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8 - 98화 - 새로운 명분을! (3)
“후우, 좀 길어지긴 하겠지만, 처음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곧 왕도에서 성녀 선거가 열리게 됩니다. 들으신 적 있으시지요?” “아, 그 클레아가 후보라던...”
바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클레아가 성녀가 되는 것에 신경 써야 할 게 많긴 했지만... 최근 가장 걱정되던 것은 두 분이 만났던 독사의 송곳니 길드였습니다.”
바울의 말로는, 어쩐지 클레아를 노린 그들이 무언가 의심스러워 교회의 정보망을 통해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영주에게도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을 했었다고 한다.
우리가 문의한 길드 관리소는 물론이고, 라디아 영주와 교회까지 독사의 송곳니 정보를 찾아서, 왕국 쪽에서도 뭔가 있나 싶어 그들의 정보를 확실히 모아 보내주었다고 한다.
일단 독사의 송곳니 길드는 왕도에 등록된 길드로, 아주 강한 고레벨 모험가들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길드에서 경영하는 회사가 몇 곳 있는 부유한 준대형급 길드.
그리고 그 곳을 조사한 후, 어제 막 영주에게 도착한 답변이... ‘최근 독사의 송곳니 길드에 사망자 없음’ 이였다고 한다.
“...그건... 혹시...” “네. 골치 아픈 상태입니다.” “엉? 왜? 그냥 그 놈들이 길드 사칭한 거 아냐?”
얼굴을 찡그리던 리즈벳과 바울에게 묻자, 바울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말씀하신 대로 사칭의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 경우엔 다른 가능성도 있게 됩니다. 위조 길드원 이란건데...”
위조 길드원이란, 관리소를 통해 등록한 길드원이 아니라 어디선가 불법적으로 길드 문장 발행기를 구해 등록한 길드원 이라고 한다.
길드 문장 발행기에 쓰이는 기술은 왕족들이 엄격히 관리하는 기술인데, 만약 발행기나 기술이 유출되면 관련자들은 최소 종신형, 심하면 가족이나 친척들까지 묶어서 사형인 중대한 범죄라고 한다. 음 과연 귀족사회야. 가차없네.
발행기는 오직 지역마다의 길드관리소 들에게만 분배되고, 그쪽은 보안에 관련된 마법이 제법 철저하게 걸려있어서 괜찮지만... 문제는 옛날에 유출되었던 발행기들의 존재.
수십 년 전에 발행기들이 유출되어 한번 난리가 났었는데, 왕국 기사단들이 나서서 대부분 수거하거나 파괴하긴 했지만 2~3대 정도가 아직 행방불명인 상태라고 한다. 기사단은 아직도 그 흔적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근데... 그게 뭐 큰 문제가 됩니까? 그냥 왕국에 등록 안된 길드원을 만들었다는 것 같은데...?” “길드 문장의 효과인 경험치 공유와 다른 부가 효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인데... 이건 설명하려면 좀 긴 얘기가 됩니다. 왕족과 귀족들이 얽힌 왕국 역사와도 연관이 있어서...”
잠시 생각하던 바울은, 책을 한 권 추천해 줄 테니 나중에 도서관에서 읽어보면 이해가 될 거라고 말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아주 만약의 일이지만 독사의 송곳니 길드가 어디서 길드 문장에 관련된 기술이나 발행기를 손에 넣었고, 그걸 이용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면 성가신 상황이 됩니다. 그럴 경우 왕도에서 활동하는 길드인 만큼, 클레아가 성녀 선거를 위해 왕도에 방문하는 건 꽤 위험한 일이 되겠죠.” “그렇다면...?”
바울은 차를 마시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뭔가를 결정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저는 당장 내일 왕도로 출발해 그 길드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클레아의 안전을 확보해 둘 예정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냥 왕도로 들어가면... 최악의 경우, 교회까지 뒤집힐만한 큰 사건이 되니까요.”
그리고 바울은 일어나, 책장 같은 곳에서 지도를 꺼내오더니 테이블 위에 펼치면서 말했다.
“라디아에서 가장 빠른 수레차를 타면 왕도까지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만... 혹시 세마씨가 저희를 태워 이동해주신다 라고 하면 얼마나 걸리실지?” “어, 글쎄요... 리즈. 이거 거리가...”
나는 리즈벳에게 물어보며 그 동안 이동해봤던 곳들과 왕도의 거리를 가늠해본 후, 대충 계산을 해 보았다.
내 말 형태는 지치지도 않고 일반적인 말들보다도 훨씬 빠른, 말 그대로 말보르기니. 거기다 스킬 덕분에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등에 탄 사람들은 편하게 탈수 있었으니, 그걸 고려하면...
“넉넉하게 잡아서 하루? 아침부터 밤까지 최대 속도로 쭉 달리면 되겠네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빠르시군요. 그렇다면 두 분, 특히 세마씨에게 의뢰를 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은 본인을 먼저 이동시켜 준다면, 왕도에서 정보를 모으고 클레아의 안전을 확보해두고 있을 테니 며칠 후 클레아를 태워 왕도로 와 달라는 의뢰를 나에게 부탁했다.
