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6화. 그래, 차라리
'미션, 끝까지 해줘—'
꿈에서 만난 여신은 중간에 멈추고 되돌려 줄 수가 없다며, 계속 해야만 한다고 그랬다.
끝까지 하라니, 얼마나 더 많은 미션들이 남아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혹시, 끝이 아예 없는 건 아닐까? 날 갖고놀면서 속이고 있는건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이 이어지고 당장 닥쳐온 미션에 심란해진 마음이 진정되질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주어진 미션은 세 개.
얼굴, 몸, 목소리를 고르라는 거였지.
시발- 더 이상은 못해먹겠어.
농간 한 번에 자지가 없어지고 고간이 여자로 변해버린 일은, 겉보기에 외모가 달라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고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없겠다 싶어서 참았던 거였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점점 머리가 길어지고 얼굴이 변해가길 시작했잖아.
요즘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갖는 사람들은 화장도 조금씩 하고 스타일에 투자를 많이 한다지만 난 절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별다른 관리를 받지 않았는데도 피부가 좋아지고, 머리가 윤기가 나기 시작하고 내 얼굴도 변해가길 시작했다.
그래서, 도저히는 안되겠다 싶어서 급한 마음에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병원도 다녀온거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도움을 받을 수 없었잖아⋯. 아무런 소득도 없었고, 우울함과 상실감에 빠져 어떻게 한 주를 보냈는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그런 나를 상대로 연이어 세 개나 되는 새로운 미션들을 하라고 그러다니.
심지어는 이걸 안 하면 다음 미션을 진행할 수 없댄다. 마지막 미션까지 가야 내 걸 되찾는건데 말이야.
미션의 내용들도 정말,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방향이 다른 거였다.
내 새로운 얼굴, 새로운 체형, 새로운 목소리를 고르라고?
나보고 진짜 여자가 되라는 소리인데, 그래놓고 꿈 속에 나타나서는 원래 이럴 생각은 아니었단다.
처음 꿈에 나타났을 때만 하더라도, 갑자기 나를 유혹하는 듯 끼를 부려대길래 나에게 우호적인 줄로만 착각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옷을 벗고, 미소를 지으며 자위를 했었잖아-. 심지어는, 갑자기 내 자지를 꺼내서는 그걸 딜도로 써먹기까지 했었다.
그토록 아름다워보였던 여자가⋯
설마 저 여신이 나에게 애정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잖아. 못된 짓거리만 계속 해대고 있는데.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잖아.
자기는 의도한게 아닐지라도, 나를 이미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고.
악마—
넌, 정말 악마같은 년이야.
그래⋯. 이젠 다 때려치울래.
내 자지, 못 돌려받아도 좋아. 나보고 여자가 되라니, 그건 절대 못하겠어.
싫다고. 내 얼굴까지 잃어버리면, 나라는 인간이 이 사회에서 영영 사라져버리는거 아니야.
다 싫어, 지쳤어⋯.
미션 세 개 다 이번에는 제한시간이 없었지⋯
그냥, 안 하고 뻐기면 될 거야. 안 고를 거라고.
계속 뻐기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오히려 신에게 패널티같은게 있을지도 모르는거고.
그냥 다 무시해버릴래. 신이고 뭐고, 될대로 되라지. 잃어버린 자지를 찾겠다고 점점 여자가 되어가는 길을 선택하는건 앞뒤가 바뀐 일이잖아. 절대 안할거야⋯
하지만, 그런 다짐조차도 너무나도 공허하게 흩어지며 내가 혼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고 싶은데,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내겐 작은 방과 부모님 뿐이다.
날때부터 길러주신 부모님이기에 소중하면서도 너무나도 당연하고, 그렇기에 다른 관계를 갈구하게 된다.
너무나도 적막한 방이고, 바깥은 바이러스로 인해 너무나도 위축되어 있다.
아아.. 내 방에서만 있으려니까 너무 외로워.
사람을 만나고 싶어⋯ 동네 친구들, 그래, 예전 친구들이 보고싶어⋯
친구들, 많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래도 종종 어울리기도 하고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밥도 먹으러다녔는데.
날 보면 뭐라고 말할까. 날 반겨줄까?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계속 변해버리고 있는데⋯⋯
'다들 잘 지내냐-'
자신이 없다.
