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18화. 트라우마 (삽화有) (19/80)



〈 19화 〉18화. 트라우마 (삽화有)


—!!

“무슨 일이야, 괜찮니—?”


“정신차려봐, 응, 아들, 괜찮아?⋯”





화장실에서 쓰러지자마자 바로 달려온 엄마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간호를 하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얼마나 끙끙댔던건지 몸이 온통  투성이었다.


“으으⋯ 지금 몇시야?”
“아이구, 밤이 다 됐어.  갑자기 쓰러진거니— 지금은 좀 어때, 응?”

아.. 바깥이 좀 어둡길래 물어봤는데 밤이라니. 참 오래도 쓰러져있었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 꼬박 하루를 날린 셈이다.

사실 화장실에 가면서도 몸이 안좋긴 했지만 내 모습을 보고, 속이 메스꺼워 변기로 달려갔더니 숨이 가빠지더라.



트라우마인가-

자취방에 이사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고간이 비어있었는데.


 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갔다가 배가 너무 아파서 119에 전화했었고.


그 때의 고통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지금  상황의 원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아직도 날 괴롭히고 있는거야.

“엄마, 끙.. 나 일단 밥 좀⋯”
“어어, 그래애— 죽 끓여놨다. 천천히 먹고, 속 안 좋으면 말 하고-”

침대맡에 머리를 기대고 죽을  먹는데, 숟가락을 잡는 감각도 달라진 것 같았다.

으음, 뭐야.
왠지 다른 숟가락을 잘못 잡고 있는 것만 같고, 느낌도 묘하게 어색하다.


아닌데- 이거 내가 자주 쓰는 숟가락 맞단 말이야. 손에 익어서 이거 말곤 거의 안썼는데 왜 이러지?


아무래도 이상해서 숟가락을 좀 더 내려서 잡아보고, 으음- 다시 올려서 잡아보고.


엄청 거슬린다. 숟가락도 손 안에 편히 잡히질 않고 자세를 고칠 때마다 대롱대롱 하는데?


혹시, 말도 안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숟가락이 더 길어져버린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말도 안돼. 숟가락이 길어졌을리는 없다. 엿가락도 아니고 늘어날리가 없잖아.


뭔가 적응이 안돼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끙끙대다보니 이내 숟가락을 잡고있는 오른손에까지 시선이 닿는다.

어어?

손이  이렇게 작아?

손을 보니 완전 여자 손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반 애들이랑 손뼉을 대보면서 누가 더 큰지 자랑하곤 했었는데⋯.


손가락이 너무 가늘잖아. 이래서는 어디가서 힘도 못 줘볼거야.


이런 손으로는 이제 아무도 이길  없다. 중학생이랑 대결해도 분명 내 손이 더 작고 약할게 분명하다.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여자아이 앞에서 으스대고 싶어서 은근슬쩍 손을 맞대보곤, 너 엄청 작다—며 자랑하고는 하는데.

나름 남자였다고 조금 거칠었던 손은 이젠 완전히 부드러운 살갗으로만 뒤덮혀 있었다.

아.. 이젠 나도, 은근 뽐내며 손을 대보자고 할 처지가 더이상 아니게 됐다. 여자 손이라니⋯



—그러고보니, 내가 누워있던 사이에 부모님 두 분이서 말을 많이 나누신  같았다.

걱정을 많이 하셨겠지.


당장 아빠만 해도 엄청 진지한 척, 가벼운 걸 싫어하는 척 하며 가끔 정색을 하다가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는게 다 티난다.

 아니겠어.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인데. 무엇과도 바꿀  없는 사랑스러운 가족이고, 하나 뿐인 자식인데.

아빠는 내가 쓰러져있던 사이,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거냐며 화내고 따지기보다는 정말 몸에 큰 일이라도 난게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아하하⋯, 잠깐 쓰러질 수도 있지. 괜히 미안하잖아.


하여튼 그런 아빠도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고 끓는 한숨을 내쉬더니, ‘난 그래도  편이다.’라며 별 말을 안하셨고.

많이 속상해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엄마도  괜찮다며, 아들은 언제까지나 내 아들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아⋯ 엄마 울었구나. 나 때문에, 얼마나 울었길래 눈이 탱탱 부어버린거야. 엄마- 뭘 이런거갖고 그래에—


엄마가 울면 나도 슬프단 말이야. 으응,? 아이, 왜 또 울려고 해. 그러지 마.

엄마는 날 위로하면서도 가끔씩 훌쩍이는게 아직도 슬픔이 가시질 않은 듯 했다.

그치만, 내 편이 되어주겠다며 내 몸부터 추스르라고 다독여주는데, 그런 부모님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또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내가 갑자기 몸에 변화가 생기고, 여신을 만났던 것들을 말하긴 했지만 그걸  받아들여준 부모님이잖아.


“엄마, 아빠⋯ 미안해.. 고마워⋯”

너무 갑작스러운 일들만 일어나고 있는데.


