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달리스크 (112)화 (112/138)

“하읏!”

억지로 꾹꾹 억누르던 신음이 기어이 크게 튀어나왔다. 그러자 목덜미를 짓누르던 힘이 사라지고, 대신 턱이 우악스럽게 잡혔다.

그녀의 턱을 잡아 옆으로 비튼 디무스가 잡아먹을 듯 사납게 키스했다. 편치 않은 자세 때문에 입술을 부딪치는 것도 어려운데 꾸역꾸역 살을 빨고 비볐다.

그런 와중에도 하반신은 착실하게 몇 번이고 그녀를 밀어붙였다. 자꾸만 밀려서 뒤꿈치가 들어 올려지고,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려 왔지만 디무스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집요하게 키스하던 그의 입술이 뺨을 지나 귓가와 옆쪽 목덜미로 자리를 옮겼다. 지척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리브의 귓구멍을 간지럽혔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숨소리였다.

과거 디무스의 이런 반응은 번번이 그와 관계할 때마다 리브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내심 우쭐하게 했다.

이 남자는 나에게만 발정하고, 내 앞에서만 흐트러져.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못할 우월감과 기대감. 어쩌면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 그 감정들을 섣부르게 쌓아 올렸다가 무너뜨린 게 몇 번이던가.

흥분에 절은 와중에도 습관처럼 체념과 무기력이 따라붙었다. 리브는 제 감정을 떨쳐 내고자 고개를 내저었다.

그 도리질을 거부로 받아들인 걸까?

리브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성기가 빠져나가고 몸이 순식간에 돌려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자 한껏 달아오른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키스하려는 듯 리브의 허리를 당기며 고개를 수그렸다. 리브는 힘겹게 그 입술을 피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

차가운 비웃음이 디무스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여전히 두 사람의 몸은 뜨거웠고, 공기는 습했으며, 호흡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디무스의 조소 한 번으로 삽시간에 두 사람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네가 나를 거부할 입장인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리브의 거부가 어떤 위력을 가진 것 또한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부의 여부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제가 어떻게 반응하든, 후작님은 분이 풀리실 때까지 저를 안으실 수 있어요.”

조금 전, 그녀를 개처럼 엎어 놓고 박았던 것처럼.

생략된 뒷말을 그가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리브는 저를 사납게 노려보는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아서, 꿋꿋하게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여러 가지 물건이 나뒹굴고 깨져서 엉망진창이 된 바닥이 마치 제 마음 같았다.

“어떻게 반응하든?”

혼잣말 같은 디무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나 창부 취급을 받고 싶나?”

굳게 다물려 있던 리브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하기야 과분한 값을 냈는데도 이렇게 쉽게 뒤통수를 치는 걸 보면, 창부 짓이 한두 번도 아닌 모양이지.”

차라리 쾌감에 절여져 아무 생각 못 하고 휩쓸리는 게 나았다. 이렇게 말로 난도질당하는 것보다야. 리브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치미는 눈물을 참았다. 고개를 푹 숙인 리브의 머리 위로 정제되지 않은 폭언이 쏟아졌다.

“엘레오노르의 애송이가 도와줬던데, 그놈에게도 이런 식으로 굴었나? 그 새끼는 한번 대 주면 제 심장까지 바칠 머저리 같던데.”

“저는….”

“한번 해 보니 쉬운 모양이야. 그런데 창부면 손님 취향 정도는 맞춰 줄 줄 알아야지.”

디무스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아니면, 추가로 값을 치러야 이 쓸데없는 자존심을 굽혀 주려나?”

잔뜩 힘을 준 턱이 덜덜 떨렸다. 그동안 그와 수십 번 관계를 맺으면서,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차가운 취급을 받은 적은 없었다. 번번이 비참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에서조차, 관계가 버겁기는 해도 이렇게 짓밟히는 기분이 들진 않았다.

애초에 제 발로 디무스에게서 도망친 순간, 그가 지켜 주던 그 최소한의 대우조차 제 손으로 내 버린 셈이 되리라.

새까만 절망감이 발밑에 고였다. 체념과 회피 아래에 숨겨 두었던 혼자만의 감정마저 강제로 끄집어내져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잘만 떠들더니, 찔려서 할 말을 잃은 모양이야.”

날카롭게 조소한 디무스가 리브의 턱을 잡아 위로 올렸다. 서늘하게 얼어붙은 얼굴로 말을 이어 가려던 디무스는 리브와 눈이 마주친 순간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축축하게 젖어 엉망진창이었다. 디무스라면 그것이 단지 조금 전까지 격렬하게 이어진 정사의 여운만은 아니라는 걸 손쉽게 알아챘을 것이다.

리브는 제 감정을 감출 여력이 없었다. 부서진 감정의 파편이 속을 진탕 할퀴고 있어서, 그것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넌….”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디무스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져나갔다. 남자의 엄지가 축축한 뺨을 훑고 지나갔다.

