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14화. 여신님은 속임수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환자분은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수치들이 다 정상이에요. 여성 호르몬이 조금 높은 편이긴 한데 여자 몸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입니다.
혹시 성적으로 무슨 고민 같은 게 있는 게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셨나요.
본인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소견서를 써 드릴 테니까 XXX 교수님께 한 번 가보세요.
— 아니이, 저희 아들은-
— 저 여자 몸이 아니었다니까요, 선생님!⋯⋯⋯
※※※
풍비박산.
아들내미의 고추가 사라진 건 집안 분위기를 아주 박살 내버리는 대 사건 중의 대 사건이었다.
아빠는 한숨을 푹- 푹- 쉬며 밖으로 나가더니, 몇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질 않았고,
엄마.. 내가 믿고 있었던 엄마도 내게 자꾸만 혹시 태국이라도 다녀온 게 아니냐며 계속 똑같은 걸 묻고 있었다.
"진짜 아니라니까⋯⋯!!"
"근데 어떻게 고추가 사라지고 여자께 달려있는 거니! 너 솔직히 말 안 해? 응—?
너 진짜 어쩌려고 이런 거야? 왜 말도 없이 네 마음대로 이런 짓을 했어— 왜 부모 마음에 대못을 박는 거야!
아이고오—"
미칠 노릇이라며 대성통곡을 했고,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아서 정줄을 다 놓고 있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외국을 갔다 와! 진짜, 갑자기 이렇게 된 거라고!"
말도 안 된다. 난 애초에 태국을 가지도 않았지만 애초에 그 짧은 기간 동안 외국에 나가서 검사받고, 수술하고, 회복 다 해서 한국에 돌아왔을 리가 없잖아.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지만 부모님을 도저히 설득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도돌이표를 그리며 똑같은 대화만 반복하다가, 엄마는 더이상 캐물을 힘도 없는지 뭔가 포기한 듯한 심정으로 나한테 물어봤다.
"너어⋯ 진짜 수술하고, 그런 거 아니라는 거지⋯? 엄마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수술한 거 아니라니까.
성전환도, 성형수술도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부터 외모가 조금씩 좋아지고, 최근에는 아예 나도 영문을 모를 정도로 여자처럼 바뀌긴 했다.
하지만 내 몸에는 칼 한번 대지를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억울하고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전혀 그런 적 없다는 말 뿐이기에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엄마는, 어휴.. 진짜 못 믿겠는데⋯⋯ 응,⋯? 그래에⋯ 믿을게⋯ 믿는데,
왜, 이렇게에- 왜 이렇게 된 거니? 아들 낳을 땐 잘 낳았는데, 아이고오, 왜 이렇게 된거냐구우—⋯⋯"
아 진짜. 나 미쳐버릴 거 같아. 내 말 좀 들어줘 제발.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니까, 내 고추가 사라져 있었다고. 아까 말했잖아, 왜 자꾸 못 믿는 거냐고.."
"아이고, 이게 무슨 귀신들린 얘기야-⋯ 내 팔자야. 아이고, 내 팔자야-!"
교회를 다니셔서 그쪽으로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인데, 귀신 얘기를 꺼낸 순간 설마 내가 악귀에 씌여서 그렇다는 소리를 할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내가 물론 신과 만나기는 했지만, 그 신이 하고 다니는 걸 봤을 때는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신이 아니니까.
아무리 인간의 관념대로 신실한 기도를 올리고, 혹은 굿으로 귀신을 쫓으려 한다고 거기에 반응하는 그런 건 아닐 거다.
현대 사회에서는, 몸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병원에들 가질 않나. 그게 과학이고, 합리적인 거니까.
다행히도 이게 무슨 기도나 굿 따위를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준 엄마는 이어서 내가 한 말에도 동의해주었다.
"그러니까, 일단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려고. 나 진짜, 나도 너무 황당한데 벌써 몇 주 지난 일이야.
⋯며칠 기다려봤는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내 얼굴만 이상하게 바뀌고 있다고—"
어디 몸이 아프진 않지만,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보고 싶다.
처음에 별 도움도 안될 거라며 말도 안 하고 병원에 가보지도 않은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
한참을 설득하고 억울함을 호소한 끝에, 겨우내 엄마를 진정시키고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에휴. 그래⋯, 네 아빠랑 나도 같이 갈 테니까, 이번 주말에는 일단은 집에 있어 봐.
엄마가 아는 사람한테 물어볼 테니까 월요일 되는대로 당장 병원에 가 보자⋯"
어느새 돌아온 아빠도, 엄마도 모두 속상한 듯 그 이후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더라.
⋯결국 주말 내내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어디 몸에 이상이라도 생길까 봐 방에만 잠자코 박혀있어야 했다.
밥 먹으려고 식탁에 앉아있는 시간마다 너무 어색하고 추욱 가라앉은 분위기에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하아—..
