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노예 신입사원 (9)
노예 신입사원 (9)
특별지사 사무실로 돌아온 찬호와 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찬호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침에 보지 못 했던 직원들이 어느새 모두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모두 모인 것 같으니까, 신입사원인 최은비 양을 소개하도록 하지. 자, 은비 씨 모두에게 인사를 하세요."
지사장의 말을 듣고도, 나는 여전히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망설이고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브래지어의 후크는 다시 채웠지만, 나는 여전히 훤히 비치는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이런 복장으로 자기 소개를 해야 하다니..비참해..'
"자,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펴야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우리 특별지사의 팀원들이 고안한 여사원용의 유니폼을 모두에게 보여 주라고."
'그래. 지사장님의 명령으로 이 유니폼을 입고 있을 뿐이야. 좋아서 이런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건 아니야..내 마음을 알아주면 있을 텐데..'
나는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번에 새로 입사한 최은비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나는 가슴을 손으로 누른 채 인사했다. 지사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원식당에서 처럼 억지로 손을 떼게 하지는 않았다.
"그럼 은비 씨에게 우리 팀원들을 소개해 줄게."
유리 언니가 특별지사의 여섯명을 소개했다. 나는 한사람 한사람 얼굴을 보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남자 직원들 세 사람은 모두 시원찮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박태봉 씨는 34살인데도, 유리 언니는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나이에 직함 하나 없었다.
깡마른 체격에, 눈은 징그러운 파충류를 연상시켰다. 태봉은 그 음험한 눈으로 힐끔힐끔 내 몸을 훑 듯이 쳐다보았다.
"은비 씨 무지 귀엽네."
태봉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아첨하 듯 말했다.
최휘찬과 이묘한은 둘 다 28살로 휘찬은 지사의 남자들 중에서는 그나마 제대로 된 남자처럼 보였다. 살짝 웃는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리는 호감이 가는 타입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세요."
휘찬이 상큼하게 말을 걸었다.
묘한은 매우 성실한 타입 같았다. 내가 인사를 건네도, 웅얼웅얼 입 속으로 무언가 중얼거릴 뿐이었다.
'왠지 믿음이 안 가..'
여직원은 20살의 김송이와 24살의 고미애. 송이는 무척 밝은 성격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탓에 어리지만, 내 선배가 되는 셈이었다. 미애 씨는 나이보다 늙어 보여서 30살 정도는 되어 보였다. 유리 언니는 이 두 사람과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식당에서 있었던 일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지만, 지사의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시 조금씩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 * *
저녁 무렵, 나는 지사의 직원들과 어느 정도 친해져 있었다. 블라우스 위에는 송이가 빌려 준 평범한 파란색 베스트를 입고 있었다. 스커트는 여전히 초미니였지만, 주로 책상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큰 지장은 없었다.
쭉 사무실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모두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 같은데..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도 유리 언니랑 추계장님 외에는 제시간에 출근한 사람이 없었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봉이 가만히 내 쪽을 보면서 파충류를 닮은 눈을 가끔 깜빡거렸다.
마음이 여린 듯한 묘한은 무언가 얘기하고 싶은지 힐끔힐끔 나를 보고 있었지만 잡담을 하고 있는 송이와 휘찬에 섞이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젊은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딱히 할 일이 없는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와 얘기하고 싶은데 내성적이어서 어려워하는 것 같아 나는 묘한에게 말을 걸었다.
"묘한 씨, 여기 써 있는 기획서의 작성절차 말인데요. 잘 이해가 안 가거든요. 설명 좀 해주실래요?"
"어, 내가 설명을..."
묘한은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기쁜 듯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서툴러서 뭐라고 하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듣는 척을 했다.
"묘한 씨, 고마워요. 이젠 알 것 같아요."
"아..또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 보세요."
묘한이 으스대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주눅이 들어 있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원들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 *
오후 5시가 지나, 길고 힘들었던 직장에서의 첫날이 겨우 끝났다.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벗자, 무거운 짐을 벗은 기분이었다.
'내일도 이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걸까?'
속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유리 언니가 평범한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지사장님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거야. 그만 둘게 아니라면, 이 회사에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타일렀다.
"유리 언니, 먼저 갈게요."
"응, 수고했어."
사무실에는 유리 언니 혼자뿐이었다. 나머지는 퇴근시간인 5시가 되기도 전에 차례차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TF팀의 특성상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야..'
* * *
회사를 나와서 역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어깨를 잡았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묘한이었다. 묘한은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어머 묘한 씨, 아까 퇴근하셨잖아요?"
"아니, 은비 씨를 기다렸어. 영화나 같이 보러 갈까 해서.."
"네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묘한과는 사무실에서 잠깐 얘기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친한 사람처럼 나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은비 씨가 나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줄은 몰랐거든. 그때, 은비 씨가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나한테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겨우 은비 씨 마음을 알았지 뭐야...너무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은비 씨 마음 다 아니까."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화성인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무슨 엉뚱한 말을 하는거지?'
"미안해요. 묘한 씨. 그럴 생각으로 말을 건 게 아니거든요."
"됐어. 다 안다니까, 자꾸 그러네. 영화는 어떤 거 좋아해?"
'알긴 뭘 알아! 전혀 모르잖아!'
나는 등줄기에 오싹한 한기가 달렸다.
"어쩌죠..저, 곧장 집에 가 봐야 되는데."
나는 묘한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종종 걸음으로 걸었지만, 묘한이 뒤에서 바짝 뒤좇아왔다.
"뭐야, 영화를 싫어하는구나. 그러면 어디 좋은 데 가서 식사라도 할까?"
