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1 - 100화 - 왕도 첫 방문! (2)
“허얼미... 쉽헐...”
왕도에 가까이 다가와, 그 웅장함을 알게 된 나는 입에서 감탄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별 일 없는 야숙 이후, 해가 밝아오기 시작하자 다시 출발해 두 시간 정도를 달려오니 왕도 성문 앞에 도착했다.
바울을 데려다 줄 때, 멀리서 보이는 왕도는 정말 쥐꼬리만한 일부였던 모양이다.
성벽은 라디아의 2배, 아니 3배는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높이와 두께.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거기에 벽마다 화려한 문양 같은 게 새겨져 있고, 끝이 안보일 정도로 성벽이 쭉 이어져 지평선을 넘어가는 게 보인다.
라디아도 성벽에 둘러싸인 규모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왕도 쪽은 그런 라디아가 쭈글해질만한, 정말 무시무시한 규모다.
성벽에 대고 아무리 달려도 끝이 안보이다가, 저 멀리 간신히 성문 하나가 보이고 있다니...
이 정도면 지구 쪽은 만리장성이고 뭐고 간에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길이는 몰라도 규모로는 정말 이쪽이 압도적인 것 같다.
도대체 무슨 방법을 썼길래 성벽을 이렇게 무시무시한 규모로 만들 수 있는 거지?
마법이든 건축이든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힘겨울 것 같은 규모에, 어쩐지 현기증까지 나는 것 같다.
“헤에... 왕도가 확실히 크긴 하네?” “저는 바울이 주교 임명이 될 때 와보긴 했었는데... 바울 말로는, 성벽 안쪽도 규모가 엄청난 것 같더라고요.”
성벽 안쪽의 도시까지 엄청난 건가.
라디아도 4~5층 짜리 건물들이 많았고, 큰 건 10층 가까운 건물도 몇 개 있어서 놀랄 다름이었는데...
그런 라디아보다 규모가 더 크다면, 이젠 정말 이세계라고 얕볼만한 규모가 아닌 것 같다.
그냥... 지구 쪽이랑은, 기술이냐 마법이냐 정도의 차이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거?
“햐... 왕도는 도대체 면적이 얼마나 넓은 거야?” “어... 라디아의 20배? 넓긴 엄청 넓다더라.” “히엑...”
20배... 너무 넓어서 차 타고 다녀도 되겠다 싶던 라디아의 20배!
그 정도면 정말 누가 하나 작정하고 숨어도 찾기 힘들겠는데... 뭔 생각으로 그렇게 넓게 만든 걸까.
그렇게 감탄하고 있던 사이, 어느새 가까워진 성벽 앞에 서있는 바울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바울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주변의 병사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무기를 쥐고 있는 게 보이는데... 잘 말해뒀겠지?
천천히 속도를 줄여 바울 앞에 멈춰 서자, 바울이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오셨군요. 세마씨. 생각보다 더 일찍 도착하셨군요?” “아. 왕도 성벽을 보니까, 흥분돼서 발이 빠르게 움직이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클레아와 리즈벳을 내려주자, 바울은 활짝 미소 지으며 클레아에게 다가갔다.
클레아가 다소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데도, 바울은 눈치 없이 웃으며 클레아에게 말을 걸고 있다.
바울... 너도 알스 수준으로 눈치가 없구나.
그렇게 바울이 클레아를 반기던 사이, 떨어져 있던 병사들이 다가와 내 앞에 서서 날 바라보았다.
“아, 세마 씨. 이 분들은 왕가에서 나오신 병사 분들 이십니다. 아무래도 세마 씨를 들여보내기 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보니...” “괜찮습니다. 라디아에서도 겪어 봤는데요 뭘.”
내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주변의 병사들이 술렁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정말 말했어...!” “지, 진짜 신수...” “바울 주교님의 말이 사실이었다니...” “저렇게 흉악하게 생겼는데...”
뭐 임마. 싸울래?
라디아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신선한 반응들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몸이 근질근질한 느낌이다.
