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0 설득
내 품에 안겨 얕은 숨을 쉬고 있는 여동생에게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눈물자국으로 더러워진 여동생의 얼굴을 살짝 닦아주고서 여동생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여동생이 잠들때까지 손을 잡아주었다.
여동생은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곧 새근거리며 잠에 들었다.
나는 "잘자." 라는 인사와 함께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내 방 침대에 누워 미래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
더 최선의 선택지는 없을까?
여동생에겐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여동생은 과연 받아들여줄까?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뿌리쳐낼 수 있을까?
연락을 하지 못하는 동안 여동생은 괜찮을까?
또다시 망가지진 않을까?
...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린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라리 둘 다 사랑이 식는다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제일 최악의 상황은 둘 중 한명의 마음만 변하는 것이다.
마음이 변하는 게 여동생이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여동생보단 내가 아픈 게 나으니까.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내 나름의 답을 적어보아도 이것이 답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정답이라는 게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한참동안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던 끝에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다.
**
결국 나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겨우 만들어진 가족을 다시 찢어버릴 순 없었다.
아버지와 다시 그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여동생과 떨어져 있어야 하냐는 말에
아버지는 적어도 여동생이 졸업할 때까진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셨다.
그렇다면 1년 정도인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한없이 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이걸여동생에게 이야기하는 게 제일 걱정이었다.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고민이 내 머릿속에 끝까지 따라붙었지만 머리를 흔들어 애써 털어내 버렸다.
여동생과 몰래 만날까라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렇게 넘어간다면 안 될 것 같았다.
기껏 기회를 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도 버텨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부딪힐 현실의 벽에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
각오를 마치고 다음 날 밤 여동생의 방에 찾아갔다.
여동생은 내 얼굴을 보더니 금세라도 울 것 같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내 마음이 어떤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거울로 내 표정을 보면 내 마음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가 아니였다.
여동생과 시선을 마주하고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우리 사이를 알고 계셨어."
여동생의 얼굴엔 불안함이 더 커졌다.
"혹시... 헤어지라고 하셨어..?"
여동생은 초조함과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엄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 깨물려고 했다.
나는 급하게 손을 움직여 여동생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여동생은 곧바로 다른 손을 움직여 입 안에 집어넣으려 했다.
그것 또한 다른 손으로 붙잡아 막아냈다.
두 손을 붙잡힌 여동생은 결국 입술을 깨물었다.
피 한 방울이 입가에서 흘러내린다.
보다 못한 나는 여동생의 입 안에 내 손가락을 넣었다.
"차라리 내 손을 물어."
"어..?"
여동생은 내 말에 반사적으로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하지만 아프진 않았다.
기껏해야 옅은 이 자국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불안정한데도 날 상처 입히지 못 하는 여동생의 상냥함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반대는 하셨어."
"역시 그러셨구나... 그럼 우리 도망칠까?"
"난 괜찮아 어쩌피 대학도 어떻게든 1년만 버텨서 졸업하고... 그 다음에 취직하면 되지."
"그럼 살 집은... 작아도 괜찮아 오히려 난 작은게 좋아."
"오빠랑 더 붙어 있을 수 있잖아. 오빠랑 같이 원룸에서 살아도 좋겠다."
여동생은 마치 반대할 걸 예상했다는 듯 미래에 대해 상상하며 빠르게 말을 했다.
여동생의 어깨를 잡고 여동생의 말을 멈추었다.
"진정하고 내 말 먼저 들어. 아버지가 조건부로 허락해주셨어."
"어..? 허락을 해주셨어? 조건부라고? 뭘 하면 되는데? 난 오빠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어!"
"..."
여동생은 방금 전의 불안하고 우울했던 모습을 지워버리고 밝게 웃었다.
역시 가족과 멀어지는 건 여동생도 싫겠지.
... 그러니까 이게 최선이야.
"아무 연락하지 말고 거리를 두라고 하시더라."
"... 왜?"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여동생은 밝게 웃던 모습 그대로 얼굴을 굳히고 나를 쳐다봤다.
어딘가 섬뜩하기도 한 여동생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잠시의 착각일수 있으니 시간을 좀 가지라고.."
"아니야.. 착각이 아니야. 이것보다 어떻게 더 확실할 수가 있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나오빠없으면죽을거같은걸어떡해.난오빠가없으면안돼."
"오빠가있으면좋은게아니야.오빠가없으면안되는거야."
여동생의 입에선 빠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표정 없는 얼굴로 말을 하는 여동생의 모습은 마치 미리 녹음해둔 말을 하는 인형같이 느껴졌다.