※
월요일이 되자마자 급하게 휴가를 낸 부모님과 함께 동네에서 좀 큰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신이라는 여자가 나타나서 내 자지를 가져가고, 그 후로 몸도 이상하게 변해버린 거였지만,
그렇지만 이 세상에 과학으로 규명할 수 없는 일은 흔치 않으니 이 병원이라면 뭔가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음-"
"선생님,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흐음-"
검사지를 한차암 동안 쳐다보던 의사 선생님은,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결과를 말해주었다.
"환자분은 여자가 맞습니다."
⋯네?
"아니에요, 저 진짜 남자 맞는데, 갑자기 이렇게 된 거라니까요."
아니야. 뭘 근거로 내가 여자라는 거야.
"하지만 환자분에게 여성기가 달려있는 것도 그렇고, 엑스레이나 CT 촬영을 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었어요.
자, 이 시트를 한번 보세요. 보시다시피 몸의 혈압이라든지, 혈당, 혈색소, 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골밀도 같은 수치들도 다 정상이에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상이 없을 리가 있냐고.
"초음파검사를 했는데 환자분 몸 내부에 자궁도 정상적으로 형성되어 있구요.
여성 호르몬이 조금 높은 편이긴 한데, 환자분은 여자 몸이니까, 이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입니다."
자궁⋯?
선생님, 지금 자궁이라고 하신 건가요?
자궁? 그게 저한테 왜 있죠⋯?
"이게 환자분을 촬영한 건데, 여기, 보세요, 여기 정상적으로 자궁이 형성돼있고, 다른 기관도 문제없이 잘 붙어있지요?"
답답하다는 듯이, 의사 선생님이 하나하나 짚어주며 내 몸이, 내 몸의 안이 어떻게 돼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육안으로 봤을때도 모양에 아무런 이상이 없구요. 외상도 없이 깨끗하네요.
전체적으로 성인의, 정상인 수준으로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생식기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에요. 환자분 신체는 여성의 신체가 맞습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 아들, 제가 낳은 아들이라구요. 분명 태어났을 때 잘 붙어있었고, 남자아이가 맞았어요 선생님-"
그래,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히 남자였다. 태어날 때도 당연히 남자였다.
아기수첩을 봐도 아무 이상 없는, 남자아이라고 잘만 적혀 있었다. 앨범을 봐도, 고추가 잘 달려있었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그저 신의 장난으로 여자의 것이 달리게 된 줄만 알았는데, 모양만 바뀐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알고 보니, 내 몸이 아예 여자 몸이 된 거였다고⋯?
자궁이, 내 몸 안에 있다는 거야? 생식기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아기를, 임신하고, 낳을 수 있다고⋯⋯⋯?
맞아, 이 생각을 못 했다. 겉보기엔 남자로 태어났지만, 알고 보니 신체적으로 모호하게 태어난 상태였던 걸 수도 있잖아.
"혹시, 제가 유전자가 여자였는데, 모르고 살았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죠?"
-절대 아닙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유전병 없으시고, 환자분도 이상이 없어요.
단호하게 아니라고,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그러면⋯ 제 얼굴⋯ 제 얼굴은 왜 변하는 건가요⋯?"
"음, 환자분의 정확한 상태를 알 수는 없지만,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환자분의 검사 결과를 보면 여성 호르몬 수치가 약간은 높게 나온다고 그랬지요."
"환자분은 여성 호르몬이, 정상 범주에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는 높은 편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성 호르몬이⋯"
⋯여성 호르몬이 작용하면 남자와 다른 신체적 특징이 나타난다고.
2차 성징기에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면서 얼굴선은 부드럽고, 피부는 깨끗하고, 살이 오르고, 보드라운 털이 올라온다고 말하고 있다.
알아요⋯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근데, 호르몬이, 여성 호르몬이 지금 많아졌다고, 갑자기 내 얼굴이 바뀌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왜, 마치 내가 원래부터 여자였고,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는 거에요?
⋯왜, 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게 확실하다고 말해주지 않는건가요⋯⋯⋯!
"으음. 일단 지금 당장의 환자분을 봤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
"혹시. 흐음. 환자분께 성적인 고민, 성 정체성이라든지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이 있던 거 아닌가요.
본인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혼란으로 오해하고 있다가 최근에 깨달은 것일 수도 있구요.
소견서를 하나 써드릴 테니까 XXX 교수님께 한 번 가보세요. 미리 연락은 드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난 분명 남자가 맞다.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컸다고!
이건 오해 따위를 하며 살아온 게 아니란 말이야!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나도 부모님도 계속 애원하며 조금만 더 살펴달라고, 혹시 이런 사례가 없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며 자기 선에서 말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정신과를 찾아가 보라며 다른 교수를 소개하고서는 진료를 끝마쳤다.
부모님은, 분명 아들로 낳았다고— 아들이 맞는데 말도 안 된다고, 한참을 중얼거리면서
나를 데리고 다른 층의 소개받은 정신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