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5 164. 팽가희
“팽가의 장녀와 싸우는 곳? 객잔을 나가서 큰길을 따라 쭉 가면 비무장이 나온다네.”
“감사합니다.”
비무장이라면 싸우는 곳 말하는 거겠지?
객잔에서 차려준 음식을 먹어치운 후, 팽가희에 대한 얘기를 하던 두 사람한테 팽가희가 무인들과 대련을 펼치고 있는 위치를 물어봤다.
“복장을 보니 무림인 같은데. 자네도 혹시 도전할 셈인가?”
“이 사람아. 딱 봐도 약관도 안 된 젊은이 같은데 그 초절정의 천재한테 도전하겠나?”
“젊으니까 도전할만하지 젊음의 특권 아닌가!”
갑자기 나로 인해서 시끄럽게 싸우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객잔을 빠져나왔다.
초절정의 천재라..
어느 정도의 강함일지는 잘 예상되지 않지만, 일류인 홍서하가 평범했으니 그보다 강하더라도 크게 강할 것이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와아! 와아아아!!!
큰길을 따라 쭉 달려가니 사람들이 특히 모여 북적대는 곳이 있다.
저긴가?
비무장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북적대는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한가운데에 칼을 부딪치는 남녀가 있다.
검다고 하기에는 회색빛의 머리를 뒤로 땋은 여리여리한 여자와 커다란 검을 휘두르는 근육질의 남자.
저 여자가 팽가희?
보자마자 미녀라고 생각되는 외모, 초절정의 무인이 아닌 초절정의 미녀가 아닐까 생각도 된다.
싸워 이기기만 하면 저런 여자랑 결혼..? 너무 이득 아니야?
앞에 싸우고 있는 남자도 나 같은 생각을 하고 싸우는지 모든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 겉으로만 봐도 느껴진다.
둘은 몇 번 칼을 맞대더니 검을 휘두르던 남자의 중심이 어느새 무너져 땅에 고꾸라진다.
쿠웅-
“...졌습니다.”
고꾸라진 남자가 곧바로 일어서려 했지만 팽가희의 칼이 자신의 눈앞에 다가서자 곧바로 패배를 선언한다.
잔뜩 땀을 흘린 채 땅바닥에 쓰러진 남자와는 달리 팽가희는 칼을 거두고서, 햇빛이 이리 쨍쨍한데도 모피를 두른 채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중년 남성의 앞으로 향한다.
“서른한 번 째 입니다.”
저 남자가 팽가의 가주인가?
서른한 번 째 라는 자신이 쓰러트린 무인의 수를 거만하게 앉은 남자에게 보고하는 팽가희를 보고 있으니.
“좋다. 다음 도전자는 없는가?”
팽가희의 보고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무척이나 호탕하고 큰 목소리로 외치는 팽가의 가주.
“본인이 도전해보겠소.”
그 목소리를 듣고 도전할까 싶었는데 곧바로 북적이던 사람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어느 남자가 튀어 나가 팽가희에 앞에 선다.
저렇게 신청해야 하는 거야? 조금 부끄러운데..
“반갑소, 팽가희 소저. 본인은....”
자신의 대해서 거침없이 소개하던 남자의 소개는 꽤나 오랜 시간 계속되었고 소개가 끝나자마자 비무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
하북팽가(河北彭家)의 장녀 팽가희.
그녀는 딱히 남자가 싫다거나 한다든가. 결혼이란 것에 회의적이지도 않다.
그저 현 무림맹주이자 검후(劍后) 남궁연을 존경하여 그녀처럼 되고자 지금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다.
현경이라는 탈마의 경지를 이룰 때까지 그 어떤 남자의 유혹도 받아들이지 않고, 역사의 이름을 남길 경지를 이룩한 그녀의 길을 따라 걷고 싶기에 자신도 그 길을 따라 걸으려 하고 있다.
재능이 넘쳐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이례적인 약관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를 이룬 그녀는 하루 빨리 경지를 상승시키고 남궁연처럼 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
그 마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남자는 20년 동안 살아온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으며, 흥미조차 이끈 남자를 만난 적도 없다.
앞으로도 그런 남자는 만날 리 없다 생각하고서, 팽가희는 자신에게 도전해오는 무인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자신의 도를 휘둘렀다.
“크윽..! 져, 졌소이다.”
거창하게 자신을 소개하던 것과는 달리 지금까지 상대해 온 어떤 무인들 중에서도 가장 허약했다.
순식간에 나가떨어진 남자를 뒤로 한 채 곧바로 자신의 아버지한테 다가가 말한다.
“서른두 번 째 입니다.”
“음..! 다음!”
다음 상대도 곧바로 상대할 수 있게 자세를 취하지만, 순식간에 나가떨어진 남자를 보고 의욕이 좀 상실했는지 도전자가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후우.. 앞으로 18명.
앞으로 18명만 더 쓰러트리고 나면 결혼따위 생각 안 하고 마음껏 무공을 수련할 수 있게 된다.
이곳에 모인 이들을 둘러봐도 자신과 비슷한 경지거나 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도 이미 거의 다 쓰러트려 별로 없다.
남은 잔챙이들만 전부 쓰러트리고 나면 나도 이제 검후님처럼 현경의 경지를 이룰 때까지..
“제가 도전해 봐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도를 보며 제 2의 검후가 되는 상상을 하고 있던 팽가희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듯 도전자가 나타났다.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아니야..
팽가희는 검을 바라보던 시선을 자신의 앞에 온 도전자를 향해 돌렸다.
흠...
앞에 올라온 도전자는 제갈세가(諸葛世家)가 생각날 정도의 훤칠하게 생긴 자신과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는 젊은 무인이었다.
