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3 데이트 (2)
어느덧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두웠던 조명이 켜지며 천천히 엔딩크레딧이 올라왔다.
앞에 앉아있던 사람은 먼저 일어나 출구로 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나가려고 했지만 여동생은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아.. 아까 허벅지 사이에 넣었던 손이 엄청 젖어 있었는데 괜찮은거 맞나?
나는 얌전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동생은 고개를 숙이고서 내게 작게 말을 걸었다.
"잠시 화면이라도 보고 있어봐..."
"... 그래."
나는 멍하게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엔딩크레딧을 보고 있었다.
옆에서는 무언가 휴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여동생이 먼저 일어나며 내 손을 잡아왔다.
"이제 괜찮아?"
"...응."
"끝까지 안해도 괜찮겠어?"
"괜찮으니까 조용히 해..."
여동생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다다다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무심코 여동생을 놀리긴 했지만 이번 여동생의 행동은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사람이 없었다곤 하지만 영화관에서 해버리다니...
... 만화카페에서 여동생과 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사실 야외에서 해버린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그것보단 여동생을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온전히 여동생을 좋아해서 멈출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분명 여동생을 망가뜨렸다는 죄책감이 섞여서 거절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여동생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나왔다.
영화관에서 나온 우리는 근처 수제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팝콘을 먹어서 그런지 그리 배는 고프지는 않았다.
이번엔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아 햄버거가 나오길 기다렸다.
어딘가 살짝 멍해보이는 여동생의 얼굴을 보며 나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영화보긴 봤어?"
"...응? 당연히 봤지..."
"내용이 기억나긴 해?"
여동생은 내 물음에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사실 오빠 얼굴만 잔뜩 봤어.. 영화는 다음에 봐도 괜찮으니까."
반사적으로 얼굴보다 하반신을 더 오래 본거 아니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 내 얼굴도 다음에 봐도 되는거 아니야?"
"오늘의 오빠는 오늘만 볼 수 있는거니까."
여동생의 두 눈은 아까보다 더 휘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여동생이 요망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 안쪽에서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약간의 따끔함도 함께 느껴졌다.
잠깐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금세 햄버거가 나와서 먹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찾아갔던 골목 안쪽의 맛집에 갔을 때와는 다르게 맛있게 먹는 여동생의 모습에 왠지 모를 흐뭇함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쳐다봐?"
"잘 먹는게 보기 좋아서."
"치.. 뭐래..."
여동생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오물오물거리며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볼이 튀어나오고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마치 햄스터 같아서 귀여워보였다.
한참동안 여동생이 햄버거를 먹는 걸 바라보다가 나도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햄버거를 먹고 나온 뒤에는 별 다른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걷고 돌아다녔다.
평일이라 그런가 평소보단 거리가 한산해 걷기에 좋았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특이한 가게가 보이면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며 돌아다녔다.
손을 잡고 그저 거리를 걷는 것뿐인데도 여동생은 해맑게 웃으며 좋아했다.
평범한 연인들은 이런 느낌인걸까?
여동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괜히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거리를 걷던 우리는 근처에 보이던 악세서리샵에 들어갔다.
여동생은 나를 데리고 가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는 인형마냥 이리저리 휘둘리며 여동생을 따라다닐 뿐이었다.
"오빠오빠 이거 봐봐 엄청 귀엽다..."
"어.. 귀엽네..."
그렇게 한참 가게 안을 돌아다니던 여동생은 무언가를 보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오빠 이거 봐봐! 이거 오빠 닮았어!"
여동생이 내게 내민 것은 뚱해보이는 고양이의 얼굴이 그려진 키링이었다.
... 내가 저렇게 생겼나?
"... 이게 대체 어디가 날 닮았다는거야."
"오빠도 맨날 이런 표정인데 몰랐어?"
"...진짜?"
사나운 인상이라거나 차가워보인다는 소리는 몇 번 들어봤지만 저런 미묘한 표정의 고양이라니...
뭔가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여동생이 키링을 가져온 곳을 보니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니 자그마한 포메라니안의 키링이 보였다.
"이건 그럼 널 닮은건가?"
"어... 이건 포메라니안이야? 내가 이렇게 귀엽다는 의미야?"
"...그래, 둘 다 귀엽지."
포메라니안. 귀엽게 생겼지만 성격은 조금 사나운 강아지.
너에게 딱이지 않을까?
