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1 250.다녀왔어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속이 울렁거리기는 했지만.
“인혁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노아.”
곧바로 나를 기다리던 노아가 부축해줬다.
주변에는 아직 정액 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카르세린과 마신이 보인다.
“그년이 인혁님에게 뭐 한 짓은 없죠?”
“없어.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마.”
노아가 계속해서 내 몸 상태가 멀쩡한지 살펴본다.
혹시나 카밀라가 내게 뭔가 해 뒀거나 하는 것이 있나하고 꼼꼼히 찾는 것 같다.
멀쩡하니까 그만해도 될 텐데.
“그것보다 이제 원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 수 있는 거야?”
“아, 네! 인혁님 덕분에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통로를 만드는 것도 나 때문인데 덕분에 라니..
나야말로 나를 배려해주는 인자한 여신님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다면 열어 줄래 노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면 빠르게 돌아가고 싶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노아가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세계와 세계를 이어 주는 통로를 만드는 마법을 사용하는 듯,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빛이 모여 노아의 앞에서 점점 문으로 변해가고..
밝게 빛나는 문이 완전히 완성된 순간.
슈우웅-
...사라진다?
“노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문이..”
“손을 한 번 보세요.”
“손?”
노아의 말대로 내 손바닥을 살펴봤다.
이게 뭐야.
손바닥에 날개? 같은 것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갑자기 웬 날개 문신이..?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노아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노아에게 묻는다.
“이게 뭐야?”
“인혁님, 이제 날개 문양이 새겨진 손바닥을 앞으로 펼쳐 보실래요?”
내 물음에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날개가 새겨진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라 하는 노아.
뭔가 싶지만 노아의 말이기에 아무 의심 없이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이제 아까 제가 만든 것처럼 머릿속으로 문을 연상해 보세요.”
문이라..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 아까 노아가 만들었던 밝게 빛나는 문을 연상한다.
노아처럼 빛나는 예쁜 문..
“우왓..!”
그러자 내 손바닥에서 노아에게서 나오던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쏟아져 나온 빛은 금세 모여들어, 내가 연상했던 밝게 빛나는 문이 되어 내 앞에 떡하니 선다.
“이건..”
“어때요? 제가 열거나 만들어두는 것보다는 인혁님이 원할 때에 만들고 없애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문을 없애고 싶을 때는 지우개로 지운다고 한 번 연상해 보세요.”
나도 마법을 쓸 줄 알기에 저 정도까지의 배려는 필요 없지만..
노아의 말대로 천천히 내 앞에 만들어졌던 문을 지운다 생각하자 빛나던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인혁님이 원하는 장소로 갈 수 있으니까 이동하기에도 편할 거예요.”
“노아...!”
“마음에 드시나요?”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마음에 들지!
나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통로를 이용하거나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내 마음대로 문을 열 수 있다니..
노아의 세심한 배려에 정말 계속해서 감동하게 된다.
“근데 이 문을 여는 거 노아의 힘 아니야? 부담 되지는 않아?”
“만들 때는 힘을 조금 사용하기는 해도, 이렇게 새겨두면 별것 아니에요. 잊으셨나요? 제가 무엇인지?”
잊을 리가 있나 노아가 여신인 것을.
한 세계를 다스리는 여신의 힘을 내가 너무 얕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세계를 이어 주는 통로를 만들어 주기만 해도 좋은데.. 아예 내 전용 어디로든 문을 만들어 주었다.
카르에몽에 이은 노아에몽..!
신기해서 문을 만들었다 없앴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문을 열었다.
덜컥-
문 안에는 무지갯빛 포탈이 있다.
정말 어디로든 문처럼 바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신비한 느낌에 이것도 마음에 든다.
“이 너머가 노아의 세계인 거지?”
“맞아요. 그 안으로 들어가면 원하는 장소에서 나올 거예요.”
“정말.. 정말 고마워 노아.”
“에헤.. 감사 인사는 이제 됐어요.”
내 계속된 감사에 쑥스러운 듯 노아가 뺨을 붉힌다.
지금 당장이라도 노아에게 달려들어 무지성 뽀뽀를 연사하며 행복하게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러면 또 돌아가서 아내들을 보는 것이 늦어지니까..
“먼저 돌아가 보세요. 카르세린과 마신은 제가 챙길게요.”
노아도 그런 내 마음을 읽고서 먼저 카르세린과 마신을 데리고 빛과 함께 사라진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나만 남은 상황.
드디어 돌아간다는 생각에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 문 안으로 결국에는 온몸이 문을 지났고.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통로를 통해서 돌아온 순간 내가 한 것은 곧바로 아내들에게 뛰어가는 것도.
드디어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감격에 잠긴 것도 아니었다.
“우에엑.....”
카밀라 때문에 머리가 핑 돌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지러움.
세계와 세계를 이동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느낄 수 없는 차원 멀미를 하게 해주었다.
무지갯빛 포탈에 걸맞은 무지갯빛 토를 계속해댔다.
