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17화. Here, strange, I. (삽화有)
깊은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것만 같아.
몸이, 무거워.
※※※
삐빅- 삐빅-
으, 조금만 더⋯
⋯
삐빅- 삐빅-
삐빅- 삐빅⋯
—허억
아⋯ 늦잠을 자버렸다.
아침에, 6시 30분에 일어나는건 규칙인데⋯
어제는 정말이지 기분이 좋질 않아서 정신이 오락가락 했던거 같다. 이상하게 몸도 안좋았고. 속도 막 울렁울렁 거렸으니까.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봐. 왠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뒤척인 거 같고-
그런데, 어제 밤에 뭘 하다 잤는지 생각이 잘 안난다. 아직도 잠이 안깨는구나.
지끈,
머리가 지끈거린다. 몸도 이곳저곳 아프고. 아무래도 잠을 잘못 잔 거 같다.
하아⋯ 목 말라. 책상에 컵을 뒀었지. 물부터 좀 마셔야겠어.
콰당—
악, 아이씨. 오늘 진짜 왜 이러는거야.
좀 세게 넘어진거 같은데, 나 혼자 그런거지만 너무 민망하다.
"아으—"
멍청하게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발을 헛딛고 넘어지다니. 으으, 무릎아파. 손목도 욱신거리고.
그런데 콰당하고 넘어지는 소리에, 엄마가 깜짝 놀라선 내 방으로 달려왔다.
덜컥-
"아들, 무슨 일 있어—?!!!"
"아, 아이야..."
..아이야?
뭐야, 말이 잘 안 나온다.
아이야라니, 난 분명 아니라고 말한 건데 발음이 왜 이래? 목소리가 잘 안나오고 말도 이상하게 나오잖아.
좀 이상해서 혼자 어리둥절 하고있는데
엄마는 내가 이상하게 말한거보다는 넘어진 게 더 놀랐는지, 내 몸을 쳐다보며 놀란듯 걱정했다.
"아, 아들—? 너, 너 그게 무슨 꼴이야? 뭐야, 무슨 일 있었던거야?"
아니, 넘어진거 가지고 너무 호들갑인데?
나 그냥 자다 깨서 침대에서 넘어진거 뿐인데,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아니, 나 좀 봐 아드을-, 아들 맞는거지? 응?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응,? 왜 이러냐구—"
"아이시이— 에 그레에⋯"
진짜, 짜증나게 목소리도 이상하고, 엄마는 왜 저렇게 난리야.
"아이구우—⋯"
엄마는 자꾸 호들갑을 떨며 내 몸을 일으켜 세우려했지만, 나는 힘이 주욱 풀려선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아으으.... 아직 아파서 제대로 못 일어나겠단 말이야.
"아들, 아드을— 거울 좀 봐봐, 으응—?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기, 자, 여기이—."
아, 뭔데 진짜. 갑자기 또 거울은 왜 보여주는데.
내가 못 일어나니깐, 답답하다는 듯 주위를 살피다가 벽거울을 떼서는 내 앞에 가져다 주었다.
⋯
⋯
⋯
뭐야.
나 왜 이렇게 생겼어?
영문도 모르고 거울을 봤는데, 거기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 오똑한 코, 앵두같은 입술, 아기새처럼 작은 얼굴, 찰랑이며 길게 내려오는 머리.
여자-
웬 여자가 거울에 있었다. 거울을 보는건 나인데, 뭐냐고.
"어—엄,마아⋯ 나아, 에 이레에?⋯
머, 머야 이거어⋯⋯!?"
"아이고,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된거야아—"
뭐야, 뭐야, 뭐야, 뭐야-
이게 뭐야⋯!
⋯⋯.
아-
아니야, 설마⋯ 설마 아닐거야-
한참을 생각해보니 어제 일이 생각났다. 꿈에서, 아니, 잠들기 전에 미션이 또 생겼었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한참을 난리치는 사이에 세 개의 미션이 나타났었다.
얼굴 고르기, 체형 고르기, 목소리 고르기⋯.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현실에 있는 사람과 똑같은 얼굴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3D 캐릭터를 참고했던거 같다.
확실히, 거울 속의 낯선 여자를 보니까 어제 내가 사진으로 봤던 게임 캐릭터의 느낌이 난다.
얼굴이⋯ 작다. 귀여운 아이처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마치 인형처럼 새하얀 피부.. 누가봐도 더이상 남자가 아니라, 여자아이의 얼굴이다.
짙고 길게 자란 속눈썹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처로워 보이게 한다. 특이하게도 눈동자는 연두빛으로,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 이게 나인거야⋯?
코도, 아빠를 닮았던 내 코도, 이젠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얇은 콧대가 슬며시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다가, 오똑한 콧망울을 만나며 사랑스러움을 어필하고 있다.
앙증맞은 입술이 마음을, 심장을 콩닥, 콩닥, 두근거리게 한다.
작아⋯ 얼굴은, 정말로 작아. 인형만큼 작아.
TV에 나오는 사람들만큼, 어쩌면 더 작아서 한 손으로도 다 가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고개를 슥, 돌려 옆모습을 바라봐도 너무나 조각같아서,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동글동글한 두 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물같아서, 어디 못 가게, 꼬옥-하고 품에 확 안아버리고 싶다.
이런 얼굴이 현실에 있을 수 있는거야⋯?
동화책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내가 무슨 짓을 한건지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이거어⋯ 나아, 나야아- 엄,마⋯ 이거 나야⋯⋯?"
믿을 수 없다는 듯 엄마에게 물으며 한참을 중얼거렸지만 역시 달라지는건 없다. 이건 분명히 나야.
