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15화. 노견없음 (삽화有) (16/80)



〈 16화 〉15화. 노견없음 (삽화有)


정신과 층은 막연히 좋지 않게 생각해왔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해봤던 곳인데.

 몸에 이상이 생긴 건줄 알고 병원에 왔더니 정신과로 가보는게 좋겠다고 그래서, 나는 물론이고 부모님까지 이런 저런 안좋은 상상을 하며 너무 너무 걱정하고 있었거든.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니 평범하게 무표정한 사람, 혹은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들 뿐이다.
조금 아파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병원이니까.

많이 좋아졌다며 활짝 웃는 여학생과 친절하게 대해주는 직원들. 다행이야. 내가 너무 걱정한건가봐—

봐봐, 내 옆에 앉아있는 이분도— 앗, 죄송합니다. 시계를  거였어요.

조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구나.
⋯괜찮을거야. 별 거 없을거야.




정신과라고 크게 다른건 없구나—


자리에 앉아서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부모님 따로, 나 따로 세  상담을  뒤에 다같이 모여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설문지를 작성하다보니 혹시 내가 진짜 정신이 이상해진게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하더라.


에이, 별 문제 아닐거야.


“자, 다행히 환자분이나 가족분들에게 특별히 걱정할 거는 없어 보입니다.”

앗, 그래. 정신적인 문제일리가 없잖아.

“이거부터 설명을 해 드릴까요, 지금 세 분이 공통적으로 하고 계시는 말이, 환자분이 원래 남자가 맞다는 거죠?”

“뇌파라던지 이런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었어요. 이정도면 의심할 여지 없이 정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스트레스 수치가 조금 높게 나오긴 했는데, 환자  말씀대로라면 성이 바뀌어버려서 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거겠죠.”


맞아요⋯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버려서 스트레스 받고 있어요-


역시 의사 선생님이다. 내가 한 말을 잘 이해해주는게 분명해. 봐, 하나도 문제 없다 그러잖아. 수치도 정상이라고.

“..그런데, 사실 자기가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여자로 태어났다던가, 혹은 그 반대라던가 그렇게 생각하시고 아픔을 겪는 분들이 계십니다.

생물학적인 성별과 사람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거지요.”

무슨 소리세요⋯? 아니에요, 저는 그런거 아니라구요. 정상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구요.

내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을 리가 없다. 이건 정말 절대 아니다. 난 지금도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여전히 여자를 좋아한다고.

“음, 환자분도 사실은 이런 케이스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부모님  분 모두 환자분과 일치하는 말을 하고 계시구요.”

그래. 혹시나 오해할까봐 걱정했는데 그럴리가 없잖아. 난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일단은 조금  자세히 검사를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말이죠..

..혹시 가족 분들께서 처음부터 착각을 했던게 아닌가, 그런 가능성도 생각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




하나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정신과 선생님은, 우리 가족 모두가 착각을 하고 있던 걸수도 있다는 가능성 말고는 별다른 소견을 내놓지 못했다.


분명 태어날 때나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남성이 맞았는데. 이제와서 그게 착각이었다는건 말도 안되잖아.


그래, 의사 선생님의 입장은 이해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원론적인 이야기나 저런 추측밖에 할  없을 거다.


갑자기 신이 나타나서 제안을 했다느니- 그런 얘기들은 애초에 꺼내지를 않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사실  누구라도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꺼낸 순간 날 미친 놈 취급할게 분명하잖아.

검사를 받기 전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저런 글들을 찾아봤는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걸 굳게 믿거나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심에 사로잡혀있는 것도 좋지 못한 증상 중에 하나라고 하더라.

내가 겪은 일이 분명 진짜이지만, 부모님도 완전히는 믿지 못하시는 마당에 어떻게 남에게 말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털어놓겠어.


이걸 상담하고싶다고 말하는 순간  잠재적인 환자로 취급받고  거야. 다소의 망상 증세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당신  이상하다고, 진지하게  번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할게 분명하겠지.

허탈하다.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어.
 몸은 그냥, 어떠한 확답도 찾질 못한  변해버리는 걸까.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병원가도 소용없을거라고 생각했던 첫 순간과 마찬가지인 상태잖아. 혹시나 기대를 했지만, 의학으로도 내 몸이 이렇게 된 이유를 규명하지는 못하는 듯 했다.


나도, 부모님도 기운이 다 빠져버려선 시체처럼 몸을 질질 끌고 겨우내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후로 며칠동안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멘탈을 놔버린건 아니지만 반쯤 폐인처럼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래도 부모님의 당부와 간절한 부탁에 학교 수업정도는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됐지만 앞날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집에도 컴퓨터야 있으니까 학교 강의를 듣기는 했는데⋯.