차마, 뭐 하냐고, 잘 지내냐고, 시간되면 한 번 만나자고 톡을 보낼 수가 없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거야?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거냐고⋯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다.
—그치만⋯⋯,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사람이 고파. 아아⋯ 나 정말, 인간관계가 좁았구나⋯⋯
기껏 대학생이 되어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아는 사람도 없어. 강석현 딱 한 명 뿐이네. 걔 말고는 아는 친구도 없다니.
핸드폰에는, 그 녀석이 걱정하며 보낸 톡들이 꽤나 쌓여있었다.
'갑자기 연락도 안되고, 무슨 일 있어?'
'너 자취방 가봤는데 아무도 없더라. 자취 그만둔거야?'
'어디 사고난 거 아니지? 보면 연락해'
하하⋯ 그나마 하나 뿐인 대학 친구가 성격 좋고 시원시원한 놈이라 다행이야.
답장 안해줘서, 미안해.
그러고보니 얘랑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꽤나 잘 어울렸던거 같네.
응, 재밌었지. 아직 한 달 밖에 안됐지만 톡도 많이 했고, 게임도 호흡이 잘 맞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연습한 게임이었는데, 실제로 같이 즐길 수 있어서 너무 기뻤잖아.
마음씀씀이도 좋았어. 내 말도 잘 받아줘서 좋았고. 밥 먹으러 이곳저곳 같이 다니니까 외롭지 않고 좋았다고. 즐거웠어.
그래, 자취방에서의 첫 한 달은 그 자체로는 꽤나 좋았어.
⋯좋았어야 했다.
분명히 좋았어야 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몸의 변화가 일어나 버렸지만 그게 내 대학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런건 아니었으니까.
기분 나빠—
생김새는 내가 알던 내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가끔 생각이 난다던가 화장실을 갈 때 정도 빼고는 애초에 그 사실이 떠오르지도 않더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더니, 친구가 생기고 자기관리를 할 수 있어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더 심각한 일을 벌일지, 얼마나 힘든 걸 시킬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만 미션이라는 이름의 선물로 주었으니까.
역겨워—
내 몸에 일어난 변화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까먹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이 습관적으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나를⋯ 구태의연한 일상에서 곧장 잡아끌어내고 있었으니까.
거울을 볼 때마다 변하지 말았어야 하는 내 얼굴이
수 년간 의심할 여지 없이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왔던 나의 몸이
이제는 매일같이, 매일같이 나를 시험하고 알 수 없는 미래로 끌어당기고 있었으니까.
내 몸이 아닌거 같아-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나한테 보지가 달려버려서 이런 일이 일어난거야?
그런데, 내 몸에 자궁도 있고 아기도 낳을 수 있는 몸이라니. 믿을 수 없어.
내가 괴물이 되어버린거야. 병원에서는 여자 몸이랬지만 아냐, 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야.
사람들도 날 보면 다들 괴물이라고 비웃고 말거야.
⋯또 자랐어.
처음 일주일, 그 다음 일주일도 별 다를게 없어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머리 자라는 속도가 묘하게 빨라지고 있었고,
곱슬은 불편하다고 항상 불평하던 개털같은 내 머리가 더 찰랑거리고, 부드러워지고 있었으니까.
면도할 때마다 참 귀찮네, 생각하던 수염도 어느 순간부터는 안 나기 시작해서,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조차도 잊을 정도로.
어지러워—
내가 알던 나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날 쳐다보고 있다.
어제 본 얼굴과 오늘 본 얼굴이 다르고, 이상해, 얼굴이 또 바뀌었어, 내 얼굴, 조금 전이랑 또 달라서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눈에 익히지 못할 정도로.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발, 시발, 시발, 씨발, 씨이발!
허억—, 허억—.
흑.. 흑흑⋯⋯ 힘들다구⋯
힘들어. 제발,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 해줘.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뭘 어떡해야 하는지, 난 모르겠으니까, 나, 내가, 뭘 어떡해야 하는지, 나한테 알려줘.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변해가는 내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내 자신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 차라리. 차라리, 여자가 되어 버리자.
