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3화. 그래도 살고싶다
신이 선량할 거라는건, 착각이다
⋯왜 신이 당신에게 우호적일 거라고 생각하는가?
건방진새끼.
※※※
씨발, 뭐야.
한참을 침묵하다 대뜸 들려온 웃음소리에 안그래도 꺼져가는 정신줄을 정말로 놓을 뻔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절 직전에 섬뜩한 저 웃음소리를 듣고는 오히려 다소 말짱해졌다.
귀신인가?
내 핸드폰에 이상이 생겼나 싶어서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고, 옆으로 돌렸다가 뒤로 돌렸다가 이리저리 다 살펴봐도 이상한 점은 없다.
화면에도 119라고 잘만 떠있고.
119맞는데, 뭐냐고 씨발⋯
"끄흐하하핫!!! 하하하핫, 핫⋯ 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또 웃는다. 아픈거도 순간 잊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웃음이다.
이 시발놈, 장난전화지 이거?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구급전화로 장난질을 치는건 중대한 범죄다. 씨발, 장난을 왜 쳐.
"저기요! 장난치지마세요, 씨발 진짜 아프다고!"
"흐흐흐핫,"
"아이—"
이제 진짜 죽을 거 같지만, 진짜 너무 놀라고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짜증나고, 아파서 정신없고, 진짜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나서,
고성방가에 주의하고 이웃 간에 배려하고 뭐 이런 생활수칙같은거는 무시해버린채, 진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힘을 짜내 미친듯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야이— 씹쌔끼야—!! 너 씨발, 119 맞아? 응—? 맞냐고—"
씨발—!
"너, 씨발 죽여버릴거야— 개새끼야—! 너 누구야, 누—"
누구냐고—, 화를 내는데 갑자기 웃음이 멈추고, 남자,
아니, 여자인가⋯ 모르겠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기괴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야⋯?
너무, 갑작스러워서 화내던 것도 멈추고 숨도 못쉰 채 전화기 건너편의 말을 듣게 된다.
"너 지금 얼마나, 많이 아파? 응—?"
"자지— 풉⋯, 오줌도 제대로 못쌌고. 기분이 어때? 막, 아파죽겠어? 화나고?⋯"
뭐⋯?
"기분이 어떻냐고."
"응? 말해봐."
⋯!!
대뜸, 너무 뜬금없는 말이지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씨발놈이 그랬구나—
남자인지, 여자인지 하여튼 좆같은 저 새끼가 내 몸에 손을 댄게 분명하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당황한 채, 복통에 몸부림치며 다급하게 전화를 건 순간까지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너 누구야! 나한테 왜이러냐고? 빨리 원래대로 돌려줘—!!"
이딴 좆같은 짓을 왜 하냐고. 개새끼야, 누군데 나한테 이러는거야!
미친새끼, 씨발 사람 몸에 이딴 짓을 해?
정말 온 힘을 다해 화를 내고 있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난 신인데⋯ 그냥, 요즘 좀 심심해서."
신⋯ 지금 신이라고 한거야⋯?
시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심심하다고 그런 거 맞지?
심심하다고⋯? 윽, 너무 아픈데 그 와중에 일단 말은 좀 들어본다.
"신이니까, 다 내 마음이거든. 응? 내 마음이라고, 아하핫⋯."
지랄하지마.
내가 시발 종교가 있는건 아니지만, 이딴게 신이 아니라는 거는 너무 당연한 거잖아.
미친새끼, 내 몸에 이상한 짓을 해놓고는 자기가 신이라면서 좆같은 소리나 해대고 있다. 장난해?
"아냐아냐. 나 신 맞아. 진짜로."
개소리다. 당장 교회만 해도 믿음- 소마앙- 사라앙-!! 이 말만 주구장창 반복하면서 종교가 없는 나조차 다 외웠을 정도로 강조하는데.
