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96화 (596/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구름소인은 구름이 비를 뿌리듯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이내 촉수를 닮은 수염이 잔뜩 달린 엘더 아케인족의 모습으로 변모해 말했다.

-제 아무리 신이라 해도 마음의 상처는 아물게 할 수 없겠으나 육체적 상처는 태어날때 그대로 돌아가리라.

그렇게 본래의 모습을 갖춘 아케인 포스원이 가볍게 손짓하자 하피뇽의 부러졌던 뿔과 날개가 마치 시간이 역행하듯 다시 재생되었다. 그녀와 싸우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였지만 아케인 포스원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망한 아나키스트 대원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과거 좀 더 확실히 카라스 의원을 처리했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터인데.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살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늘 모든 것이 나의 오판이로구나. 이번 기회에 너희들을 되살리면서 프록시마에 귀속된 윤회의 고리 또한 풀어버리리라. 그럴 경우 형제자매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주전역으로 흩어지겠지만 프라임 의회가 다시 이 행성을 노릴 일은 없겠지. 한 초월자의 어긋난 욕망때문에 일그러진 너희들의 인생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남은 생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일면식도 없는 자신의 머나먼 후손들에게 한껏 동정심을 드러낸 아케인 포스원이 합장을 한채로 푸른 숨결을 내뱉자 하피뇽때와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가슴에 맨홀만한 구멍이 뚤려 도저히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아나키스트의 리더, 천우용성을 위시해서 하나같이 삼도천을 건너기 직전인 에스파이더, 오브리더, 엘화이트등의 멤버들을 모조리 부활시킨 것이다.

심지어는 머리통만 남은 안전기획청의 청장과 다른 정부 인사들까지 온전히 부활시켜 나로 하여금 기함을 하게 만들었다. 아니 지가 무슨 예수님이야? 손짓 한번에 게임 캐릭터 부활시키듯 뒤진 놈을 살려내게? 뭐 프록시마 행성 입장에서 따지면 아케인 포스원이 예수님을 넘어서 하느님에 가까운 존재인 것은 맞지만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한 권능의 향연에 나는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였다.

도대체 이럴 거면 나는 지금까지 뭐하러 갖가지 똥꼬쇼를 해가며 카라스 의원을 막아선걸까? 그냥 아케인 포스원의 손짓 한번이면 죽은 사람을 되살리듯, 산사람도 죽일 수 있는거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에 현자타임이 오려는 찰나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아케인 포스원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대는 프록시마의 주민이 아니로군. 그렇다고 브리슬콘 전 의원처럼 프록시마를 수호하기로 계약한 가디언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대 덕분에 프록시마를 카라스 의원의 마수로부터 지킬 수 있었네. 혹시 내게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말해보게.

"당신처럼 전지전능한 싸이킥 능력을 다를 수 있게 해달라고 빌면 그렇게 해줄건가?"

-그건 곤란하군. 애초에 내게도 이처럼 싸이킥 능력을 쓸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얼마 남지 않았네. 그조차 시리우스, 프리우스 형제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지. 내게 남은 마지막을 힘을 짜내어 그대가 지닌 사이킥 능력을 강화시켜주겠네. 그대신 염치없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프록시마를 지켜달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부디 해는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케인 포스원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해와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게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애초에 내가 어쩌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카라스 의원과 대립했을뿐 기본적으로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걸 눈치챈듯한 느낌이였다. 뭐 비단 아케인 포스원이 아니더라도 브리슬콘이나 엔도미야때문에 허튼 수작을 부릴만한 상황이 아니였기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더 스프리건의 뇌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이킥 능력인 분할사고는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지능이 없는 언데드를 다수 부릴때는 나름 괜찮은 능력이였기에 업그레이드되서 나쁠건 없었다. 그렇게 내가 긍정의 뜻을 밝히자 아케인 포스원이 예의 푸른 숨결을 내뱉었는데, 그 과정에서 시시각각 몸이 줄어들어 그에게 남은 힘이 정말 얼마남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나는 신의 가호가 내 몸에 깃드는 과정에서 어딘가 익숙한 데자뷰를 느꼈다. 바로 악신 세트와 동귀어진(정확히는 같이 손잡고 나락문을 통과했을뿐이지만)한 오시리스가 헤어지기 직전 내게 언데드의 가호를 내릴때와 똑같은 원인 모를 부유감이 한동안 전신을 멤돌다 사라진 것이다.