“송인혁이라고 합니다.”
이름만 밝히는 사람은 처음인 걸..
간결하게 자신의 이름만 밝힌 뒤, 자세를 잡는 남자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팽가희가 싸우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자세를 보니 검을 쓰시는 것 같은데, 왜 검을 들지 않으셨나요?”
무기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기에 권을 쓰는 무인인줄 알았는데 자세를 잡은 모습이 영락없는 칼을 쓰는 무인이다.
이상함에 팽가희가 물어보자 남자는 볼을 긁적이며 그 물음에 답한다.
“그.. 원래 검을 쓰는데 못 챙겨가지고요.”
“......”
“맨손으로도 괜찮습니다.”
..이 남자. 외모만 훤칠하지 무인으로서는 쓰레기였다.
검을 쓰는 무인이 검을 못 챙겼다고 장난치듯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자세를 쥔다.
역겨워..
앞에 남자는 팽가희가 가장 역겨워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갑게 답하는 팽가희.
자신의 무를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 것을 보면 딱 봐도 삼류 많아봐야 이류의 무인처럼 보이는 남자를 혼내줄 심상으로 검에 검기를 둘렀다.
우웅-
“오오..!”
“저 나이에 저런 검기라니!”
“검기가 아니라 검마나 아닌가요?”
“갈!!!!!”
검 주변에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푸른 검기가 보이자 약관의 나이에 저 정도의 검기를 두르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크게 반응한다.
팽가희는 검기를 보며 도전한 것을 후회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려했지만..
“......”
남자는 자신의 검에 일렁이는 검기를 보고서도 표정변화가 하나도 없었다.
이게 검기인 줄도 모르는 정말 구제불능의 쓰레기 인 건가?
혼 좀 나봐라.
남자를 완벽하게 혼내 다시는 무인이라고 칭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내줄 각오로 팽가희는 자세를 취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타다다닥-
비무가 시작함과 동시에 팽가희가 곧바로 달려가서 검을 남자에게 휘두른다.
가만히 있어...?
남자는 피할 생각도 없는지 검기가 둘러진 검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손을 검을 향해 내미는 기이한 짓까지 벌인다.
미.. 미친 거 아니야?!
검기가 둘러진 검을 향해 맨손을 내미는 남자를 보며 순간 놀랐지만, 끝까지 이상하게 나오는 남자가 괘씸해 검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질렀다.
“저, 저런!”
“꺄악!”
주변 사람들도 검기가 둘러진 검에 남자의 손이 베일 것을 예상하고 눈을 가리거나 인상을 찡그린 채 바라봤지만.
“....?!”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검기를 두른 팽가희의 검은 남자의 손을 자르는 것이 아닌 남자의 손에 붙들려있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검기를 두른 채 내지른 검을 맨손으로 붙잡는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물론이고, 팽가의 가주마저도 눈을 크게 뜨고 거만히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서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그 검을 내지른 당사자인 팽가희였다.
대, 대체 어떻게...?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받아내고도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순간 놓을 뻔한 정신을 붙잡고 남자의 손에서 검을 떼어내고 거리를 벌린다.
“다, 당신.. 정체가 뭐죠?”
검기를 두른 검을 그저 맨손으로 아무 상처 없이 편안 하게 막아낸다니.. 그건 마치..
“금강불괴..”
팽가의 가주가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남자를 바라보며 멍한 눈빛으로 그리 말했다.
팽가의 가주가 하는 말이라 그런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금강불괴라는 말을 듣고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강불괴라면.. 외공 최고의 경지 말인가..?”
“초절정의 무인의 검기를 맨손으로 받아냈으니 정말 금강불괴일지도..”
“겉보기에는 약관도 안 된 것 같은데.. 무림맹주님처럼 반로환동에다 환골탈태라도 한 것인가?”
“그런 고수가 왜 갑자기 이곳에.. 대체 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지..?”
많은 이들이 남자한테 감탄하다 결국은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저 자신의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바라보다, 다시 자세를 잡고는 팽가희를 바라봤다.
금강불괴든.. 지금은 비무를 하는 중이다.
지금 가진 궁금증은 이 비무가 끝나고 해결해도 늦지 않다.
후우.. 집중하자.
도에 퍼지고 일렁이던 검기가 아주 조금이지만 뭉쳐지듯 움직인다.
제대로된 검강은 아니지만, 자신이 낼 수 있는 전력을 부딪치기 위해 팽가희는, 아버지도 모르는 자신의 비장의 수까지 모두 끌어내기 시작했다.
***
마나를 안 두른 채 저걸 맨손으로 붙잡았더니 손이 꽤나 얼얼하다.
이 정도가 초절정인가?
얼얼한 주먹을 보고 있으니 주변에서 나보고 금강불괴가 아닌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
금강불괴라.. 왠지 무림고수가 된 것 같네.
팽가희도 앞에서 뭔가 준비하는 듯하지만, 이 비무는 아무래도 내가 가볍게 승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곧바로 팽가희를 향해 주먹을 내질러 이 비무를 끝낼 생각을 하다가 문득, 현자타임이라도 온듯 생각하기 시작했다.
팽가희를 이겨 결혼해야 한다면.. 생각해보니 안 되는데.
언젠가 떠날 세계, 이곳에서 결혼을 하면 불행해질 사람들이 너무 많다.
팽가희와 결혼해 저 초절정 미녀의 몸을 맛볼 생각만 하고 있다가 너무 안일하게 도전한 것 같다.
“하아앗!!!!”
기합을 내지르며 내게 다시 달려오는 팽가희.
이 비무에서 져야하나 이겨야 하나..
결혼은 됐고 몸만 나누는 관계가 되고 싶다 말한다면..
역시 안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