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1화. 오늘도 일어난다
삑삑— 삑삑—
오전 6시 30분.
오늘도 어제 그랬던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곧바로 일어난다.
졸리고 안 졸리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새벽까지 TV를 보며 밤을 샜어도, 오늘이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일요일이더라도⋯
나에게 중요한 건 중학생 때부터 이 규칙을 지켜왔다는 거다.
내 또래와 다르게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일어난다고,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고등학생 때 반 애들이 하는 말을 듣다보면 다들 알람을 서너개씩 켜둔다고 그러던데 참 한심한 놈들이다.
못 일어날 것 같으면 밤을 새질 말던가⋯ 애초에 알람 소리 나면 깨면 되는거 아닌가?
난 사실 알람 맞춰놓는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혹시 모르니까 켜두고 자는거지.
인터넷 커뮤니티를 좀 보니까 다들 아침에 못 일어나는건 대학생이나 어른도 마찬가지란다.
자유가 생기고 더이상 부모님이 간섭을 안하게 될 수록, 일어나는게 더 힘들어진다고⋯
나도 뭐 이제야 갓 대학생이 된 거지만 그딴 식으로 한심하게 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냥 하던 대로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볼 일좀 보고, 밥 먹고, 샤워하고, 일과를 시작하면 되는 거다.
존나 쉬운건데 병신들⋯
어쨌든 이번에 대학생이 되면서 새로 자취를 시작한 방에서 처음으로 맞는 아침이다.
합격⋯ 그래, 합격!
설마 대학교 원서넣을때 가까운데 넣는 사람은 없잖아? 장학금 때문이라면 모를까, 성적이 되는데 멀다고 원서 안넣는 경우는 없을거다.
나도 그래서 거리 걱정 없이 서울에 있는 학교에 지원을 한거고. 처음에는 얼마나 먼 건지 별 생각은 없었는데 지도 앱으로 찾아보니까 좀 멀긴 하더라.
기숙사 배정받기엔 거리 점수가 묘하게 아쉽고, 그렇다고 통학을 하자니 부담되는 그런 거리.
결국 집에서 통학하기에는 조금 힘들겠다 싶어서, 합격을 통지받자마자 부모님을 졸라 자취를 허락받았다.
엄마, 아빠- 인터넷에서 좀 찾아보니까 방을 너무 늦게 구하면 다 나가고 안좋은 데만 남아있대—
허락해주지 않으면 재수해서 의대나 노려보겠다고, 억지라도 부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고민을 하시더니 이내 자취를 해도 좋다고 해주셨다.
휴. 재수는 솔직히, 좀 오바야. 의대야 뭐.. 내 실력으로 아예 못 노릴건 아니지만 1년을 더 재미없게 공부하면서 밤을 새야 한다니. 못한다.
사실 통학이야 처음에 별 생각은 없었는데, 합격하고 나서 실실 쪼개며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다가 이내 여자친구에까지 생각이 닿았다.
여친도 사귀어보고 싶어. 여자친구 생기면, 자주 만나고 데이트도 같이 다녀야 하는데. 대학생은 서로 사는 곳이 다르잖아.
데이트하러 이곳 저곳 놀러다니고, 분위기 좋으면 뽀뽀도 하고 그럴건데⋯ 집에 데려오기는 좀 부끄럽고, 더 깊은 관계가 못 될 텐데.
그래서 연애도 하고, 꼬셔서 같이 자 볼 요량으로 자취라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낸거다.
"끄응⋯⋯"
어제 짐을 옮긴다고 계단을 계속 올랐더니 은근 피곤한 것 같다. 솔직히 체력 부족이야.
그놈의 자존심때문에 하나도 안 힘들다고, 쉬면서 하라는 엄마 걱정도 무시하고 엄청 움직였지⋯
운동을 원래 잘 안해서 그런가 체력도 부족하고 예전보다 살도 살짝 찐 것 같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매일 죽치고 앉아있었던 걸로 모잘라, 대학에 붙고 나서 먹고 싶은거 다 먹고 다녔더니 뱃살이 조금 오른 거겠지.
이거 많이 찐 건 아닌데. 분명 아닌데 마음에 안 든다. 관리 좀 해야지 정말.
그니까, 만년 모범생이었던 나는, 사실 공부를 좀 했다는 것 말고는 별거 없다.