앉아있는 동안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 생각도  수 없었다.


무의미하게 시간만 흘려보내는 셈이었다. 교수님이 뭐라 말씀하시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출석만 겨우 찍고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더라.

이제부턴 수업하는 내내 캠을 켜두라면서 필요한 장비를 미리 준비하라 그러길래, 스피드배송이 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급하게 캠을 하나 사놨었다. 마이크도 하나 구해다가 책상에 설치해뒀었고.


—마X 웹캠2000
—코X 스탠드형 마이크

며칠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지 않았더니 방송용 장비의 가격이 폭등한 거를 모르고 있었다. 신종 바이러스가 많은걸 바꾸고 있구나—


그래도 공부에 써야 하는건데 아까워할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써야할지도 모르니까. 어차피 탈부착이 되는 거니까, 다시 자취방에 돌아갈 때 가져가면  거야⋯.



—애초부터 장비가 비싸니 어쩌니 가격같은건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한테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너무 싫었다.


수업을 들을때는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웹캠과 마이크를 켜라고 한다. 마이크로 소리가 나갈때 그 사람이 크게 클로즈업되기 때문에, 누가 말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다  수 있더라.


썸네일로 작게 뜨는 것조차 아니다. 내 얼굴이 크게 확대되면서 학번과 이름도 같이 표시되잖아.

혹시 나한테 말을 시켜서 내 얼굴이 다 나와버리면 어떻게 하지⋯.
캠을 켜놨다가 누가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해⋯.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깊게 눌러써봐도 벗으라는 교수님의  한마디에는 어쩔 도리가 없어진다.


딱히 인사를 나눈건 아니지만,  번 수업을 하면서  이름이 익은 사람도 있을텐데⋯ 분명 남자인 내가 얼굴이 바뀐걸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그리고 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서는, 같이 수업듣는 사람의 얼굴이 바뀐거 같다고, 혹시 대리출석을 하는거 아니냐고 뒷담을 까겠지—


더 심한 사람들은 혹시 수술을 했냐고, 아니면 남자인데 화장이라도 하는거 아니냐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날 마구 헐뜯고 잠깐의 재미를 위해  인격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릴지도 모르잖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가 너무 무섭다.


그래서 캠과 마이크를 써야하는 수업이 너무 싫었다. 제발  시간이 오질 않았으면, 휴강이라도 했으면⋯ 하면서 빌고 또 빌었다.


하루종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기력하게 있다가도 그 순간만큼은 너무 긴장되고 부담이 돼서 어디론가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을 가누지 못하겠더라.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너무 어색해서 마스크를 올려 쓰고, 모자를 푹 내려 쓰고,
내 이름을 부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가슴이 콩닥- 콩닥- 뛰다가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고.

16560107281149.jpg 





허억, 허억. 숨이, 숨이 안 쉬어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커헉, 컥— 숨이 가빠지고 목이 막혀서 기침을 마구 한다. 자꾸만 눈에 초점이 풀린다.


친구가 톡을 보내도, 무슨 일이냐고 톡을 보내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 그게 너무 무서워서 톡은 켜보지도 못한채 애써 무시하고.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힘이  빠진채로 터벅, 터벅,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서 밥을 먹고, 겨우 수업을 듣고, 겨우 잠들고.

싫어, 너무 싫어.

한숨이 나온다⋯, 후우-.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기를 하루, 이틀, 아니 몇 번. 잊고 있었던 그게, 그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 날 밤이었다.





—띠링.


>> [미션]



띠링, 띠링.

아⋯?



>> [미션] 얼굴 고르기 (1/3)

>> 점점 변해가는 얼굴! 예쁘지만, 이래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닙니다.
>> 당신이 원하는 얼굴을 고른 후, 진짜 여자의 얼굴을 갖도록 하세요.
>> 보상 : 당신의 얼굴이 새롭게 변합니다.
>> 제한시간 : 없음
>> 주의사항 : 이 미션은 연계 미션입니다. 다른 미션도 함께 완료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갑자기, 뭐야⋯?

>> [미션] 체형 고르기 (2/3)

자꾸 뭐냐고 이게⋯!


>> 아름다운 얼굴에는 걸맞는 아름다운 몸이 필요합니다.
>> 당신이 원하는 체형을 고른 후, 진짜 여자의 몸을 갖도록 하세요.
>> 보상 : 당신의 체형이 새롭게 변합니다.
>> 제한시간 : 없음
>> 주의사항 : 이 미션은 연계 미션입니다. 다른 미션도 함께 완료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야, 이런거 미션으로 주지마. 멈추라고—!!