하루아침에 자지를 떼 가놓고 심심해서 그랬다고, 내 맘이라고 개소리를 늘어놓는게 신일리가 없어. 신이 피조물을 왜 괴롭히나—
하지만, 전화기 건너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새끼는 내 생각을 다 읽고 있다는 듯, 또 대답을 해 주었다.
"맞대두."
내 생각... 읽고 있는거 맞지?
⋯그래 시발, 네가 신이라면 더 말해. 이유가 더 있을거 아니야⋯ 끄윽..
죽을 거처럼 아파서 119에 전화를 했더니, 신이라는 작자가 전화를 받고는, 아니 가로채고는 기껏 한다는 말이 심심해서⋯ 자기 마음대로라고⋯
너무 말도 안되고, 무기력한 상황이다⋯
상대는 내가 아픈 것도 다 알고 있는 듯 하고, 자기 입으로 신이라니까 정말이지 사고가 멈추어버린다.
사실 화낼 힘도 다 없어져가지만⋯⋯
일단은 분노를 조금이라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무 아프니까, 저항심도 꺾이고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야.
그만해주세요, 장난치지말아주세요, 당신이 신이라면
"⋯신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제 몸에 뭘 하신 겁니까⋯ 죽을 것 같으니, 이제 그만하고 살려주세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잘못한게 있는거냐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
"⋯그만해?"
!!
그래, 그만. 그만!
"네, 네!!, 제발요, 너무 아파요⋯ 그만해주세요, 119에 전화를 한건데⋯"
"아니, 내가 왜 그만둬야 하는데?"
뭐라는거야 씹—!
이건 신이 아니고 악마잖아—
"나 신 맞는데? 내가 신인데 심심해서 그랬다고.
응? 이거 안하면, 내가 심심하다니까?"
뭐야 시발, 신이라면서. 신이라면서 날 왜 괴롭히는거냐고.
신 맞으면 지랄 그만하고 내 몸 돌려줘—
"제발— 부탁드립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요—
뭐든지 할테니까, 제발, 지금 저 좀 살려주세요⋯!!"
나 진짜 죽을거같아. 기절하기 직전인데 진짜, 시발, 시발!
무슨 말을 할 지 미처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고통에 굴복한 나약한 인간의 몸이,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어리숙한 나의 정신이 '신'이라는 자에게 굴복하고 애원한다.
"다 할테니까— 다른거는 다 할테니까, 저 좀 어떻게 해주세요—!"
그만, 그마안⋯!
"—시키는거 다 한다고?"
"⋯!"
"네— 그러니 제발, 아픈 거좀 멈춰주세요—!!!!"
"다 할테니까, 시키는거 다 할테니까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나의 굴복에, 애원에 신이,
악마가 손을 내밀었다.
"음, 그래. 나 혼자 뭘 계속 해봤자 재미없으니까—"
악마가,
신이 말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죽을듯이 아프던 배가 사라지고
"내가 주는 '미션'을 달성할 때마다, 너한테 '보상'을 줄테니까."
고통의 후유증이 기적처럼 가라앉을수록
"뭐, 네 자지⋯를 되찾고 싶으면 한 번 잘 해보도록 해. 미션말이야."
당했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
미션이라니, 그거 때문에 이런 짓을 한거야?
"그냥 돌려주는건 좀 재미없으니까, 머리 속으로⋯ 그 뭐냐⋯⋯ 그래—, 직빵으로 쏴줄테니까 시키는거 잘 해봐, 응?"
※
지옥같았던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지친 심신을 침대 맡에 기댄 채 생각에 잠긴다.
⋯진짜 조온나 아팠지.
대학교에 입학하는거에 맞춰 자취를 시작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꼬추가 사라져있고- 뭐 이런 말을 하기도 지친다.
이게 다 하루도 안돼서 일어난 일이다.
신⋯새끼⋯⋯님이⋯니⋯미⋯
하, 그래⋯ 자칭 신님이 날 이렇게 만든 것 같은데, 시키는거 잘 하면 나중에는 내 자지를 돌려주겠단다.
