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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리스크 (26)화 (26/138)

거울도 없이 스스로 얇은 목걸이 줄의 고리를 채우려니 자꾸 헛손질하게 되었지만, 후작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 직접 도와주지는 않았다.

손끝을 한참이나 더듬어 겨우 목걸이를 채우자, 가슴골로 루비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착용하고 난 뒤에야 줄이 통상적인 목걸이들보다 좀 더 길다는 걸 깨달았다. 보석의 차가운 냉기가 맨살에 닿자 얕은 소름이 돋았다.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지.”

하얀 살결 위에 덩그러니 매달린 루비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후작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와인도 그랬거든.”

어색한 눈으로 목걸이를 내려다보던 리브가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눈에 띄게 뻣뻣해진 리브의 태도를 뻔히 보았을 텐데, 후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흡족해 보였다.

아마도 이 목걸이가 잘 보이도록 앉아야겠지?

엉거주춤 서 있던 리브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작을 정면으로 마주 본 모습이었다. 후작의 눈매가 조금 가늘게 접혔다.

딴생각에 빠진 리브를 보며 불쾌해했던 게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느른하게 긴장을 푼 후작이 시가를 물었다. 뿌연 연기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평소보다 시가 냄새가 짙다는 점을 빼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라, 리브의 관심은 금세 보석으로 옮겨졌다.

평생 이런 장신구를 착용한 적은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장신구를 착용할 일이 없었고, 졸업 후에도 이런 게 필요한 자리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가지고 있었어도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 진즉 다 팔았을 것이다.

그녀는 보석을 보는 눈이 어두웠다. 그러나 보석은 색이 맑고 선명하며 알이 클수록 비싸다는 것 정도는 귀동냥으로나마 알았다.

어쩌면 제 목에 걸린 이 작은 루비 한 알이 그녀의 몸값보다도 비쌀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목이 뻐근할 정도로 무거웠다.

리브가 가슴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가지게.”

불현듯 후작이 입을 열었다. 리브가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네?”

“가끔은 팁이 있어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나.”

“괜찮습니다.”

즉각 거절의 말이 튀어나왔다. 깊이 고민하지도 않고 사양하는 그녀의 모습에 후작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이미 걸친 물건을 누구에게 줄 수도 없으니, 정 싫으면 팔아도 되겠군.”

가져다 팔라고?

리브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보석상이든 전당포든, 이걸 가져갔다간 가게 주인은 당장 경관을 부를 것이다. 선물 받았다는 간단한 말로 설득하기에 이 보석과 리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으니까. 설사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절도범으로 몰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돈이 부족하다고 했던 건 선생 아니었나?”

후작은 리브의 거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 도달한 경위를 따져 보면 전부 돈이니, 그로서는 당연한 의문이리라.

물론 리브도 굳이 주겠다는 팁을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돈이었다면 염치 불고하고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장신구는 사정이 다르질 않나.

“지금도 충분합니다. 갑자기 생활이 너무 많이 달라지면… 이상하게 보일 테고요.”

보석은 아름다웠으나 그뿐이었다. 실질적인 쓸모가 없는 귀중품이라, 걸치고 있어도 남의 물건인 것처럼 불편하기나 했다. 차라리 적더라도 현금을 얹어 받는 편이 생활에는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텐데.

조금의 미련도 없어 보이는 리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후작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미 그렇게 보여지고 있군?”

차분하게 다물려 있던 리브의 입매가 가볍게 떨렸다.

후작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단박에 핵심을 알아채는 걸까?

“강도라도 당했나?”

이는 리브가 원치 않는 화제였다.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는 리브의 모습에 후작이 짧게 혀를 찼다. 겨우 그뿐이지만, 리브에게 압박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슬쩍 눈을 굴려 후작의 안색을 살핀 리브가 마지못해 입술을 뗐다.

“강도를 당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제공해 주시는 마차가 고급스러워서 약간의 오해를 샀습니다.”

이참에 차라리 귀갓길에 타는 마차를 흔한 것으로 바꾸면 좀 낫지 않을까.

눈을 내리깐 리브가 애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고 회로를 돌렸다. 후작도 괜히 비싼 마차를 내줄 것 없이, 적당히 값싼 마차를 사용하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 단지 보기 좋다는 이유로 이런 목걸이를 떠안기는 사람이 새삼 마차에 드는 비용을 따질 것 같진 않지만….

혹시, 오늘 그의 변덕스러운 자비심이 발휘된다면 내내 리브를 괴롭히던 고민거리가 줄어들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리브의 눈에 미약한 희망이 감돌았다.

“아.”

