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9 228.천마신
천마가 괴물을 잡는다 말하고 나서, 천마의 거처에 아무도 들지 못하게 하라는 명을 받들기 위해 밖으로 나온 흑란.
“흑란 대체 무슨 일이더냐. 천마님이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지?”
“백경 대장로님.”
그런 흑란에게 대장로 백경이 턱수염을 쓸며 오늘 천마의 행동에 대해 물어왔다.
“응? 말해 보아라 흑란. 천마님이 말씀하신 바가 있을 것 아닌가?”
“천마님께서 그 누구도 자신의 거처에 오지 마라 하셨습니다.”
흑란의 말에 백경은 턱수염을 계속 쓸며 천마의 거처로 들어가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허허, 천마님께 또 무슨 일이 생기신 건지.. 무림맹과의 전쟁이 코앞이었거늘. 무림맹주 남궁연이 없어졌다고 하는 지금이 적기이건만..”
흑란도 백경에 말에 크게 동의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가 움직이지 않는데 천마신교가 마음대로 움직여 무림맹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백경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천마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는가?”
“예, 그렇습니다.”
“흐음.. 알겠네. 내, 천마님의 명령대로 거처에는 들어갈 생각 말라고 나도 다른 교원들에게 전하도록 하지.”
“그래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대장로님.”
흑란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떠나는 백경을 바라보다, 자신의 부하를 불러 천마의 거처 앞을 지키게 하였다.
***
“큽.. 쿨럭..”
천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지듯 나왔다.
자신의 몸 안에 깊게 잠든 괴물을 깨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를 사용하거나 심상을 여는 것이 아닌, 주화입마에 빠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천마는.
운기조식과 함께 천마신공을 자신에게 사용해 주화입마를 강제로 일으키고 있었다.
“크아아악....!!!”
주화입마에 빠져들기 시작한 몸에서 기가 미친 듯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어떤 고수라도 버텨 내기 힘들 고통을 버텨 내며 계속 주화입마 상태를 유지해 몸을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다.
그 순간.
기가 폭주하며 빠져나오는 기들 사이에서, 너무나 어두운 색의 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차 그 기들이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윽-
모이는 어두운 색의 기는 점차 사람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사람의 형태를 띠던 것은, 검 푸른빛의 무척이나 창백해 보이는 여자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나의 존재를 눈치를 챈 것인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그릇이 될 것이지, 쓸데없이 발악하는구나..”
“본녀의 몸 안에 있던 괴물이 네놈이었나..”
“한낱 인간 주제에.. 감히 나 마신을 괴물이라 칭해?”
“마신이라.. 웃기는 군, 너 따위 괴물이 감히 마신이라 칭하는 가?”
“감히..!”
마신이 아직 불완전한 힘이지만, 저 상태의 인간 정도는 죽일 수 있다 생각해 검은 가시를 내질렀다.
날아오는 검은 가시를 보고 놀란 천마는, 곧바로 자신의 혈을 건드리며 말도 안 되는 정신력으로 기를 통제함으로서 주화입마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회피했다.
하지만단 시간에 주화입마를 벗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천마지만, 죽음 직전까지 갔던 몸 상태와 빠져나간 기를 곧바로 채울 수는 없기에 공격을 제대로 회피할 수는 없었다.
마신의 검은 가시에 당해 상처 입은 옆구리를 붙잡고서 분한 표정을 짓는 마신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네놈 같은 괴물이 신이라면, 신이라는 이름도 참 우스워지겠군. 신은 천마인 본녀다. 함부로 신을 입에 담지 말도록.”
“피조물...! 피조물 따위가아아아!!!!”
입 주변에 흐르는 피를 스윽 닦아냄과 동시에 마신을 비웃듯이 말하자, 마신의 열이 하늘 끝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불완전한 상태이지만, 힘을 회복하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저 인간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천마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마신의 공격을 천마가 맞는 일은 없었다.
마신이 분신을 사용해 인혁과 싸울 때보다도 훨씬 약해진 지금 마신은 몸이 성치 않은 천마도 이길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콰아앙- 콰앙-
“순순히 죽어라 괴물 녀석.”
“크으으윽..!”
오히려 큰 소리와 다르게 별거 없는 마신의 공격을 회피하며 자연스레 운기조식을 함으로써 퍼져 나갔던 기의 흐름을 원래대로 돌려 마신에게 역으로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자신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 생각한 마신은, 신으로써 살아오며 절대 상상도 못 했을 방안을 떠올렸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피조물 따위에게 이딴 식으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마신은 신격을 포기할 각오로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마신을 끝장 낼 생각으로 마신이 달려드는 것을 피함과 동시에.
“천마군황보(天魔君皇步)”
엄청난 기의 운용으로 천마군황보를 정확히 마신에게 가격하였다.
천마의 발에 내려찍힌 마신은 그대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꿀렁-
천마가 사용한 천마군황보에 맞음과 동시에 마신의 몸이 검게 변하며 그대로 검은 슬라임처럼 변하더니.
촤라라락-
“무슨..?!”
천마의 몸을 그대로 덮쳐 천마의 몸에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마가 놀랜 것도 한순간, 곧바로 검게 물드는 마신을 떨쳐 내려고 안간 힘을 써 보지만.
“......”
마치 기계의 전원이 꺼져 정지하듯 천마의 움직임이 아예 멈춰버렸다.
그렇게 잠시 후.