>> [미션] 목소리 고르기 (3/3)


악-!! 그만, 그만— 이정도면 충분하잖아⋯

>> 여자가 남자 목소리를 내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볼거에요.
>> 당신이 원하는 목소리를 고른 후, 진짜 여자의 목소리를 갖도록 하세요.
>> 보상 : 당신의 목소리가 새롭게 변합니다.
>> 제한시간 : 없음
>> 주의사항 : 이 미션은 연계 미션입니다. 다른 미션도 함께 완료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
더이상 새로운 미션이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멘탈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목소리라니, 읏⋯  여자같은 목소리를 내라는 말인거야⋯? 조곤조곤하게 말하고, 아양이나 떨면서 애교부리는 목소리를 생각하니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도저히 받아들일  없는 내용들이다.

이게 다 뭐야⋯.
그만해 제발. 으윽—


제발, 이제 이런거 그만해.


내 얼굴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니. 그런 말은 왜 하는거야.
얼굴이 예뻐⋯? 말도 안되는 소리좀 하지마. 남자 얼굴이 왜 예쁘냐고.
내 얼굴은 예쁜게 아니야.  남자야. 내 얼굴은, 난 괴물이야.

착각일거야. 내가 잘못 들은걸거야. 미션⋯ 일리가 없어. 갑자기, 윽..  못 들은거야—!



순식간에 쏟아지듯 들려오는 미션의 내용에,
너무나도 지친 나는 균형을 잃고 무기력하게 침대에 쓰러져서는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꿈—,  꿈이다.

또, 빌어먹을 그 여신이다. 이번이 세번째.


왜  나타난거야? 무슨 짓을 하려고⋯?
이젠, 화 낼 힘도 없어. 요즈음, 너무 힘들어—

“내 앞에 나타나지마⋯ 날 원래대로 돌려줘, 그만두고 날, 원래 나를 돌려줘⋯”


개같은 새끼. 악마같은 새끼.
속으로 수 십 번도 더 되풀이했을 욕이지만 도저히 성이 풀리질 않는다. 그래. 그렇게나 미워한 여신이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제발 그만해달라고 빌고싶은 심정도 들었기에 차마  밖으로 욕을 하지는 못한채 그저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럴려고 그런건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일부러 그런거잖아.이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는건 또 무슨 소리냐고.


"아니, 네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 진짜야. 믿어줘-"

네가 심심하다고,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 내 몸에 손을 댔잖아. 애초에 내가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악의로 가득찼었잖아—

"으응⋯ 조금 지루해서, 재밌을거 같아서 장난을  건데-"

장⋯난?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지고 있어.
심심하다고 날 엉망으로 만들어놓곤, 왜 계속하려는건데.

넌 분명 악의에 가득차서 날 망쳐놓으려고 그랬던 거잖아. 아니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같은거 무슨 짓을 해도 장난거리밖에  된다는거냐고—!


"미안해, 하지만 지금 당장 널 되돌려 줄 수는 없는걸⋯.
정말로, 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어. 미안해, 진심이야."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게 해줘. 아직은 되돌려 줄 수 없다는게 무슨 말이야. 제발.

넌, 신이잖아. 씨발, 신이라서 내 몸을 마음대로 바꿔놓고는 이상한  시키고 있잖아.


"나 그렇게 힘을 많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너랑 계약으로 묶여있어서 어쩔 수 없어..

정말로— 나도 되돌려주고 싶지만, 한 번 약속한 이상 미션을 다 해내야만 내가 가져갔던 걸 다시 돌려줄 수 있단 말이야—"






"미안해, 정말로.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이런  하기는 미안하지만, 끝까지  해내줘—⋯⋯"


가지마⋯  할 말이 있을거 아니야— 빨리, 지금 당장 책임지고 내 몸을 돌려놓으라고⋯!!
안돼, 사라지지마⋯ 제발⋯⋯.


※※※


공지사항.
비대면 수업시 유의사항을 안내합니다.

우리 학교는 최근 유행 중인 COVID-21 신종 바이러스의 전파를 방지하고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이번 1학기까지로 비대면 수업을 전체 연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학교 내 모든 건물의 외부인 출입 시에 체온 검사와 명부 작성 등의 조치를 실시하고 있으며,

학교 측에서는 균일한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한정된 시간에 시설을 개방하여 PC컴퓨터 등의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또한 모든 수업자료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제작된 것이니 이를 다른 형식으로 변형하거나



정해진 용도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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