공부를 좀 잘 해서 정시를 뚫고 소위 인서울 명문대에 입학하기는 했는데, 운동 못하고 딱히 자랑할 취미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아니— 아싸라는 건 아닌데 그냥 친한 애들끼리만 친하고, 분위기 보다가 알아서 짜져있고 그런거.
욕 좀 하면서 대화하고, 너 그거 봤냐— 며 노가리도 좀 까고. 숙제 내준거 답 좀 보여달라 그러면 빨리 돌려달라 그러면서 빌려주기도 하고.
음.. 진짜 죽고 사는 깊은 친구 관계는 없었던 것 같지만 그건 남들도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까 괜찮다.
뭐 성적 좋고 부모님 말 잘 듣고 학교에서도 사고는 안 치고 다니니까 어디서 미움받고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나름 생각한다.
이건 비밀인데, 모범생처럼 학교 다닌건 맞지만 내 속내까지 다 모범적인건 아니다. 뭐, 그렇다고.
⋯그래도 대학생이 됐는데 이제 범생이 티 좀 벗어보고 나도 인싸처럼 살아볼 요량이다.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시키는대로 열심히 따라가니까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교에 들어오긴 했는데 뭔가 좀 아쉽거든.
반 친구들이랑 좀 더 어울렸으면 어땠을까 싶고, 용기내서 고백도 해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
새 시작이니까 모처럼 다르게 살아보자고.
동아리 들어가서 친목질좀 하고, 나 혼자 사는 거니까 노래 연습도 할 수 있겠지. 노래 잘부르게 되면 남들 앞에서 한 번 불러보고 싶기도 하다.
⋯동아리는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랑 어울리는걸 하는게 좋지 않을까? 애초에 동아리가 뭐 하는건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말이야.
운동도 빼먹지 말아야겠다. 일단 러닝좀 하고 간단한 거부터 시작할까 싶다. 마침 내 방은 대학교 코 앞이라 운동하기도 딱 좋거든.
헬스장 가서 본격적으로 하기는 좀 그렇고, 운동장 좀 달리고 뭐 기회가 되면 학교 시설을 이용해볼 생각이다.
몸 좀 만들어서 개쩌는 여자친구랑 사귈거니까, 매일 매일 해야겠지.
잘 관리된 몸매가 끌리는건 남자나 여자나 다를게 없으니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면 허리에 안 좋다고, 어디선가 들은 말을 엄마가 계속 해줬던 게 또 습관이 됐다.
바로 일어나지 말라더라. 옆으로 손을 짚고 일어나면서 하품 한 번으로 잠을 털어내본다.
"하암⋯"
이런 식으로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뻑뻑했던 눈이 적응되고, 허리도 풀렸다.
공부가 이래서 문제야— 안구건조증이 조금 있어서 아침에 바로 눈뜨면 시리더라.
"후⋯"
아 오줌마려워. 오줌부터 싸고 세수해야지.
몇년 동안 주욱 살았던 집에서 벗어나 자취를 시작했더니, 아직 모든게 어색하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기까지 거리, 전등 스위치의 위치, 화장실 전구의 색깔, 타일 무늬, 엄마가 새로 사 준 슬리퍼—
거울 위치도 다르다. 매일 습관적으로 보는 내 얼굴⋯ 아무리봐도 잘생긴건 아니고.
내가 잘 생긴건 분명 아닌데, 또 어떨 땐 괜찮단 말이야.
엄마가 우리 아들 잘 생긴 편이라고 띄워줘도 별로 믿기지는 않는데.
뭐 어쨌든, 원래 쓰던 것보다 묘하게 작은 듯한 변기 뚜껑을 올리고 바지춤을 내린다.
오줌 싸는게 뭐 별거 있나? 왼손으로 바지춤 부여잡고, 오른손으로 조준하는거지.
잠에서 덜 깬 상태라면 조심하는게 좋다. 다들 알잖아. 조준 잘 하자고.
근데⋯
그런데⋯⋯⋯
⋯⋯⋯
꼬추가 없다.
내 꼬추가 안보인다.
오른손을 딱 갖다대면 언제나 그랬듯이 물컹—하고 잡혀야 할 고추가, 안잡힌다.
뭐야⋯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간을 바라보는데⋯ 고추가 없다. 없다고.
아니 내 자지가 너무 작아서 안보이는 애기꼬추라던가 뭐 그런 말이 아니다.
나 고추 안작아. 존나 큰 건 아닌데, 시발 이 정도면 됐지 히토X로 여자를 배운 새끼들이나 지랄하는거고.
잠이 덜 깼나?
아니다.. 뭔데 이거.
