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으하아아~ 저질러버렸다. 그동안 지루한 감시임무만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쌓여있었나보네. 리더한테는 뭐라고 보고해야하나. 쓸데없이 민간인을 죽여되면 안전기획청 요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서 주의하라고 했었는데. 흐으음... 그냥 이 새인간 자식이 의뢰인을 해치려 해서 처리했다고 적당히 둘러되야겠다. 어차피 의뢰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했으니 이런 사소한 문제쯤은 넘어가주겠지. 그런데 이 비루먹은 똥강아지같은 녀석한테 무슨 뒷배경이 있어서 리더가 나같은 고급 인력을 파견한걸까? 딱히 집안에 돈이 많은것 같지도 않아보이던데."
사람 하나를 얼려죽여 놓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천진난만하게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털모자녀를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년은 전형적인 싸이코패스라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천우용진을 '의뢰인'이라고 호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능숙하게 그의 허리를 받쳐 어깨에 들춰업는 것이 한두번 사람을 납치해본 솜씨가 아니였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정황상 여신칼날단 소속같지는 않았지만 수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기에 나는 털모자녀에게 모종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나중에 설사 퇴마능력을 지닌 탄생석 능력자가 이매망량을 퇴치한다고 해도 추적할 수 있게 그녀의 등짝에 아주 작은 영혼의 표식을 새긴 다음 이매망량에게 그 주위를 배회하도록 만든 것이다.
바로 그때 내가 그런짓을 하고 있는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테블릿으로 어딘가에 연락을 취하는 털모자녀.
"응 나야, 아이시클. 뭣좀 부탁할게 있어서 말이야. 생태 4개, 동태 1개 청소좀 부탁해. 아 참고로 생태 2개는 아직 치어니까 잘 케어 좀 해주고. 응? 내가 하면 되지 왜 귀찮은 일을 더넘기냐고? 아 이번 한번만 좀 부탁할게. 나 지금 리더한테 부탁받은 중요한 개인임무중이라 함부로 몸을 뺄 수 없단 말이야. 나중에 그란데 사이즈 빙수 파르페 하나 살테니까 그럼 이만 도와주는걸로 알고 끊을게."
뚝.
그렇게 불만섞인 수신자의 항의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털모자녀가 천우용진을 업은 상태로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바로 옥상으로 직행했으니 백리동숙처럼 뛰어난 신체능력과 조류의 발톱을 이용해서가 아닌 얼음계단을 만들어 일으킨 기적이였다.
그리고 옥상에 도착해서는 그야말로 얼음을 이용한 묘기란 묘기는 전부다 부릴 심산인지 얼음 미끄럼틀을 만들어 잽싸게 미끄러져 반대편 건물로 내려갔다. 그와중에도 흔들림없이 천우용진을 어깨로 지탱하고 있는걸 보면 기본적인 신체능력도 나쁜편은 아닌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털모자녀의 탄생석 능력을 면밀히 살피는 한편 본체에게서 빌려온 위'사령안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위'사령안은 문제 그대로 위조된 가짜 사령안이였는데 사령안의 술법형질을 복사한 뒤 어둠의 정령화시켜서 횟수 제한이 있는 탐색 아티팩트처럼 만든 것이였다.
지금까지는 송사리 능력자들밖에 보지 못해 사용을 꺼렸지만 최소 A랭크 아니 어쩌면 S랭크일지도 모르는 탄생석 능력자를 상대로는 충분히 사용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결심을 굳힌 내가 짧은 술법영창을 읆조리자 흰자위가 유독 요사스럽게 느껴지는 위'사령안이 천우용진의 정수리위로 떠오른다. 그 결과 나는 탄생석 내부에서 유유히 피겨스케이팅을 타고 있는 소녀정령을 관찰할 수 있었다.
'뭐 고랭크 탄생석 능력자라고 해도 탄생석 구조자체가 다른건 아닌가.'
'응? 너는 못보던 루뚜뚜구나. 안녀엉! 그런데 초면에 이런말하긴 그렇지만 너 진짜 이상하게 생겼구나.'
섬찟!
허나 내가 섣부른 결론을 내버리는걸 나무라기라도 하듯 피겨의 정령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게 아닌가?
'어 혹시 지금 나한테 말거는거야? 아니 그 이전에 내가보여?'
'얘가 뭐라는거니. 당연히 우리가 뚜뚜루들한테 안보이겠지만 같은 루뚜뚜끼리는 볼 수 있는게 당연하지. 그런데 네 주인인 뚜뚜루는 왜 저렇게 인사불성이 된거니? 설마 어디 아픈건 아니지?'
'그거라면 잠깐 기절한것 뿐이니까 괜찮아. 그보다 내가 알고싶은게 한가지 있는데 혹시 대답해줄 수 있어?'
'알고싶은게 있다고? 어떻게 하면 나처럼 우아하게 트리플 악셀 점프를 뛸 수 있는지 알고 싶은거라면 꿈 깨, 애. 너처럼 딱봐도 둔해보이는 루뚜뚜는 트리플 악셀은 커녕 일회전도 불가능하니까.'
