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74 - 522화 - 색다른 암컷, 인형의 방문! (4)
“여기요 라피나 양♡ 요즘 라디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특제 음료랍니다♡” “고맙, 습니다... 에닌 씨...”
자신을 에닌이라고 소개한 호텔의 여직원이, 라피나에게 끈적해 보이는 누런 색의 음료를 건네준다.
일단 차부터 한 잔 하자며, 라피나를 제법 고급스러운 카페로 데려온 에닌.
가장 인기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것인지, 지금 카페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라피나가 건네 받은 누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건네 받은 음료이지만, 라피나는 그 음료에 쉽게 입을 가져다 댈 수가 없었다.
재료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종 센서에서 위험 물질이라고 알리고 있는 이 누런 액체.
심지어 시각에 설치된 에너지 센서에서는, 이 음료에서 테세르가 검출되고 있다며 위험 반응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해 보이는 음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고 있고, 그걸 또 자신에게 건네주다니.
도대체 어떻게 인간들이 이런 물질들을 감당하고 있는 것인지, 라피나가 가진 정보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이 음료도 음료지만... 애초에 이 도시 자체가...’
생각해 보면, 단순히 음료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성문을 넘어서자 마자 밀도가 달라진, 라디아의 진한 공기.
그 공기에선 고농도의 테세르와 함께, 마약이나 다름 없는 수준으로 신경을 자극하는 물질들이 검출되고 있었다.
던전들 중에서도 일반인들이 버티지 못할 고농도의 테세르가 흘러나오는 던전. 지금 라디아의 공기는, 그런 위험한 던전의 공기보다 더 위험한 수준인데.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도시의 인간들은, 이런 농밀한 농도의 테세르 속에서 너무나도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골렘인 자신의 호흡 유닛조차 오염되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런데 살아있는 인간들이 저렇게 멀쩡하게 지낼 수 있다니.
이렇게나 강인한 종족이었냐는 의문이 떠오를 정도인 인간들의 모습에, 라피나는 사고 유닛의 혼란을 느끼며 자신의 손에 들린 누런 음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나요? 라피나 양? 혹시 뭔가 음료에 문제라도...?” “...아뇨. 잘 마시겠습니다.”
꺼림칙한 음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시지 않을 수는 없다.
기왕 이 여자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는데, 여기서 호의를 거절해 의심을 사는 것은 곤란한 일.
어차피 자신의 생체 기관들은 테세르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이 신체는 자폭을 통해 폐기할 예정이니 굳이 망설일 필요는 없다.
설령 자폭이 아닌 복귀 명령을 받게 되더라도, 각 유닛들은 교환이 가능하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터.
그렇게 생각하면서, 라피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읏...!!?”
후각 센서를 단번에 마비시키는, 몬스터의 누린내가 포함된 밤꽃 같은 냄새.
억지로 후각을 차단하고 음료를 입 안에 받아들인 순간, 구강 유닛에 포함된 미각 센서에서 비명 같은 경고가 전달된다.
마치 미각 센서가 무엇인가에 해킹 당하고 있는 듯한, 맛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이 음료.
고민하다 입 안의 음료를 억지로 삼킨 순간, 사람의 내장을 그대로 재현한 내장 유닛들 역시 비명 같은 경고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에러. 에러...! 미각 유닛 및 내장 유닛의 감도 및 기능 변화 중...!?’
언어 유닛이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상태를 기계적인 말투로 판단하며 당혹해 하는 라피나.
지금 인형의 신체 안으로 들어가버린 액체는, 마치 그녀의 신체를 해킹하는 것 마냥 각종 센서들을 교란시켰다..
본래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감각을 차단하고 기능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신체의 유닛들인데.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능이 고장이라도 난 것 마냥, 각 유닛들은 기능을 중단하지 않고 이 음료가 만들어내는 오류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이 오류를 원한다는 것처럼.
“...맛이 어때요 라피나 양? 굉장히 황홀한 맛 아닌가요?” “...너무, 자극적... 입니다...” “어머? 그런가요? 그래도 걱정 말아요♡ 금방 황홀한 맛으로 느껴지게 될 테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확신을 말하는 에닌이지만, 라피나는 거기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신체의 미각 센서에 침투해, 센서의 수치나 감각을 뒤바꿔버리고 있는 이 음료.
확실히 지금 라피나의 미각 센서는, 한 모금 만으로 이 음료에 오염 당한 것 마냥 오동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오동작에서 나온 괴악한 수치를 정리해, 이 맛에 대한 정보를 사고 유닛으로 전달하는 미각 센서.
그 미각 센서의 정보를 받은 사고 유닛이, 이 음료의 맛을 극상의 맛이라고 인식해버리고 있었다.
더욱이 내장 유닛으로 들어가버린 음료는, 내장 유닛의 영역을 넘어 그 음료에 담긴 기운을 다른 유닛들에 퍼트리고 있는 상태.
신체의 유닛들이 질척한 느낌으로 오염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라피나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잘 먹힌 건가? 표정이 없으니 알 수가 없네...” “...에닌 씨. 지금 그게 무슨...” “응? 어머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계속 마셔요 라피나 양♡ 얼른 마시고 라디아를 둘러보도록 하죠♡” “읏...”
청각 센서에 분명하게 들린, 에닌의 수상하기 그지 없는 혼잣말.
하지만 유닛들의 에러로 인해 기능이 원활하게 동작하지 않는 라피나는,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에닌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대형 크기의 누런 음료를 계속 마시면서, 마치 표면에 직접 음료를 뿌린 것 마냥 유닛들이 질척거리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는 라피나.
이 음료를 모두 마시고 나자, 라피나의 미각 센서는 라피나의 제어를 벗어나 제멋대로 이 음료의 맛에 최적화되어 버렸다.
