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69화 (569/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하양수란.

VOT 온라인 2.0에서 인연을 맺은 그 이름 네자를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회귀라는 신체강화나 변화에 비교하면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초유니크 탄생석 능력의 소유자를 어찌 있을 수 있을까? 이 아나키스트란 단체 내에서는 엘화이트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고 있는듯 했지만 탈색이 아닌 천연의 흰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미소녀가 그리 흔할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뜬금없이 나때문에 아나키스트 멤버 3분의 1이 전멸했다고 소리쳤을때 정작 올백머리남조차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나는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티호크란 작자가 내 머리통을 뽑아버리고 난 후 임시육체를 버리고 빠져나온 내가 어둠의 소정령 상태에서 아나키스트 멤버들과 결전을 벌여 상대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이다.

아무리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 일이라지만 제대로된 육체도 부하도 없는 상황에서 그 정도 성과를 이루다니 생각 이상으로 어둠의 정령왕자의 힘이 강하던가 아니면 아나키스트가 약하던가 둘중 하나였다.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상성차이의 문제일지도? 탄생석 능력자의 편차가 워낙 다양했기에 퇴마에 특화된 탄생석 하나쯤은 있을줄 알았지만 이제보니 시간계열 능력자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드문게 영매계열의 능력자인듯 싶었다.

"엘화이트 더 자세히 설명해라. 저 미친 여자가 부리는 허깨비 하수인이 엘스파이더의 스파이더센스로밖에 감지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나키스트 3분의 1이 전멸했다는건 상삭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방심했어. 상대의 생김새가 너무 이질적이라 그냥 단순한 괴물이라고 생각했던거야. 아니 따지고면 괴물이 맞지만 상대는 그냥 괴물도 아니고 아주 지능이 높은 괴물이야.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코드네임의 규칙을 보고 순식간에 전투조와 비전투조를 구분해내더니 노골적으로 비전투조만 괴롭히더군."

"그 결과가 아나키스트 3분의 1의 전멸이라는건가. 도저히 감수하고 지나갈만한 피해가 아니니 노선을 바꿀 수 밖에 없겠어. 에스파이더 거미줄을 풀고 일단 물러가라. 만약에 내게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는 좋든싫든 네가 사령탑을 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다른 아나키스트들도 모두 물러나. 제이토크는 가기전에 나한테서 무전기 받아가고."

"리, 리더 혼자서 뭘 어쩔려고?"

"혼자서 객기를 부리겠다는게 아니니까 안심해, 에스파이더. 엘화이트의 말대로 대화노선을 한번 타보려는 것 뿐이니까. 그리고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어떤 위험속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걸 넌 알잖아. 여차하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 아예 이 미친여자를 만나기 전 시점으로 시간을 되감을 수 도 있다."

"알았어. 그러면 지하 철도쪽에 가있을테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마."

그렇게 에스파이더, 티호크 그리고 엘하이트를 비롯한 아나키스트 멤버들이 썰물빠지듯 빠져나가고 올백머리남과 둘만 남게된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본녀가... 두렵지않은건가?"

"글쎄.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 어떤 위험이 닥쳐도 도망칠 자신이 있어서 말이야. 그리고 아나키스트 멤버들이 물러날때 공격하지 않는걸 보고 네가 어느정도 말이통하는 상대라는걸 인지했다. 물론 그 얼굴은... 확실히 마주보고 있기에 다소 거북하긴 하군. 티호크에게 복면을 벗기라고 했을때 조금 살살 벗기라고 할걸 그랬어. 뭐 농담은 여기까지하고 우두머리끼리 만났으니 우리 한번 진솔하게 터넣고 이야기를 해보지. 도대체 네 정체는 뭐지? 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통합정부 인사만 아니라면 지옥의 사이탄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 참 듣기 반가운 소리로군. 마침 본녀도 지옥에서 온 사람이라서 말이야. 물론 사이탄은 아니고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각청에 우두머리 청장이 존재하듯 나 또한 한빙지옥을 관리하는 10대 지옥시왕중 한명인 송제시왕이라고 하면 알려나? 뭐 모르겠지. 지옥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온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테니까 말이야."

"지금 무슨 헛소리를... 크읏!"

내가 일찍이 수왕성에서 자폭하려는 긴고를 저승문 안으로 밀어넣은 까닭에 사고사를 당한 송제시왕의 이름을 팔아먹자 올백머리남의 표정이 급변했다. 마치 유통기한이 2주일 정도 지난 우유가 십이지장을 지나고 있기라도 한것마냥 울그락 붉으락 하더니 끝내 마음의 평화를 되찾곤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어쭈 여기서 화를 안내다니 이 자식 좀 하는데?