“어으.. 씨발.”
그렇게 토를 했는데도 메스꺼움과 머리에 어지러움이 가시지를 않는다.
마치 술이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어디야.
내가 원하던 장소는 모두가 있는 아이리스의 저택이었는데 주변에 저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무협세계와는 다른 풀과 나무들을 볼 때 제대로 온 것은 맞는 것 같지만.. 저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건..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성?
도시 하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크고 웅장한 성 하나뿐이다.
“뭐지..”
노아가 실수한 건가 싶어 머리를 긁적이며 여기가 대체 어딘지 파악하려 하는 순간.
“.....빨리 와!!”
꼬마 여자아이라 생각되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누구 자식인지 모르겠는데 목소리 엄청 크네..
빨리 와라고 소리친 목소리와 함께 조금씩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푸하아!”
발소리가 이내 완전히 가까워지더니 수풀 속에서 한 여자아이가 뛰쳐나온다.
용...?
딱 봐도 평범한 여자아이는 아닌 날개와 뿔이 달려 있는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다.
뭔가 많이 익숙한데?
“응? 아저씨는 누구야? 이 근처는 아무나 올 수 없는데.”
“아, 아저씨는..”
저 순진해 보이는 아이한테 무어라 변명해야 할까.
‘이유가 있어서 다른 세계에 갔다가 오는 길이야!‘ 라며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체 뭐라고 말하면 수상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자, 아이의 뒷편 하늘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척이나 그리웠고 익숙한 용의 목소리가.
“엘리! 그렇게 먼저 가면 어떻게 해. 수풀 속을 넘나들지 말라고 분명 엄마가 말을 했......”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 온 검은 머리칼의 용 여자는 나를 보는 순간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외딴 곳으로 떨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
아이리스의 저택.
아니 이제는 성이 되어 버린 이곳은 하루하루가 전쟁을 벌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돌봐주고 키울 아기만 열 명이 그냥 넘어갔기 때문.
마왕, 엘프 여왕, 용, 검성, 용사 등등등.
이 세계의 주요 인물 들이 낳은 아기들로 넘쳐나서 언제나 시끄러웠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남편이자 나의 주인님인 남자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지도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그 빈자리를 메꿀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아이가 있어 모두가 버텨간다.
언젠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면서.
“엄마! 빨리 나가자!”
“그래그래. 오늘은 좀 천천히 돌아다니자 엘리?”
“응!”
‘저래 놓고 분명 말 안 듣고 뛰어다니겠지..’
다른 아기들보다 낳는 것도 빠르고 성장이 빠른 용이라서, 다른 아기들이 아직 울며 분유를 먹을 때 엘로시아의 아이인 엘리는 벌써 뛰어다니며 밖을 돌아다닌다.
덕분에 다른 아내들이 맨날 벌이는 전쟁에서는 벗어났어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아빠가 없어서 그런지 자신에게 더욱 의존하는 엘리를 혼자 내비 둘 수 없는 엘로시아는, 그날도 어김없이 엘리의 바깥 탐방을 위해서 성을 나섰다.
“나 먼저 간다! 빨리! 빨리 와!”
“정말. 수풀로 가지 말라니까!”
용이 왜 저렇게 풀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늘도 엄마의 말은 무시한 채 풀 사이를 헤집으며 다니는 엘리, 그런 엘리를 따라잡기 위해 엘리 몰래 하늘위로 오르는 엘로시아.
엘리가 수풀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곧장 엘리를 보며 잔소리를 시작했지만..
‘어....?’
지금 자신이 환각을 보거나 꿈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야 왜냐하면 사라졌던 남편이자 주인님인 인혁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깜빡이거나 뺨을 두드려 봐도 눈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은 그대로다.
“엄마 왜 그래?”
“어... 어...? 아, 아니 그게.....”
딸의 물음에도 어버버하며 대답하게 되지만 시선은 계속해서 앞에 고정되었다.
말을 더듬는 엘로시아를 보며 자신처럼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인혁이 피식 웃는다.
“왜 갑자기 울어?”
피식 웃는 그 모습을 보자 엘로시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 아아...”
결국에는 땅에 주저앉아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엘로시아.
“엄마...! 흐윽.. 울지마아...!”
남이 우는 것을 보면 따라 울어 버리는 어린아이.
그것도 우는 모습 따위 볼 수 없던 자신의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자 엘리도 함께 울기 시작했다.
“돌아오자마자 딸이랑 아내 둘 다 울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당황한 듯하면서도 머리를 긁적거리며 살짝은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엘로시아는 더욱 눈물을 쏟아 낸다.
그리고는 목을 ‘흠흠..’ 하며 가볍게 가다듬더니 나를 향해 팔을 가볍게 벌리며 말한다.
“다녀왔어 엘로시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도 자신의 얼굴이 지금 아주 못생겼다는 것도 잊고서. 저 벌려진 팔 사이로 몸을 내던진다.
인혁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간 엘로시아는, 인혁을 껴안은 채 미소 지으며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