포메라니안의 성격이 사납다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 뒤로 가게 안을 좀 더 돌아다녀봤지만 아까 키링만큼 마음에 드는 것은 더 이상찾을 수 없었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키링을 들고가 계산했다.
그 뒤에 고양이키링을 여동생에게 건네주었다.
"아... 강아지도 귀여운데..."
여동생은 아쉬운 듯 내 손에 있는 포메라니안 키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도 줄까?"
"아냐, 둘 다 내가 가지면 의미가 없잖아. 난 오빠를 가진 걸로 만족할게."
"... 말이 좀 이상한데?"
여동생의 생략이 많이 된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봐봐! 지금 얼굴이 고양이랑 똑같이 생겼다니까."
"..."
여동생은 고양이 키링을 내 얼굴 옆에 들고서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에 나는 약간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여동생의 얼굴이 다가와 내게 속삭였다.
"그리고 난 오빠만 있으면 만족한다는 말도 진짜야."
여동생의 말에 쑥쓰러워하고 있으니 여동생은 손을 잡아왔다.
"선물 고마워, 오빠...소중히 할게."
여동생은 혹시나 키링을 잃어버릴까봐 소중히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내 손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여동생이 잡아온 손에 깍지를 끼고서 여동생을 따라 갔다.
여름이 다 지나가고 해가 짧아져 이른 시간인데도 점점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지면서 그렇게 우리의 짧았던 데이트도 끝나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동생은 아쉽다는 듯 손을 꽉 쥐며 내게 어리광을 부렸다.
"아.. 더 놀고 싶은데..."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너도 바쁘잖아."
"으으...과제가 너무 많아... 싫어...흑흑..."
"...그때가 제일 바쁠때지. 힘내."
데이트 내내 활짝 웃던 여동생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아쉬움에 풀이 죽어있었다.
여동생이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힘이 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힘이 날까 고민하던 끝에 여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흠흠... 그럼.. 우리 다음 데이트..는 어디로 갈까?"
"... 데이트?"
굳이 말하자면 예전에 함께 외출했던 것도 데이트로 칠 수 있었지만 확실하게 말로 표현한 건 처음이었다.
여동생은 조금 놀란 듯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동생의 반응에 조금 머쓱해진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 데이트 맞잖아?"
"응... 데이트... 맞지."
이미 연인으로써 할건 다 해놓고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여동생은 부끄러움에 땅을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렇게 땅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갑자기 여동생은 고개를 확 들고서 나를 쳐다봤다.
"아! 나 놀이동산 가보고 싶었어!"
"어? 놀이동산은 여러번 가봤잖아?"
"남자친구랑은 안가봤단 말이야..."
"아..."
막상 나도 남자친구라는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더니 뭔가 가슴 속이 따스하고 간질간질해지는게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여동생에게 보이지 않게 했다.
하지만 귀에서도 열이 느껴지는 게 귀도 함께 빨개져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옆을 바라보던 나는 심호흡을 한번한 뒤 여동생을 바라봤다.
얼굴을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여동생을 바라보니 귀가 빨개져있었다.
뭐야. 자기가 말해놓고 더 부끄러워하고 있네.
"그래, 다음엔 놀이동산 가보자."
"응, 약속이야!"
"가면 뭐해보고 싶은데?"
"같이 머리띠도 쓰고, 맛있는거두 먹고.. .... "
여동생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건지 재잘재잘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여동생의 모습을 말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여동생은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아직 약간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행복하게 웃었다.
환하게 웃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니 불현 듯 입을 맞추고 싶었다.
나는 그만 충동적으로 여동생을 껴안아버렸다.
여동생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 앞에는 붉은 빛에 반짝이는 여동생의 입술이 보였다.
여동생과 얼굴을 마주하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혀를 섞지 않고, 그저 입술끼리 가볍게 닿고 떨어질 뿐인 입맞춤.
부드러운 입술끼리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입술 끝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한 미약한 열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여동생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서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뭐야... 오빠가 밖에서 하면 안 된다구 해놓고..."
"미안. 너무 귀여워서. 못참았어. 혹시 싫었어?"
여동생은 뒤늦게 얼굴이 아까보다 더욱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대신 한번 더 해주세요."
어느새 여동생은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여동생은 천천히 두 눈을 감고 내 입술이 다가오는 걸 기다렸다.
나는 말없이 다시 여동생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까보단 조금 길게 서로의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두 번의 입맞춤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리의 소소하지만 첫 공식 데이트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