멈춰있던 천마의 몸에 검게 물들었던 자국들은 사라져 버렸고, 천마도 천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음...”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자 손가락을 까딱이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던 것은 천마..
“피조물치고 꽤 나쁘지 않은 몸이군.”
아니, 천마의 몸에 신격을 포기하고 동화한 마신이었다.
천마의 인간치고는 뛰어난 몸을 확인한 마신은, 어쩌면 신격을 되찾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하였다.
판단을 끝마친 마신이 발걸음을 옮기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
이상하게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왜 멀쩡한 다리가 안 움직이나 싶던 마신이 멈칫하는 순간.
“크윽...?!”
‘괴물 따위가 본녀의 몸을 잠식하게 내비 둘 것 같나?‘
천마가 몸을 빼앗은 마신을 밀쳐 내고서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았다.
“후우..”
‘어떻게..!’
신인 자신이 신격까지 포기하고 천마와의 동화를 택함으로써.
사라져야 했을 천마가 자신을 밀어내고 다시금 몸을 차지한 모습에 마신은 경악하였다.
“어떻게라.. 몸의 주인인 내가 몸을 다시 되찾았을 뿐인데 문제라도 있는 건가?”
천마가 비웃듯이 말하자, 마신은 자신의 존재가 인간에게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다시금 천마의 몸을 빼앗았다.
“기고만장 하기는.. 내가 방심만 하지 않아도 너 따위 피조물....”
“신인 본녀에게 피조물이라니 건방진 괴물 녀석.”
“반항하지 마라!! 피조물이면 피조물답게 이 마신에게 사용당하는 것을...!”
“본녀는 천마. 신과 같은 나는 누구에게도 사용당하지 않는다.”
“......”
“...”
서로가 금방금방 몸의 주도권을 뺏어올 수 있다 보니 한참 동안 서로가 몸을 빼앗으며 몸의 주도권을 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이중인격처럼 다른 말투와 톤으로 혼자 소리치며 떠드는 모습.
누군가 그 장면을 봤다면 그저 천마가 완전히 미쳤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천마와 마신이 몸을 두고 싸우는 일은 하루, 이틀.
어느새 일주일을 가볍게 넘길 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쉬는 틈도 없이 싸우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 정도로 독할 수 있는 것이지?
천마와 계속 다투던 마신은 천마라는 인간의 독함에 완전히 치가 떨릴 정도였다.
주화입마로 크게 상처 입었던 몸.
계속 굶으며 잠도 자지 않고 싸워대는 통에 이미 한계의 다른 몸에 신이었던 마신조차 정신력이 바닥이 나가고 있었는데.
천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만함을 유지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마신이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자살을 하여 함께 죽는다고 협박을 하여도, 천마는 꿋꿋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아 천마의 몸에 동화되기를 선택한 마신으로서는 정말로 자살을 택할 수 없기에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졌다 피조물. 몸을 차지하려 하지 않을 테니. 나와 협상하도록 하지.’
“본녀는 괴물 따위와 협상..”
‘큭.. 피조물 네 녀석도 이제 몸이 한계일 텐데?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우리 둘 다 개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그건 네 녀석이 가장 잘 알지 않나?’
“......”
마신의 말대로 천마도 현재 자신이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싸우기만 한다면 정말 개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뭐.. 라고?’
“무슨 상관이라 하였다.”
천마로서의 자존심.
자신이 모든 것의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천마에게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딴 괴물과 협상할 생각은 없었다.
“이대로 죽는다 하여도 너 따위 괴물에게 본녀의 몸을 내줄 성싶은가? 차라리 본녀는 천마로서 죽음을 택하겠다.”
‘......’
마신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알던 신들을 뛰어넘는 고집과 오만스러움, 이 두 가지로는 정말 이 인간이 신을 자칭해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국 자신이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한 마신은 천마의 몸을 차지하는 것을 포기했다.
‘좋다 피조물. 너의 몸을 탐내지 않으마. 대신 부탁이 있다.’
“부탁?”
다른 세계로 도주했어도 됐지만 굳이 이세계로 찾아온 목적인 인혁과 카르세린을 죽이는 것을 천마에게 부탁하는 마신.
한낱 인간에게 부탁하는 자신의 처지에 처량함을 느끼면서도, 그 둘만 죽일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둘을 죽임으로써 빌어먹을 여신에게 복수함과 동시에, 이 인간을 도와 신격을 다시 이뤄내는 순간 이 몸에서 빠져나오기로 마음먹은 마신은, 자신의 남은 힘을 더욱 소모해 천마의 경지를 더욱 상승시켰다.
“...이건..!”
자신에게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리는 것처럼 갑자기 경지의 상승을 느낀 천마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정말 신이 되도록 네 녀석을 도와주마. 네 녀석은 대신 내가 말한 그 두 명만 죽여주면 된다.’
지금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것이 괴물이 아닌, 정말 마신이라 말한 것처럼 신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 천마는 마신의 제안에 응하기로 하였다.
몸을 내줄 필요도 없고 자신에게 득만 남는 일이었기에.
“천마님 어찌 몸이...!”
거처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 천마를 발견한 흑란이 천마에게 다가가 걱정하듯 물었다.
“흑란. 어서 모든 교원들을 모아라”
“네..? 갑자기 무슨..”
천마는 씨익 웃으며 특유의 붉은 눈이 빛남과 동시에 말하였다.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