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부 조교해서 타락 시켜버립니다-266화 (266/275)

EP.266 265.여신 율

“아젤님!”

“어, 응? 뭐라고 했지 자가르?”

“아젤님 답지 않게 오늘따라 왜 그러세요?”

“아하하. 별거 아니야.”

아젤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살짝 저으며 다시 하던 얘기를 하라고 말하지만.

별거 아니기는..

백의 기사 아젤.

최근에는 무려 70층을 뚫어낸 명실상부 탑의 최강자 반열에 든 여자.

거기다 다른 길드의 마스터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길드원을 아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가 튀는 싸움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며, 자신의 동료를 지켜 주는 한줄기 빛과도 같다 해서 백의 기사라는 별명도 가졌다.

근데 그런 아젤이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길드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집중을 못한다고?

이건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맞다.

“후우.. 일단 오늘은 크게 중요한 것이 있는 게 아니니 쉬도록 하죠. 시간도 늦었으니까요.”

“어어..? 정말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으니 오늘은 일단 푹 쉬도록 하세요.”

덜컹-

앞에 펼쳐져 있던 여러 자료들을 챙기고서는 자가르가 방을 나선다.

자가르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서 아젤도 깊게 숨을 쉬며 옆에 놓여 있던 소파에 몸을 눕힌다.

“하아아.... 자가르에게는 미안하게 됐네.”

길드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서 가져왔는데도 길드의 마스터라는 놈이 집중을 안 하고 있으니..

자가르에게는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아젤은 오늘 시험장에서 만난 송인혁이라는 남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외모가 괜찮기는 했지만 사랑이라던가 하는 그런 감정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뭐라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는 그런.. 오히려 호기심에 더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탑을 오르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런 것은 처음이다.

아직 등반자도 되지 못한 그런 초짜.

하지만 초짜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상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신경도 안 썼을 불락 형제의 행동을 막아섰다.

아무하고나 하지 않는 통성명 또한 먼저 신청해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분명..

‘분명 내 엉덩이를 빤히 보고 있었지..’

아젤이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바라본다.

단련했기에 탄탄하면서도 여자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는 엉덩이를 슬쩍 만진다.

털털하고 신경 안 쓰는 척하기는 해도 아젤 본인도 물론 알고 있다.

자신의 엉덩이가 꽤 커다랗다는 것은.

‘그렇게 쳐다볼 정도인가..’

아젤의 길드에 속한 이나 아젤을 존경하는 이라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설마 그 백의 기사 아젤이 자신의 엉덩이를 조물딱거리며 신경 쓰리라고 감히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아젤이 자신의 엉덩이를 신경 쓰고 있을 때쯤.

“오오오...!!!”

“아까 아젤님과 같이 있던 그 녀석 아니야..?”

“불락 형제도 모르는 것을 보면 정말 완전 초짜 같던데.. 한 번에 등반자가 된 건가?”

인혁은 시험에 합격하고서는 주변의 부러움을 받고 있었다.

“..이게 시험이라고?”

시험이라고 불러야 하나 싶을 정도로 당연하게, 너무나도 간단하게 합격 해 버렸다.

너무 쉽게 합격해서 불합격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 찔릴 정도.

빛이 몸을 감싼 순간 곧바로 검은 기둥으로 몸을 내밀었고,

잠깐 검은 공간을 거닐고 있으니 어느새 빛이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응...?”

빛과 함께 내가 도착한 곳은 웬 콜로세움과도 같은 곳.

콜로세움의 관중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

그 기둥이 이런 곳에 연결되어 있던 건가.

“편한 곳으로 가 앉아계시면 됩니다.”

내 옆으로 다가와 안내 해주는 천사의 말에 따라, 나도 빈자리 아무 데나 찾아가서 앉았다.

분명 내 앞으로 합격한 것은 열 명도 채 안 돼보였는데.

이 인원수를 보면 시험장이 꽤 많은 모양이다.

내 뒤로 몇 명 더 사람이 와서 관중석을 채우더니, 시험이 모두 끝난 것인지 이 콜로세움에 더 사람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는 각자 외곽 쪽에서 자리 잡고 있던 천사들이 중앙에 모이기 시작한다.

뭔가 이벤트라도 열리려고 하나?

저 천사들이 갑자기 악마처럼 변해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 서로를 죽이 시기 바랍니다.’ 같은데스 게임이라던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중앙에 모인 천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등반자가 되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식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천사는 밝게 웃는 모습으로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두를 빙 돌아본다.

“지금부터 등반자가 된 여러분들을 위해 여신님께서 직접 축복을 내려주실 겁니다.”

여신이 직접?

이 세계의 여신이라면 단 하나뿐이니 분명...

“큭?”

“크악.. 내 눈!”

천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사들의 사이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검은 기둥에서 천사들이 등장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그런 빛.

갑작스런 빛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도 몇몇 보인다.

하지만 콜로세움 전체를 빛으로 꽉 채우던 강렬한 빛은 점차 약해지더니,

결국.

‘저건...!’

이렇게 빨리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천사들의 사이에서 엄청난 빛을 내며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이세계의 온 목표.

여신 율이었다.

“저, 저분이 정말 여신님이야?”

“성스럽다...”

