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9화. 톡, 플레이, 러⋯브?
뽀삐야아— 옳,지—!
엄마 근데, 뽀삐⋯ 좀 멍청한거 같아.
※※※
—대학교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따로 모인 몇명을 빼고는 서로 데면데면하고, 심지어는 대부분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사이였다.
단체톡도 너무 어색하서 다들 말을 하다 말더라. 보통 인싸력이 아니고는 엄두도 안나겠지⋯
그나마 같은 취미가 있는 사람, 근처 동네에 사는 사람, 아니면 하다못해 좋아하는 노래 얘기라도 하면서 조금씩 말이 오가긴 했다.
너무 뻘줌해서 기대도 안하고 있었지만, 개강 첫 주 동안 친구를 사귀라는 신 새끼의 미션은 의외로 잘 풀렸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일을 겪고 우정을 확인해야하는, 뭐 그런 건줄 알고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우연히 말 나온 김에 게임 같이 하고 톡좀 몇 번 했더니 친구 사귄걸로 판정이 나더라. 이게 된다고?
[경제21 강석현] 희준쓰 겜 가능?
사실 원래 게임 실력은 안좋은데, 그래도 대학교 올라가면서 좀 어울려야겠다 싶어서 월드 오브 탱X라는 인기게임을 좀 연습했던게 도움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공략 찾아보고, 유튜X에서 잘하는 사람들 플레이 영상도 좀 찾아보고. 특히 외국애들이 참 잘하더라. 채팅도 의외로 매운맛이던데?
하여튼 방학동안 미리 좀 해봐서 다행이지. 예전에 해본 게임들은 최신 게임이 아니라 어디가서 같이 하자고 말하기 좀 민망할 거 같다.
맞아, 내가 하고 있는 이 월X이라는 게임이 러시아에서 그렇게 인기라던데. 동접이 백만명을 찍었다고—
[경제21 박희준] ㅇㅋ 소대걸어. 공방ㄱㄱ
탱크— 전차병이었던 친척 형 말로는, 전차가 좁고 낮아서 키가 클수록 불편하댔다.
특히 러시아같은 나라들이 있는 동구권은 더 그렇다는데. ...형 밀덕이야?
아. 간지나게 권총도 준다는데, 그게 사실은 자살용이라고⋯ 아니, 자살을 왜 해? 난 자살 안한다.
하여튼, 커뮤니티에서 소위 빠-따를 쳐줄 사람을 구해서 빡세게 연습을 했더니 어느 순간 내 레이팅은 평균 수준을 넘어서, 최상위권에 진입해 있었다.
그런데 실력이 올라갈수록 뭔가 멘탈도 잘 깨지고, 욕도 느는 것 같더라.
공방 버러지 새끼드을—⋯⋯⋯
평균 레이팅은 Average로 분류되는데 얘네는 말이 평균이지 실상 어-버러지나 다름없다.
Super Unicum, Unicum, Excellent, Very Good, Good, Average, Bad, Very Bad⋯
뭐 이런 식으로 레이팅 구간이 나뉘고 이름 색깔도 달라지는데, 베리 배드는 별명이 석탄맨이고, 그 다음 배드는 떡볶이라는 식이다.
떡볶이새끼들 존나매워 진짜.
그리고 그 다음이 Average인데 원래는 Above랑 Below로 나눠져있었다. 아니 위든 아래든 그게 그건데⋯. 얘네 하는게 참 기막혀서 별명도 어버버버 어버러지다.
극한의 킬딸충이 아닌 이상 승률이 한 49% 즈음 되면 Average 구간이 되는데, 얘네들은 자기들이 잘 하는줄 아는게 문제더라.
야, 무승부 1% 포함해서 서버 전체의 평균값이 49%인데.. 너네들 잘 하는거 아니라니까?
제발 미니맵 좀 잘 보고, 아가리 좀 털지말고 시키는 대로좀 해주라.
이 게임이 더 골때리는건 이보다 더 윗구간도 큰 도움은 안된다는 거다.
애초에 Excellent 이하로는 봇이라고 봐야한다. 난 Unicum~Super Unicum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있고. ..Cum이라니, 단어가 너무 야한데.
이거 진짜 호되게 당한 유니컴들은, 레이팅별 색깔 설정을 아예 바꿔서 엑셀 이하로는 전부 검붉은색 처리를 해놨더라. 이야- 그럼 전부 떡볶이라는 소리인데. 으, 끔찍.
-어우 답답해. 하여튼 채팅으로 인사하고 친목질할 시간에 집중이나 했으면 좋겠다.