하라는 대로 미션도 다 해버리자. 여자가 되면, 더는 괴롭히지 않을거잖아.
여기서 나를 더이상 바꿀 수는 없을게 분명해. 확 변해버리면, 새로 태어나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될거야—⋯
응, 해버리자.
다 포기해버리고 편해지는거야.
이미 내 몸에 내가 남자였다는 흔적같은건 남아있질 않잖아.
그냥 저질러버리자.
여자 모습을 고르면 내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거라고 했지.
그러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이런 고민같은거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지는거잖아.
좋아. 난 그동안 충분히 고민했어.
그러니까 미션, 뭐였지—
[미션] 얼굴 고르기 (1/3)
[미션] 체형 고르기 (2/3)
[미션] 목소리 고르기 (3/3)
아하핫⋯ 저렇게 다 바뀌어 버리면, 난 진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거 아니야.
사람들이 날 알아봐줄까? 부모님도? 아아, 우리 부모님은 자식이니까 알아보시겠지. 지금도 문 밖으로 나가면, 바로 볼 수 있잖아.
머리가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처럼, 기운이 없다. 빨리 고르고, 조금만 쉬자. 지난 번처럼 하면 될 거야. 어렵지 않아.
읏⋯
계속 감정을 소모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탓인지, 점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눈에 초점이 풀린다.
얼굴.. 그래도 실제 인물이랑 똑같아져버리면 큰 일 나겠지.
연예인이나 유명한 사람도 안 돼. 이상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 그런건 무서워.
체력적으로 슬슬 한계가 왔지만, 어떻게든 핸드폰을 켜고 3D 게임에서 만든 캐릭터 사진들을 찾아봤다.
현실에 있는 사람이랑 완전히 같아져버리면 그 사람과 나를 구분할 방법이 없어지는거잖아⋯
단순히 판박이라고 화제가 되는거는 너무 피곤해질 거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랑 다를 게 없어져서, 내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게 두렵다.
지난 번에 사진을 찾아다닐 때는 엄청 오래 봤었는데, 지금은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
그래도, 나도 내 이상형 정도는 있으니까 찾기 어렵지는 않아.
하아-
조금 찾다 보니까 마음에 드는 얼굴이 있어서 그걸 그대로 쓰기로 했다.
몰라⋯ 현실적으로 안되는 부분은 알아서 조정될거야.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지, 뭘 보고 있는건지조차 제대로 분간이 되질 않는다⋯. 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그냥 저지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머리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사진을 고르고 있었다.
몸도, 마침 찾은 캐릭터가 꽤나 현실적이면서도 정성스럽게 커스텀되어 있으서 마음에 든다-
잘록한 허리와 넓은 골반이 앙증맞은 배꼽에서 만나고, 큰 젖가슴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가녀릴 거 같은 체형이지만,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어 전혀 빈약해보이지 않았다..
응⋯ 나도, 얼굴이 잘난 사람, 몸매가 좋은 사람을 항상 부러워했었어—
하아, 하아. 어지러워-
목소리는, 목소리는⋯ 몰라.
목소리를 마저 골라야 하는데 정말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목소리를 어디서 골라야 하는거지⋯
얼굴이나 몸, 신체 부위같은거는 사진이 많아도 너무 많지만 목소리같은거는 참고자료가 별로 없었다.
유튜X같은데서 하나 하나 다 들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내 몸은 한계였으니까.
솔직히, 여자 목소리는 어떻게 달라지는건지 모르겠다. 명확하게 구분을 못하겠어⋯.
결국 그냥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대충, 내 목소리가 여자 톤으로 바뀌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순식간에 긴장이 풀린 몸은 침대로 털썩 무너지기 시작했고, 나는 너무 지쳐 이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띠링.
>> [미션] 얼굴 고르기 (1/3)
>> 미션 도전에 성공하였습니다.
>> 이제 당신이 고른 얼굴로 변합니다.
띠링-
>> [미션] 체형 고르기 (2/3)
>> 미션 도전에 성공하였습니다.
>> 이제 당신이 고른 체형으로 변합니다.
띠링-
>> [미션] 목소리 고르기 (3/3)
>> 미션 도전에 성공하였습니다.
>> 이제 당신이 고른 목소리로 변합니다.
연계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