리브의 말에 후작이 낮게 탄성을 뱉었다. 기억을 더듬는 건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잠시 침묵하던 그가 이내 말문을 열었다.

“주거지가 빈민가였나.”

빈민가는 아니었다.

물론… 아주 좋은 동네도 아니지만.

“평범한 주택가입니다.”

“마차 하나 타는 데 눈치를 봐야 하는 동네라면, 그다지 평범한 것 같지는 않군.”

리브는 반박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후작의 눈에야 빈민가와 리브가 사는 동네가 전혀 차이 없어 보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르다고 해 봤자 괜한 자존심을 세우는 것으로 보이겠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후작이 시선을 들었다.

“에스코트라도 해 주길 바라나?”

“…뭘요?”

리브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는 그녀의 모습에 후작이 미묘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왜, 나는 에스코트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나?”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보였다. 에스코트라니. 후작의 머릿속에 그런 고상하고 예의 바른 단어가 들어 있을 줄이야.

하기야 생각해 보면 그가 예의를 모르는 것도 좀 이상할 것이다. 그는 대단하신 디무스 디트리언 후작이 아닌가.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지 예의를 모르는 건 아닐 터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왜 에스코트 이야기가 나왔지?

아, 강도를 당했느냐고 물었지. 제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저런 말을 꺼낸 것인가.

그런데 그게 왜 에스코트로 이어지지?

복잡하게 흘러가는 생각을 따라 리브의 안색도 시시각각 변했다. 후작이 저를 흥미롭게 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얼어붙어 있던 리브는, 한참 지나서야 저를 보는 시선을 깨달았다.

후작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브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조심스레 말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제 고민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테니 사양하겠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달라는 건가?”

되묻는 후작의 음성에 옅은 웃음기가 묻어났다. 리브는 더욱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저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해.”

리브의 말을 끊으며, 후작이 명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구해 봐, 선생.”

잠깐이나마 깃들었던 웃음기는 전부 착각이었던 것처럼, 냉담하고 건조한 명령이었다.

그래, 명령.

정말이지 이상한 명령이었다. 자신에게 요구하라는 명령이라니?

“제가 왜 후작님께 요구를 하죠?”

“하지 않을 까닭도 없질 않나.”

리브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후작을 바라보았다.

“굳이 연유를 찾자면….”

말끝을 늘이며 리브를 진득하게 응시하던 후작이 시가를 재떨이에 내려놓았다. 반쯤 탄 시가는 불이 잦아들고 있었다.

“궁금하거든. 전라가 되어서도 꼿꼿한 사람이 제 분수를 넘어서면 어디까지 매달릴 수 있는지.”

그의 말은 상상 이상으로 모욕적이라서, 한 번에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다.

멍한 얼굴로 몇 번이나 후작의 말을 곱씹던 리브가 뒤늦게 얼굴을 붉혔다. 일그러진 얼굴에 미처 숨기지 못한 감정이 물감처럼 번졌다.

“제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어째서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언성을 높이려는 리브의 모습에도 태연하게 혀를 찬 후작이 파란 눈동자를 빛냈다.

“오히려 눈에 들었다고 이해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나.”

리브는 화를 내려던 것도 잊고 입을 벌렸다. 후작의 사고방식은 범인인 그녀가 감히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입술을 벙긋거리던 리브는 이를 악물며 한숨을 삼켰다.

후작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사람을 나체로 앉혀 두고 몇 시간씩 감상하는 취미를 가진 남자가 아닌가. 눈에 든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모욕을 주는 버릇 하나 더 추가한다고 큰일이 날 건 아니지. 그 모욕마저 감지덕지 받을 사람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저 남자는 디무스 디트리언이다. 부에르노의 모든 사람이 눈길 한번 받고 싶어 안달 내는 남자. 저런 오만하고 무도한 말버릇을 권리처럼 휘두를 수 있는 사람.

“제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그 관심이 제게 좋은 것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리브는 완곡한 어조로 ‘네 관심이 달갑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다행히도 후작은 머리가 나쁘지 않아서, 금방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눈치였다.

“본래 인생이란 지척도 확신하지 못하는 거라네.”

심드렁하게 대꾸한 후작이 리브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선생은 내 예상보다 더 어렵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후작의 얼굴에 옅은 짜증이 서렸다.

“몸만 뻣뻣한 줄 알았는데, 속도 못지않아.”

“저는….”

“오늘은 이만하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으나, 후작은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리브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후작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먼저 방을 나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리브는 뒤늦게 자신이 후작의 심기를 너무 긁었음을 깨달았다. 걱정과 함께 후회가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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