씨이발, 잘하는게 매너고, 이기는게 즐겜이라고—!!
하여튼 전차 바퀴만 굴러가도 꺄르륵 웃던 뉴비 시절이 그립다. 뭐 오래 전 일은 아니지만.
[경제21 강석현] 주작소대 출발ㅋㅋ
이 게임이 재밌고 다 좋은데, 문제가 좀 있다면 일단 멘탈 관리가 어렵다는 거다.
양 팀에 15명씩 한 게임을 하니까, 어느 순간 사실상 1 대 29의 막장 게임이 되기도 한다.
소대, 그러니까 파티를 안 맺고 혈혈단신으로 공방에 들어가면 레이팅을 올리고자 작정하고 들어온 적팀의 소대에게 탈탈 털린다.
우리 팀 뭐하나, 보고 있으면 수풀에 전차를 숨겨놓고는 초장거리 저격을 하고 있다. 킬딸충들은 막타치려고 뒤에 빠져있고.
자꾸 화면이 덜컹 덜컹 흔들려서 뒤를 돌아보면 같은 팀이라는 놈들이 조종 하나 못해서 내 전차를 툭, 툭 들이받고 있더라. 아 좀.
아니면 어찌어찌 겨우 버티면서 라인전을 하고 있다가도 뒤에서 날아온 아군 오사에 내가 맞는 일도 부지기수고.
'아니, 님이 사선 가렸잖아요. 좀 비키세요.'
한때 국대도 뛰었던 사람이 '월X는 我와 非我의 투쟁'이라고 그랬는데⋯ 신박한 표현이긴 하다.
그리고 여성 유저가 너무 없다. 아니, 게임에서 여자 만날 생각하는건 아닌데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그런거지 뭐.
쩝, 역시 여자는 현실에서 사귀어야 해.
—그러니까, 게임 때문에 동기랑 친해졌다고.
학교도 오지 말라는데 우리 과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리가 없다.
프로필 사진만 봐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알아서 채가긴 하지만⋯
나같은 평범한 남자는 그냥 이렇게, 접점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친해지게 되는 건가봐.
석현쓰. 강석현과 친해진건 시시콜콜한 얘기나 하다가, 우연히 월탱 하는 사람이 있냐고 묻길래 대화를 주고 받은게 시작이었다.
은근 나하고 잘 맞는거 같고. 애초에 석현쓰가 붙임성 좋게 선톡도 해줬고. 고마운새끼—
[강석현] 힂ㄴ준 내쪽에 많음
[강석현] 니네라인 미셈ㄱㄱ
[박희준] ㅇㅋ
[박희준] 야, 이 판은 쉬웠네?
[강석현] ㄹㅇ 주작소대 성능 미쳤고; 우리 존나 잘 맞는듯?
[박희준] 그런듯ㅋㅋ 담판 가자
그렇게 개강 3일차가 되던 날에 첫 대학 친구가 생겼고, 미션도 겸사겸사 달성할 수 있었다.
띠링.
[미션] 친구를 사귀세요
>> 미션 달성에 성공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위기 시에 우정 보정치를 받습니다.
하⋯⋯, 위기 시에 보정같은 소리하네. 이건 신이 아니라 개새끼다.
아직 밖에서 실제로 얼굴을 보지도 못한 사이인데, 무슨 놈의 우정이고 뭔 위기에 보정이 된다는건지 알 수가 없다.
개새끼. 나 어릴때 키우던 개는, 그러니까 뽀삐는 좀 멍청하긴 해도 날 잘 따랐다.
훈련도 좀 오래 걸리기는 했는데 어찌어찌 시킨거를 조금씩 익히기는 했었다. 멍- 멍- 이러면서.
사고쳐놓고 모르는 척 낑낑대는 것도, 돌이켜보면 은근 귀여웠고 말이야.
신이라는 새끼가 개보다 더 빡대가리 같은 소리를 해대니까 열받네.
친구는 온라인 친구가 있어요오⋯⋯다, 이 개빡치는 악마새끼야—!
※
두 번째 미션을 마친 후에, 악⋯ 신이 연달아서 내려준 미션들은 내용만 보면 별 거 없었다.
'새로운 옷을 사 입으세요', '기초화장품을 주문하세요', '매일 운동을 시작하세요⋯'
생각보다 정상적인 내용에 굉장히 순한맛이라서 솔직히 좀 놀랐다.
