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2화. 그래도 살아가나⋯?
사랑하는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저 희준이에요.
그동안 절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따뜻하게 절 격려해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셔서 마침내 서울종합대에 합격하게 되었어요.
비록 자취를 시작하는 바람에 매일 곁에서 효도할 수는 없지만, 항상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21년 3월 1일
아들 박희준 올림
추신. 저좆됐어요
※※※
야야, 안웃어?⋯ 응? 안웃냐고.
아침부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탓에, 일인 촌극마저 해보지만 달라지는건 없다.
시발, 내일부터 학교가야하는데 일어났더니 꼬추가 사라졌는데. 그리고 오줌도 마렵다고!
이거 오줌은 어떻게 싸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소변, 볼 수 있겠지?
큰 거는 당연히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작은거를 안 싸버리면 사람이 죽는거 아니야—
오늘은 또 하필이면 공휴일이라 병원도 안 열텐데⋯
일단 병원 생각이 나긴 했지만 지금 가봤자 응급실말고는 여는 데도 없고, 이게 병원가서 해결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들고 전화앱을 켰다. 엄마 전화번호 010-XXXX⋯
아 씨⋯ 남자가 쪽팔리게 무슨 단축번호냐고, 아무것도 지정을 해놓지를 않았더니 이런 순간에 불편하다. 그래도 엄마니까 번호정도는 당연히 외우고 있는거지-
하여튼 뭔가 문제가 생겼을때 어디 매달릴 사람은 부모님밖에 없는데, 전화 걸기 직전에 문득 생각이 들어 겨우내 멈추었다.
'전화걸어서 뭐라고 말하지?'
할 말이 없다.
'⋯응 아들? 잘 일어났어? 밥은 먹었고?'
'어 아니. 근데 나 고추가 사라졌다?'
말도 안된다. 대뜸 전화걸어서 하는 말이⋯ 엄마 나 고추가 사라졌어?
뭐라고 말해 이걸⋯?
하아. 내가 미쳤지. 아빠한테도 말해봤자 똑같은거 아니냐고.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항상 잘 해주시고 헌신적이신 분이지만, 그렇다고 물러터진 사람이라는건 아니다.
상냥하면서도 진중하고, 항상 깨어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은데 은근 또 '엄근진'할 때가 있고.
다른 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너무 실없는 소리를 하면 별로 안좋아하더라.
대뜸 고추가 없어졌다 그러면, 장난치는 줄 아실거고 계속 우기면 아예 정색하실지도 모른다.
아니 그리고 애초에 엄마, 아빠한테 말한다고 뭐가 바뀌는 거도 아니다.
부모님은 슈퍼맨이 아닌걸.
시발, 자립해보기로 마음먹었는데 첫 위기가 이딴 거라니, 말도 못하고 아주 난감한 상황이야.
그니까, 일단은 좀 더 있어보자고.
※
아까 찬물을 생으로 들이켰더니 묘하게 배도 살살 아픈 것 같고 오줌이 존나 마렵기는 한데, 일단 좀 참고 밥부터 먹기로 했다.
아니지⋯ 밥먹으면 물마셔야 하니까 오줌이 더 마려울 거다. 일단 샤워부터 하는걸로 변경.
자취방이 넓은 건 아니라서 그런지 왔다 갔다 하는게 별로 어렵지는 않다.
그냥 여기 있다가, 저기로 좀 가면 그게 화장실이고, 다시 돌아오면 침대고 뭐 그런거지.
적당히 책상, 옷장, 침대 붙어있고 좁디 좁은 싱크대 밑으로 드럼세탁기 있는 그런 원룸이니까—
다시 화장실로 돌아가서 옷가지를 벗어서 밖에 휙 던져 놓으니 내 꼬추가 사라졌다는게 또 실감이 된다.
시발, 하필이면 거울은 또 한쪽 벽면에 통으로 붙어있어서 조옷나게 잘 보이네.
하아⋯⋯⋯ 진짜⋯
혹시 몰라서 거울을 좀 쳐다봤는데, 다른건 다 그대로이다.
