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님께서 아직 제게 흥미를 잃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떠나려면 그분의 눈을 피해야 해요.”
카밀의 말대로 야외 전시에 저런 누드화를 내건 화가는 후작의 분노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리브는 이게 단발성 사건으로 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드화를 공개적으로 내걸 정도라면 원한이든 질시든, 감정이 깊다는 뜻이었다.
그 감정이 후작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후작의 관심을 받는 리브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결국 직접적인 괴롭힘을 받는 건 리브가 될 것이다. 후작을 건드리는 것보다 리브를 건드리는 게 더 쉬울 테니까.
당장 후작이 해 줄 비호만 믿고 지내기에는 리브가 그에게 지닌 신뢰감이 전혀 없었다. 그는 이제껏 제멋대로….
거기까지 생각하던 리브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무수히 많은 핑곗거리가 떠올랐으나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라는 걸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분이 제게 흥미를 잃을 때까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그녀는 그저, 모든 게 견디기 힘들어졌을 뿐이다.
후작에게 품게 된 마음, 그로 인해 커지는 실망감….
이제는 코리다를 핑계 삼는 것으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상황이 힘들고 지쳤다. 그래서 다 놓고 싶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후작과 로이데스 선생님의 사이가….”
“세간에서 말하는 것보다 더 대단치 않은 사이예요. 제가 사라지면 당장은 괘씸함에 분노하시겠지만, 본래 변덕스러운 분이니 곧 화내는 것도 귀찮다 하시겠죠.”
“그렇군요.”
생기 없는 리브의 얼굴을 확인한 카밀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리브는 카밀의 도움으로 후작의 눈을 피해 남성복을 구하고, 몇 가지 조언을 얻어 도망갈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도망갈 날은 후작이 축복의 기도에 참석하는 날로 정했다. 그가 리브의 소식을 최대한 늦게 들어야 하는데, 카밀의 말에 의하면 축복의 기도 후 추기경과 후작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이니 당일 부에르노 곳곳마다 사람도 많이 몰려들 터였고, 그렇다면 인파에 휩쓸려 몸을 숨기기도 수월했다.
게다가 행사 때문에 교통편도 임시로 증설된다고 했다. 평소보다 다양한 기차 편과 촘촘한 배차 시간이 그것을 증명했다.
코리다의 손을 꽉 붙들고 전전긍긍하는 와중 합승 마차는 무사히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역 중앙에 우뚝 선 시계탑을 힐끗 본 리브가 매표소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
“기차역 근방에 대기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바로 연락했나?”
“네, 바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바로 수색에 돌입했을 겁니다.”
리브의 도주를 예상하고 배치해 둔 인력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되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얼굴을 거세게 때리는 바람을 맞으며, 디무스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차마 직접 마주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두려움을 헤아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