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그렇게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될때쯤 갑자기 백리동숙이 천우용진 그러니까 데드마스크를 호명했다.
"우리 동생들이 꽤 폐를 끼친 모양이야?"
"......"
"뭐 그쪽이 딱히 잘못했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후배들을 건든놈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어서 말이야. 정신교육은 정신교육이고 의리는 의리 아니겠어? 지금은 이렇게 못난 후배들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나랑 동거동락했던 친구들인데, 가볍게 뼈 몇마디만 쪼개줄테니 얌전히 벌주를 받아. 괜히 저항하다 분쇄골절하면 뼈붇는데 더 오래 걸리는거 알지? 참고로 나도 데드마스크 애니메이션 꽤 좋아해. 코스프레를 할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야."
라고 말한 백리동숙이 가볍게 일보를 내딛더니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을 내던졌다. 아까 양아치 무리들이 벽돌을 미끼로 사용한 것처럼 시선을 끌기 위한 작전인줄 알았으나 백리동숙의 코앞에 떨어진 가방의 입구에서 흘러나온건 그저 녹슬대로 녹슨 아령 다발뿐이였다.
그리고 내가 잠시 그 아령 다발에 정신이 팔린 사이 백리동숙이 아주 정직하게 정면으로 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그 정직한 일권이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물리력을 발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실체화한 잡귀들을 깡통처럼 우그러트렸다.
기본적으로 스펙트럴(Spectral) 타입의 언데드 하수인들의 물리 저항력이 높아서 다행이지 만약 같은 등급의 좀비나 스켈레톤이였으면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천우용진도 지금까지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여겨졌던 잡귀들의 강강수월래 진법이 흔들리자 당황했는지 잡귀 100마리를 전부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수비에만 몰빵할게 아니라 한 30마리 정도는 공격으로 돌려 반격을 꿰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였지만 누차 말했듯이 내가 언제까지고 천우용진의 뒤치닥거리를 할 수 는 없는 노릇이였기에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보아하니 자신의 정권이 무위로 돌아간건 백리동숙 입장에서 도 이외였는지 휘파람을 불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휘이익~ 이거 제법인데. 불법소년청안에서 녹슬기는 커녕 오히려 부단히 단련한 내 주먹을 이렇게 가볍게 막아낼줄이야. 후배들이 고생한 이유가 있어."
"백리동숙 선배! 그 녀석 염동력 탄생석 능력자에요. 조심하세요! 어디서 공격이 날아들지 모릅니다!"
"그런건 너희들한테나 해당하는 얘기고 나처럼 귀가 얘민한 사람은 주먹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염동력 또한 힘. 공기를 밀어내는 순간에 소리를 낼 수 밖에 없거든. 어이 데드마스크 형씨 내가 선수를 쳤으니 이번엔 형씨가 한번 공격해보라고."
백리동숙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천우용진을 도발했지만 천우용진은 100마리의 잡귀들을 겹겹히 쌓아 만든 첨탑안에서 얌전히 사태를 관망할뿐 움직임이 없었다. 단순히 겁이 많아서 그랬을뿐이라는게 연결된 영혼 회로를 통해 느껴졌지만 상대의 도발에 응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음에 취할 액션을 고민하는건 아주 좋은 전투습관중 하나였다.
"싸우기전에 한가지만 묻지. 너는 아까 불법소년청에서 모범소년수로 출소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 생각이지?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셈인가?"
"하하하! 왜 이 백리동숙님이 째째하게 중학생 코묻은돈이나 뜯으며 살것처럼 보이나? 당장 내일 굶어죽는한이 있어도 그런 짓은 안해. 이 몸은 더 큰 물에서 놀거야. 중학생이 아니라 이 거리에서 가장 큰 룸살롱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조직폭력배를 박살내고 당당히 보호세를 받을 예정이지. 룸살롱 마담 입장에서도 허세만 잔뜩 든 떡대들보다는 나같은 쾌남이랑 같이 일하는편이 더 좋지 않겠어?"
일단 그 시커먼 수염부터 깎고 쾌남이란 단어를 쓰지그래? 나는 야밤에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센스하며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 산적소리가 절로 나오는 수염에 질겁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조직폭력배 주니어 놈들이 뭘 누구보다 내가 더 낫네마네 하는건지 원.
천우용진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는지 한마디 쏘아붙였다.
"불법소년청까지 다녀오고도 그릇된 생각을 고쳐먹지 못하다니 백리동숙 너에게도 장례식이 필요할 것 같군. 단한번도 네가 지닌 탄생석 능력으로 스스로 땀흘려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한 것이냐?"
