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82화 (582/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내가 아나키스트 멤버의 얼굴 전부를 아는건 아니였지만 지금 이 순간 알파벳 26자(리더를 제외하고)에 해당하는 26명의 인원이 모두 모여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냈다. 그러나 바깥 세계에서나 S급 탄생석 능력자네, 전설적인 테러리스트네하는 그들이지 여기서는 좆밥 취급을 받아도 무방했기에 나는 그닥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짜피 이 싸움의 향방은 과연 엔도미야가 언제, 누구를 지원군으로 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 미친년은 왜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2.0 프로젝트까지 진행해놓고서 이렇게 감감무소식인거야. 설마 지구때처럼 프록시마가 멸망해도 상관없다는 마인드인건 아니겠지? 애초에 프라임 의회라는 상식밖의 힘 그러니까 COT(Collection Of Things)를 지닌 강적이 있으면 미리 말해줘야 대책을 세우던가 말던가 하지 진짜 복장이 터져서 원.

"내가 분명 VIP 의뢰인을 데리고 안전한 곳에 피해있으라고 지시했을텐데? 좀비걸Z는 둘째치고 너희들마저 내 명령에 불복할 생각이냐?"

"평소라면 무조건 따랐겠지만 바깥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말이야."

"바깥 상황이 여의치 않다니 그게 무슨소리야? 우리가 안전기획청의 추적을 받는건 늘상 있던 일 아니였던가?"

"역시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것 같군. 리더 우리 아나키스트의 지상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새삼스럽게 뭘 그런걸 묻는지 모르겠군. 당연히 아카니스트의 지상과제는 조직명이 말하듯 무정부 상태 즉 통합정부의 붕괴다."

"그래,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통합정부의 몰락을 위해 일반 시민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아가며 투쟁을 이어온 우리들이지만 지금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었졌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지상과제였던 통합정부의 붕괴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시간전에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말도안되는..."

"물론 바로 수긍할 수 없는 사실이란건 안다. 처음 소식을 듣곤 우리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건 실제상황이야. 우리의 숙적이라고 생각했었던 안기부청장, 선우매향이 각종 언론사를 통해 인간통합실험에 관한 진실을 공표함과 동시에 계엄령을 선포. 이 실험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되는 청장들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모조리 감옥에 잡아넣었어. 그리고 평소 통합정부에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던 시민단체를 영입해 임시내각을 설립했지. 여기서 진짜 재밌는게 뭔지 알아? 선우매향이 우리가 언론사뿐만 아니라 인터넷같은 각종 루트를 통해 뿌리려했던 바로 그 동영상을 증거로 사용했다는거야. 하하하! 철저한 검열때문에 한번도 일반시민들에게 한번도 노출된적 없는 동영상이 지상파 채널에 떡하니 방영될때의 기분이란 정말이지..."

그린 아일랜드로 오기전 한적한 시골마을의 교회에서 만났던 오브리더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

"이런 내정신 좀 봐. 티호크의 잘린 팔을 바로 치료해줬어야 했는데. 아무튼 우리가 리더의 명령까지 어겨가면서 그린 아일랜드의 심처로 찾아온 이유는 간단해. 진실을 알고싶어서. 한평생을 통합정부가 나쁜놈이고 통합정부만 무너지면 이 세상 모든 잘못된 일이 바로잡힐줄 알았던 우리들이야. 하지만 막상 통합정부가 무너지니 별로 다를게 없더군. 결국 또 다른 인간이 우리 머리위로 올라설뿐이야. 과연 리더 네가 말했던 녹색의 왕을 옹립하면 뭔가 달라질까?"

"당연히 달라진다. 통합정부건 임시내각이건 결국 어리석은 인간이 주축이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 하지만 브리슬콘님께선 태생이 성스러운 고대의 나무셨으니 이 프록시마를 지혜롭게 이끌어주실거다. 수명이 거의 수천, 수만년에 가까우니 일반적인 왕정에서 흔히 생기는 계승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게 진실을 알고싶다고 했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직 모든걸 아는건 아니야. 하지만 저기 있는 카라스 의원이란 자가 프록시마에 진정한 해악이 될 인물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지. 본래 너희들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지만 기왕 온김에 힘을 보태..."

"킄큭큭큭큭큭큭. 아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데 웃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프록시마 행성의 주민들인 당신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몰라서 말이죠. 제가 프록시마에 진정한 해악이 될 인물이라고요? 수십년전에 제가 하이퍼 아바타에 탑승한채로 프록시마를 침입한건 사실입니다만 애초에 제 목적은 브리슬콘양이 훔쳐간 COT를 회수하는거였지 이런 변두리 행성이 어찌되건 제 알바가 아니였습니다. 물론 누구나 사이킥 능력을 타고나는 이 행성은 COT, 사이킥필드의 라이브러리를 채우기에 최적화된 장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애초에 제가 쓸 수 도 없는것을요."