엄마가 낳아준 내 얼굴, 적당히 한국인스럽게 좁고 째진 눈, 적당히 입술같이 생긴 내 입술, 갓 고등학생 티를 벗으려는 적당히 더러운 피부⋯
아니, 더러운 건 아니고 흔적이 좀 있는거지.
수염은 조금 올라왔네. 면도야 뭐 학교갈 때 아침에 하면 되는거니까. 남자가 수염 안나면 그게 남자야?
그래도 코는 아빠닮아서 좀 높은거 같은데.
잘생긴 코는 아닌데 그래도 콧대도 있고 코 때문에 돈 쓸 정도는 아니니까 됐다.
머리숱은 적당히 많고. 곱슬거리는게 짜증나서 미용실가서 머리를 했다.
지난번에 대학 입학 기념으로 크게 마음먹고 비싼 데를 가서 그런가 스타일은 좀 괜찮아 보이네.
그러니까,
내 얼굴은 그대로라는 거다.
남자 얼굴이라고.
그리고 생각해보니 일어났을때도 별 위화감은 없었는데 이건 키도 그대로라는 소리다.
"아. 아."
"아—"
"아아아아—"
"아!"
목소리도 그대로⋯?
얼굴 그대로, 목소리 그대로, 키 그대로, 피부색 그대로,
살짝 나온 뱃살 그대로, 세상도 그대로.
내 자지만 사라졌어!
솨아아⋯
일단 샤워한답시고 물을 틀기는 했는데 머리가 급격하게 아파온다.
솨아아⋯
'남자인데 고추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세차게 쏟아지는 뜨끈한 물을 맞으며, 상념에 잠긴다.
만화나 소설에 TS라는게 있더라⋯
그런걸 보면 남자 주인공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여자가 되어버린다.
그래. 보통 이럴 때는 여자가 되던데, 난 고간이 아예 막혀있는 상태라는게 문제다.
어딘가 볼록 나와있는 흔적도, 혹은 깊게 갈라진 균열도 없다. 그냥 아무것도 없다고.
기둥이랑 방울이 다 사라져버렸는데, 어디 잘린듯한 흉터도 없고 너무 매끈하잖아.
후⋯
얼굴도 그대로이고, 목소리도 여자 목소리가 나는게 아니니까 난 남자다.
솨아아⋯
머리까지 감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한다.
그래. 자지가 사라지긴 했는데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갑자기 돌아오겠지.
이런 일로 멘탈이 깨지면 안된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마음에 담아 두면 안된다고.
인터넷 현자가 그랬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면, 달라질 게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고추가 사라진 건 좀 심각한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꾸르륵.
그런데 배가 좀 아프네⋯?
오줌을 참아서 배가 아픈건지, 큰 거 때문에 배가 아픈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반사적으로 변기에 신중하게 착석을 한다. 읏, 차거—.
..물 튀니까 휴지 한 장 깔고. 이건 꿀팁이다.
아이씨—. 차가운 변기에 앉았더니 마음이 존나 급해지는데, 워. 워. 릴렉스, 릴렉스⋯
근데 자지가 사라졌는데 오줌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러니까, 큰 일을 볼 때 오줌이 먼저 나오는데, 나는 어떻게 되는 건지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 오줌은 요도를 타고 나온다. 방광에 차 있던 물이 생식기에 덮혀있는 요도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는 거다.
..근데, 난 가랑이가 막혀 있는 상태다.
설마 오줌길도 막힌건가?
오줌 구멍이 없어진 것도 문제지만, 길 자체가 막혔으면 그건 좀⋯ 좆된거잖아.
오줌 참으면 안된다는데. 염증 생기면 진짜 정말로, 아주 정말정말 아프다던데.
방광 터지면 어쩌지? 위급환자라고, 응급실 가서 바지 까고. 깠는데 시발 아무것도 안달려있고?
아 진짜—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자포자기하고 배에 힘을 꾸욱 주니까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배가, 배가— 배가 존나 아프다!!!!
씨발! 뭐야 시발—!!
배가 존나아프다 진짜, 존나아퍼—
오줌 구멍이 막히고 고간이 살갗으로 뒤덮힌걸 보고 설마 항문으로 오줌이 나오려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구멍에서는, 그 구멍에서 나올 것만 나왔고
배가 조온나게 아팠다!
