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6 - 세실리아의 비밀 2
“소대 복귀... 완료... 좋아. 이제 가서 쉬게나. 레오 병사장.” “네. 알겠습니다. 단장님.”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는 늦은 시각.
탐색을 마치고 돌아온 레오와 그 소대원들이, 병사단장에게 보고를 마치고 기숙사에 향한다.
누군가는 가정이, 누군가는 멀쩡한 집이 있지만, 한동안 그들에게 집에 돌아갈 여유는 없었다.
새벽에 출발해서 밤 늦게 복귀하는 탐색 업무를 하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쉬어야 할 테니까.
가족들이 영주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레오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 단장님.” “...하고 싶은 말은 알겠네만, 영주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냥 따르게나.” “...네에...”
하지만 레오에겐, 자는 곳이 바뀌는 것 정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당직근무가 아니더라도 세실리아와 만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본인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았으니까.
신경 쓰이는 것은, 갑작스럽게 변경된 탐색 업무.
라디아 병사들 중 핵심 소대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소대가, 어째서 라디아 인근만을 탐색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히어로 이터로 추정되는 마물이 나타나면서, 모험가들에겐 퀘스트를 발행하고 병사들을 총 동원해 탐색에 나서고 있는 지금의 상황.
아무리 라디아가 기사가 없고 병사들의 숫자가 적은 도시라곤 해도, 자신의 소대쯤 된다면 어지간한 모험가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소대를 별 이유도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인근 탐색에 투입하고 있으니, 무언가 이상한 업무 배정으로 느껴질 수 밖에.
‘...거기다, 세실리아는...’
거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병사 업무에서 빠진 세실리아까지.
셀레스티아 님께서 세실리아의 언행을 교정하기 위해 특별 수업을 지시하셨다고 들었다.
물론 세실리아는 신분 때문에 특수한 위치이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빠지는 일은 없었는데.
‘...아니. 오히려 잘 된 걸 수도 있어.’
재능이 있어 빠르게 성장한 세실리아이지만, 영주의 딸인 만큼 그녀가 뛰쳐나갈 때마다 늘 조마조마 했었다.
두 분의 독녀인 그녀가 혹여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수 대가 이어진 셀레스티아 님의 라디아 영주 혈통이 그대로 끊기는 상황.
핏줄로 작위가 이어지지 않는 레온하르트 왕국에서, 수 대가 넘게 이어진 셀레스티아 님의 작위는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는 지위인 만큼 그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레오 본인도 슬슬 욱하는 세실리아의 성격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지금 이 타이밍에 세실리아의 언행 교정을 시도한다는 건, 제법 괜찮은 생각으로 느껴졌다.
이제, 세실리아와 자신의 결혼도...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니니까.
‘...지금쯤 자기도 탐색에 참여하고 싶다고 발을 구르고 있으려나?’
세실리아가 툴툴대고 있을 표정이 떠오르면서, 레오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제법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기에, 어떤 의미로는 연인이라기 보단 여동생처럼 느껴지는 세실리아.
영주의 딸과 약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샌가 그 왈가닥 영애에게 자신의 마음이 향하게 되어버렸다.
그런 자신의 마음이 세실리아를 보고 싶다고 외쳐, 레오는 기숙사로 향하던 발길을 꺾어 세실리아의 방을 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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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흐윽... 시발, 개새끼이...”
자신의 방 안에서, 욱신거리는 배를 살펴보며 욕을 내뱉는다.
오늘 몬스터에게 수 없이 배를 얻어맞은 세실리아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아팠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에 그 몬스터의 낭심을 걷어 차서 얻어 맞았던 때와는 달리, 오늘 그 몬스터의 주먹은 묘하게 힘이 빠져있었으니까.
만약 이전의 그 주먹을 오늘처럼 얻어맞았더라면, 아마 배가 붉어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딱히 크게 아팠던 것도 아닌데, 참아지질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세실리아의 눈물.
그것은, 다소 복잡한 감정이 만들어 낸 눈물이었다.
“씨발... 씨발...! 내가, 왜에...!”
도대체 이 복잡한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는다.
어머님을 능욕한, 그 거북하고 역겨운 몬스터.
그 몬스터의 흉악한 근육이 드러난 순간, 어쩐지 그때부터 가슴 안쪽에서 뭔가 두근거리는 듯한 느낌이 멈추질 않았다.
딱 달라붙은 반바지 위로 자신의 주먹보다 큰 알을 과시하면서, 타이트한 반바지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망측스러운 모습.
병사들과 훈련하면서, 남자들이 상체를 드러낸 것 정도는 수도 없이 봤었지만...
자신의 허벅지 수준으로 두꺼워 보이는, 핏줄이 불거진 흉악한 팔뚝.
겉으로 보기엔 검도 튕겨낼 듯한 탄력이 느껴지는, 갈라진 흉근과 복근.
움직일 때마다 마치 팽창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각진 근육을 가진 허벅지.
2m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키. 그 커다란 몸에 잔뜩 불거진 핏줄과, 수없이 많은 잔근육.
그것들이 마치 조각처럼 어우러져, 완벽하게 느껴지는 신체 비율.
흉악하기 그지 없는 몬스터의 몸. 그것은... 여태까지 보아온 그 어느 병사의 몸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약혼자이자 용사인, 레오조차도.
에센티아의 그 어느 수컷보다도 우월해 보이는 흉악하고 근사한 근육.