그런 병사들의 수군거림에, 바울은 조금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 세마 씨에 대해선 왕도에도 알려져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일단 확인은 필요하다 보니...” “아 뭐... 괜찮습니다. 그냥 제 모습만 확인하면 되는 겁니까?” “으음. 아마 선거 기간 중간에 한번 왕가에서 초청이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히엑. 왕 보러 가야 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쫄리는데. 여기. 왕이 기분나쁘다고 ‘저놈의 목을 쳐라!’ 할 수도 있는 군주제잖아!
“아, 그리고... 혹시 싶어서 따라오신 분이 한 분 더 계신데...”
그렇게 말하며 바울이 비켜서자, 거기엔 화려한 갑옷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반갑습니다. 세마 씨. 저는 라인하르트 왕국 히어로나이트 소속 용사. 브란디 마르테 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라디아에서 모험가를 하고 있는 신수. 정 세마 입니다.” “으음... 듣긴 했지만, 정말 외모랑은 많이 다르시군요.”
뭐! 내 생긴 게 어때서!
쓰읍. 한마디 해 주고 싶은데... 이놈은 정말, 왕국 소속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만큼 확실히 세 보인다.
겉보기엔 고작 키 170 정도에 곱상하게 생긴, 라노벨 주인공 같은 느낌의 청년이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믿기진 않지만 정말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줄이야. 기운이란 게 진짜 느낄 수 있는 거였나?
같은 용사인데도 불구하고, 풋내기 같던 알스와는 전혀 다른 강자의 기운.
아마 이 녀석이랑 싸우면 바로 한방 컷 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게... 진짜배기 용사란 말이지...
“...저는 그저 세마 씨가 어떤 분이신지 확인하러 온 것 뿐입니다. 라인하르트 왕국에 이런 식으로 신수가 시민으로 들어온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 네. 들어보긴 했었습니다.” “반쯤 몬스터인 인간형태가 되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저 그게 지금 변하면 알몸이 돼버려서요.” “아하...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마르테는 그대로 내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말했다.
“흐음... 네. 뭐... 바울 주교의 보증도 있고, 크게 문제도 없으신 것 같으니... 나중에 뵐 일이 있다면, 그때 뵙겠습니다.”
브란디 마르테 라던 용사 겸 기사는, 나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인 후, 그대로 뛰어올라 성벽 위로...
...아니 미친. 저게 뭐야?
엄청 세게 뛴 것도 아니고, 바닥이 꺼진 것도 아닌데... 저 용사는, 마치 날아오르는 것처럼 건물 8~9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성벽 위로 올라가 버렸다.
하... 만약 알스가 저 정도였다면... 진짜 난 끔살당할수도 있었겠구나...
난 초보자였던 알스에게 감사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병사들과 잠깐 얘기를 나누고 나와 리즈벳, 클레아의 시민증을 보여준 후, 병사들에게 말해 성벽 병사들의 대기실을 빌려 마인 폼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리즈벳의 도움을 받아 옷과 갑옷을 걸치고 나오자, 다시 한번 병사들이 감탄 반, 두려움 반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짜식들. 놀라긴.
속으로 피식 웃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병사들도 진정이 된 건지 나에게 질문을 하거나 하며 꽤 넓은 거리를 걸어나갔다.
성벽 쪽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도시가 나온다니. 거기다 도시가 여러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는 얘길 들으니 정말 왕도의 규모가 무시무시 하다는 게 느껴졌다.
다만 그런 얘기를 나누던 도중... 병사들이 힐끔힐끔 리즈벳과 클레아를 바라보는 게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클레아는 눈을 감고 있다지만, 그걸론 감춰지지 않는 성녀다움이 느껴지는 미녀고... 리즈벳은 외모도 외모지만, 차림새가 저러니 확실히 눈이 가긴 하겠지.
하 참... 예쁜 건 알아가지고... 이 암컷들은 내 꺼야. 이 쉐끼들아. 고만 좀 쳐다봐.
나는 병사들과 얘기를 적당히 마무리 지은 후, 리즈벳은 내 옆에 붙이고 클레아도 근처에 둔 채 왕도를 향해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