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74화 (574/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안기청 청장이 갑자기 안면식도 없는 날 부른 이유가 뭘까? 나는 부청장인 선우매향 앞에서 기 한번 못펴고 쭈구려 있던 초로의 노인을 떠올리곤 조소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장면을 보고난 뒤니 우습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으나 전후 사정이 어찌됐든간에 안기청 청장쯤되면 실권은 약해도 아는 정보는 많을테니 한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않은 선택일터. 나는 말없이 꽁지 머리를 한 여자 요원을 쫓아 다시 안기청 청사로 향했다.

"내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네. 아마 갑자기 이런식으로 불러 많이 당황했겠지만 부청장의 눈을 피하기 위해선 지금밖에 없을것 같아 급히 불렀네."

"그렇게 상황이 급하다면 용건만 간단히 말해라. 부청장처럼 마음에도 없는 겉치례는 질색이니까."

"당신 청장님 앞에서 좀 더 예의를 갖..."

"아니 됐다. 시간이 없는건 분명 사실이니까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전에 봤듯이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청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내게는 다소 특이한 탄생석 능력이 있다네. 수없이 많은 탄생석 능력중에서도 가장 희귀하다는 점술계열의 능력이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조금 잘맞는 타로카드점에 불과하지. 지금부터 몇가지 주제와 관련한 카드점을 쳐볼테니 한번 보게나."

촤르르르륵!

청장 환웅연우가 무슨 마술사라도 된듯 현란한 카드쇼를 연달아 펼쳐보이더니 내 앞으로 두개의 타로카드를 던지며 말했다.

"첫번째는 바로 이 프록시마 별의 운명에 관한 카드점이라네. 한번 그 두 카드를 직접 확인해보겠나?"

"하! 귀찮게시리. 다음부터는 직접 확인해라. 사기라고 의심따윈 하지 않을테니."

라고 말한 내가 코앞에 떨어진 두 카드를 확인하니 [세계:World]와 [죽음:Death]이였다. 그렇게 확인을 마치고 다시 청장 환웅연우에게 카드를 돌려준 나는 부청장도 없겠다 위'사령안을 발동하여 상대의 진위를 살폈다. 과연 빛바랜 두건을 쓰고 수정구슬을 매만지고 있는 루뚜뚜를 보고 있자니 점술계열의 탄생석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팩트인 모양이였다.

"세계 카드와 죽음 카드의 결합이 의미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세계의 죽음입니다. 머지않아 이 프록시마 별의 인류가 모두 멸망하게 되리란걸 암시하죠."

"아, 그래? 어디서 운석이라도 떨어지려는 모양이지?"

내가 심드렁한 목소로리로 대꾸했다. 다른 별도 아닌 내 고향별 지구를 사실상 멸망의 길로 내몬 입장에서 남의 행성이 멸망하건 말건간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아 물론 분령(分靈)과 천우용진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꽤 타격이 크겠지만 당장 내일 프록시마가 멸망하는게 아니라면 그것도 아주 급한 문제는 아니였다.

"차라리 그런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자연재해 때문에 멸망하는거라면 모든 사실을 시민들에게 공표하고 함께 힘을 모아 대처하면 되겠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소. 왜냐하면 프록시마를 멸망시키려는 적은 내부에 있기 때문이지."

"설마 그 내부의 적이 부청장 선우매향이라고 말하고 싶은건가?"

"정확히는 멸망을 도래할 왕의 사자라고 할 수 있겠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멸망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나 할까. 이것도 마찬가지로 타로카드점을 봐주게."

촤르르르르륵, 탁!

청장 환웅연우가 또 한번 타로카드를 현란하게 뒤섞더니 맨위의 카드 두장을 뽑아 공개했다. 그 카드들은 각기 [깃털:Feather]과 [악마:Demon]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것이 선우매향 부청장의 진정한 정체 그리고..."

촤르르르르륵, 탁!

곧바로 다시 카드를 뒤섞어 같은 루틴으로 맨위의 카드 두장을 뒤집으니 이번엔 아까봤던 [깃털:Feather]과 [황제:Emperor] 카드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법봉을 치켜들고 있엇다. 허나 카드가 공개되도 타로카드점에 무지한 나로서는 그 둘의 조합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멀뚱멀뚱 청장을 쳐다보는데 그가 보란듯이 두 카드를 회수해갔다.

"이것이 바로 프록시마에 멸망을 가져올 왕이자 문너머의 존재. 마지막으로 [죽음:Death]과 [공허:Void] 이 두 카드는 다름아닌 자네를 대상으로 점을 쳤을때 나온 결과일세. 종합해서 점괘를 정리하자면 깃털이 달린 악마인 선우매향이 인간의 탈을 벗어던진 순간 깃털이 달린 황제를 이 땅에 초청하노니 이 땅에 필연적인 죽음이 강림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서 피어난 공허속에서 무엇이 나타날지는 신조차 알지 못하리라."

"그게 무슨 개소리야!?"