"끄으으으⋯⋯⋯⋯ 끄흐어⋯"
너무 아파서 숨도 제대로 못 쉬겠다.
내 몸이 지금 무슨 상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대충 오줌이 안나와서 좆됐다는거만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잠깐이라도 뭐 알아서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배에 힘을 줬던게 너무 후회된다. 으윽-
"일⋯일⋯구⋯⋯"
내 핸드폰⋯
피만 토하지 않을 뿐, 고통으로 다 죽어가는 몸을 질질 끌며
몸에 아직 남아 있는 물기와, 방금까지의 뒷처리같은건 생각도 못한 채
바닥을 기어서
핸드폰을 찾는다.
"끄으으⋯"
핸드폰⋯
잠금해제하고⋯
1..1.......9
뚜르르르—
뚜— 뚜— 뚜—
뭐야.
아이 씹—
잘 못 걸었나?
"씨발!"
아니 시발, 잘 못 걸었을리가 없잖아. 좆같은 핸드폰, 여기서 이게 고장난다고?
수능 끝난 기념으로 핸드폰이나 바꿀 걸 그랬다. 시발, 존나 급한데 벌써 고장난건가?
순식간에 차오르는 짜증과, 좆같은 고통을 겨우 참아내고 다시 전화를 건다. 화면에 붙여놓은 필름의 질감이 묘하게 거슬린다.
틀릴까봐, 진짜 죽을거 같아서 신중하게 화면을 터치하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아, 제발.
뚜르르르—
딸깍.
받았다.
으윽, 존나 아프네 진짜—
"여기⋯ 서울종합대 뒷문쪽에⋯ 으윽, 학교 뒷쪽에⋯"
아 씨이발⋯ 어제 이사와서 집주소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계약서에 집 주소가 적혀있긴 할텐데 그건 지금 나한테 없다.
아오, 아 맞아⋯!
"⋯XX로 XX⋯ 601호요. 빨리요,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 빨리 와주세요—!!"
시발, 주소도 몰라서 죽을 뻔 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다.
"⋯?"
"⋯저기요?"
전화가 끊어졌나 싶어서, 핸드폰을 보는데 여전히 통화중이다.
"여보세요!"
아 씨발, 존나 아픈데 뭐냐고—!
통신 상태도 정상이고, 핸드폰이 고장난 거도 아닌데
저쪽에서 아무 말도 하질 않으니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이 씨발놈들 설마 전화 받아놓고 딴짓하는건가—
"저기요! 씨발, 지금 뭐하세요?"
"내 말 안들려요?"
으윽, 식은 땀이 줄줄 난다.
여기서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꾹 참아내는데⋯
왜 이러냐고 진짜.
결국 전화를 끊고, 다시 119에 전화를 했지만
"⋯안들리냐고요!"
여전히 아무 대답도 돌아오질 않았다.
한 번, 두 번 전화를 다시 걸어보지만 몸에 힘이 주욱 빠지고,
점점 시야가 흐려지는데
마지막 힘을 짜내,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너무 아파.
제발. 제발. 제발⋯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왠지 결과가 뻔해서 기대를 접은 채 힘없이 집주소를 부르고, 도움을 청한다.
"⋯저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
⋯
"끕."
—!!
받았다—!
"저기요—! 전화 듣고 있는거 맞죠? 윽, 빨리 와주세요! 저 진짜 죽어요 제발요—"
"끄흡⋯"
아니 씨발
"빨리요, 진짜!"
자꾸 딸국질을 참는 것 같은 소리만 난다.
얘네 뭐야. 사람이 죽어간다고—!
"끄흡—"
"끅, 끄읍⋯"
"흐윽⋯ 끕⋯ 흐흐흑⋯"
"장난치지마세요!! 너무아파요 정말—"
"끕, 끅, 끄흑— 픕—, 프흡— 흑— 흐흐흐흐흑⋯ 학, 아하하악⋯"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울음소리, 아니 웃음 소리에
심장이 덜 컥 내려앉았다.
"누구세요? 119아니에요, 네? 누구냐고, 너 누구야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