"... 그래도 그게 아버지와의 약속이야."
마지막 인내심인건지 여동생은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 얼마나 오래?"
"네가 졸업할때까지."
"안돼."
아주 천천히 했던 질문과는 정 반대로 답은 빠르게 나왔다.
여태까지와 다른 단호한 태도였다.
여동생의 흐릿한 눈 속에 광기와도 같은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 동안 보였던 광기는 눈 깜짝할 새 사라지고 여동생은 다시 방긋하고 웃음을 지었다.
"아냐.. 오빠랑 몰래 만나면 되는 거잖아! 독립한다고 했지? 내가 몰래 찾아갈게."
'이것도 나쁘진않아. 주말부부 같은거지. 후후..' 여동생은 작게 혼잣말을 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 그래선 안돼."
마치 방금까지 웃던 모습은 환상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여동생은 인상을 찌푸리고 내게 소리를 질렀다.
"왜왜왜 다 안 된다는 건데! 멀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나는 오빠랑 약속도 지키려고 ... 엄마가 울어도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여동생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아까의 광기가 다시 번뜩였다.
"오빠는 거짓말쟁이야."
여동생은 마치 선고와도 같은 말과 함께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까의 상냥함 따윈 한줌도 남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내 손을 깨물었다.
까드득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엄지손가락에선 피가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조심스럽게 혀로 그 피를 핥았다.
"그러니까 이건 벌이야."
여동생의 요염한 듯 하기도 하고 광기로 가득한 눈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마치 나를 유혹하듯 느릿하고 야릇한 혀놀림과 함께 여동생은 다시 나를 설득했다.
"응..? 오빠아... 아무도 모르게 찾아갈게... 괜찮지...?"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 우린 앞으로도 못 버틸 거야."
"아냐, 난 오빠만 있으면 다 괜찮아. 다 버틸 수 있어."
여동생은 끈질기게 나를 설득해왔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내가 괜찮지 않아."
아. 결국 내뱉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는 건 여동생의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광기의 가면이 깨지고 그 속의 연약한 여동생의 얼굴이 드러났다.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눈물이 반짝였다.
여동생은 아주 살며시 웃으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 오빠아 ... 나.. 안... 좋아해..?"
여동생은 마치 닿기만 해도 부서져 사라질 듯 한 살얼음과도 같아보였다.
여동생의 미소는 아름다웠지만 덧없었다.
"사랑하지... 하지만 너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과 섞여버려서 이게 진짜 사랑인지 모르겠어."
여동생의 미소가 깨어지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가득 찼던 눈물이 흘러넘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아 맞다. 피가 나는구나.
아까 깨물린 엄지손가락으로 여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다 피가 묻어버렸다.
한쪽에선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붉은색의 눈물이 주륵하고 흘렀다.
다시 깨끗한 손가락으로 여동생의 눈물을 닦아줬다.
여동생의 얼굴에 피와 눈물이 번진다.
... 나는 닿을 때마다 여동생을 더럽히고 망가뜨리는구나.
이미 가장 하기 힘든 말은 다 했기 때문에 다음 말은 생각보다 쉽게 튀어 나왔다.
"나, 내일 바로 나가려고."
"..."
"... 안녕."
돌아오지 않을 짧은 작별인사와 함께 여동생의 방에서 나왔다.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도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의 상처에선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눈물 대신 피가 나오는걸까.
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이렇게 조금이라도 흘러내린다면 좋을텐데.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게 최선이였어..."
몸을 작게 웅크리고서 이 말이 마치 내 죄책감이 줄어드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
조용한 새벽, 나는 짐을 들고 집을 나왔다.
겨울의 날씨는 추웠다.
장갑도 끼지 않고 나오는 바람에 손이 시려웠다.
주머니에도 손을 넣어보고 입김을 불어보아도
이런 걸로는 따뜻해질 수 없다고 하는 듯
손은 도통 따뜻해지질 않았다.
이따금 어제의 상처가 따끔거렸다.
하지만 날 괴롭히는 고통이 마치 속죄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엄지손가락을 주먹에 넣고 강하게 쥐었다.
기껏 피가 멎은 상처가 터지고 다시 피가 새어나왔다.
주먹을 다시 펴보니 손 안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인적 없는 새벽.
마치 동화 속 빵가루를 떨어뜨리며 집을 떠나던 남매들처럼
나는 피를 한 방울씩 흘리며돌아오지 못 할 집으로부터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