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73화 (573/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표면상으로만 보면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연 저 미친년의 목적이 고작 양아치 소탕일까?'

소상공인이 어쩌고 왕따 학생이 저쩌고 하면서 악어의 눈물까지 흘려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기에 선우매향이 그런 약자의 입장따위를 신경쓰는 부류가 아니라는걸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즉 선우매향과 나는 동류였다. 약자를 지키기는 커녕 무참하게 강탈하는 것에 익숙한 포식자들.

그렇기에 나는 프레젠테이션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채 선우매향의 진짜 목적을 추리하는데 모든 뇌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천우용진이 하는 말에 따르면 당분간 히어로 부업을 자제하라는 내 조언을 따르고 말것도 없이 택배알바의 야간 추가업무가 너무 길어져서 집으로 귀가하자마자 뻗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택배 물품을 잡귀들이 대신 옮겨주니 체력은 보존한다쳐도 그 잡귀들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시나브로 소모되는 정신력은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어디서 꼬리를 밟혔는지 날이 밝자마자 안기청 직원들이 찾와 예의 그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백리동숙의 죽음을 바로 코앞에서 목격한 나로선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자 여기까지 제가 히어로 협회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는데 혹시 질문 있으신 예비 히어로분이 있으실까요?"

"제가 한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실례지만 우리 부청장님께서는 연얘경력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어머나 초장부터 그런 주제와 상관없는 질문을 던지다니 다른 사람같았으면 주둥아리를 찢어버렸을텐데 우리 백리몽룡군은 귀여우니까 한번은 봐줄게요. 하지만 다음번에도 그러면 곤란하니까 일단 답변을 해주자면 꽤 오랫동안 솔로였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뭐 그렇다고 모태솔로인건 아니고요."

"부청장님의 미모와 몸매에 모태솔로라고 하셔도 믿기어렵지요. 주변 남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저는 예비 히어로 이전에 부청장님의 예비 남자친구로 입후보 하면 안될까요?"

"어머어머! 지금 보는 눈도 많은데 저한테 고백하시는건가요? 공개고백이라니 어머 싫다~ 부디 그런건 둘만 있을때나 해주세요. 피도 눈물도 없는 안기청의 늙은 마녀라고 불리우는 저지만 연애세포만큼은 아직 사춘기 소녀라구요."

쪽.

우웨엑! 나는 찡긋 윙크를 하며 검지와 중지를 포개어 손가락 키스를 날리는 선우매향의 행태에 속이 다 메슥거리는 기분이였다. 사실 선우매향 정도면 굉장히 매력적인 골드미스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골드미스에게는 골드미스에게 어울리는 섹스어필이 있는법. 어설프게 소녀 감수성을 연출하면 독이 될뿐이였다.

물론 다른곳도 아니고 안전기획청의 본진에서 선우매향 부청장에게 그런 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선우매향에게 추파를 던진 갈색피부남 또한 손가락 키스에 손가락 하트로 보답하며 살갑게 반응해왔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저 새끼는 진짜 진심으로 부청장을 꼬시려 했던것 같은데?

180cm는 가뿐히 넘을듯한 기럭지에 히어로보다는 모델일이 어울릴것 같은 절세미남이 갈색피부와 대비되는 새하얀 치아를 빛내며 미소를 지어보이자, 부청장은 둘째치고 스플뎀(스플래쉬 데미지)을 맞은 여성 예비 히어로들이 꺄아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걸 아니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남성 예비 히어로들. 아마 그들의 마음도 나와 같은 것이리라.

딱 보아하니 저 백리몽룡이란 이름의 예비 히어로는 안기청에 모집되기 전부터 지역사회에서 제법 유명세를 떨친 인사인듯 했는데, 미시 취향이 아니고서야 저 외모로 부청장을 노린다는건 말이 안됐다. 아니면 자유분방해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의외로 권력욕이 있는걸지도. 아무튼 저 백리몽룡이란 자는 단순히 백리동숙과 같은 성씨여서가 아니라 특유의 취향때문에라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자 장난은 여기까지. 좀 더 히어로 협회와 관련된 진지한 질문을 하실분은 없나요?"

"내가 하지. 나는 어디 사는 누구씨처럼 공개적으로 이름을 내놓고 활동하는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적지 않은 악인을 구제해왔다고 자부한다. 그건 돈과 명예를 원해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정의관을 실천하기 위함이였지. 그런데 항간에는 이런 소문이 돌더군. 통합정부가 무고한 시민들을 납치해서 이상한 실험을 진행한다는 도시전설같은 소문이 말이야. 이런 행동은 내 정의관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만큼 해명을 듣고싶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안기청의 실세 부청장씨의 입으로 직접 말이지."

