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64화 (564/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잡귀들의 강강수월래 진법이 아무리 촘촘해도 소리 그 자체를 차단하진 못한다. 설사 소리를 차단할 수 있을만큼 촘촘한 이매망량의 천라지망을 펼칠 수 있다쳐도 평범한 인간인 천우용진은 도리어 숨이 막혀 얼마안가 질식해 죽고 말것이다. 백리동숙이 그걸 꿰뚫어보고 무공으로 따지면 사자후류에 해당하는 기술을 방금 사용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불의의 일격에 당한 천우용진은 속절없이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상대가 처음부터 소리계열의 그러니까 사운드쇼크 타입의 탄생석 능력을 사용했다면 천우용진 나름대로 경계심을 세워 귀를 틀어막은채로 싸우던가 했겠지만, 당연히 백리동숙도 청까마귀 남고 양아치 패거리와 같은 신체강화계열 능력자라고 생각했던게 패착이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하울링같은 특수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신체변화 능력자였을줄이야. 귀가 잘들리니 어쩌니 했던 것도 전부 그런 맥락이였던건가.

"그래 이렇게 될줄 알았다고. 염동력 탄생석 능력을 타고 났다고 해서 자기가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라도 되는줄 착각하는 머저리들은 소리가 주먹보다 얼마나 빠른지 가늠하지도 못하지. 자 어떠냐 후배들아! 이 청까마귀 남고 전 일짱 백리동숙님의 출소 데뷔전 치곤 조촐했지만 나쁘지않았... 으응? 아니 이 새끼들 왜 하나같이 쓰러져있어. 이 병신 새끼들아 내 싸움패턴 뻔히 알면서 하울링 쓸때 귀를 안막고 있으면 어쩌자는거야!"

그리하여 육체의 지배권이란 바톤을 이어받은 내가 이매망량 900기를 부려 천우용진을 비호하는 한편 이번 싸움의 결과를 어떻게 녀석에게 피드백할지 고민하는데 재밌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리동숙의 하울링 기술때문에 자칭 청까마귀 남고 사천왕이란 녀석들과 안경잡이 중학생 둘도 기절해 버린 것이다.

막상 이겨놓고도 자신의 승리를 축하해주기는 커녕 인식해줄 관중조차 단 한명도 남지않자 망연자실해하는 백리동숙의 원맨쇼는 꽤나 재밌는 관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중학생 안경잡이 둘은 둘째치고 청까마귀 남고 사천왕놈들은 분명 제대로 귀를 막고 있었던것 같은데?

천우용진의 몸속에 머물면서 세상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관찰할 수 있게된 내 시야에는 손가락으로 귀를 막다 못해 교복상의로 얼굴까지 감싼 그들의 행각이 명명백백히 보였다. 아무리 백리동숙의 하울링이 강력하다고 해도 소리라는게 거리가 멀어질 수 록 위력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교복으로 얼굴까지 감싼 그들을 기절시키는게 가능한 일일까?

휘이이이이이잉!

그렇게 내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이 싹틀때쯤 갑자기 사방에 눈발이 휘날리며 묘한 위화감을 극대화 시켰다. 지금 프록시마의 계절은 지구로 따지면 초가을에 해당해서 다소 쌀쌀하기는 했지만 눈을 응결시킬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 좁은 골목길에 눈보라가 휘몰아친다는건 설마...

찰싹찰싹.

"야 이것들아 언제까지 쳐자빠 자고 있을거야. 어서 일어나! 으흐음? 뭐야 초가을에 웬 눈이? 어랍쇼, 갑자기 왜 이렇게 졸립..."

소복소복.

심지어 후배들을 깨우기 위해 싸대기까지 동원하며 길길히 날뛰던 백리동숙마저 마치 침대광고의 한장면처럼 스르륵 잠들어버린 뒤, 마침내 내가 우려했던 위화감의 정체가 드러났다. 기다란 털모자를 착용한 묘령의 여성이 그 잠깐사이에 소복히 쌓인 눈길을 걸어와 천우용진 앞에 멈춰선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여기 있는 인원 모두를 꿈나라로 보낸 장본인이 바로 저 털모자녀일터. 나는 지금이라도 이매망량을 부려 응수해야할지 말지를 짧은 순간 수십, 수백번씩 고민했다. 최악의 케이스긴 하지만 만약 저 털모자녀의 정체가 내 분령을 저격하기 위해 엔도미야가 내려보낸 히트맨이라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 영혼 회로에 관해서 원하는만큼의 심득을 얻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A랭크에 불과한 분령의 영력으로는 여신칼날단급의 초월자를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였다. 허나 아직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남아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기척을 숨긴채로 털모자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 정말 성가셔 죽겠네. 전번조때는 항상 집구석에만 쳐박혀 있었다던데 내 순번이 오자마자 날뛰는건 또 뭐람. 이러면 또 동향보고서도 작성해야하자나. 그냥 없었던 일인셈 칠까? 아, 됐다. 그랬다가 들키면 리더가 날 죽이려 들거야. 후우우우우우우~"

여성치곤 꽤나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털모자녀가 천우용진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때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내 존재는 커녕 이매망량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상대가 여신칼날단 소속일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였다.

