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13화. 불변성 (14/80)



〈 14화 〉13화. 불변성


'저어- 할머니, OO봉은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 아이구우.. 젊은 아가씨가 거기까진 왜 가려고 그런댜아—? '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그려어, 쭈욱- 가다보면 확! 꺾어지는 길이 있거드응? 글로 가면 디여—⋯ '


'네에.., 감사합니다⋯'



※※※



석현쓰는 역시, 생각만큼 괜찮은 친구였다. 성격 진짜 좋더라.

대학교에 와서 만난  친구라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솔직히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잖아. 존나 괜찮을 줄 알았는데 폭탄일 수도 있고.

괜히 안하던 짓을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대하는게 맞는거 같아서 원래  성격대로 대했는데,
무슨 말을 해도 핀잔 한 번 안주고 잘 받아주는걸 보니 저런 애들 주변에는 친구가 모이겠구나- 싶었다.

하루는 마스크가 다 떨어졌는데 주변에도 전부 품절이라길래, 몇 장만 빌려줄 수 있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더니 고민 하나 없이 바로 주겠다고 그러더라.

[강석현] ㄴㄴ나 마스크 남아 내꺼드림
[강석현] 밥먹을때 갖다줄게ㅋㅋ

방역대책인가 뭔가를 강화하는 바람에 마스크  끼면 어디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던데.

요새 마스크 가격이 폭등을 해버려서, 주변에서 싸게 살 수도 없고 물량도 다 동나버려서 곤란하던 차였다.

마스크 너무 비싸잖아 진짜. 가격같은거 정부에서 어떻게 안해주나 투덜댔었는데, 교수님 말로는 최저가격설정인가 뭔가를 하면 시장에 교란이 온단다.

하⋯. 그래, 나라는 멀고 친구는 가깝다. 마스크 나눠주는 친구가 최고야.

친구 정말 잘 뒀어.

—수업 스케쥴이 빌 때마다 톡 하면서 노가리까는데 말도 술술 잘 이어지고 부담없어서 좋았고.


지난 번에 무슨 말을 했나 스크롤을 올려보면 한참을 올리게 되더라.


이야, 톡을  많이 했네. 단타를 자주 치는거도 아닌데 이정도면 말 엄청 많이 주고받은거다.

만나서 밥도 자주 먹으러 다녔다.
혼밥하면 존나 쪽팔리다던데⋯ 다행.

"석현- 여기!"


만나자마자 습관적으로 하이파이브  번 쳐주고. 아, 또 해버렸다.
이건 고등학교 때 버릇이다. 아직도 고딩 티를 못 벗겠네, 어휴.

"너 근데 좀 변한거같다? 요즘 관리 빡세게 하나본데?"
"무슨 소리야, 빨리 들어가자. 쓰으읍⋯ 아직도 쌀쌀하네."


남자끼리 외모 칭찬을 왜 해, 시발.
얘답지 않게 실없는 소리를 하길래 빨리 밥이나 먹자고 대충 자르고 식당에 들어갔다.

무인판매대에서 화면  번 누르면 편하게 주문할  있게 되어있었다.
대충 분식 세트. 떡볶이, 김밥, 라면  그릇, 밥 한 공기 추가.

"와 학기중인데도 사람 진짜 없다- 신종 바이러스가 무섭긴 한가봐."

"우리도 조심해야지. 빨리 드셈."


그래에, 조심하는게 맞다. 밥 먹는거야 뭐 어쩔수 없으니까 빨리 먹고 나가자고.

근데 얘는 평소에 뭐하는지, 어째 나랑 밥 먹는 횟수가 엄청 많은데 학교에 나 말고 다른 아는 애들은 있는건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야, 너 근데 학과에 아는 애들 많어?"
"아니? 너랑 몇명 빼면 없는듯? 뭐 학교 오지말라니까 아는 애들도 없고 좀 그렇네."

아⋯ 친구 많은 인싸타입인  알았는데, 얘도 별 수 없구나.

하기야 사회적으로 단체활동을 줄이고 만나는 거도 자제하라는데 그런 분위기면 기회가 많이 안 생길거 같다.