"리더 더 이상 카라스 의원의 얘기를 들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지원군은 아니지만 아나키스트 동료분들이 와주셨으니 함께 그를 물리쳐야만 합니다."

"이런이런 진실이 드러나려 하니 초조해진 모양이로군요, 브리슬콘 전 의원. 하지만 이대로 사악한 흑막취급을 받는건 내키지 않으니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마침 제 파랑왕관앵무새가 귀가 좀 밝거든요."

카라스 의원이 이번엔 새장 환영을 오히려 축소시키더니 그 안에서 진짜 푸른색 왕관모양의 머리깃을 한 앵무새를 불러냈다. 그 앵무새는 지금까지 보았던 삼두조, 피닉스, 가루다에 비하면 시원찮은 생김새였으나 얼굴 표정만은 무슨 일국의 황제라도 되는듯 고고해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카라스 네 이노오오오옴! 아무때나 나를 불러내지 말라고 했을텐데!!"

"후후후. 미안합니다, 앵무황제님. 하지만 제가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서 말이죠.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앵무황제님의 능력으로 명판결을 내려주시면 안될까요?"

"하여튼간에 내가 없으면 고작 그런 억울함조차 스스로 풀지 못한단 말이냐? 그래서 누구의 과거 목소리를 듣고싶다는거냐?"

"저기 있는 브리슬콘 전 의원이 수십년전쯤 이 나라의 수뇌부에게 했던 목소리를 듣고싶습니다. 한음절도 빠짐없이 전부요."

"어디보자 내가 앉아서 쉬기 딱 좋은 크기의 나무로구나. 흐으음, 그러니까 저 나무가 이 나라의 수뇌부에게 했던 말은... 천체망원경을 통해 이미 관측하셨겠지만 저 카라스라는 이름의 우주적괴수가 성층권을 돌파한 순간 프록시마는 끝장입니다. 저만의 힘으로 상대하기는 벅차니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디 이 행성의 조물주인 에이션트 원의 의지를 부활시키는데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요? 그 방법은..."

"갈!!!"

파랑왕관앵무새가 놀랍게도 녹음기라도 된것마냥 브리슬콘과 똑같은 목소리로 뭔가를 주절거릴때 귀청이 떨어질듯한 사자후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름아닌 브리슬콘 본인이 평소의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악귀와같은 표정으로 파랑왕관앵무새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단순 위협으로 그칠 생각이 없었는지 예의 새하얀 나무 울타리 환영에 자신의 토혈을 내뿜더니 기괴한 나무 아니 숲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컬렉션 오브 띵즈(Collection Of Things)

그랜드 컬렉션, 시크릿가든(Secret-garden) 만개(滿開)

대지를 피로 물드는 자, 혈해림(血海林) 스파츌라타

"드디어 본게임이로군요. 혈해림 이 친구 참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친구에요."

"카라스 뭣하고 있는게냐? 지, 짐을 어서 보호하거라!"

"예이예이. 앵무황제님께서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셨으니 안전한 새장속에서 편히 쉬시길."

본래는 창록의 푸른빛을 자랑했던 그린 아일랜드의 심처가 붉게 물들어 간다. 전부 핏빛 나무 울타리에서 등장한 혈해림인한 존재때문이였다. 앞서 브리슬콘이 말했듯이 일반 자연환경과 절대 공생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이는 혈해림은 나무들의 수액을 빨아먹는걸로 모자라서 살아있는 것들이라면 어떤 것이든 피를 빨아먹으려 들었다.

심지어 좀비의 몸인 내게도 뿌리를 뻗어 피를 빨아먹으려 했지만 이내 영양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타겟을 돌려 팔에 자상을 입은 티호크에게로 향했다. 어느새 오브리더가 치유의 탄생석 능력을 발휘해 이미 멀쩡한 두팔로 워밍업까지 하고 있는 그였지만 이미 흘린 피때문에 혈해림이 냄새를 맡은 모양이였다.

"저리 꺼져 이 거머리같은 것들아 피를 빨리면 근손실이 온단 말이닷!"

"리더,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하지?"

"상황이 이런 마당에 내가 너희들에게 일방적으로 싸움을 종용할 수 는 없는 노릇이지. 브리슬콘님께서 은혜를 배푼건 너희들이 아니라 나 하나뿐이니까 말이야. 그러면 우리 아나키스트의 운명은 제이토크 너한테 맡기겠다.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너의 탄생석 능력이라면 혼란에 휩싸인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길을 제시해줄 수 있겠지. 마지막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것 같아 미안하지만 부디 진실을 말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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