옷⋯ 그래, 입학 전에 새로 사기는 했는데 봄 옷은 또 새로 사야지.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한 주동안 참 난리였는데 또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하니, 옷 정도는 미리 사두는게 맞겠다 싶어서 인터넷으로 몇 벌을 더 주문했다.
괜찮아 보이는 맨투맨이랑 청바지를 골라놓고 몇 개를 또 샀더니만 돈이 꽤 나가더라. 아빠 준 용돈 없었으면 못 샀을 거다.
기초화장품도, 얼굴에 뭔가를 바르는거는 참 싫은데 그래도 남들도 다 그정도는 관리한다니까 까짓것 나도 해보기로 했다.
썬크림은⋯ 썬크림 바르면 얼굴 하얗게 되던데.
중학교때 여자 일진들이 남자 애들을 데려다가 비비 크림을 하얗게 떡칠했던게 생각난다. 썬크림은 아니지만.
시발, 상남자는 그딴거 안한다고.
근데 요즘엔 자연스러운거도 많이 나온다니까, 하나 사다가 여름 쯤에나 바르고 다녀야지.
운동도 나한테 좋은 일 아닌가.
여자친구 좀 사귀어 보자고 진작부터 운동도 하려 했으니, 실상 미션이라고 시킨 것들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 뿐이었다.
뭐냐고, 이럴거면 꼬추는 왜 떼간거야?⋯⋯.
억울해. 씨이발—!!
운동하라는건 계속 이어지는 미션인거 같기는 한데, 하여튼 하나 달성할 때마다 외모에 버프 비슷한게 걸려서
일주일 사이에 변한 내 모습을 보니 예전보다는 좀 더 사람답게 생겨져 있었다. 잘생겨진건 아니고.
⋯뭐.
본판불변⋯ 몰라?
그래도 외모 버프좀 받았고, 명문대생인데 여자친구가 생길 만도 하지 않나⋯ 행복회로를 열심히 돌려본다.
아냐 시발, 이딴 버프 안 줘도 내 능력으로 여자친구 사귈 수 있다고. 내 자지 돌려줘.
내 가랑이 사이에 보지가 달려있다는 걸 떠올리니 갑자기 시무룩해지고 얼굴이 화악 달아오른다.
다음에 신을 만나면 꼭 한번 말해봐야겠다. 이만 자지는 돌려달라고—
※
—다음에는 뭘 시키려나.
답없는 생각들을 쳐내고 가만히 한 주를 돌이켜보니, 처음 접촉을 제외하고는 이 신이라는 작자는 은근 좋은 거만 가져다준듯 싶다.
친구 만들라고 시키고, 외모 가꾸라고 하고, 이런거는 뭐 거의 여자친구가 챙겨주는 수준 아닌가?
여기서 밥까지 어찌저찌 만들라고 시키면 좀 열린 마음에서 신개념 우렁각시라고 불러줄 수도 있을거 같은데..
아님 말고⋯. 여자친구 사귄 적이 없어서 사실 잘 모른다.
그런데 첫 순간이 워낙 끔찍해서 여전히 신 생각만 하면 열받고 욕을 마구 해대고 싶어진다.
내 꼬추도— 눈물은 안나오는데, 이건 뭐 잠재적으로 부모님께 눈물을 청구한 상태나 마찬가지잖아.
새애끼. 내 고추는 잘 보관하고 있겠지⋯? 에이, 설마.
⋯⋯그렇게 심심했나? 남의 자지를 떼갈 정도로?
신도 혼자일텐데, 외롭겠지. 맨날 인간들 뭐하나 구경하고 있어도 직접 어울리는거랑은 다르니까. 근데 신 한 명인거 맞아?
요새 다들 교회를 다니고 있다느니, 한 번 와서 편하게 구경하다 가라니 그런 말들을 들어서 자연스럽게 신은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알 도리가 없으니 신이 사실은 여러 명이라서 나에게 또 접촉할 수도 있다- 이런 기대는 접는게 좋겠네.
뭐 하여튼. 그리 심심했으면, 와서 말로 좀 좋게 했으면 어느정도는 어울려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씨발, 내가 미쳤지. 그 새끼는 원수다. 내 자지를 납치해간 범죄자.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잘은 모르겠는데 목소리도 좆같았고.
스톡홀름 신드롬⋯⋯ 이거 존나 위험한거네?
하여튼 정기 푸념의 시간을 갖다 보니, 벌써 다음 주가 돌아오고 있었고
평소보다 더 졸리다 싶어서 이상하게 여긴 나는 살짝 일찍 씻고나서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
"반가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