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5 여행이 끝나고 (3)
오빠의 품 안에서 맞은 아침.
오빠의 품 안이 포근해서 그런걸까, 이번 여행동안 계속해서 늦잠을 자버렸다.
나는 한동안 오빠를 잔뜩 만끽한 뒤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욕실로 씻으려 들어가려던 중, 오빠의 같이 씻을까? 라는 유혹이 있었지만...
체크아웃까지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고 겨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준비를 마치고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부산까지 내려오던 길과는 다르게 올라갈땐 손을 잡고 올라갔다.
아침까지 푹 자서 그런지 졸리지도 않았다.
나는 말짱한 정신으로 오빠의 어깨에 기댄채로 손을 꼬물꼬물거리며 오빠를 간질였다.
잠깐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기차는 어느덧 서울역에 도착해있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부산의 약간 습한 공기와는 다른 어딘가 메마른 듯한 공기가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다는 실감을 느끼게 했다.
서울역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린 후부터 우리는 손을 잡지 않았다.
벌써부터 손을 놓아야 하는걸까..? 아쉬움이 들었다.
잡아선 안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오빠의 손을 잡고 싶어졌다.
오빠와 손을 잡지 않으니 내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2박3일 동안 너무나도 오빠에게 익숙해져버린 것 같았다.
서 있는 것, 걷는 것 모든 게 다 어색하게 느껴졌다.
항상 오빠의 손을 잡고, 오빠와 팔짱을 끼고, 오빠를 껴안고 있었는데...
이젠 나 혼자라는 게 너무나 어색해 어딘가 고장나 버린 로봇마냥 뻣뻣하게 움직이게 되었다.
오빠의 손을 다시 잡고 싶어... 하지만 오빠에게 거절당하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고, 내 손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다가 이내 포기하곤 그 자리에 축 늘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도 우리는 손을 잡지 않았다.
잡지 않은 건 손뿐인데 어째서 대화까지 끊어져버린걸까.
지하철엔 사람이 많아서 우리는 구석에서 함께 붙어서 가게 되었다.
지하철의 구석, 붐비는 사람들 틈 속에서 나는 오빠의 품 속에 들어와 있었지만 오빠의 따스함이 전해지진 않았다. 오빠는 그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보니 불현듯 혹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꿈은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래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모든게 꿈이였다면?
오빠와 여행을 갔던 것도 꿈이고
'그 년'과 있었던 일도 꿈이고
오빠와 운동을 갔던 것도 꿈이고
주말에 오빠와 외출했던 것도 꿈이고
금요일 밤, 오빠와 함께 보냈던 밤도 꿈이고
내가 오빠를 방에 불러들인 것도 꿈이고
오빠가 내 방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도 꿈이었다면?
불안함에 손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모든 게 다 꿈이었다면…
꿈에서 깨어나고나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였던 평범한 남매관계로 돌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게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어서 집에 도착했으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다시 오빠의 품 속에 안기고 싶었다.
만약 오빠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이 꿈이라면, 깨어나기 전에 다시 오빠라는 꿈 속에 빠지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빠를 껴안았다.
그리고 오빠와 진한 키스를 했다.
쯔읍...츄릅.. 쪼옥... 쪽...
혹시 모든게 꿈이었다면 깨어나지 않기를...
부디 다시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들기를...
허벅지를 꼬집을 때와는 다르게 오빠와 닿은 곳은 생생하게 감각이 느껴졌다.
오빠의 뜨거운 체온, 단단한 팔과 가슴, 부드러운 입술, 말랑한 혀, 그리고 달콤한 숨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꿈이 아니었구나.
안도감을 느끼며 오빠와 천천히 떨어졌다.
"... 배 안고파? 점심부터 먹을까? 나가서 먹을래?"
"... 아니 그냥 집에서 시켜먹을래."
2박 3일간의 여행도 짧았는데 부모님이 돌아오실때까지 남은 1박2일은 또 얼마나 짧을까.
밖으로 나가면 잠깐이라도 다시 이 꿈에서 깨어나야하니까...
그건 너무 싫었다. 단 한순간도 오빠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또 꿈만 같았던 여행의 연장선이 시작되었다.
오빠와 나는 항상 붙어다니며 집안 곳곳을 오빠와의 추억으로 덧씌웠다.
내 방, 오빠의 방, 거실, 욕실, 부엌 모든 곳에서 오빠와 함께했다.
언제 어디서든 오빠와의 일을 기억해낼 수 있게.
그렇게 1박2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부모님은 집에 도착하셨고 우리는 다시 평범한 남매를 연기해야 했다.
오빠는 가끔 멍한 눈으로 집안의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면 항상 나와 몸을 겹쳤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나와 같이 했던 추억을 떠올리는걸까?
무의식중에 소파에 앉은 내 옆에 앉으려다 움찔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았다.