시발 내 꼬추가 아예 없어졌는데?
히토X에서 꼬추가 사라지고 하루 아침에 여자가 된다던가, 심지어는 꼬추 그 자체가 됐다던가 그런거는 종종 접한 적이 있다.
문제는 이게 현실이라는거지.
대학생이 돼서 부모님을 졸라 자취방을 얻고 개강 전 날 이사를 한건데, 그 다음날 꼬추가 없어진거다.
뭔데 이거.
"어⋯"
존나 아무 생각도 안든다.
아니 생각이 아예 안 드는건 아니고, 뇌가 실시간으로 과부하에 걸려 버벅대고 있다.
'남자가 자지를 숨김'
이 순간에도 별 얼척없는 잡생각이 나네.
꼬추가 없어져서 좆된건 당연하고—
더 큰 문제는 고간에 아무 것도 없다는 거다.
아니, 보통 만화보면 자지대신에 보지가 달려있고 그러던데⋯?
민둥산이 달려있다. 어⋯ 아무것도 없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달려'있는건 아니지?
민둥산, 민둥보지, 빽보지, 브라질리언 왁싱⋯⋯⋯⋯
고간부를 말끔하게 하는게 실제로 아예 없는 일은 아니겠는데, 아예 아무 것도 안달려있는건 뭐냐고⋯!
슬슬 일차적인 충격이 가시고, 그 여파가 오기 시작한다.
아이 씨발⋯
아침에 일어났더니, 꼬추가 사라졌고, 뭐가 대신 달려있는거도 아니고, 아예 맨들맨들한 살갗만이 날 마주하고 있다.
씨발⋯ 아 존나⋯
보통 이런거 개꿈이던데, 뺨도 쳐보고, 꼬집어보지만..
아오⋯ 씨발 적당히 잘만 아파온다.
예전에 영화 인셉X에서 봤던 것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파악하기 위해 손가락을 확 꺾어보고, 목도 뒤로 주욱 돌려보지만 역시나 안된다.
하.. 그 영화에서는 팽이같은걸 돌려보던데. 계속 돌면 꿈인거라고.
팽이— 팽이 어디갔서어—!
에이씨, 혹시 몰라서 핸드폰을 켜서 네이X를 들어가봤지만 별다른 속보가 떠있지도 않다.
신종 바이러스가 옆나라에서 돌고 있다는건 뭐 몇 주 전부터 있던 뉴스고.
걔넨 뭐 맨날 그러니까⋯
꿈도 아니고, 세상이 바뀐 거도 아닌 듯 하다.
나만 좆됐다는건데⋯ 뭘 해야할지 막막하다.
하— 일단 물 좀.
물, 중요하지. 자취방에 정수기를 놓을 수는 없으니까 적당한 때마다 새로 사다놔야 한다.
벌컥 벌컥-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배가 빵빵해질때까지 물을 마셔버렸다.
아빠가 들여다 놓은 2L 석수병을 새로 따서, 찬 물인 채로 그대로 벌컥 벌컥 들이키고 나니 이제야 생각이 좀 돌기 시작한다.
당황하는건 도움이 하나도 안될테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부모님도 아직 정정하시고, 별다른 유전병도 없다. 우리 집안에 뭐 특별한게 전해진다는 얘기도 들은적 없는데.
내가 뭐 방사능에 노출되거나 이상한 약물을 먹은 것도 아니었고, 이상한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
그저 막 대학생이 되는 파릇파릇한 스무 살 남자애일 뿐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자지가 사라져있고, 생식기라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꿈도 아니고, 내가 살던 세상 그대로인 것 같⋯ 아 맞아 씨발.
씨발, 내가 이 생각을 못했지— !
인터넷 좀 보다보니까 유행어같은게 있던데 이런 상황에 딱이다.
보통 사람들 바글바글한 곳에서 외치게 되는게 클리셰인데, 나는 마침 내 방에 혼자 있으니 창피할 일도 없다.
후우⋯ 아이에우오⋯ 아오우오우⋯ 꿀꺽.
갑자기 이 생각을 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발음 똑바로, 한방에 외쳐보자고.
흐읍—
"⋯상태창—!!!!!"
⋯
⋯⋯
⋯
"정보!"
⋯
"스테이터스!"
⋯
"도움말!!"
⋯
"⋯나가기!!"
⋯⋯
⋯
⋯⋯⋯⋯⋯
⋯
설마⋯? 아니지?
..
"붕태...창?"
⋯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