그 근육에 주먹을 날린 순간, 그 근육의 탄력을 느낀 몸이 제멋대로 납득해 버렸었다.
이 수컷은, 이길 수 없다고.
“왜...! 어째서어...! 이런, 이러언...!”
그 몬스터에게 발이 붙잡힌 순간, 몸에 이상한 기대감이 차올랐었다.
그 몬스터의 두꺼운 주먹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오싹한 느낌이 전신에 흘러내렸다.
그 흉악한 주먹에 배를 얻어맞은 순간...
“씨바아알...! 뭔데에! 진짜!”
얻어맞은 배에서,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졌었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기대감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 쾌감은.
그 커다란 주먹이 자신의 배를 강타할 때마다, 뱃속에서 큥큥 거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더 강하게 때려줬으면 하는 알 수 없는 감정이 흘러나와 도저히 반격을 할 수가 없었다.
꼴 보기도 싫은 몬스터에게 그런 식으로 얻어맞았는데,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생 처음 겪은, 표현하기 힘든 불쾌하고 부끄러운 기분.
부끄럽다. 치욕스럽다. 자신도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참으려 해도 눈물이 흘러나오고 몸의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다.
마치, 자신이 그 몬스터에게... 무언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이, 너무나도 두렵고 치욕스럽다.
“씨바아아알...! 어머님은, 왜 하필 그런 몬스터랑...!”
어떡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몬스터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질 않는다.
훈련장에 놔두던 무기들은 어머님의 명령에 의해 수거되어 버렸고, 자신의 애검은 지금 병사 무기 보관고에 별도로 보관된 상태.
병사단장의 허가 없이는 무기 보관고에 들어갈 수도 없는데, 단장에겐 이미 부모님의 명령이 내려져 있으니 허가를 내주지도 않을 것이다.
밖을 나갈 수 있다면 어딘가에서 무기라도 사올 텐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외출까지 금지한 셀레스티아.
오늘따라, 세실리아는 자신의 어머님이 너무나도 밉게만 느껴졌다.
‘맨주먹으로, 그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고...? 그것도 매일...?’
세실리아의 본능이, 두려움에 휩싸여 몸을 떨게 만든다.
이대로 계속 그 몬스터에게 얻어맞는다면, 자신이 변해버릴 것이라고 경고를 외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훌쩍이며 그것을 고민하던 도중...
- 팅! 팅!
창문에 무언가가 두 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세실리아의 눈물과 떨림이 멈추었다.
몇 번이고 들었던, 레오가 부르는 신호.
그것을 들은 순간, 세실리아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우왓!? 세실리아!?” “레오 오빠아아아!!!”
그대로, 아래에서 기다리던 레오에게 달려들며 안겼다.
2층에서 떨어진 세실리아를 붙잡느라, 바닥에 쓰러져 버린 레오.
최근엔 거의 하지 않던 세실리아의 탈출 다이빙이었다.
“하아, 세실리아. 위험하게...” “레오 오빠. 레오 오빠아...”
흐느끼며 레오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세실리아.
세실리아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지 못하는 레오는, 세실리아가 수업 때문에 응석받이로 변했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나 수업이 싫었길래... 이런 세실리아는 오랜만에 보네.” “아 몰라! 존나 싫어... 그 몬스터 새끼...” “어? 혹시 신수 님의 수업이었어?” “그딴 놈, 신수가 아니라 그냥 몬스터야! 하... 짜증나아...”
당장, 그 몬스터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말해주고 싶다.
레오에게, 그 몬스터를 그냥 콱 죽여버리라고 부탁하고 싶다.
자신이 얻어맞았다고 말한다면, 레오의 성격상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그 몬스터를 베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귀족 작위를 얻은 것도 아닌 레오가 그런 일을 벌인다면, 큰 문제가 될 터.
그것을 알기에, 세실리아는 너무나도 분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레오의 몸에 얼굴을 비비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음... 신수 님이 예절 수업을...? 뭐, 그래도 일단 잘 배워봐. 이제 어른이니 욕 정도는 줄여야지.” “...하아. 그런 게 아닌데...” “하하... 자. 일단 일어나.”
쓰러진 몸을 일으키며, 자신에게 안겨 있는 세실리아를 붙잡아 세우는 레오.
투덜대며 레오에게 떨어진 세실리아에게, 레오의 허리춤에 묶인 검이 시선에 들어왔다.
순간, 세실리아는 그 검을 붙잡으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오빠! 이 검...!?” “어? 아... 지금 막 복귀했거든. 기숙사 들어가기 전에 보관해 두려고.” “오빠! 이 검, 나 하루만 빌려주면 안돼!?” “뭐? 검을...?”
병사용 무기가 아니라 개인용으로 구한 레오의 검은, 따로 병사단에서 관리하는 무기가 아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보관만 맡겨두면 되는 검.
그렇다면, 레오에게서 검을 빌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응!? 응!? 제발! 잘 쓰고 돌려줄 테니까!” “어, 어...? 사, 상관은 없는데...”
너무나도 절실해 보이는 세실리아의 표정에,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인 레오.
레오가 풀어준 검을 받으며, 세실리아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씹새끼... 진짜 뒤졌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과격한 일을 벌일 수 밖에 없다.
내일도 맨몸으로 올 테니, 잘 숨기고 있다가 그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된다.
귀족인 자신이라면, 사고를 쳐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될 테니까.
그런 세실리아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내일 탐색은 병사단의 무기를 빌려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레오는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