오빠의 무의식에 내가 새겨진다는건 생각보다 더 나를 흥분하게 했다.
오빠에게 나의 흔적을 남기는건 언제나 짜릿한 기분을 들게 했다.
다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나만 알아차릴 수 있게…
더 많은 흔적을 새기고 싶었다...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왔다. 우린 평소처럼 함께 외출을 했다.
같이 외출을 하는건 여행을 갔을때가 떠올라 날 설레게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버스에서 내렸을때 오빠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나는 기꺼이 그 손에 응하려 했지만 결국 오빠의 손이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내 손에 닿기 직전 오빠는 다시 손을 거두었다.
오빠가 망설인다면 내가 다가갈게.
오빠의 손을 잡으려 내가 손을 뻗었지만 오빠는 내 손을 피해버렸다.
내 손은 허공을 갈랐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빠와 눈을 마주치자 오빠의 미안함으로 가득한 눈빛이 보였다.
… 날 거부하지 말아줘. 그리고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지 말아줘.
잠시 멈춰 서있던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거리를 걸었다.
가게에 도착하고 오빠는 밝은 척 이야기를 걸어왔다.
아까 손을 피한 것에 대한 미안함때문인걸까?
나도 애써 웃으며 대답을 했다.
오빠가 내 손을 피했던 장면이 잊혀지질 않았다.
계속해서 가슴이 욱신거리고 아파왔다.
나는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을 곱씹으며 지금의 고통을 잊으려했다.
망망대해에 표류한 사람이 타는 듯한 갈증에 어쩔 수 없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과거의 행복을 떠올리는 건 곧 현재의 상황과 대비되며
커다란 후유증으로 다시 돌아오겠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당장 메말라 죽어버릴 것 같은걸 어떡해...
습관처럼 아랫배를 쓰다듬어 봤지만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은 텅 비어 출렁거림은 커녕 그저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차가움, 쓸쓸함, 상실감 따위의 것들로 마음이 가득해져갔다.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오빠는 문을 열지 않고 우두커니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내 손을 잡더니 꼬옥 안아주면서 입을 맞추었다.
이제서야, 이런 곳에서야 잠깐이나마 나는 오빠와 닿을 수 있는걸까.
조금은 슬픈 감정과 함께 그래도 오빠도 날 싫어하는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정도로는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아직은 참을 수 있었다.
다음날 오빠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외출을 했다.
그 년과 있었던 일이 떠올라 많이 불안했지만 오빠를 믿기로 했다.
다행히 내가 더 불안해하지 않게 오빠는 밖에 나가서 연락을 잘 해주었다.
그래도 오빠가 늦게 온다는 말에 조금 속상하긴 했지만...
아무 연락도 없이 혼자서 집 안에서 기다렸던 그때와 비교하면...
아직은 참을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오빠는 웬일인지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왔다.
내가 많이 마시지 말라고 그랬는데…
오빠에게 잔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오빠의 눈빛을 보니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빠는 그대로 나를 껴안고 키스를 했다.
너무 진한 술냄새에 몸을 살짝 움찔해버렸지만 곧 오빠를 받아들였다.
평소와 다른 거칠게 나를 탐하는 듯한 혀의 움직임에 오빠가 나를 원한다는 만족감과 무슨 일이 있는걸까? 라는 불안함이 함께 느껴졌다.
"...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오빠는 다시 날 껴안았다. 술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뜨거운 오빠의 체온이 느껴졌다.
어딘가 위태로워보이는 오빠의 모습에 나는 오빠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음날은 같이 운동을 하러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곳까지, 우리는 평소보다 더 먼 곳 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 우리는 운동을 하지않고 곧바로 벤치에 앉아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오빠의 허벅지에 무릎베개를 받기도 하고..
오빠는 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때때로 가볍게 입을 맞추기도하고...
내게 필요했던 건 이런 작고 옅어도 달콤한 스킨십이 아니였을까?
그간 불안했던 마음의 응어리가 녹아없어지는 것 같았다.
깜깜하고 조용한, 원래라면 무서웠을 이 공간이 오빠와 함께 있으니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정신 차려보니 벌써 1시간이 지나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오빠의 온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따.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안돼..? 5분만...!"
오빠에게 뺨을 비벼가며 떼를 쓰고 있으니 오빠는 내 뺨을 꼬집어 왔다.
그리고 내 눈이 반짝일만한 이야기를 했다.
"... 우리 방학 끝나기 전에 당일치기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응! 언제가? 어디로가?"
"글쎄... 가고 싶은 곳은 있어?"
"난 오빠랑 같이면 어디든 좋아!"
"... 그래. 그럼 이제 일어날까?"
"아니... 5분만..."
하지만 여행은 여행이고 ... 지금 일어나기 싫은건 다른 문제였다.
나는 기여코 5분을 넘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