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음란한 두명의 누나 (18)
음란한 두명의 누나 (18)
"언니가 이런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줄은 몰랐어. 오늘은 외근이네?"
"유라야..."
하연은 멍한 표정으로 여동생인 유라를 쳐다보았다.
"네가 왜 여기에?"
불륜 관계에 있는 중산의 아파트에서 지친 표정으로 걸어나온 하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자신 앞에 서 있는 유라를 보는 순간,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유라는 모든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하연에게 다가왔다. 하연은 유라를 애써 무시하고, 여동생의 곁을 그냥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하연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유라는 자신을 무시하는 하연의 태도에도 태연하게 그녀를 뒤쫓아 앞을 가로막고 섰다.
"사장 비서라는 직업도 생각만큼 만만치 않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니?"
하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여동생의 얼굴을 가볍게 노려보았다. 유라는 전혀 주눅든 기색 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뭐 좀 언니에게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갑자기 뭘 물어 보겠다는 거니?"
"이런 데서는 좀 그러니까, 언니 아파트에 같이 가. 괜찮지?"
유라의 말투에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어릴 때부터 유라는 자기가 생각하는 걸 직설적으로 말하곤 했다. 하연은 그런 자유분방한 여동생이 가끔 부러울 때가 있었다.
'가끔,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유라가 부러워. 단 하루라도 좋아. 유라처럼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인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차피 내게는 무리야.'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유라는 평소와 다름 없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재잘재잘 계속 지껄였다.
'내동생이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유라가 어떻게 나와 중산씨와의 밀회 장소인 그 아파트를 알고 있는거지? 게다가 그앞에서 날 기다리기까지 하고. 친한 친구 몇 명과 바다외에는 나와 중산씨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 설마 바다가?'
바다가 유라에게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바다가 나와의 일을 유라에게 전부 털어놓은 게 아닐까?'
하연의 아파트에 도착해 방에 들어갈때까지도, 유라는 옷이나 신발 그리고 연예인들의 얘기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재잘거렸다.
"말하고 싶은 게 뭐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여동생을 보며 하연이 물었다. 유라는 고양이처럼 장난스러운 얼굴로,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언니 사장의 정부라며?"
유라의 말에 하연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역시. 전부 알고 있는거야.'
순간 하연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곧 감았던 눈을 뜨고, 여동생을 쳐다보았다.
"누구에게 들었니?"
"바다."
유라의 말투에 장난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하연은 현기증이 나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왜 바다가 네가 그런 말까지 한거니?"
"그야, 바다는 내 노예니까."
"그게 무슨 말이니?"
온몸의 떨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싫어. 더이상은 듣고 싶지 않아.'
하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동생의 입에서 또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두려웠다.
"언니 바다랑 섹스했지?"
"유라야..."
"그런 표정 짓지마. 나도 했으니까."
"뭐?!"
유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유라의 밝은 목소리톤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연은 다리에 힘이 빠져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유라가 앉아 있는 소파 옆에, 털썩 주저앉듯이 무너져 내렸다. 마음의 동요를 여동생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창백하게 변해 버린 얼굴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언니랑 바다가 어떤 관계인지 이미 다 알고 있어. 언니가 바다랑 잤다는 걸 알았을 땐 솔직히 정말 화가 났거든."
유라는 하연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연은 화를 내고 있는 동생과 눈이 마주치자, 곧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말았다. 한동안, 동생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무릎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니, 왜 바다랑 잔거야? 언니 왜 그런 짓을 한거야?"
"미안해. 유라야."
"너무 화가 나서, 나도 홧김에 바다랑 한거야."
하연은 미안한 얼굴로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유라는 천사처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내가 싫어졌지?"
"아니야. 유라야."
"바다를 좋아해?"
"응. 좋아."
하연은 일부러 힘있게 말하며, 가만히 동생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동생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조금 짓궂은, 하지만 악의 없는 표정으로 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왜 사장과 불륜관계를 청산하지 못하는데?"
"그건..."
"돈?"
"유라야!"
하연은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바다랑 몸을 섞어 버린 유라가 날 찾아온 건, 바다를 자신만의 것으로 하기 위히서 일거야. 하지만 나도 바다를 유라에게 양보할 수는 없어.'
'사장님의 성노예가 되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지배당해 버린 날 바다가 도와주기 시작했어. 만약 바다가 없었다면, 난 바닥 없는 나락에서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을거야. 지금 힘겹게 나락에서 기어오르고 있는데, 겨우 그에게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도 모두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야. 지금 바다를 유라에게 빼앗겨 버리면 난 다시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거야. 그럴 순 없어.'
