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술자리 (1)
편입생과는 점심시간에 번화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여동생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불만으로 가득한 눈빛에 조금 미안함이 느껴졌다.
여동생의 시선을 뿌치리고 나는 머리를 말리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번화가까지 나가는 건데 너무 편한 옷은 좀 그렇지...?
나는 시험기간에 애용하던 후드티를 집어넣고 옷장을 열었다.
무엇을 입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깔끔하게 셔츠와 슬렉스를 입고 방을 나섰다.
...소파에 누워있던 여동생은 이젠 수상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뒷통수가 따끔거렸지만 이번에도 애써 무시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편입생은 먼저 도착해 카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본 편입생은 색상은 흰색베이스에 꽃무늬가 있는 오프숄더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어깨끈은 가슴 위로 X자로 교차하는 홀터넥에 커다란 프릴이 달려 하늘하늘해 보였다.
거기에 평소와 다르게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단발머리.
단발인 덕에 목이 드러나 새하얀 목과 이어지는 훤히 드러난 어깨선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바지는 짧은 연청색의 반바지로 허벅지가 반쯤 드러나 새하얗고 쭉 뻗은 다리가 보였다.
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화보사진같아 보였다.
오 예쁘다...
카페에 다른 남자들도 힐끗힐끗 쳐다보며 이따금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나는 접근하기 힘들어보이는 아우라를 뚫고 편입생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빨리 왔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왔어"
"오~ 차려입은거 보니 좀 색다른데?"
"왜? 보고반했어?"
"아니 그건 아니고"
"너도 맨날 후드티만 입고 다니더니 그런 옷도 있긴 있었네?"
"시험기간엔 후드가 국룰이지.."
"그렇긴 해."
우린 잠시 카페에서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다 곧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으로는 근처에 맛있다고 하던 수제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
샌드위치가 맛있기도 했지만 깔끔한 인테리어가 예쁜 가게였다.
편입생은 샌드위치 사진 몇 장, 그리고 자신의 셀카 몇 장을 찍었다.
잘 찍혔다고 좋아하며 몸을 기울여 내게 사진을 보여줬다.
점심을 먹고 다시 근처에 디저트가 맛있다는 카페에 들렀다.
티라미수와 커피를 시켜 같이 먹으며 한참동안 이야기를 했다.
떠들기만 했는데 어느덧 시간은 2시간이 지나있었다.
우리는 장소를 코인노래방으로 옮겨 노래를 불렀다.
1시간동안 노래를 부르고 나왔더니 어느 덧 해가 지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편입생의 눈빛이 조금 이상해보였다. 조금 탁하다고 해야하나..
점심 먹을때는 그냥 편하게 노는 여사친 느낌이였는데...
저녁이 되니 뭔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무언가 찜찜한 눈빛으로 바뀌어갔다.
물어보기도 애매하고, 편입녀의 행동이 달라진 건 아니였기 때문에 내 기분탓이라 생각하며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으론 편입녀가 맛있다고 추천하던 곱창집으로 갔다.
곱창에 소주가 빠질 순 없지!
그렇게 우리는 한참동안 곱창과 소주를 먹었다.
과연 편입생이 자신있게 추천할 만큼 맛있는 곱창이었다.
안주가 맛있어서 그런건지 소주를 마시는 속도도 늘어나 옆에 소주병이 점점 쌓여갔다.
저녁을 다 먹고 일어날 때쯤엔 편입생의 얼굴을 새빨개져있었다.
가게를 나오자 편입녀는 생각보다 많이 취한 듯 살짝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던 편입생은 내 팔을 붙잡고 기대어 서있었다.
"잠깐만 팔 좀 빌리자..."
"괜찮아? 집에 가봐야하는거 아냐?"
"아니 아직 끄떡도 없거든! 2차는 가야지.."
나의 만류에도 편입생의 2차를 가고자하는 의지는 대단했다.
결국 근처에 있는 술집으로 2차를 가기로 정하고 천천히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던 편입생이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하자 나도 모르게 붙잡아주었다.
편입생은 내가 붙잡자 기다렸다는 듯 내게 기대어 왔다.
"아.. 어지럽네.."
"진짜 괜찮은거 맞아?"
"어~ 정신은 말짱하거든.."
"몸이 안 멀쩡하잖아..."
편입생은 내 만류에도 고집을 부리며 2차를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편입생과 나는 내 팔을 껴안고 매달린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세가 그렇다 보니 가슴 사이에 팔이 끼게 되었고 걸으면서 생기는 흔들림에팔에 가슴이 비벼지는 감촉이 났다.
힐끔 편입생을 쳐다보자 편입생은 신경쓰지 않는 듯 그대로 내게 매달려있었다.
위에서 바라보자 보이는 가슴골에 자지가 설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고개를 앞으로 돌렸지만 얼굴이 새빨개지는건 막을 수 없었다.
"너도 얼굴이 좀 빨간거 같은데.. 괜찮아?"
"어.. 그래? 오늘따라 술이 잘 안 받나봐..."
"그래...? 음... 나할 말 있는데... 잠깐만 숙여봐."