“이렇게 겁이 많으면서 왜 대드는 건지 모르겠군.”

그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감당하지도 못할 거.”

그 말이 꼭 자신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것처럼 들려서, 리브는 지친 숨을 뱉었다.

제 모든 인생을 뒤흔들고 무너뜨릴 수 있는 남자.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종래에는 자처해서 그의 발밑에 무릎 꿇고 제 모든 인생을 가져다 바칠 게 뻔했다.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이겨 낼 수 없으니 도망쳤다.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멀리 도망쳐서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제 선택이 잘못되었던 걸까. 정부 자리에 만족하고, 그의 귀한 수집품으로 간택된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했던 건가.

왜 자신은 이 지경이 되어서도 그런 생활을 마다하고 싶을까.

“값을 매기지 마세요.”

떨리는 입술 사이로 희미한 음성이 나왔다. 습기를 머금고 축축하게 늘어지는, 그래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필요 없어요.”

도망칠 수도 없으면,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차피 당신은 값을 치르지 못할 테니까.”

파란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신랄한 독설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이번에는 그의 입술을 피하지 않았다.

창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정을 값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모를 것이다.

어리석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리브는 디무스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

며칠이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시시때때로 그녀를 안았다.

저택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라, 어디에서든 거리낌 없이 흘레붙었다. 응접실에서 뒹굴다가 바닥이 더러워지면 옆 방으로 옮겼고, 또 그곳이 엉망이 되면 다른 방으로 옮겼다. 디무스는 지치지도 않았다.

급기야 견디다 못한 리브가 신경질적으로 그를 밀치고 거부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기절하듯 쓰러져 자는 사람을 건드리기에 잠결에 그를 때리기까지 했으나 소용없었다. 리브에게 뺨을 맞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추삽질을 할 때는 정말 미친놈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라, 며칠이고 밤낮없이 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온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늘어져 있던 리브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사람이 기절하든 말든, 뭐라고 말하든 온종일 그녀를 끌어안은 채 물고 빨던 디무스가 드디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제 옆을 힐끗 본 리브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에 둘린 팔을 치우고 침대 아래로 내려오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가까이 놓인 의자 등받이에 기댄 리브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재회 직후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두려웠던 것 같은데, 이젠 두려움이고 뭐고 몸이 힘들어서 아무 감정이 일지 않았다. 며칠간 먹은 거라고는 물뿐이라 허기도 강하게 느껴졌다. 뭐라도 먹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쓰러질 것 같았다.

짐승처럼 들러붙으며, 그들은 딱히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런 게 필요 없는 것처럼. 말 따위는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낼 줄 아는 소리라고는 헐떡거리는 신음뿐인 것처럼.

등받이에 기대 한참이나 서 있던 리브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언제부터 이 침실에서 붙어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들처럼 이곳도 성한 물건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진즉 시침이 멈춘 듯한 탁상시계 하나가 문가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일단 걸칠만한 가운 하나를 찾아낸 그녀가 대강 몸을 가린 뒤 발을 내디뎠다.

날카로운 조각을 조심스럽게 피해 방문을 열자 고요한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리브는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난장판인 저택을 배회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 저택이 완전히 폐쇄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몇 개 없는 창문은 전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보아하니 현관문도 상태가 비슷할 성싶었다.

주방을 찾아 떠돌던 걸음이 로비에 닿았다. 저택에 들어서서 디무스와 가장 먼저 몸을 섞었던 장소였다.

두꺼운 카펫 위에는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천 조각이 사방팔방 흩뿌려져 있었다.

리브는 찢어진 옷 사이로 무언가 불룩 솟아올라 있는 걸 발견했다. 힘겹게 다가간 리브가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건 소형 권총이었다. 자크에게 벗어나기 위해 딱 한 번 사용했기에, 권총에는 아직 총알이 남아 있었다.

파리한 안색으로 선 리브가 소형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한동안 이것을 유일한 구명줄인 양 쥐고 다녔던 까닭일까? 손에 잡히는 권총의 모양새가 퍽 익숙하게 느껴졌다.

“도망가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우두커니 서 있던 리브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나신의 디무스가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리브의 손에 들린 권총으로 향했다. 리브가 무심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굳이 방법을 찾자면.”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 건지, 디무스는 스스럼없이 리브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총을 쥔 리브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언젠가, 그가 총을 쏘는 법을 알려 주면서 했던 대로.

“쏴.”

리브가 흔들리는 시선을 들어 디무스를 보았다.

“그대가 벗어날 방법은 하나야. 나를 죽이면 돼.”

그때와 달리, 총알이 장전되어 있었다. 디무스가 그걸 모르진 않는 것 같은데, 제 복부에 총구를 바짝 가져다 대는 행동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손을 물리려는 걸 막고 단단히 고정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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