“......끅♡”
골렘인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나타난, 작은 트림이 나온 순간.
라피나의 감각 유닛은, 신체 안쪽에 퍼진 테세르에 반응해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오동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형인 자신이 발정이라도 해버린 듯한, 처음 경험하는 묘하기 그지 없는 감각.
그 감각에, 라피나의 감정 유닛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라피나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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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에 신체의 유닛들을 오염되어버린 라피나.
그 이후로 라피나는, 뭔가 신체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으며 에닌과 함께 라디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첫 날은 호텔 주변을 간단하게 안내해 주더니, 다음날도 따라와 라피나에게 음료를 마시게 한 에닌.
어째서인지 유닛들이 복구되지가 않아 묘한 감각과 감정을 느끼고 있던 라피나는, 또다시 그 음료를 받아들이며 신체 내부의 유닛들을 침식당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정상화 시키려고 다른 곳에 쓰이는 자원을 모두 복구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좀처럼 복구되지 않는 유닛들의 기능.
그것이 자신의 수면 모드에 들어가 있는 동안 방에 채워진 말정액 향 때문이란 것을, 이미 유닛들이 침식당해버린 라피나는 알 수가 없었다.
“여기가 바로 수컷들의 거주지역 이랍니다♡ 원래는 슬럼가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을, 수컷들이 지내는 곳으로 만든 곳이죠♡” “하아... 그... 들어가 보거나 할 순, 있나요...” “응? 암컷들은 제한 없이 들어가 볼 수 있지만, 그래도 굳이 들어가려는 암컷은 없죠? 건물들은 전부 수컷들 거주용인데다가, 이런 기분 나쁜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수컷들을 가지고 놀 기회는 얼마든지 있거든요♡” “...가지고 놀, 기회...?” “후후♡ 관심 있나요? 그치만 그건 며칠 더 있다가...♡”
그렇게 수상한 에닌과 함께 음조마 마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한, 둘째날의 라디아 탐방.
어제는 간단히 호텔 주변의 가게만 안내하던 에닌이, 오늘은 이제 여기까진 괜찮다는 듯이 라피나를 멀리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음조마 마차를 타고서, 오늘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수컷 거주구역이라 적힌 낡아빠진 거리.
어째서 이런 구역을 만들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라피나는 지금 에닌의 안내를 받는 보람이 없게 그런 질문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들보다 몇 배는 빠른 판단이 가능한 사고 유닛인데. 그런 사고 유닛이 마비된 것 마냥 멍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라피나.
지금 라피나의 사고 유닛은, 진한 말정액 음료가 만든 에러들로 인해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여긴 음조마들을 대기시켜 두는 음조마 축사♡ 엄청 크죠? 내부는 수컷들이 거주하는 건물보다 더 좋답니다♡ 음조마는 라디아의 핵심 중 하나라, 그만큼 정성껏 보살피고 있거든요♡” “아... 그 몬스터가, 여기에...”
“여긴 모험가들이 모여 있는 모험가 거리랍니다♡ 모험가인 라피나 씨가 자주 들리게 될 곳이니 참고하세요♡” “...네,에...”
“이쪽은 유흥 거리에요♡ 라디아의 핵심 거리나 마찬가지인 곳인데, 각종 오락거리가 여기 모여있답니다♡” “그렇, 군요...”
“여기는 보기만 해도 알겠죠? 라디아의 영주성이에요♡ 다만 영주님은 여기에 계시진 않은데... 나중에 시민 등록을 할 땐 여기서 하면 되니까. 그것만 기억해 두세요.” “...시민, 등록...”
간신히 정보만을 기록해가며, 에닌이 이끌고 가는 루트를 머릿속에 지도처럼 기록해두는 라피나.
각 유닛들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만큼, 라피나는 도시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멍해진 표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가만히 에닌을 뒤따르기만 하던 라피나.
도중 몇 명의 여자들이 자신을 보고선 에닌에게 다가오더니, 잠시 할 말이 있다며 에닌을 데리고 멀어졌다.
‘...지금 이 틈에, 얼른 유닛들을 정상화 시켜야...’
여유 없이 에닌을 따라다니다가, 간신히 휴식을 취하며 유닛들을 점검해 나가던 라피나.
하지만 좀처럼 정상화 되지 않는 유닛들의 기능에 답답함을 느끼던 도중, 에닌이 금새 돌아와 라피나를 향해 묘한 미소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라피나 양♡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나요?” “...네...?” “그게...♡ 오늘 밤에, 이 도시의 신수님께서 라디아에 방문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파티를 여신다고 하시네요♡ 라피나 양도 초대한다고 하는데...♡” “신수, 가...” “네에♡ 어떠신가요 라피나 양? 오늘 저녁엔, 신수님의 파티에 참가해 보시는 게?”
자신이 라디아에 들어온 목적 중 하나인, 마물이라고 의심되는 그 몬스터.
그 몬스터가 자신을 초대했다는 말에, 둔감해져 있던 라피나의 사고 유닛이 억지로 사고를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함께 초대한 파티라면, 큰 위험도 없을 것이고 그 신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그렇게 너무나도 성급한 판단을 빠르게 결정한 사고 유닛이, 라피나를 스스로 짐승들의 소굴로 향하도록 결정을 내려버렸다.
“알겠, 습니다... 파티, 참여합니다...” “후후♡ 좋아요 라피나 양♡ 그럼 그렇게 전달해 둘 테니,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신수님의 파티인 만큼, 아마 준비할 게 많을 거거든요♡”
아직 저녁이 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 그런데도 뭔가 준비해야 한다는 듯이 라피나를 이끌고 가는 에닌.
그 암컷 짐승의 얼굴에는, 너무나도 즐거운 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