하지만 바다와 육체관계를 맺은 뒤에도 하연이 사장인 중산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건, 유라의 말처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바다에겐 중산과는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겠다고 말했지만, 1주일이 지난 지금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중산과 헤어진다고 해도 남동생인 바다와 연인처럼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은 하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하연은 동생인 유라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뭐가 문제야? 헤어지면 되잖아? 언니, 그 사람을 사랑해?"
하연을 바라보는 유라의 눈동자에는 언니를 걱정하는 부드러운 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날 탓하려고 찾아온 건 아니야.'
하연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유라를 바라보았다.
"나 같은 건 그 사람에게 편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노리개일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럼 왜 그런 남자랑 계속 사귀는거야? 난 잘 모르겠어, 그런 건 정말 이상하잖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니? 유라야."
'유라는 내가 왜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지 이해할 수 없을거야. 성적인 노리개로 조교되어 버린 내 심정 따위 상상도 할 수 없을테니까.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하면, 자유분방한 유라는 어리석고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거야. 하지만 나도 정말 어쩔 수 없는걸.'
하연에게 그녀를 마조로 조교시킨 중산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중산은 하연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주인님 같은 존재였다. 바다와 육체관계를 가진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언니,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을거면, 바다는 포기하는게 좋잖아."
유라는 상냥한 어조로 타이르 듯이 말했다.
"그런 건 바다에게도 좋지 않아. 언니뿐 아니라 바다를 상처 입힐 뿐인걸."
"그치만 바다를 정말 좋아하고 있는걸."
"언니, 그러니까 안 되는거야. 이런 관계는 두 사람에게 모두 독이 될뿐이야."
유라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슬픔이 떠올랐다. 하연의 가슴을 찌를 듯한 안타까운 눈빛이었다. 여동생인 유라의 말이 모두 맞는만큼 하연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언니, 왜 바다랑 섹스 따위를 한거야?"
"왜냐니...그건..."
'그래 정말 왜지. 왜 바다와 선을 넘어 버린 걸까? 중산씨와의 관계를 끝내 버리고 싶었기 때문일까. 바다가 침실에서 새끼줄을 발견했을 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잖아? 그렇게 하지 않은건, 내가 바다를 원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난 정말 바다를 남동생이 아닌 한 사람의 남자로 사랑하고 있는걸까.'
"유라 넌, 왜 바다와 잔거니?"
"누나의 그 말 마음에 안 들어. 잤다는 말. 내가 바다를 노예로 삼은 건, 언니가 바다랑 섹스를 해서 화가 났기 때문이야. 그거 뿐이야."
"바다에게도 그렇게 말했니?"
하연은 너무 자기위주로 생각하는 여동생의 말에 조금 화가 났다.
'적어도 난 유라처럼 장난스러운 기분으로 바다와 잔 건 아니야.'
친동생과 섹스한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유라의 태도를 하연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다도 알거야. 바다도 좋아서 내 말대로 노예가 된 거니까.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아무래도 좋은 일이야. 그런 건."
"유라 넌, 장난으로 바다와 잔거니?"
하연은 유라가 싫어할 말을 일부러 내뱉었다. 동생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하연은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도 놀랄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유라는 낯빛도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가련하고 악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다랑 언니의 분위기가 너무 수상해서, 사실을 캐내기 위해 그냥 바다랑 잠깐 놀아준거야. 그게 다야."
"유라 너."
"언니도 나랑 비슷한 이유로 바다랑 섹스를 한거잖아. 바다랑 잠깐 놀아준 거 아니야?"
"아니! 난 아니야!"
하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바다가 필요했어."
"나도 필요했단 말이야!"
유라의 맑은 눈동자가 하연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여자인 하연이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예쁜 눈동자였다.
"유라야, 그게 무슨 뜻이야?"
"바다가...바다가 언니를 빼앗아 갔잖아. 내게서 언니를...빼앗은 거야."
유라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삐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게 있거나, 원하는 게 있을 때 유라가 짓는 표정이었다.
"뭐?"
"언니랑 바다가 섹스한 사실을 들었을 때, 난 깨달았어. 내가 언니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라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 듯 말한 뒤, 소파에서 쓰윽 우아하게 일어섰다. 하연은 현기증이 나서, 눈앞이 빙빙 돌면서 온몸에 힘이 빠져 다리가 떨렸다. 몽롱한 의식속에서 하연은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여동생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