미션을 주면, 시키는 대로 그걸 수행하고 보상을 받는다.
이게 계약이겠지.
시발, 존나 말도 안되기는 한데 내가 존나 꽉막힌 멍청이도 아니고 상호간에 뭔가 주고받는 계약인거는 알겠다.
다른 설명을 더 해준거는 아닌데, 뻔하지 시발. 내가 병신도 아닌데 모를 수가 없다. 언제까지 뭐뭐 하라고 정해주고 조건을 걸고 그럴거다.
미션인지 지랄인지 하여튼 생각만해도 좆같을게 뻔한 미션들이 내 머릿 속에 알아서 떠오를거고..
그걸 잘 하면 보상을 얻을 수 있고, 마지막 미션까지 갔을때의 최종보상은 내 자지—
아— 씨발—!!!!
내 자지 돌려줘어—
흥⋯ 말같지도 않은 농담이 떠오르는 걸 보니 이제 좀 회복이 되나 싶다.
내 자지는 원래 내 껀데, 내 자지를 찾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니
정말, 정말, 악마새끼가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아니지. 이 정도면 기정사실아닌가—
하여튼 아직도 좀 충격적이긴 한데, 일 분, 이 분이 지나고, 몇 분이 계속 지나가며 진정이 되기 시작한다.
결국 내가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일단은 지금 당장 살아야겠으니 밥을 먹기로 했다.
조옷나, 아까 아팠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넘어가고 정말 폭풍같은 시간이었지만, 지금 당장을 넘기긴 해야 할거 아니야.
우리 집은 딱히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먹고 싶은거 있으면 장 봐오고, 괜찮아 보이는 레시피 있으면 따라해보고, 부모님을 졸라대다보면 주에 한 번 정도는 외식하고⋯
그 신종 바이러스인지 뭔지 유행하면서 외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뭐 그건 그거고.
결론적으로 내가 먹는건 그냥 평범한 음식이라는 거다.
좋아하는건 치킨, 피자, 갈비⋯ 뭐 그런거 있잖아. 우리나라에서 평범하게 좋아하는거.
하여튼 귀하게 키운 아들자식이 자취한다고 아빠가 용돈 좀 넉넉하게 주고 엄마는 반찬을 챙겨줬다.
엄마가 한 장조림, 시금치, 그리고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는 친정 김치는 언제 먹어도 보장되는 꿀맛이다.
하하⋯ 좀 전까지 아파뒤질뻔 했는데, 반찬 품평회나 하고 있고. 엄마, 아빠 생각은 계속나고.
이보다 미친 아침이 어디 있을까?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가보고 싶을 지경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하는 내 처지가 놀랄 노자다.
시발. 넉넉하게 밥 한 그릇을 퍼서, 새로 산 접시에 반찬을 덜고 흡입을 시작한다.
우걱, 우걱. 밥 먹으니까 좀 살겠네!
시발, 물도 좀 마시고.
한국인은 역시 밥심이다- 같은 상황에도 안 맞는 소리는 할 필요도 없다. 밥이 보약 이딴거도 꺼지고.
아파죽는다고 그렇게 구르면서 체력 소모를 엄청나게 당했는데, 여기서 뭐라도 안먹으었면 진짜 기절해서 병원가고도 남았다.
좀 전에는 진짜 내 인생이 막을 고하는구나— 아찔한 생각 뿐이었는데 한 차례 위기가 지나가니 실감이 잘 안나고 이상하게 밥도 잘 넘어가는구나.
절체절명의 순간을 넘기고 나니 가족 생각도 나고, 갑자기 혼자 있다는게 절절히 느껴진다.
아버지 어머니, 불효자식 꼭 성공해서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가구로 보답하겠습니다—
아 맞아, 오줌— 오줌 어떻게 싸지⋯?
사타구니가 아직도 민둥산인데 이거, 왜 그대로 두고 간거야?
보지라도 달아주던가 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