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제기랄, 이 새끼 주먹이 보이질 않잖아!"
"아니 주먹이 보이질 않는게 아니라 염동력 능력인것 같아."
"야 임마, 넌 어디서 굴러 먹다온 놈이야. 여기가 청까마귀 남고 영역인걸 알고 이렇게 깝치고 다니는거냐? 그 촌스러운 마스크는 또 뭐고?"
그토록 기대했건만 말이 씨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정말 괜찮은 신체강화 탄생석 능력을 지닌 인재는 군, 경찰 그리고 보디가드 회사에서 일찌감치 학생때부터 스카웃해가기 마련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더러운 뒷골목을 배회하며 엄한 비전투 탄생석 능력을 지닌 학생들을 괴롭히는건 그야말로 낙오자 떨거지들뿐이였으니 이매망량 10마리조차 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너희처럼 힘없는 선량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불량아들의 장례식을 치루는 장의사, 데드마스크다."
나는 안그래도 조막만한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기겁했다. 비단 쌍팔년도 전대물 히어로 코스프레를 하는 천우용진뿐만 아니라 구멍가게 하나 있는 이 비루한 골목을 자신들의 영역이라 칭하는 청까마귀 남고생들을 보고 있자니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 가 없었던 것이다.
허나 천우용진이 언제 또 방심해서 한심한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상황을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잠깐 그러고보니 데드마스크라면 공간전이술법의 마에스트로이자 상아탑의 교수인 체어맨의 숨겨진 정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발두인 함장의 누이인 라라펠 실버코인을 구하기 위해 백토성으로 향했었던 일을 떠올리며 나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점잖으면서도 명망높은 교수인줄 알았던 자가 알고보니 뒤에서 해적질을 하고 있을줄 누가 알았겠는가. 허나 그 악명높은 망월해적단의 해적선장의 이명과 천우용진의 이명이 겹친건 단순한 우연인듯 싶었다.
아무래도 이 프록시마란 행성에는 지구만큼이나 히어로물이 유행을 타는 모양이였는데, 그 중에서도 어떤 찌질이가 저주받은 마스크를 손에 넣은 후 무적의 레슬링 기술로 악당들의 관절을 꺾어버린다는 내용의 3류 히어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바로 데드마스크인듯 했다. 뭐 나라면 억만금을 줘도 쓰지않을 촌스러운 마스크지만 본인이 좋다면야는 개뿔! 차라리 1인칭이라면 모를까 3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관찰해야만 하는 탄생석 정령의 입장 좀 헤아려줘라. 제발!!
"뭐, 뭐? 힘없는 선량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불량아들의 장례식을 치루는 장의사, 데드마스크? 이 새끼 이제 보니까 완전 생또라이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는 엄연히 청까마귀 남고의 영역이라고. 고속도로를 지날때 톨게이트비를 내듯이 이곳을 지나가려면 당연히 우리들한테 통행료를 내는게 당연지사 아니겠어? 안그러냐 중학생 애기들아!"
"예, 옙! 아 그러니까 내가 그냥 큰길로 가자고 했잖아. 왜 하필 이런 외진 골목길로 들어와가지고는."
"학원 늦는다고 지름길 좀 알려달라고 한게 누군데!"
"쪽팔린줄도 모르고 자기보다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다니. 뭐 같은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괴롭혀도 되는건 아니지만. 애초에 프록시마의 모든 땅은 어떤 개인의 사유지가 아닌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게 통합정부 대헌법 제 3조다. 청까마귀 남고가 아무리 똥통학교라지만 그것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너희들이 대헌법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거냐?"
"글쎄. 그딴 복잡한건 모르겠고 다 큰 어른들도 우리가 쇠파이프를 한손으로 우그러뜨리면 헤헤 웃으면서 용돈을 쥐어두둑히 주던걸. 그런건 말이야 역시 법보다 주먹이 가깝기 때문 아니겠어? 데.드.마.스.크.씨!"
부우우우우우우웅!(x3)
상대가 염동력(실제로는 폴터가이스트 능력이지만)을 사용한다는걸 알았으면 쫄릴법도 하건만 역시 개나소나 탄생석 능력을 타고나는 세계인만큼 양아치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근접전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양아치 무리의 리더로 추측되는 녀석의 지시하에 그들은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벽돌을 일제히 집어들어 던져왔다.
신체강화 능력을 기반으로 던뎌진 벽돌은 투포환 프로선수가 던짓것 만큼이나 매서웠지만 3인칭 시점에서 천우용진을 관찰하고 있던 나는 그게 미끼라는걸 대번에 알아보았다. 원래 일행이였는지 아니면 따로 연락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벽돌이 던져지자마자 골목길의 어두침침한 그림자를 타고 웬 잡것이 못박힌 야구방망이를 들고 접근중이였기 때문이였다.