"아, 아니. 저 급한 일이 있어요. 곧장 집에 가야 돼요."
나는 차츰 겁이 나서, 뛰기 시작했다.
"어이, 기다려. 뭘 그렇게 쑥스러워하고 그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
묘한도 달려서 내 뒤를 쫓아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혹시, 스토커?!"
전혀 모르는 남자가 아니라, 같은 부서 사람이라 나는 더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개찰구를 통과한 나는 곧장 홈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전차에 올라타기 전에 묘한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은비 씨! 왜 도망 치는 거야!"
묘한은 내 팔을 잡자, 큰소리를 질렀다.
"어머, 무슨 짓이에요."
오싹한 소름이 끼치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인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 사람 이중 인격자인지도 몰라..'
"알았어. 그렇게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으면, 집까지 바래다 줄게."
자신의 또다른 인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묘한은 홈에 도착한 전차에 나를 밀어 넣고, 자신도 함께 올라탔다.
* * *
만원전차 안에서, 묘한은 내 뒤에 서 있었다.
"헤헷, 지사장님에게 들었다구. 너 훤히 비치는 유니폼을 입고 사원식당에 갔다며? 노출벽이 있어서 회사에 들어오자 마자, 특별지사로 밀려온 거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노출벽 같은 건 없어요."
나는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뺨이 상기되었다. 만원전차 안에서 큰 소리를 내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무슨 말이지? 내가 밀려났다니..'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라고."
묘한이 내 뒤에서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엉덩이에 불거진 살덩어리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곧이어 그게 엉덩이의 갈라진 틈새에 깊이 박혔다.
'바지 앞이 부풀어 있어..'
스커트 위에서 닿아 있었지만, 징그러운 감촉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묘한 씨, 그렇게 달라붙지 마세요..."
도망치려고 해도, 만원전차 안이라 몸을 틀어 방향을 바꾸는 것조차 어려웠다.
'어쩌지..'
바로 그때, 누군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꺄아! 설마...?'
뒤를 돌아보자, 묘한이 씨익 이를 드러낸 채 음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 마세요..."
하지만 묘한은 그만두기는커녕, 스커트 속에 손을 넣어 왔다. 그리고 팬티 위에서 원을 그리듯 볼기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엉덩이를 마구 쓰다듬자, 나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느꼈다. 피하려고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오히려 묘한의 손바닥에 볼기살을 비비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좀 더 엉덩이를 흔들어, 은비."
실실 웃으며, 여기저기를 쓰다듬던 묘한의 손가락이 엉덩이의 갈라진 틈을 따라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만..하지 마세요!"
묘한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럴 여유만 있으면 가랑이 사이를 지나 음부에도 손가락을 댈 것 같았다. 허벅지를 꽉 오므리고, 나는 몸에 힘을 주었다.
"히히힛,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구, 은비. 더 몸에 힘을 빼고, 즐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저 구경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묘한은 추잡하게 웃으며 나를 놀렸다.
"정말..그만, 하지마..."
몇명이 큭큭 작게 웃음을 터뜨리자, 주위 사람들이 자기 편이라고 확신한 묘한은 대담하게 내 팬티를 절반쯤 끌어내리고, 맨볼기살을 손바닥으로 꽉 움켜쥐었다.
"꺄아..그만..."
이번에는 가슴 쪽으로 손이 뻗어 왔다. 그건 묘한의 손이 아니었다. 손을 뻗은 사람은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있는 품위 있어 보이는 초로의 신사였다.
"꺄아! 하지 마세요!"
내가 사납게 째려보았지만, 초로의 남자는 히죽 웃었다.
남자는 상의 옷깃 안으로 손을 넣어, 블라우스 위에서 조몰락조몰락 유방을 마구 주무르면서 자신의 음욕을 불태웠다.
묘한의 손가락은 내 엉덩이를 마구 쓰다듬으며, 차츰 사타구니를 넘보고 있었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면서, 무릎이 부들부들 떨렸다.
"꺄아아!!"
나는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의 손이 스커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두 명이 동시에. 곧이어 가슴에도 여러 개의 손이 뻗어 왔다. 묘한의 추행이 다른 남자들의 음욕을 부추긴 탓이었다.
'안 돼! 이대로는 강간 당할지도 몰라..'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차량 안이었지만, 문득 그런 두려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묘한의 손가락은 곧 내 성기 안으로 침입해 들어올 기세였다.
"이봐요, 공공 장소에서 뭐하는 짓이에요? 그런 추잡한 놀이는 다른 곳에서 하시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중년 여자가 큰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너무 노골적인 치한행위에 진짜 치한이 아니라,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오해한 것 같았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변명하려고 했지만, 서너명의 남자가 동시에 내 몸을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진짜..정말 음란해. 불쾌해!"
중년의 여자는 내뱉듯이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남자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자신의 음욕에 몰두하고 있었다. 상반신 쪽의 손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끄르려고 하고 있었고, 하체로 뻗은 손은 묘한을 포함해 더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아, 미칠 것 같아...'
나는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치한들의 마수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는 도중에도, 육체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젖꼭지는 이미 서 있었고, 살틈도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그때, 다행히 전차가 다음 역에 섰다.
"놔! 그만 해!! 정말.."
나는 남자들의 손을 뿌리치고, 인파에 떠밀려 전철에서 내렸다. 뒤에서 묘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곧장 사람들 사이를 밀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역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택시에 올라탔다.
달리기 시작한 택시에서 뒤를 돌아보자, 묘한이 음침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