편입생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내게 귀를 빌려달라고 했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짙은 소주의 냄새 사이로 느껴지는 어렴풋한 향수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향긋한 냄새에 침이 꿀꺽 삼켜졌다.
편입생은 내 귀를 붙잡아 당겨 가까이에 대고 속삭였다.
"너도 힘들면.. 잠깐 쉬었다 갈래...?"
"...어?"
편입생의 귓가를 속삭이는 달콤한 말에 심장이 쿵쾅거리며 이미 빨개졌던 얼굴이 더욱 더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을 보자 피가 싸늘하게 식으며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는 내 눈 앞에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여동생도 나를 발견했는지 잠깐 얼굴이 밝아졌다가 내게 매달린 편입생을 보더니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 오빠? 조별과제 팀원 만난다며.. 옆에 그 사람은 누군데?"
"어..? 조별과제 팀원인데..?"
"조별과젠데..? 다른 팀원은?"
"다 탈주하고 둘이서 했어..."
내 대답을 들은 여동생의 인상은 조금 더 싸늘하게 변했다.
"... 그럼 술먹고 지금은 집에 가던 길이였어?"
"아니 2차가려고..."
"저쪽은 많이 취한거 같은데 그냥 집에 가는건...?"
여동생과 이야기 하던 사이에 어느새 편입생은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내 옆에 서있었다.
"아뇨, 전 아직 괜찮은데. 근데 저쪽은 누구...?"
"... 내 여동생이야."
"아~ 여동생? 여동생이랑 사이가 많이 좋은가봐?"
"어... 친하긴 하지.."
친하다라.. 마음이 좀 뜨끔했다.
여동생이라는 대답에도 편입생은 아직도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여동생과 입은 웃고 있지만 눈으로는 웃고 있지 않은 편입생...
뭐야 여기.. 무서워...
싸늘한 침묵 속에 먼저 입을 연건 여동생이였다.
"2차로 어디 가고있었는데?"
"술집.."
"... 생각해보니 오빠랑 같이 술 마셔 본 적이 없네. 오늘 같이 마셔볼래."
"아니 근데 오늘은 친구가 있는데 다음에..."
"지.금.같.이.마.셔."
"넹."
여동생의 싸늘한 눈빛에 나는 소름이 쫙 돋으며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편입생은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오빠 말대로 다음에 보는건 어떨까요?"
"아뇨 오빠의 '친구'가 어떤 분인지도 궁금해서요."
둘 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누가 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였다.
마치 한겨울에 반팔 반바지만 입고 나온 것처럼 오한이 들었다.
...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는 아가야 응애. 너무 무서워...
먼저 백기를 든 쪽은 편입생 쪽이였다.
"하.. 일단 이대로 계속 서서 이야기 하긴 좀 그렇네요.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일단 그렇게 같이 근처의 술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위치는 나와 여동생이 옆자리에 앉고 반대편엔 편입생이 앉았다.
자리에 앉아 안주와 맥주를 시켰다. 곧 맥주와 안주가 나왔지만 여전히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상대를 보고 있었을 뿐이였다.
너무나 싸늘한 분위기에 맥주마저 얼어붙은 것 같았다.
... 아 진짜 얼음맥주가 나온거구나.
나는 그저 조용히 맥주만을 홀짝이며 마셨다.
여동생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살짝 인상을 쓴 채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빠랑은 어떻게 알게 된거에요?"
"조별과제하면서 만났다고 이야기 못들었나봐? 아 동생인거 같으니 말 편하게 할게,"
"... 예 그러시던가요. 그런데조별과제는 끝난거 아니에요? 왜 주말에 만나는거에요?"
"친해지면 주말에 볼 수도 있지. 참견이 너무 심한거아니니?"
"다른 남매들은 오빠랑 사이가 안좋던데... 너는 좀 다르네?"
"남매끼리 좀 친할 수도 있죠. 남의 가정사에 왠 참견이세요?"
나는 싸늘한 분위기에 찍소리도 못하고 눈치를 보고있었다.
... 심지어 안주조차 집어먹지 못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타는지 여동생과 편입생은 계속해서 맥주를 마셨다.
여동생은 맥주 한 잔을 다 마시자 얼굴이 새빨개져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눈도 살짝 풀린 것처럼 보였다.
뭐야 얘는... 술도 이렇게 약한 애가 왜 술먹자고 한거야.
여동생은 화장실.. 이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있어났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휘청거리며 넘어지려고 하는 여동생을 붙잡아 세워주었다.
이대로는 화장실은커녕 다섯 발자국도 못가서 넘어질 것 같았다.
"... 화장실 앞까지만 데려다 주고 올게."
"하.. 진짜.. 어이가 없네... 그래. 갔다와."
편입생은 짜증이 나보였다.
편입생은 남은 맥주를 원샷해버리곤 맥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아 씨.. 이 시간이면 벌써 두 번은 했겠다...
등 뒤로 무언가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나는 일단 여동생을 부축해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자 빨리 화장실 갔다와."
여동생은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들어가려고 하더니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그러곤 뒤로 돌아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뭐지? 무슨 할말이 있는건가?
그리곤 여동생은 내 셔츠의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어깨를 깨물었다.
... 얘 진짜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