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어두웠으나 기차역은 환했다.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온갖 소란이 가득한 기차역에서 사람을 찾기란 꽤 요원해 보였다. 말에서 내린 디무스가 북적이는 개찰구 쪽을 응시했다. 역무원이 큰 소리로 기차 출발이 지연되었음을 안내하고 있었다.
불평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역무원의 얼굴은 진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라고 별도리가 없을 터였다. 기차를 지연시킨 건 다름 아닌 디무스였으니까.
“이쪽입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수하가 디무스를 안내했다. 기차역 한쪽에 마련된 작은 창고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와 공기 중의 먼지가 숨을 갑갑하게 휘감았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안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제 주변을 감싼 남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는 이는 카밀이었다.
무어라고 언성을 높이던 그가 창고로 들어서는 디무스를 발견하고선 눈을 크게 떴다.
“디트리언 후작님?”
디무스가 카밀의 앞에 있는 수하를 돌아보았다.
“입은 열었나?”
“죄송합니다.”
순순히 입을 열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디무스가 냉담한 얼굴로 카밀을 돌아보았다.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디무스를 보던 카밀이 연방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식으로 후작님과 통성명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나는 너와 통성명을 할 의사가 없어.”
“이게 대체 무슨 무례입니까? 아무리 디트리언 후작님이라고 하셔도 사람을 이런 식으로….”
“카밀 엘레오노르.”
주눅 들지 않고 큰 목소리를 내던 카밀이 멈칫했다.
“어디로 빼돌렸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후작님!”
디무스의 뒤로 그의 보좌관들이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느라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디무스가 제 보좌관들에게 명령했다.
“기차를 전부 뒤져.”
“네.”
“매표 내역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로만과 찰스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홀로 남은 아돌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디무스의 곁에 섰다.
“엘레오노르 쪽으로 연락해 뒀습니다. 늦어도 내일 중으로 답이 올 겁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던 카밀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이보십시오!”
“내가 지금 총을 꺼내지 않는 건, 엘레오노르가 무서워서가 아니야.”
디무스가 장갑의 손목 부분을 팽팽하게 당겼다.
리브에게 이것을 선물받은 뒤로 디무스는 종종 이렇게 까닭 없이 장갑을 매만지고는 했는데, 당장 눈앞에 리브가 없을 때 임시방편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이 장갑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 리브의 마음 한 자락이었으므로.
“여기서 피를 보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지.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거든.”
카밀이 말문을 잃고 디무스를 보았다. 불빛이 미약해서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하기 짝이 없는 와중, 디무스는 유독 서늘하고 고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사내는 허름한 배경을 등지고 있어서 더 비현실적이었다.
“한 가지만 묻지. 대답에 따라 가문 간의 분쟁이 아주 수월하게 정리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려 주겠네.”
시종일관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던 디무스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그녀가 너에게 청했나? 아니면 네 쓸데없는 오지랖인가?”
사납게 일렁거리는 눈빛은 흡사 지옥의 입구를 지킨다는 괴물 같았다.
카밀은 그런 디무스를 보며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막연한 적개심에 물들어 있던 카밀의 얼굴에 당혹감이 섞였다.
“당신은….”
“불필요한 말은 집어치우고 묻는 거에나 대답해.”
입술을 벙긋거리던 카밀이 혼란스러움을 밀어내고 입매를 끌어 올려 웃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큭!”
디무스가 빈정거리던 카밀의 멱살을 단박에 틀어쥐었다. 어찌나 강하게 쥐었는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된 카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카밀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구설수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윽….”
“엘레오노르라는 이름이 네 사지를 성히 지켜 주진 못할 테니, 주제를 알고 굴어.”
“…그녀에게도 그랬습니까? 주제를 알라고?”
멱살이 잡히는 바람에 가까이에서 디무스의 얼굴을 보고 있던 카밀은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지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카밀의 입매가 아까보다 더 삐딱하게 비틀렸다.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훌륭한 수집가시니 가치 있는 물건을 금방 찾으실 거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