"킥킥킥! 이것 참 가끔 오지랖 넓은 선생들이 지적질하는건 들어봤어도 동년배한테 이런 훈계를 듣는건 처음이네. 아주 재밌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는 애니메이션속의 히어로 데드마스크한테 불량아들은 사실 빌런축에도 못끼었거든. 그 불사의 레슬러의 상대는 항상 부패한 정치가, 불법무기거래상 그리고 무차별 폭탄테러범같은 자들이었지. 그런데 우리 현실의 데드마스크씨는 왜 이렇게 우리 불량아들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려나. 혹시 학창시절 당한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그렇다던가?"
"...문답무용! 백리동숙 너의 악업에 대한 장례식은 이미 시작되었다!"
스르르르르륵.
지금까지 100마리의 잡귀들을 들고 수비태세에만 치중하던 천우용진이 50마리의 잡귀들을 공격태세로 전환했다. 공수 비율을 50:50으로 맞추겠다는건데 백리동숙이 어느정도 랭크의 신체강화 능력자인지 판명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럭저럭 나쁘지않은 판단으로 보였다. 중국집 배달이나 치킨집 배달을 시킬때도 그렇고 애매할땐 반반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제 2차전은 생각보다 재밌는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손으로 열손 못막는다고 제 아무리 뛰어난 신체강화 탄생석 능력자라고 해도 잡귀 개개인이라면 모를까 잡귀 50마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리가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백리동숙이 예상외로 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력이 없으면 보이지도 않는 잡귀 50마리를 상대로 건물 외벽 5층까지 타오르며 화려한 도주극을 펼쳐보이는데 누가보면 파쿠르 전문가가 시범 공연이라도 펼치는줄 알았을터. 그만큼 백리동숙의 신체능력은 그냥 힘 꽤나 쓴다고 으시되는 양아치 무리들과는 확실히 차별화 되어 있었다.
비단 신체능력뿐만 아니라 잡귀들이 물리력을 발휘하는 순간 그러니까 폴터가이스트 능력이 발동되는 시점의 미세한 공기흐름을 느끼고 보이지 않는 손을 피해내는 탁월한 감각도 보통이 아니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신체강화 능력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내가 안력을 돋구는데 수상한 점이 포착됐다.
'천우용진님 혹시 저 백리동숙이란 자의 다리가 보이십니까?'
'잠깐만! 나는 옥사건 너처럼 숨쉬듯 자연스럽게 수백마리의 잡귀들을 부릴 수 없다고. 지금 온 집중력을 다해서 저 녀석을 쫓아가는 중이니까 할말이 있으면 나중에 해줘.'
'그러면 이번 전투에 중요한 힌트가 될 수 도 있으니 듣기만하세요. 저 백리동숙이란 자가 무슨 자기가 거미인간이라도 되는것 마냥 자유자재로 벽을 타길래 수상해서 지켜보니 다리의 형태가 아까와 달리 조금 변했습니다. 그늘이 져서 자세히 본건 아니지만 뭔가 사람의 다리가 아니라 조류의 그것과 같다고 해야할까요.'
'뭐라고!? 설마 저 녀석 신체강화 능력자가 아니라 신체변화 능력자였던...'
푸드득!
천우용진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백리동숙이 자신의 탄생석 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잡귀 50마리에게 쫓겨 건물 지붕까지 올라 위기에 봉착한줄 알았던 그가 푸른 날개를 펼쳐보이더니 공중을 날아 천우용진을 향해 역으로 고공낙하를 해왔던 것이다.
당황한 천우용진이 이렇다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때 내가 앞서 지적한 백리동숙의 조족(鳥足)이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워 그를 덮쳤다. 하지만 천우용진은 이전처럼 공격에 몰빵한게 아니라 수비에도 50마리의 잡귀들을 상시 배치하고 있었기에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무리 신체강화 능력자의 상위호환으로 평가받는 신체변화 능력자가 중력 가속도의 힘까지 빌어 가한 일격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물리공격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한 잡귀 50마리를 돌파하는건 무리였다. 덕분에 적을 바로 코앞에 두고 두눈을 질끈 감았던 천우용진도 이내 이성을 되찾고 공격용 잡귀 50마리와 수비용 잡귀 50마리로 백리동숙을 샌드위치처럼 감싸 역습에 나섰다.
하지만 백리동숙은 흉부와 등짝에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압박감에도 아랑곳 않더니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잠깐 비명을 지른다고? 설마 그렇게 가오를 잡아놓곤 이제와서 행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건가 싶었지만 이미 사람보단 조류에 더 가까워진 백리동숙의 비명은 이미 그 자체로 위협적인 공격수단이였다.
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아아악!"
'이런 너무 하이데시벨의 소음을 가까이에서 들어서 기절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