엔도미야가 바보도 아니고 언데드를 주로 부리는 나를 상대로 신성계열이나 퇴마계열의 능력자를 보내도 모자랄판에 빙결계열의 능력자를 보낼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반쯤 의심은 거뒀으나 이후 모피코트안에서 고급스런 테블릿을 꺼내들어 주위를 스캔하는 털모자녀의 행위는 여전히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으흠 어디보자. 이쪽 남고생 4명은 청까마귀 남고 출신으로 C급 신체강화 능력자로군. 비고사항으로 주위에서 청까마귀 남고 사천왕으로 불리고 있다고? 아니 C급 탄생석 능력자가 사천왕을 해먹을려면 도대체 얼마나 학교수준이 낮다는거야. 아무리 도심외곽지역이라지만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 이쪽 남중생 2명은 학습보조계열의 D급 탄생석 능력자. 즉 미래의 통합정부 말단 행정공무원이라는건가. 리더도 이런 애들은 괴롭히지 말랬으니까 모포라도 덮어서 돌려보내야겠군.

마지막으로 이 백리성씨 녀석 실환가?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납득이 갈정도인데 아직 헌역 남고생이라고? 원래 삭은거야 아니면 불법소년청에서 머물던 1년동안 고생이 심했던거야. 조류계열 신체변화 탄생석 능력으로 B급이면 신체노화도 느린편일텐데 놀랄 노자로군. 뭐 이른바 타고난 노안이라는건가."

"콜록콜록! 누, 누구보고 노안이라는거냐! 이 털뭉치가!!"

천우용진의 탄생석 안에서 쥐죽은듯이 상황을 관찰하던 나는 예상밖의 상황전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염마다 고드름이 맺혀 설인과 다름없는 꼴이 된 백리동숙이 입에서 하얀 김을 연신 내뿜으며 힙겹게 무릎을 반쯤 핀채로 일어선 것이다.

"이런이런 꼴에 신체변화 능력자라고 신진대사가 높아서 저체온증에서 빨리 풀려난 모양이로군. 역시 죽지 않을정도의 저체온으로 유지하는게 그냥 꽁꽁 얼려버리는 것 보다 곱절은 힘들다니까. 근성은 인정하지만 그냥 얌전히 누워있는 편이 좋았을텐데 말이지. 그러면 따듯한 구치장에서 명절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콜록콜록! 허, 헛소리 하지마! 이 몸은 다시 빵에 들어갈 생각따윈 없어! 애초에 사나이들끼리의 신성한 결투에 계집얘가 끼어들다니 여자를 때리는 취미는 없지만 사과정도는 받아야겠어!!"

"킼킼킼! 사나이들끼리의 신성한 결투? 요즘은 벌레 두마리가 서로 비비적거리는걸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뒤돌아서 있을때 네가 깨어난건 아주 특별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어. 살아서 올해를 보내고 싶으면 괜한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그냥 얌전히 거기 찌끄러져서 밤하늘 구경이나 해. 괜히 내 얼굴을 구경하겠답시고 나대다간 저승 구경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콜록콜록! 뭐라는거야 이 털뭉치가! 얼굴같은거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보고싶군. 어디 남의 얼굴을 그렇게 타고난 노안이니 어쩌니 하는 양반의 쌍판대기는 얼마나 영한지 살펴보자고!!"

우드득, 우드득!

딱봐도 강력해 보이는 자연속성계열의 탄생석 능력자를 코앞에 두고도 겁먹기는 커녕 전의를 불태운 백리동숙이 이번엔 전신을 새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는 이내 털모자녀에게 전력을 다해 돌진해 들어갔는데 제 3자 입장에서 봤을땐 멋있다기 보다는 모닥불에 돌진하는 불나방같아 애처로워 보일뿐이였다.

파사사사사사사삭!!

그저 불나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타죽는게 아니라 기묘한 한기 휩싸여 날개를 펼쳐 돌진하는 모습 그대로 얼음동상이 되버렸다는 점이랄까. 물론 그 한폭의 예술작품처럼 역동적인 얼음동상도 얼마안가 가루가 되어 폭삭 무너져 내려 나로 하여금 침음성을 삼키게 만들었다.

저정도 빙결계 능력이라면 최소 칠십번대 빙결술법의 위력수준이였으니 그말인즉슨 저 털모자녀가 이솔다 공주 이상의 전투력을 보유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실전에서는 그 전투력 차가 더 벌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술법사는 칠십번대 빙결술법을 사용하기 위해 7절에 해당하는 주문영창을 해야하는 반면 탄생석 능력자는 숨쉬듯 자연스럽게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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