사실 처음에 내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님께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도, 너무 말도 안되는 일이고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


집에서 떠나 멀리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데, 우리 아들 잘 있냐고 자주 톡을 보내며 걱정해주시는 부모님인데.


전부 이해는 못하셨을지 몰라도 부모의 사랑으로 자식을 품으려는 것이겠지⋯




몸이 완전히 변해버리고, 덩치도 줄다보니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자취방에서부터 입고 왔던 내 옷도, 새로 산 청바지랑 맨투맨같은거는 이미 맞지도 않을거 같다.


나도 몰랐는데 쓰러진 사이 엄마가 안입는 면티와 츄리닝 바지로 갈아입혀놨더라.


하하⋯, 별 것도 아닌데 웃음이 나오려 한다. 엄마도 참, 새 옷  사입지. 이런거까지 다 보관하고 있었구나—

몸이 줄어들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이 몸에 맞는 남자옷은 이젠 없을거아니야.  진짜 여자가 되어버린거구나.

결국 그날은 수업도 못 듣고 기진맥진한 채로 바로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습관. 그래, 습관.

습관 덕분인지 관성적으로 아침에 일어나기는 했다.

매일 일어나는 그 시간,  기분, 그 찌뿌둥함, 하품, 기지개, 슬픔.


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다. 오히려 우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습관이라는게 나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밥 좀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오늘은 수업을 들을거니까..

모처럼 다같이 모여서 하는 아침식사에, 나도 부모님도 애써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들, 많이 먹어.”
“그래. 많이 먹어야 그런 거도 다 이겨낼  있는거다.”
“네⋯”


밥 먹는다고  몸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우울한 감정을 털어내고 잘 드시라고 대답을 건냈다.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 다들 심란할텐데 원인인 내가 더 조심해야지-

그래도 어제 한참을 고생하다가 밤에 겨우 죽만 먹었던 탓인지 꽤나 배고프더라. 결국 아침밥을 다 먹기는 했다.



그런데 밥이 안넘어가서 물을  많이 마셨더니, 금새 소변이 마려워지기 시작했다.

읏, 벌써—?

명절이나 휴가 때마다 다같이 여행을 떠나면 유독 엄마가 화장실이 마렵다며 자주 차를 멈춰세우고, 휴게소를 급히 찾았던 기억이 난다.


여자는 요도가 남자보다 짧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 몸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방광도 줄어들어버린 걸까?

‘급해—’


조금 참아보려다가, 오줌이 점점 더 마려워지길래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려는데, 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바지를 부끄럽게 내리고 어색한 크기의 변기 위에 앉으려는데, 식은 땀이 나면서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으윽.

나 요즘 왜이래. 이상하게 작은 거가 마려워서  일을 보려하면 머리가 너무 어지워진다.


 



윽⋯

안돼, 나  쓰러지기 싫어—

도와줘, 엄마⋯ 겨우, 겨우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화장실, 마려운데⋯ 못 가겠어, 나 좀 이상해⋯”

“나 일단, 빈 통이라도 줘⋯ 아니이, 그릇 말구⋯ 그냥, 페트병 같은거라도—⋯”


지금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릇은 아니야. 고속도로같은데서도 가끔 그렇게 하니까, 페트병같은건 괜찮겠지.

“읏, 고마워⋯ 나 방에 들어갈테니까, 문 열지마아⋯”

창피해. 부끄러우니까 문 열지 마.

말은 이렇게해도, 차에서라도 페트병에 오줌을 쌌던 거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잘 안난다.

아, 짜증나⋯ 빨리, 빨리이⋯

찐득찐득하게 음료수가 굳어버려서,  안 열리는 뚜껑을 딴다고 혼자 낑낑대는 꼴이 우습다.

끄응, 으으우—

아니야. 이게 뻑뻑해서 그런 거라구.. 힘이 약해지고 그런거, 절대 그런 거일리가 없어-


“하아, 읏, 급해⋯”

오줌을 어떻게 싸야 할  몰라서, 급한대로 의자 위에 올라탔다. 어떻게든  안에 봐야하니까 자세를 잡아야만 한다.


옷- 옷도 벗어야 해⋯ 마음이 급하다. 바지, 바지 빨리 벗어버리고- 읏,  이렇게 안 벗겨지는거야.


바지가 무릎에 부닥쳐  안 내려가고, 발뒷꿈치에 걸려버린다. 아, 왜 이러냐구 정말—!

고개를 숙이면 윗도리가 자꾸 벗겨져 내려온다. 이것도, 잠시만 벗어야지— 너무 부끄럽다.


입고있었던 옷가지들을 모두 벗어버린 나는, 다시 의자에 올라타곤 위태롭게 자세를 잡으며 끙끙댔다.


두 손을 손잡이에 받치고 팔에 힘을 꼬옥— 으, 병은 이렇게, 이렇게 세우고-


혹시라도 세워둔 페트병을 잘못 건들까봐 조심, 조심 발을 옮기고 다리를 움직인다.

삐그덕— 가벼운 몸이지만, 체중이 쏠려 의자가 삐그덕거린다.