내가 저지른 거구나.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해 버린 거구나—
목소리도, 이젠 더이상 남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직 성대가 너무나도 여린건지 금새 목이 아파오고, 아직은 익숙하지 못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동물이 오들오들 떠는 것처럼, 아주 소심하게⋯
서럽다.
너무나도 성급하게 결정해버린 내가 너무 미워.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게 너무 서럽고 슬퍼서,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흑, 흑흑— 엄마아, 나 이제 어떡해에—⋯"
훌쩍—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둘이서 부둥켜앉고 한참을 울고 나니까 조금 진정이 되어서, 내 몸을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아아⋯
애타게 한숨을 쉬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고, 또 너무 낯설다.
목에 손을 갖다대고 이리 저리 만져보지만, 툭 튀어나온 성대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가늘고 긴 목이, 두 손으로 꽉 쥐면 힘없이 부러질 것만 같다.
남자라는 증거가, 남자였다는 흔적이 하나 둘 씩 사라져있다.
엄마, 그렇게 슬프게 쳐다보지 말아줘—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몸을 이리 저리 움직여봐도 너무 어색해.
변해버린 몸이, 아무래도 낯설어서 화장실에 가서 자세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학⋯ 하악⋯
왜 이렇게 숨이 차지. 숨을 못 쉬겠어.
읏-
어색한 발걸음으로 휘청거리다가 겨우 몸을 추스리며 화장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세면대를 짚고 거울을 보니, 또다시 내 얼굴이 보인다.
이상하게 화장실에 왔더니 몸이 안좋아지는 거 같아.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나길 시작한다.
윽, 이거 말고⋯
벽을 짚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서, 옆에 있는 샤워 부스에 들어간다.
내 몸.. 읏, 빨리이⋯
헐렁헐렁한 옷을 마구잡이로 바닥에 벗어던지고,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을 쳐다봤더니 내가 모르는 몸이 서 있었다.
"아아아⋯ 안돼⋯⋯ 안돼에⋯
이거, 아니야⋯ 이러면 안돼—"
키가 줄어버렸어. 원래 내가 마주봐야할 내 모습이, 눈높이가 달라져버렸어⋯
뭐냐구 이거⋯, 내가 왜 저길 올려다 봐야하는거야—
샤워솔을 걸어놓은 거치대가, 벽을 따라 쭉 설치해놓은 선반들이 내 눈앞에, 그러나 한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고개를 어색하게 위로 들어올려야만 그제서야 하나 둘씩 보이고 있었다.
휘청,
아.. 올때부터 조금 어지럽긴 했는데 이상하게 몸을 계속 못 가누겠어.
몸이 무겁다. 내가 알던 몸과 달라서, 무게중심이 달라져서 중심을 못 잡겠다.
왜,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운거지—
안돼. 이게, 이게 왜 내 몸에 붙어있는거야? 내 몸에 이거까지 있을 필요는 없잖아. 왜 가슴이 나와버린거야?
근육같은거는 찾아볼 수도 없고, 그저 커다란 여자의 가슴만이 붙어있다.
애써 외면하려해도, 가슴 밑으로 보이지 않는 내 몸이, 빼꼼하게 튀어나온 유두가 내 몸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아아악! 싫어—!!
이거, 가짜야. 분명히 가짜라구—!!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누가 장난으로 붙여 놓은거면 좋겠다는 생각에, 양 손으로 가슴을 꽈악 잡고 힘을 줘 보지만
찌르는 듯한 고통이, 쓰라린 아픔이 이게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으으윽, 아파아⋯
믿을 수가 없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어 버리는거야?
도저히 내 몸을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가 없어서, 간절한 심정으로 울상을 지은채 거울 너머로 시선을 돌린다.
눈, 코, 입, 가녀린 목, 출렁이는 가슴⋯
그 아래로 잘록한 허리와, 그에 비해 볼록하게 곡선을 그리는 골반이 보였다.
아- 제발, 제발⋯
이건 완전히 여자 몸이잖아.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아름다운 몸이지만, 내 몸이 이렇게 된거는 심리적으로 불안하던 상태에서 정말 한 순간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다리를 아무리 살펴봐도, 남자다움의 상징이었던 것들은 사라져 있었고,
너무나도 매끈하고 근육 하나 없는 연약한 다리를, 툭 치면 부러질것만 같은 발목이 겨우내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아주 사알짝 내렸을 뿐인데 너무나도 쉽게 발등에 시야가 닿는다.
저 발로 걸어다닐 수는 있는걸까—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기처럼, 남자의 발에 비해서 너무 작잖아.
그래. 확실히 키가 작다.
키가, 정말로 작아졌다. 예전보다 머리 하나는 더 차이가 나 보인다.
어지러워—
너무 많은 변화를 알아채서, 어지럽고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속이 메스꺼워⋯⋯
좀 이상해서, 속이 안좋은듯 해서 바로 샤워부스에서 나와 변기 뚜껑을 열었다.
뚜겅을 여는데—
어?, 어⋯ 어어—? 으.., 허억- 헉— 읏, 허억⋯
갑자기 한달 전, 자취를 처음 시작하며 맞았던 그 날 아침이 떠오른다.
잊고 싶었던 기억때문에, 내 몸이 처음으로 변해버렸던 그 순간의 고통이 온몸에 퍼져왔다. 싫, 싫어—
쿵.
결국 나는 갑자기 떠오른 트라우마에 몸부림치다가 눈물이 나고, 눈앞이 핑- 돌고,
고개에 힘이 풀리면서 중심을 놓친채 맥없이 뒤로 쓰러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