"통합정부가 무고한 시민들을 납치해서 이상한 실험을 진행한다라... 그건 비단 백두무송씨의 정의관이 아니더라도 절대 해서는 안될 행위같은데요? 시민분들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무원으로서 시민분들에게 이로운 일을 해드리지는 못할망정 해를 끼친다니요. 선우매향의 이름을 걸고 그런 끔찍한 실험에 관여한적도 목격한적도 없다는걸 맹세합니다. 그리고 설사 그런 실험이 있었다고 해도 앞으로도 지속될 일은 없을겁니다. 왜냐하면 백두무송씨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그런 실험이 자행되는걸 막아야겠다고 결심했거든요.

이정도면 충분한 답변이 되셨을런지?"

"뭐 어느정도는. 물길 열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당신이 이름을 갖고 장난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

저 아저씨는 간이 배밖으로 나온건가? 나는 사람 좋아보이게 생겨가지곤 부청장에게 살벌한 질문을 던지는 백리무송이란 자의 행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아저씨가 말한 실험이란 아마도 인간통합실험을 말하는 것일진데, 내 입장에선 가려운 부분을 대신 긁어준 셈이라 고맙지만 당장 여길 나가자마자 잡혀가 고문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발언이였다.

"자 지금부터는 시간 관계상 마지막으로 한 질문만 더 받겠습니다."

"저, 저요. 저 혹시 히어로 협회에 가입하면 그, 그 월급도 나오나요. 제가 택배 상하차 알바로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형편이라 무급으로 일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뺐기면 고, 곤란해서..."

"으흠? 후하하! 역시 천우용진님은 나이대에 비해 순수해서 마음에 든다니까요. 당연히 히어로 협회에서는 여러분들이 일상생활을 영속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정도의 지원금을 내드릴겁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지정장인들이 제작한 특수장비까지 마음껏 쓰실 수 있게 해드릴테니 앞으로 악의 세력을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오리엔테이션은 여기까지 하는걸로 하고 여기까지 오느라 모두 피곤하실테니 오늘 하루는 영내 숙소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내일 부터는 드디어 본격적인 히어로 활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두근거리지 않나요?"

두근거리건 개뿔! 나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잠자코 있던 와중에 바로 옆자리의 천우용진이 쌩뚱맞은 질문을 던져 심기가 다소 불편한 상태였다. 물론 실내에서도 챙이 긴 모자와 선글라스로 무장한 이상한 여자는 이미 백리몽룡과는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고 있엇지만 말이다.

아무튼 부청장의 지시로 각자 요원 한명씩이 달라붙어 안내를 받게된 우리는 본래 기업 회장들이나 묵을 수 있는 정부 청사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뭐 좀비의 몸인 나야 길바닥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든 5성 호텔에서 극세사 이불을 덮고 자든 하등 상관이 없었으나 눅눅하고 곰팡이 핀 매트릭스가 익숙한 천우용진은 다소 들뜬 모습이 눈에 보일정도였다.

에휴 저 자식이 호랑이굴에 들어온줄도 모르고 좋아하기는. 그런데 안기청 요원을 따라 걷기를 십여분. 나는 어느새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남았다는 사실을 지각했다. 천우용진과 떨어진거야 남녀 숙소가 달라서 그렇다치고 백리몽룡의 팬클럽을 자처했던 여자 예비 히어로들은 다 어디간거지? 설마 선우매향 이 빌어먹을 년이 기어코 나를 처리할려고 손을 쓴건가!?

"이봐 날 어디로 끌고갈 셈이냐?"

"좀비걸님께서는 예비 히어로가 아닌 예비 사이드킥이기 때문에 다른 숙소를 준비해놨습니다."

"사이드킥을 위한 숙소라... 이것참 꼼꼼하기도 하셔라."

대놓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요원때문에 우뚝 멈춰선 나는 소리쳤다.

"내가 선글라스를 꼈다고 해서 장님으로 보이는가? 아까부터 길을 빙빙 돌아서 다시 안전기획청 청사로 돌아가고 있잖아! 선우매향이 나를 은밀히 처리하라고 지시한거라면 개수작 부리지말고 이곳에서 승부를 보자. 엄한 사람들한테 피해를 입히지 말고."

"역시 당신은 부청장쪽 사람은 아닌 모양이군요.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으니 일단 얌전히 따라오시지요. 당신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부청장이 아니라 안기청의 청장이신 환웅연우님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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