흐앗. 혹시라도 의자가 고장난 걸까봐 깜짝 놀랐다.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읏, 다리가 버티는 힘이 약해서 너무 위태롭다. 팔도, 얼마나 하고 있었다고 벌써부터 부들부들 떨고있다. 흐으⋯

버텨줘. 조금만 버텨줘. 으응?⋯ 내 몸, 조금만 버텨달라구—

중심이 잘 안잡혀서 자꾸만 움직이게 된다. 아이씨-! 의자가 자꾸 빙글, 빙글 움직이잖아—


어...어엇, 힉-


꽈당—


“아야앗,....”


바보같이 넘어진 나는, 아무래도 의자 위에서는 자세를 잡기도 어렵고 너무 불편해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진짜아⋯. 뭐 이렇게 안되는거야.


좁은 의자에 병을 세워두려니까 행동에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 같다. 씨이, 겨우 오줌싸려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야⋯


으으⋯ 바닥에, 이렇게 세워놓고—


너무 창피하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다.


빨리, 빨리이—


개구리가 땅바닥에 앉아 두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 자세이다. 너무 바보같고 천박한 자세라서 자괴감이 든다.

덜덜덜..


연약한 다리가 추위에 떠는 것처럼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읏, 나올  같아— 빨리잇⋯


뒤뚱거리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콰당— 또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지면서 같이 넘어진 병 입구에 음부가 스쳤다.

“아...아파-!! 읏, 흐윽⋯ 아파아—”


다행히 상처난  아닌거 같은데, 살짝 스친게 아니라 어디 눌리기라도 한건지 욱신욱신거린다. 그런 고통에도 더이상 못 참을만큼 물이 차오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

더이상 바닥에서  일을 보기는 어려울거 같아서, 주변에 몸을 기댈 곳을 찾다가 침대를 발견했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나뭇판자를 발견한 사람처럼,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잠시 숨을 고른다.


“하아, 하아⋯”


오줌을, 읏, 더이상 못 참겠어서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팔을 뻗어 페트병을 가져왔다. 흐으읏-


옆으로 돌린 고개는 침대에 기댄 채로, 가슴팍을 받쳐본다.

상반신은 침대에 기댄채 무릎만을 바닥에 댄 상태이지만, 좀이 쑤시는 온 몸을 견디지 못하고 발바닥이 쭈욱— 펴지고 꼼지락대는 귀여운 발가락이 움찔, 움찔 거린다.

“읏-”


몸이 달아오른 여자가 남자를 향해 구애하는 모습처럼,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고, 엉덩이는 천장을 향해 쭈욱 들어올린 자세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있다. 참을수록 배가 아파져, 다급하게  손으로 페트병을 꽉 붙잡고는 경련이 난 것처럼 움찔거리고 있는 음부로 가져다대었다.


못참아, 더이상은 못참아-
흐앗, 흐아앗— 숨을 헐떡이며 부들거리는 팔다리를 억누른채 페트병을 고간에 꽈악 밀착시켜버렸다.

“흐얏,
흐우- 흐으우—⋯”

오줌을 참으려고 꽈악 참고 있던 배가 드디어 한계를 맞아 힘이 다 풀려버렸다.

나온다아, 나온다아—!!


“힉, 히익— 오줌,.. 오주움 나와버려어—!!”


솨아아—!

너무 오래 참았기 때문일까. 민망할정도로  소리를 내면서 세차게 뿜어져나온다.

순진하게도, 기껏해야 졸졸 흘러내릴거라고만 예상했던 내 생각은 순식간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아안돼⋯ 안돼에—”

물줄기가 너무 세찬 나머지 미처 병에  들어가지도 못한채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흐익, 흐이익-!!”

안대엣.. 오줌 흘러버려,... 오쥼 흘려버려엇—!!


수도관이 터진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뿜어져나오고 시작하고 손, 다리할 것 없이 온 몸에, 주변에 다 흘러버리고 있었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눈을  뒤집은 채, 침을 질질 흘려가며 오줌을 싸 버렸다.

성대하게 바닥을 적셔버린 탓에, 내 방은 완전히 엉망진창.


읏⋯


코가 찌긋거리는 냄새가 난다. 바닥이 온통  투성이고, 온몸이 젖어있다. 저 멀리 구석에서 찌그러진 페트병이 나뒹굴고 있다.

아—
페트병이, 전혀 차 있질 않다. 꼴사납게, 엎질러 버린 거다. 아냐, 애초부터 조금밖에 담기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라.


엄청난 현장에 자괴감이 몰려온다.

“나 뭐한거야⋯?”

짐승도 이러지는 않을 거야. 나 진짜 이게 다 무슨 꼴이야-


“진짜, 뭐야⋯ 이거, 다 어떡하냐구—”

읏⋯ 급한 대로 몸부터 닦으려고 휴지로 고간을 쓸어냈다. 오줌이 축축하게 닦여나오는데, 무언가 뭔지 모를 하아얀 액도 잔뜩 묻어나왔다.


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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