나는 바로 이매망량 별동대를 운용해 그 잡것을 조용히 제거할까 했지만 내가 언제까지고 천우용진의 뒤치닥거리를 할 수 는 없는 노릇이였기에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지난번 싸움에서의 교훈 덕분이였는지 10마리 정도의 잡귀들을 강강수월래 형태로 감아 자신을 상시 보호하고 있었기에 못박힌 야구 방망이가 천우용진의 뒤통수에 명중하는 일은 없었다.
빠아아아악!
"오케이, 막내가 해냈구나!
"아니에요! 이 녀석 뒤통수뒤에 뭔가 투명한 벽같은게 가로막고 있어서 소리만 크게 난거라구요!!"
"뒤에서 기습이나 하다니 이 비겁한 놈들. 데드마스크의 이름을 걸고 지금부터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
"그게 신체강화 능력자를 상대로 염동력자가 할말이냐!? 씨발, 퉸! 애들아 오늘은 그냥 똥밟았다 생각하고 그만 가자."
"예, 선배님!" x 3
나름 심혈을 기울인 뒷치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양아치 무리들이 일사 불란하게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저놈들 전부 피라미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진부한 잡졸들이였지만 아직 전투 경험이 부족한 천우용진에게는 나름 나쁘지않은 상대였던것 같았다.
뭐든지 걷기도 전에 뛸 수 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지. 그렇게 한적한 골목길에 일순 평화가 찾아온듯 싶었으나 곧이어 이변이 일어났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안경잡이 중학생 둘이 대로변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갑자기 사라진줄 알았던 양아치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니 백리동숙 선배님 여긴 어떻게? 선배는 그때 그 사건때문에 불법소년청에 계신거 아니였습니까?"
"오늘부로 출소했다, 짜샤! 왜? 내가 이렇게 빨리 나온게 그렇게 불만이냐? 한 1년정도 성질 죽이고 그냥 쥐죽은듯 지내니까 모범소년수 판정이 나오더라. 별 시덥잖은 탄생석 능력을 지닌 것들을 입소시기 빠르다고 고참으로 모시고 있자니 좀이 쑤셔서 원. 그런데 너희들은 멀쩡한 아지트 나두고 왜 이런 후진데서 노냐? 덕분에 찾는데 한참 걸렸잖아."
"그, 그게..."
"우물쭈물거리지 말고 빨리 말해, 짜샤! 호랑이 없는곳에선 여우가 왕이라고 못보던 새에 너 많이 건방져졌다?"
"사실은 백리동숙 선배가 그 사건때문에 불법소년청에 들어가신 후 성문 남고놈들이 쳐들어와선 저희 아지트를 그냥 박살내버렸습니다. 원래 불법 점거하고 있던 버려진 건물이라 치안관한테 신고도 못하고 선배없이 저희끼리 상대하기엔 머릿수도 부족하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지내고 있는 형편입니다."
"뭐야!? 니들이 그러고도 청까마귀 남고 사천왕이라고 할 수 있어? 아주 가관이구만 가관이야. 아무리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성문 남고따위한테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다니 내가 애들을 잘못 키워도 한참 잘못 키웠구만. 뭐 그건 그렇다치고 방금은 왜 귀신이라도 본것마냥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던거냐? 설마 성문 남고 애들이 이 후진 골목길까지 찾아오기라도 한거야?"
"아 그건 아니고 잠깐 수금하는데 이상한 놈이 훼방을 놔서 말이죠."
"수금? 이상한 놈? 설마 수금이란건 저기 있는 중삐리들 코묻은 돈 삥듣는걸 말하는거고 이상한 놈이란건 줄무늬 마스크를 쓴 저 놈을 말하는거냐? 야 이 새끼들아 우리가 아무리 양아치라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할거 아니야! 그러니 성문남고놈들한테 털리고 다니지."
그 이변의 주인공은 백리동숙 선배라는 칭호로 불리운 완전한 제 3의 인물이였는데,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아래에 드러난 모습은 학생보다는 30대 후반의 아저씨가 어울리는 모습이였다. 아무리 1년을 꿇었다지만 저런 노안이라니 술집에서 민증 검사는 절대 안받겠구만.
그리고 그 노안만큼이나 철이 일찍들었는지 백리동숙은 중학생의 학원비를 갈취하려한 후배들을 엄히 타일렀다. 내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였지만 양아치들간에도 나름의 선악개념은 있는 모양이였다. 혹시나 머릿수 하나 늘었다고 다섯명이서 죽자살자 덤벼오면 어쩌나 싶어 걱정하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관조했다.
"차라리 돈이 부족하면 성문남고놈들 호주머니를 털던가. 그건 무서워서 못하겠더냐? 아무튼 나 백리동숙이 이 거리에 돌아왔으니 이 주변고교의 서열은 앞으로 재정립될 것이다. 물론 그전에 너희들 정신상태부터 뜯어고쳐야 할것 같지만 말이야. 안그래, 데.드.마.스.크. 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