“저 여신이 어떤 소원이든.. 이뤄준다는 거지?”

빛이 잦아든 뒤 천사들 사이에 서 있는 율을 본 다른 등반자들은 무척이나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탑의 꼭대기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이자 이 세계의 신을 만난 셈이니,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지금 당장 가운데로 달려가서 따먹으면 임무 완료지만..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상대는 여신이다.

이런 뻥 뚫린 곳에서 기습한다고 따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역시 기회는.. 탑에 올라서 일 대 일로 대면했을 때겠지?

아쉽긴 하지만 이번에는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다.

“축복을..”

작게 읊조린 듯한 여신 율의 미성이 모두에게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목소리에 감수성이 터졌는지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도 보인다.

그러다가 하나둘씩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몸이 좀 가벼워지지 않았어?”

“너도..?”

“나도.. 갑자기 뭔가 개운해진 기분이야.”

가벼워졌다거나 개운해졌다거나 하는 등 몸을 움직여보기 시작한다.

나는 별 달라진 게 없는데?

몇 번 나도 몸을 일으켜서 움직여보아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단체로 자신들의 여신을 보고서 플라시보 효과라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그만. 모두 정숙해주세요. 여신님의 앞 입니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콜로세움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선지, 천사는 살짝 화난 듯한 얼굴로 모두에게 호통 치듯 말했다.

천사의 위압감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더니, 얌전히 여신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지금 여러분의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여신님의 가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두 여신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그만해요. 가브리엘.”

오버 떠는 천사를 율이 직접 제지하고서 앞으로 살짝 나선다.

그리곤 기도라도 하는 듯 두 손을 꼭 모은 채 눈을 살포시 감았다.

“탑의 도전하는 여러분들을 저 여신 율은 언제나 축복할 것입니다. 길을 잃지 않고 언제나 올바르게 자신의 길을 걷기를.”

살포시 감았던 눈을 뜨며..

“여기 있는 이들 중 누군가가 꼭 제가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싱긋하고 옅게 미소 지으면서 말을 마무리한다.

무표정한 얼굴도 예뻤는데.. 작게 웃었을 뿐인데.. 감탄이 나오는 얼굴이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지 대부분 율의 미소 짓는 모습에 다 넋이 나가 있다.

“......?”

방금 나랑 눈이 마주친 건가?

미소를 지으며 관중석에 앉은 등반자들을 둘러보는 율과 한순간이지만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그저 평범한 우연일 것이다.

착각이라 생각하며 율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자.

여신이 없어졌다..?

마지막 말을 하고나서 어느새 사라진 여신 율.

콜로세움의 중앙에는 천사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율이 사라지자 천사들이 차례차례 웬 주머니를 쥐어 주며 탑의 2층으로 사람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탑의 2층에 보내졌다.

2층은 탑의 1층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오버 테크놀로지스러운...

세계는 물론 아니고.

1층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짤랑짤랑-

탑의 2층에 도착한 뒤 주머니를 흔들어 보니 나는 동전 부딪치는 소리에 주머니를 열자,

신기한 인장이 새겨진 황금 동전들이 몇 개 들어 있다.

탑 올라갈 때 주는 기본 자금 같은 건가 보다.

돈도 있고 이제 등반자도 되었겠다..

이제는 탑을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빠르게 탑을 올라가야 하니 탑에 대한 정보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이런 정보를 얻어내는 곳에 특화된 장소는..

“술.”

바로 술집이다.

***

“흐읍....”

“앗..!율님!!”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오자마자 휘청거리며 입에서는 피까지 각혈하는 율.

그의 비서 역할이나 마찬가지인 천사 가브리엘이 빠르게 율을 부축한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가브리엘. 걱정을 끼쳤네요.”

“역시.. 이제라도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무리 율님이라 하여도 탑을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가호를 내리는 것은..”

“가브리엘.”

율이 슬픈 얼굴을 하고서 가브리엘을 바라본다.

율의 얼굴을 보자 자신이 주제넘었다는 것을 안 가브리엘.

그런 가브리엘을 다독이며 율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한다.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저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이 탑이라는 세계를 저는 책임 질 필요가 있어요. 그것보다..”

율이 마법을 사용해 인혁의 얼굴을 만든다.

갑작스레 웬 인간의 얼굴을 만든 여신의 행동에 가브리엘이 당황한다.

“오늘 새로 등반자가 된 인간 아닙니까..? 갑자기 이 인간의 얼굴은 왜.”

“관리자들에게 이 남자를 주시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냥 평범한 인간 등반자 아닙니까? 대체 왜..”

가브리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어오자 율이 인혁의 얼굴을 둘러보며 말한다.

“글쎄요... 여신으로서의 감이랄까요? 뭔가 이 남자라면 탑을 다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또’ 그 감.. 말인가요?”

율이 감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가브리엘은 숨을 편하게 쉬며 말했다.

여신의 감..

다른 이가 보기에는 여신의 감이니까 예언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여신은, 다른 것에서는 전지전능하면서도 이 감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할 때는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여신님의 감은 언제나 틀렸지 않습니까.”

“그랬나요?”

“그랬죠.”

가브리엘의 말에 율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입을 가린 채 작게 후후 하고 웃는다.

“이번에는 맞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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