시라도 의자가 고장난 걸까봐 깜짝 놀랐다.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읏, 다리가 버티는 힘이 약해서 너무 위태롭다. 팔도, 얼마나 하고 있었다고 벌써부터 부들부들 떨고있다. 흐으⋯
버텨줘. 조금만 버텨줘. 으응?⋯ 내 몸, 조금만 버텨달라구—
중심이 잘 안잡혀서 자꾸만 움직이게 된다. 아이씨-! 의자가 자꾸 빙글, 빙글 움직이잖아—
어...어엇, 힉-
꽈당—
“아야앗,....”
바보같이 넘어진 나는, 아무래도 의자 위에서는 자세를 잡기도 어렵고 너무 불편해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아 진짜아⋯. 뭐 이렇게 안되는거야.
좁은 의자에 병을 세워두려니까 행동에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 같다. 씨이, 겨우 오줌싸려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야⋯
으으⋯ 바닥에, 이렇게 세워놓고—
너무 창피하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다.
빨리, 빨리이—
개구리가 땅바닥에 앉아 두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 자세이다. 너무 바보같고 천박한 자세라서 자괴감이 든다.
덜덜덜..
연약한 다리가 추위에 떠는 것처럼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읏, 나올 것 같아— 빨리잇⋯
뒤뚱거리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콰당— 또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지면서 같이 넘어진 병 입구에 음부가 스쳤다.
“아...아파-!! 읏, 흐윽⋯ 아파아—”
다행히 상처난 건 아닌거 같은데, 살짝 스친게 아니라 어디 눌리기라도 한건지 욱신욱신거린다. 그런 고통에도 더이상 못 참을만큼 물이 차오른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더이상 바닥에서 볼 일을 보기는 어려울거 같아서, 주변에 몸을 기댈 곳을 찾다가 침대를 발견했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나뭇판자를 발견한 사람처럼,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잠시 숨을 고른다.
“하아, 하아⋯”
오줌을, 읏, 더이상 못 참겠어서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팔을 뻗어 페트병을 가져왔다. 흐으읏-
옆으로 돌린 고개는 침대에 기댄 채로, 가슴팍을 받쳐본다.
상반신은 침대에 기댄채 무릎만을 바닥에 댄 상태이지만, 좀이 쑤시는 온 몸을 견디지 못하고 발바닥이 쭈욱— 펴지고 꼼지락대는 귀여운 발가락이 움찔, 움찔 거린다.
“읏-”
몸이 달아오른 여자가 남자를 향해 구애하는 모습처럼,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고, 엉덩이는 천장을 향해 쭈욱 들어올린 자세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있다. 참을수록 배가 아파져, 다급하게 두 손으로 페트병을 꽉 붙잡고는 경련이 난 것처럼 움찔거리고 있는 음부로 가져다대었다.
못참아, 더이상은 못참아-
흐앗, 흐아앗— 숨을 헐떡이며 부들거리는 팔다리를 억누른채 페트병을 고간에 꽈악 밀착시켜버렸다.
“흐얏,
흐우- 흐으우—⋯”
오줌을 참으려고 꽈악 참고 있던 배가 드디어 한계를 맞아 힘이 다 풀려버렸다.
나온다아, 나온다아—!!
“힉, 히익— 오줌,.. 오주움 나와버려어—!!”
솨아아—!
너무 오래 참았기 때문일까. 민망할정도로 큰 소리를 내면서 세차게 뿜어져나온다.
순진하게도, 기껏해야 졸졸 흘러내릴거라고만 예상했던 내 생각은 순식간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아안돼⋯ 안돼에—”
물줄기가 너무 세찬 나머지 미처 병에 다 들어가지도 못한채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흐익, 흐이익-!!”
안대엣.. 오줌 흘러버려,... 오쥼 흘려버려엇—!!
수도관이 터진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뿜어져나오고 시작하고 손, 다리할 것 없이 온 몸에, 주변에 다 흘러버리고 있었다.
※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눈을 까 뒤집은 채, 침을 질질 흘려가며 오줌을 싸 버렸다.
성대하게 바닥을 적셔버린 탓에, 내 방은 완전히 엉망진창.
읏⋯
코가 찌긋거리는 냄새가 난다. 바닥이 온통 물 투성이고, 온몸이 젖어있다. 저 멀리 구석에서 찌그러진 페트병이 나뒹굴고 있다.
아—
페트병이, 전혀 차 있질 않다. 꼴사납게, 엎질러 버린 거다. 아냐, 애초부터 조금밖에 담기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라.
엄청난 현장에 자괴감이 몰려온다.
“나 뭐한거야⋯?”
짐승도 이러지는 않을 거야. 나 진짜 이게 다 무슨 꼴이야-
“진짜, 뭐야⋯ 이거, 다 어떡하냐구—”
읏⋯ 급한 대로 몸부터 닦으려고 휴지로 고간을 쓸어냈다. 오줌이 축축하게 닦여나오는데, 무언가 뭔지 모를 하아얀 액도 잔뜩 묻어나왔다.
이거,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