"좋아. 솔직히 간단히 수긍하기엔 어려운 이야기지만 네말이 맞다고 치지. 도대체 지옥에 있어야할 송제시왕님께서 이승의 땅을 밟은 이유는 뭐지? 그것도 그런 형편없는 모습으로 말이야."

"이 몸은 그저 임시로 빌린 것일뿐 생김새와 관련해서 딱히 특별한 목적성은 없다. 아 물론 그 티호크라는 인간이 놀라자빠지는걸 보면 나름 위협용으로는 괜찮은 것 같지만 말이야. 아무튼 내가 이승의 땅을 밟은 이유는 이 프록시마 땅에서 심상치않은 기류를 느낀 염라대왕님께서 특별조사임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심상치않은 기류라면?"

"자세히 설명할 수 는 없다. 저승의 기밀과 관련된 내용이니 이승의 존재는 모르는 편이 낫다. 그리고 나는 그 특별조사 과정에서 천우용진이란 인간에게 모종의 실마리를 발견하곤 그 뒤를 캐고 있었는데 우연히 나와 같은 얼음의 힘을 다루는 여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까 코드네임이 아이시클이라고 했던가?"

"즉 그 이후 아이시클에게 허깨비같은걸 붙여서 우리 아나키스트의 아지트를 추적한것도 전부 그 염라대왕이라는 지옥의 대통령쯤 되는 자의 특별미션의 일환이였다는건가? 그래서 우리 송제시왕님께서 보시기에 우리 아나키스트는 프록시마에 감도는 심상치않은 기류와 어느정도 관련성이 있어 보이시는지?"

"그에 관한 감상은 이미 한번 말했을터. 길잃은 강아지들끼리 모여 소꿉장난을 하는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꽤 괜찮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것 같군. 잠깐 따라와봐라."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고 어느새 염라회장의 이름까지 팔아버린 나는 올백머리남을 따라 흐느적 흐느적 걸으며 어느 구형 영사기 앞에 도달했다. 올백머리남이 그 구형 영사기를 잠시 매만지더니 낡은 외벽을 스크린 삼아 어떤 화면을 출력하며 말했다. 그렇게 스크린상에 떠오른건 웬 대머리들이 이상한 캡슐장치에 묶여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송제시왕 당신이 하는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아. 이름, 성별 그리고 신분까지도 전부 거짓말일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다. 다만 한가지, 이 행성 프록시마에 심상치않은 기류가 감돌고 있다는것만은 분명하지. 그리고 나는 그 기류의 이면에 통합정부가 있다고 100% 아니 200% 확신한다. 자 이 사진을 한번 보고 감상을 들려줬으면 좋겠군."

"죽음이란 필연적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종항암치료라도 받고있는건가?"

"아니.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전부 암은 커녕 감기같은 잔병치례도 드물었던 건강한 시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런 꼴이된건 전부 통합정부의 인간통합실험때문이지. 아나키스트 멤버들중 암행에 능한 이들이 정부의 비밀실험실에 잠입해 입수한 이 사진을 우리는 인터넷과 언론사는 물론 각종 찌라시 잡지사에까지 수없이 뿌려왔고 지금도 가끔씩 인너텟상에는 랜섬웨어 형식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검열을 피하지 못하고 사진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더군. 이런 철저한 검열이야말로 통합정부가 스스로 구리다는걸 인정하는 꼴.

어때, 한번 같이 조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글쎄. 그 전에 인간통합실험이란게 뭔지 먼저 설명하는게 순서라고 생각한다만."

"이런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실수를 해버렸군. 인간통합실험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일단 프록시마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승설화부터 짚고 넘어가야한다. 뭐 흔해 빠진 이야기다. 태초의 이 프록시마엔 행성이고 뭐고 없었고 창세신만이 홀로 존재했다. 그런데 스스로를 외롭다고 여긴 창세신이 자신의 살로는 땅을 만들고, 피로는 바다를 그리고 영혼으로는 인간을 만들었다는거지. 너무나 몰개성하고 맥락없는 이야기지만 이 전승설화를 진짜로 믿는 미친 과학자들이 100년전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과학자들이 계획한 실험이 바로 인간통합실험, 본래는 창세신의 영혼의 일부였던 인간의 정신을 모두 통합해 창세신을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완전히 정신나간 발상에서 비롯한 비인륜적인 실험이였지."

"그래서 그 실험의 결과는?"

내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뜸을 들이던 올백머리남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실패했고 그저 멀쩡한 사람 몇을 백치환자로 만들었을뿐이다. 그나마 이때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불치병 환자나 사형선고를 받은 범죄자를 대상으로 진행했기에 사회적 여파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지금의 통합정부는 무차별로 시민들을 납치해서 인간통합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여 우리 아나키스트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러한 통합정부의 만행을 세상에 공개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통합정부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왕정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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