"팀플해야된다고 교양에서 조를 짜긴 했는데 걔네들이랑도 연락은 많이 안하거든."
"팀플?"
"어. 강의계획서에 조별과제 얘기는 없었는데 변경기간 끝나자마자 공지때리더라⋯ 큭큭, 교수님 인성."


아.. 강의 변경기간이 지나버리면 드랍만 할 수 있고 다른 걸로는 못 바꾸는데, 그 얘기인가보네.

"하하⋯ 그 교수님, 난 다음 학기에 걸러야지-"

팀플은 듣기론 탈주하는 사람이 많아서 피하랬는데. 연락 안받고 한참 잠적해버리고, 마감기한 놓치고, 결과물 보면 참 수준떨어지게 해놓고⋯
근데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댄다. 다들 자기 혼자 했다는 사람밖에 안보인다고.


난 그냥 처음 신청했던 강의들을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는데, 쟨 갑자기 팀플이라니 완전 지뢰밟은거 같다.

잠시 애도의 시간을 갖고⋯

하여튼 얘기를 좀 하다보니까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머리를 좀 자르는게 어떻냐고 그런다.

지난번에 자른지 얼마 안 됐는데.

그건 석현쓰 니가 머리 스타일을 너무 잘 하고 다녀서 그런거 아닐까.

강석현같은 애들이야 머리를 잘 하고 다니니까 신경쓸게 많은 거겠지만, 난 그냥 적당히 커트해주고 가끔 스타일만 잡아주는게 편하고 더 좋다. 이게 남자지-

하여튼 벌써 머리가 그렇게 빨리 자랐을 리가 없는데, 좀 길어보인다고 자꾸 그래서 카메라 어플을 키고 내 모습을 봤다.




[ 카메라 ]
[ 셀카모드]


어—


뭐야. 벌써 이렇게 자랐다고?
지난 번에 입학 기념으로 머리를 새로 하면서 옆머리도 싹 밀고 숱도 쳤었는데 뭐지.

샤기컷을 한 것도 아닌데 어느샌가 귀 밑으로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자랐나? 나 지난번에 머리 잘랐거든."
"야야—, 그럼 오늘 나도 자르게 학교 앞으로 같이 가자."


"학교 앞? 거기 안 비싸?"
"노노노- 비쌈. 커트 6만원이던데?"

와 미친, 무슨 머리 자르는데 6만원이나 해?
지난 번에 곱슬거리는거 짜증나서 머리 푸는데 돈 좀 쓰긴 했는데, 커트만 하는데 6만원은  아깝다.


"시발, 야 너무 비싼데? 나 그냥 본가 내려갈때 자르는게 낫겠다."


"알았어. 그럼 나 먼저 간다?
담에 밥 먹으러 갈 곳 있으면 톡보내-"

결국 다음에 한 번 부모님을 찾아가는 길에 동네 미용실이나 들릴려고, 따로 자른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서울 물가가 진짜 비싸긴 비싸네⋯






집에 돌아와서, 아까 전에 한 얘기가 생각나 거울을 보니 묘하게 내 모습이 달라진  같긴 했다.


얼굴이 좀, 둥글둥글해지고 낯빛도 밝아진거 같은데..?



입술도 분명 귀찮아서 남성용 립밤만 바르고 말았는데 무슨 여자들이 틴트를 바른 것마냥 붉그스레한 색깔이 나고 있었다.


⋯이건 그냥 립밤 발라서 그렇게 보이는건가 싶기도 한데.


어 근데..


머리도 얼마 안됐는데 벌써 길어졌고. 시발,  이상하다?


보통 옆머리 밀면 구렛나루가 자라면서 삐죽삐죽해지고  봐도 짧게 잘랐었다는게 티가 나잖아.


그런데 지금 내 머리는 예전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기르던 것처럼 생으로 머리가 내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면도를 한 번도 안한거 같고.


 원래 아침에 씻으면서 면도정도는 꼭 하고 나오는데, 생각해보니 요 근래에 수염이  올라⋯왔었나?


뭐야 진짜.


미션을  개 하면서 좀 버프를 받기는 했는데, 그건 좀 더 괜찮은 남자다운 모습으로,  얼굴을 베이스로 버프를 받는 거였다.