사실 아직까지도 오시리스가 내게 내린 언데드의 가호가 무엇인지 단서조차 잡지 못한 상황이였지만, 아케인 포스원의 경우 명시적으로 내 사이킥 능력을 강화시켜주겠다고 했으니 신의 가호가 정확히 어느정도의 힘을 지녔는지에 대한 샘플이 되어주리라. 그래봤자 오시리스가 내린 언데드의 가호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였지만 말이다.

-이제 나는 다시 태초의 품으로 돌아간다. 윤회의 고리까지 풀어버렸으니 이제 다시 나의 의지가 되살아나는 일도 없겠지. 하지만 아케인 포스원의 이름으로 명하건대 프록시마는 앞으로 1000년간 그 어떤 외계의 침입도 받지않은채 번영을 이루리라. 이것이 나의 형제자매이자 아들딸들을 위한 마지막 축보오오옥...

파사사사사사삭!

나에게 사이킥 능력 강화의 가호를 내리는걸로 모자라서 행성 전체에 광역 축복을 내리려 했던 아케인 포스원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오래된 과자처럼 바스라져버렸다. 보통의 인간이였다면 프록시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알지 못한채 아케인 포스원이 사망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마신의 세번째 눈, 요슈아와 진'사령안을 지닌 나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프록시마를 감싸고 있던 윤회의 고리가 사라지고 또 다른 고리가 이중삼중으로 생겨나는 모습을 말이다. 앞으로 그 고리들이 프록시마를 외계의 침입이나 운석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할 결계가 되어주겠지. 윤회의 고리도 사라졌으니 카라스 의원이 사용했던 윤회술법으로 프록시마에 침입하는 것도 불가능. 프록시마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 셈이였다.

나는 행성 단위로 펼쳐지는 광역술법 아니 광역가호를 세눈으로 목격하곤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편 내가 저렇게 지구를 지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럴 수 있는 능력의 유무를 떠나서 고향별에 대한 애정의 유무때문에 애매한 문제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구라는 행성에 조금의 애정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카라스 의원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아케인 포스원의 의지도 최후를 맞이했으니 모든 일은 일단락 된듯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내가 안심하려는 찰나 마치 B급 공포영화의 쿠키영상을 연상캐하듯 어떤 괴한이 내게 기습을 해왔다. 그 괴한이란 다름 아닌 부러졌던 뿔과 날개를 온전히 회복한 하피뇽이였다.

"이 개자식, 네놈때문에 카라스님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잖아!!!"

"주인 잃은 멍멍이가 잘도 짓는군. 안그래도 그동안 네 주인놈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잘 걸렸다, 이 썅년아!"

촤르르르르르륵!

허나 이제와서 하피뇽따위에게 판이 뒤집힐만큼 내가 녹록한 사람은 아니였다. 영력으로 만들어진 쇠사슬을 줄기차게 내뿜은 나는 일수에 그녀를 포박해 본래 본체용인 관짝에 봉인해 버렸다. 일단 이렇게 봉인을 해둔 다음 나중에 시간이 생겼을때 빡시게 조교를 해서 내 좆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발정난 암캐로 만들 생각이였다.

물론 선우매향일때부터 워낙 성격이 드센년이란게 밝혀져서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너무나도 손쉽게 하피뇽을 제압하자 나무줄기를 전개하려다 뻘쭘하게 다시 거둬들인 브리슬콘이 말했다.

"이걸로 전부 끝났군요. 한때는 프록시마가 망해버리는건 아닌가 싶었지만 결국 아크리퍼 그대의 도움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두번의 항성간 이동과 한번의 태양일광포 사용으로 제 생명에너지는 거의 바닥난 상태. 프록시마 사태의 뒷수습까지 생각하면 한동안은 이곳에 머물러야만 할것 같습니다만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뭐 관광하는 셈치고 한동안은 이 도시, 저 도시 돌아다니면서 시간이나 때우지 뭐."

"하지만..."

"설마 아케인 포스원이 말했던 일을 걱정하는거라면 100% 기우라고 말해주고 싶군. 설마하니 목숨걸고 카라스 의원과 싸워 프록시마를 지켜낸 내가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봐? 끽해봐야 반반한 계집애를 헌팅해서 잠자리나 갖는 정도겠지. 세계를 구한 영웅에게 이 정도 일탈쯤은 괜찮잖아?"

"좋습니다. 마음같아선 이곳 그린 아일랜드의 심처에 머물게하고 싶지만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제 부름이 있을때까지 프록시마를 자유롭게 여행해주세요. 다만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켰다간 바로 엔도미야에게 민원을 넣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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