“짐들은 최소한으로 챙기고 나머지는 왕도행 상단에 의뢰할 예정입니다. 원래라면 짐들과 같이 일주일 정도 후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세마씨가 계시니, 클레아의 안전을 위해 이렇게 하고 싶군요.” “이동만 시켜드리면 되는 겁니까?” “괜찮으시다면 왕도 안에서 클레아의 호위도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왕도에 도착하고 나면 기사단 호위도 붙긴 하지만... 알지 못하는 분들을 무작정 신뢰하긴 어렵죠. 최근 클레아와 친하게 지내 주시는 두 분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는데... 어떠십니까?”
숙소나 식사는 왕도 안에서 꽤 괜찮은 곳으로 잡아주겠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금화 20닢 이라는 고액의 보수를 바울이 제시했다. 두 명이란걸 생각해도 금액이 상당하긴 한데... 왕도에 가 있을 기간이 한달 이 넘는다는 건 좀 긴 것 같기도?
기간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니, 리즈벳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뭔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이는걸 보니, 왕도에 흥미라도 있는 모양이다.
뭐... 그래. 리즈벳이 오케이라면 괜찮겠지.
내가 받아들이겠단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바울은 안심했단 것처럼 웃으면서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어떻게 움직일지 자세한 내용들을...”
그렇게 한동안 바울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내일 바울을 먼저 왕도로 이동시켜 준 후 우리는 5일 뒤 클레아와 함께 왕도에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본래 예정보다 더 일찍 도착하게 되겠지만, 만약 바울이 먼저 가있는 동안 별다른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눈이 많은 왕도가 더 안전할거라는 바울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뭐... 혹시 뭔 일 있어도 내가 클레아랑 딱 붙어 다니면서 지켜주면 될 테니까. 절대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니야. 암.
“그럼... 클레아. 괜찮을까?” “...후우. 그래요. 바울 생각대로 해요.”
어라... 조용하던 클레아가 바울한테 너무 차갑네. 말하는 건 둘째치고 표정까지 좀 질린 듯한 표정인데...
이거 바울과 날 비교시킨 것 때문인가? 아무리 그래도 효과가 너무 좋은 거 아냐?
그런 내 감상과는 달리, 바울은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내일 출발할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소 무리한 일정이지만,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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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서 나와 교회 잔디밭을 걸어가는데, 리즈벳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클레아 씨가 바울 대하는 태도가 좀 이상했지?” “그렇긴 하더라. 리즈가 제안한 게 효과가 확실하네.”
리즈벳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더니, 리즈벳은 뭔가 이상하단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으음... 내 생각보다도 너무 빠른데... 이건...”
제안을 한 리즈벳의 예상을 뛰어넘었단 말인가. 그렇다는 건...
“클레아가 내 것이 될 때가 머지 않았단 거네?” “...음...”
뭐지. 제안을 한 장본인이 이렇게 미묘하게 반응하면 좀 뻘쭘한데.
그렇게 생각하던 때, 갑자기 클레아가 이쪽을 향해 뛰어오면서 리즈벳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 리즈벳 씨! 잠시만요!”
불안한 뜀박질로 달려온 클레아는, 우리 앞에 멈춰 서서 숨을 몰아 쉬며 리즈벳을 불렀다.
“하아, 하아... 리, 리즈벳 씨... 아까 말하던 것 말인데요...” “...헤에... 바울은? 결혼까지 약속한 연인이잖아?” “...그게, 그...” “...풋. 주인님. 잠시만. 클레아 씨랑 얘기 좀 하고 올게.”
날 쳐다보며 머뭇거리는 클레아를 데리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 리즈벳.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리즈벳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아하~ 하는 표정을 짓는 게 보인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갑자기 리즈벳이 깔깔 웃는걸 보니 뭔가 좋은 소식 같은데.
곧 두 사람이 돌아와서는, 내 앞에 서서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클레아 씨. 아까 말한 대로...♡ 잘 준비해 봐♡” “아, 알겠어요. 리즈벳 씨... 그럼. 세마 씨도 다음에 뵐게요.”
인사를 건넨 클레아가 수녀 기숙사로 향하는 걸 보면서, 나는 리즈벳을 쳐다보며 물었다.
“둘이서만 무슨 얘길 한 거야?” “주인님이 만족할만한 얘기♡ 푸후훗... 아하하♡”
리즈벳은 잠시 깔깔대며 웃다가, 눈물을 닦은 후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주인님이랑 내가 사랑을 나누던 동안, 바울이 제대로 한 건 해줬네. 응. 내 예상 이상이야.” “엉? 바울이 뭘 한 거야?” “킥킥... 클레아 반응이 저런 게 이해가 갈만한 짓을 했더라.”
으음... 바울. 뭔 짓을 한 거니. 오늘 보여준 클레아를 위하는 모습이 전혀 의미가 없을 정도라니.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킥킥... 자세한 건 비밀♡ 주인님이 꼭 알고 싶다면 말하겠는데, 아직은 모르는 게 더 재미있을걸♡” “오? 그렇게 말하니 좀 기대되는데? 그럼... 한번 리즈를 믿어볼까?” “후후...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왕도에 가 있는 동안, 클레아는 주인님의 암컷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거야♡”
그렇단 말이지... 이거 벌써 맘이 들뜨네. 한 달 정도면 클레아가 내 암컷이 된다니...
리즈벳의 말에 내 주니어가 흥분하기 시작해서, 나는 중간중간 리즈벳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빠르게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