"뜻모를 헛소리처럼 들린다는건 알고있네. 허나 오직 자네만이 프록시마의 유일한 희망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야. 본래 [공허:Void] 카드는 타로카드풀에 포함되어 있지않은 존재하지 않는 카드라네. 왜냐하면 [공허:Void] 카드를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모든 점궤까지도 어그러트리는..."

움찔!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얼음땡에 걸리기라도 한듯 멈춰선 청장 환영연우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혹시 이 양반이 나이가 있다보니 심근경색이라도 온건가 싶어 내가 예의 여자 요원을 부르려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대놓고 풍만한 젖가슴을 목덜미로 밀어붙였다. 만약 평소의 나였다면 헤벌쭉 했을 상황이였지만 상대가 누군지 인지한 순간 덩달아 식은땀(물론 좀비의 몸인 나는 땀을 흘릴 수 없었지만 웬지 그런 느낌이였다)이 흘러내렸다.

"이런곳에서 좀비걸양과 무슨 대화를 하고 계신건가요, 청장님?"

"이, 이런 곳이라니... 이곳은 엄연히 안기청 청장실일세. 자네야말로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는 뭘하는겐가?"

"시끄럽고 예비 히어로분들과 개인면담을 하려고 하셨으면 저한테 미리 상의를 주셨어야죠. 히어로 숙소에 좀비걸양만 없다고해서 제가 이 주변을 얼마나 찾아헤맸는데요. 한때는 혹시나 좀비걸양이 대통령님을 암살하러온 테러리스트는 아닌가 싶어서 비상계엄령까지 내릴뻔 했다고요. 그런데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설마 다시 안기청 청사로 복귀했을줄이야. 이 추태를 도대체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미, 미안하네. 고작 예비 히어로 한명이 사라졌다고 해서 부청장이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줄이야. 내 불찰이로군."

"그놈의 불찰, 불찰, 불찰, 불찰, 불찰, 불차알!!! 오늘은 바빠서 그냥 넘어가겠지만 정말이지 언제까지 제가 참고 넘어가기만 할거라고 생각하진 마세욧! 그럼 좀비걸양, 우리 함께 숙소로 같이 돌아갈까요?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우드득, 우드득!

나는 고통을 느끼진 못했지만 어깨쪽에서 느껴지는 기괴한 소리에 견갑골 일부에 금이갔음을 인지했다. 아무래도 아까 부청장 선우매향이 불찰이란 단어를 연이어 반복할때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뼈를 부러트린 모양이였다. 아니면 내게 돌발행동을 하지말라는 노골적인 경고였을 수 도? 뭐 어느쪽이든 아무래도 좋은 일이였다.

지금의 이 육체론 무슨 짓을 해도 선우매향에게 이길 수 없었기에 역설적으로 나는 그녀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만약 어느정도 비등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외딴행성에서 전력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행동거지를 조심해야겠지만, 어차피 쳐발릴 수 밖에 없는 전력차라면 그냥 배째라식으로 나가는게 나 옥사건이 지금껏 견지해온 행동양식 아니겠는가.

이른바 내가 힘이 없지 가오가없냐식 전략이랄까. 하여 나는 예의 꽁지머리 여자요원이 청장실 입구옆에서 흙빛이된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와중에도 포부도 당당하게 부청장 선우매향을 따라나섰다. 뭐 까짓거 꼬우면 죽여보시던가. 잃어버린 영력이야 다시 눈깔 사냥으로 모으면 그만이지.

"좀비걸양, 저는 좀비걸양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환웅연우 청장님이 좀 음침한 구석이 있어서요. 앞으로 그분과 독대를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게 좋을것 같아요. 혹시나 그럴일은 없겠지만 그 망할 영감탱이가 좀비걸양을 성추행하기라도 하면 제 마음이 찢어지지 않겠어요?"

"아아, 그렇게하지."

"그런데 그 망할 영감탱이 아니, 아니 환웅연우 청장님과는 무슨 얘기를 나누신건가요?"

"별일 아니다. 그저 오늘내일하는 늙은이의 푸념을 잠깐 들어줬을뿐."

"아아, 그러셨구나. 역시 우리 좀비걸양 마음씨도 착하셔라. 아 참 그러고보니까 제가 좀비걸양의 사회보장번호로 잠깐 조회를 해봤는데 재밌는 의료기록이 하나 나왔어요. 무려 국립대학병원에서 소생불가 판정을 내린거 있죠? 신기하지 않나요? 분명 좀비걸양은 이렇게 멀쩡히 살아움직이고 있는데 말이죠."

"그때 병원에 실려갔을때는 확실히 다 죽어가는 상황이긴 했지. 나조차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아마도 평소 신앙심이 깊은 아버지의 사랑 어린 기도가 통한거겠지."

"헤에~ 아버지의 사랑인가요. 그것 참 재미있네요. 제가 치안청 기록까지 살펴본 결과 좀비걸양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간 모텔 화재의 방화범은 다름아닌 보험금을 노린 좀비걸양의 아버지 본인이였던걸로 판명났는데요. 방화시점에 찍힌 CCTV에 기름통에 묻은 지문까지 빠져나갈 구멍따윈 없어보이더라구요. 제가 법조인은 아니지만 보통 이런 경우 꼼짝없이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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