'아니 내가 궁금한건 그게 아니라 루뚜뚜랑 뚜뚜루 사이의 관계야. 내가 알기로 뚜뚜루들은 하나같이 탄생석 능력이란 특수한 힘을 쓸 수 있는데 그 힘의 원천은 분명 우리 루뚜뚜란 말이지. 예를 들어 네 주인이 사용하는 얼음의 힘은 분명 네게서 나오는건데 네 주인은 너를 인식하지도 못할뿐더러 딱히 대가를 지불하는 것 같지도 않아. 어떻게 이런 일방적인 착취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건지 나는 항상 궁금했어. 지금까지 만난 루뚜뚜들은 전부 말을 못해서 물어볼 생각도 못했지만 네가 뭔가를 알고 있다면 좀 알려줄래?'
'난 또 뭐라고. 우리라고 해서 공짜로 뚜뚜루들한테 마법의 힘을 제공하는건 아니야. 대가로 이따마아아아안한 꿈별사탕을 받는걸!'
와그작!
피겨의 정령이 어디에 숨겨났던건지 건빵 먹을때 섞여있는 별사탕의 빅사이즈 버전을 한입 베어물며 말했다.
'꿈별사탕이라고? 그게 도대체 뭔데?'
'뭐야 너 꿈별사탕을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는거야? 이 황홀할정도의 달콤함을 모르는 네가 너무 불쌍해!'
'아니 그러니까 그 꿈별사탕이라는게 뭐냐니까!?'
'꿈별사탕은 뚜뚜루들의 꿈이 결정화된 마법쿠키야. 뚜뚜루가 크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록 맛있는 마법쿠키가 탄생하지. 아아아 정말 매번 먹지만 우리 주인의 꿈별사탕맛은 너무 짜릿해!!'
피겨의 정령이 무슨 마약이라도 먹는듯 몸을 떨어대는 통에 나는 더 이상 구체적인 질문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피겨의 정령이 흥분을 가라앉힌 후에 다시 꿈별사탕의 존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캐물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때 천우용진의 신형이 격하게 흔들렸다.
털모자녀가 어느새 천우용진의 초라한 옥탑방에 도착해서는 마치 헌신짝 내던지듯 그의 몸을 방안으로 내던진 것이다. 덩달아 내 3인칭 시야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뒤흔들렸고 나는 입맛을 다시며 차후를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 * * *
"으으윽! 머리가 지끈지끈거려. 이봐 옥사건 거기 있어? 어젯밤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좀 알려줘."
다음날 아침,
마치 2차, 3차에 4차까지 달린 직장인이 숙취에 시달리는듯한 표정으로 기상한 천우용진이 내게 간밤에 있었던 해프닝에 대해서 물어왔다. 마음같아선 한대 콕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였지만 나는 최대한 그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적당히 전날 상황을 지어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천우용진님께서는 백리동숙이란 자의 기습적인 하울링 공격에 당해 쓰러지셨습니다. 알고보니 신체강화가 아닌 신체변화 탄생석 능력자였던 그가 성대를 포함한 얼굴을 조류의 그것처럼 바꾼뒤 특수한 음파공격을 가한 것이지요. 실로 이례적인 상황이였습니다만 천우용진님께서 앞으로 히어로 활동을 계속하시려면 이번 패배를 가슴에 새기셔야합니다.'
"그런가... 이만한 힘을 손에 넣고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패배해버리고 만것인가. 그러면 뒷처리는 전부 옥사건 네가 해준거야?"
'예. 그치들이 말한대로 갈빗대가 부러지면 상하차 알바에도 지장이 생길거고 향후 활동에도 큰 문제가 생길게 뻔하니까요. 이매망량을 부려서 적당히 혼쭐을 내준뒤 돌려보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그런 치졸한 삥뜯기는 꿈도 못꾸겠죠.'
"이매망량이라... 나보다 등급이 높은 망령들을 10배나 더 많이 부릴 수 있다니 정말 놀랄 노자로군. 고작 잔류사념이 그러할진데 본체인 NPC는 얼마나 더 강력하다는거지? 사실 심연의 대마왕같은건 유저들의 도움없이 네가 나서면 바로 처리할 수 있는거 아니야?"
'글쎄요. 그부분에 관해선 노코멘트하겠습니다. 후훗.'
나는 위선적인 눈웃음을 치며 적당히 대답을 얼머부렸다. 사실 그 심연의 대마왕이라는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2.0의 최종보스가 어떤 존재인지는 나조차 아는바가 없었다. 하지만 무간지옥 지하 100층의 문지기였던 심연의 크라켄처럼 2,3천대 레벨 이상의 대규모 레이드 몬스터라면 고작 500레벨에 불과한 NPC변태사신으로는 기스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천우용진을 적당히 구워삶는데 성공한 나는 그에게 또 다시 백리동숙(물론 이미 산산조각난 그를 다시마주칠 일은 없겠지만)을 마주쳤을때 어떻게 음파공격에 대처할 수 있을지에 관한 조언을 해주었다. 이미 두번이나 패배를 경험한 탓인지 사뭇 진지하게 내 조언을 경청하는 천우용진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 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