이런 식으로 요상하게 완전 다른 방향으로, 무슨 기생오라비인것처럼 외모가 점점 더 예쁘장하게 바뀌는 건 절대 아니었다고.

근데  이제와서?


왜—? 왜, 지금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얼굴이 변하기 시작한 계기를 찾을 수가 없다.

개강하기 전 날 갑자기 내 자지가 사라지고, 신이라는 사람과 미션을 해내기로 약속한 것말고는 없는데⋯.


시발, 이건 말도 안된다.
분명 뭔가 생각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 이렇게 된다고  한마디도 없었잖아.


 보지도, 그게 달린다고 사람이 갑자기 중성적인 외모가 되고, 점점 여자애처럼 생기지는 않잖아.


만화나 소설같은걸 봐도 하루 아침에 바뀌는 거면 모를까 이렇게 뒤늦게야 그러는 건 본 적이 없다고.

이거 위험하다. 미친—,
어쩔 도리가 없다고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있었는데, 이거는 진짜로 뭔가에 문제가 생긴거다.

뭐야, 뭐야⋯ 뭔가 이상하다고 진짜.


너무 황당한 일이 일어나서, 그리고 그 후로, 시발, 나한테 특별히 피해주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대충 넘겨왔지만 이젠 정말로 안된다.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야.
전화—, 부모님께, 엄마한테 말해야 돼—!


세상에서 제일 믿을  있는 사람은 부모님 뿐이다.

다 말씀드리고, 병원에 가던 말던  어떻게 할건지 말해봐야 한다. 지금은, 씨-이발, 경찰 그딴거도 다 소용없는데.

인터넷에 썰부터 푸는 것도 병신같은 짓이라고. 시발, 지금 존나 정신없는데 무슨 인터넷이야.






주말이 되자마자 광역버스를 타려고 미친듯이 달려갔다.
아냐, 버스 말고 택시— 시발, 존나 급해서 택시타고 가야겠다.


하룻밤 자면 괜찮아질  알고 불안한 심정으로 며칠 있어봤는데 여전히 내 모습은 그대로였다.

미친, 그대로도 아니지. 존나 점점 더 매일같이 여자처럼 변하고 있다고⋯!

"택시-! 여기요!!"

가서 뭐라고 말하지? 아 진짜, 돌아버리겠다.
말하면 믿어주실까? 믿어줄꺼야, 남들한테는 말도 못했는데, 부모님이니까 보여드려야겠지.

에이씨 진짜!

⋯택시에 타서 빨리 좀 가달라고, 급하다고 말하고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안절부절 못하며 손을 이리 움직였다, 저리 움직였다 하며 손톱을 뜯다 보니 어느샌가 집에 다 와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밀번호를 띡- 띡- 띡 누르고, 너무 급해서 몇 번 틀리고. 시발!



띡- 띡- 띡.
띠로링—



겨우 문을 열고 바로 달려가며 TV를 보고 있던 부모님께 다급하게 호소했다.

"나 왔어—!! 엄마—!, 아빠—!!!  큰일났어. 큰일, 진짜 큰일났어—!"

"아들, 어서..와⋯⋯?
⋯아들 맞지?⋯"


역시, 하나 뿐인 아들의 이변을  눈에 눈치채는구나.


날 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듯 좀 놀란 표정을 짓던 엄마는, 내게 대뜸 혹시 성형수술이라도 했냐고 물어보며 당황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아니야—!! 나 진짜 큰일났다고. 하아, 진짜, 진짜 큰일났다니까!"

"그, 내⋯꺼가, 아이씨, 나 고추가⋯ 고추가 사라졌어 엄마-!!"

뭐어, 고추우-?


뜬금없는 내 고백에 아빠는 순간 정색하며 나를 쳐다보고, 엄마도 얘가 무슨 소리를 하나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하며 믿어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진짜라니까! 아오, 씨— 보여줄테니까, 진짜라고, 보여줄게!"

훌러덩—

부끄러움같은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진짜 조온나 급하다고.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나는, 대뜸 바지를 벗어버리고 내 고간을, 내 다리 사이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

"뭐,,뭐야—!!"
"아이고오, 이게 무슨 일이야아—"

"씨이— 봤지, 나 진짜 어떡하냐고⋯"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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