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61화 (561/599)

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응, 그래라고 대답하려던걸 대충 미소로 얼머부린 나는 그 순간만큼은 한명의 나이팅게일이 되어 BIG보스 그러니까 본명은 천우용연을 물심양면으로 돌보았다. 다행히도 완전히 기력이 쇠한건 아닌지 열에너지가 아닌 물리에너지로 만들어낸 미음을 마시고 어느정도는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정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자 나는 프록시마 행성의 문화나 지리적 특성에 관한 한담을 나누는 한편 잡귀를 부려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는 방법을 속성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이내 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는데 천우용연이 어설프게 잡귀들을 부리려고 한 순간 스피릿 서킷(Spirit Circuit) 즉 영혼 회로가 감응하면서 내 경험과 재능을 잠깐이나마 그와 동기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이제 막 강령술 첫걸음마를 떼려는 천우용진이였기에 내가 경험과 재능을 일방적으로 내주는 형편이였지만 나는 영혼 회로가 실제로 작동하는 매커니즘을 피부로 느낀것 만으로도 엄청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백날 요슈아의 폭식 권능을 바탕으로 별의별놈의 눈깔들을 흡수해 영력 스텟 향상을 꾀해왔지만 영력 랭크 향상을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깨달음을 갖고 본체로 돌아간 다음 유니온키네시스 ~데모고르곤의 너와 나~로 영력 랭크를 강제로 부스트업 시킨다면 웬지 모르게 벽을 깰 수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벽너머를 보았다는 정신적 고양감에 전신이 짜릿짜릿해 지는 것도 잠시 천우용진의 영력이 바닥나자 갑자기 깨달음의 편린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으윽!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몸에 힘이 빠진다. 왜 그런거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이 새끼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걸 간신히 참아낸 나는 침착하게 현 상황을 정리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애초에 미러링크란 탄생석 능력 자체가 내가 지어낸 거짓부렁에 불과했기에 영혼 회로의 감응 자체가 불안전하게 이루어지는 모양이였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 연약한 몸둥어리에서 탈출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진득하게 붙어서 연구를 해봐야겠군.

'당황하실 것 없습니다, 천우용진님. 대부분의 탄생석 능력이 정신력을 소모하는 반면에 천우용진님의 미러링크로 연결된 강령술은 영력이라는 특수한 자원을 소모하기에 발생한 현상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따지자면 배터리 용량이 너무 작아서 금방 바닥난 꼴이랄까요? 다행히도 제가 보조 배터리 역할을 해드리면 하루종일이라도 망령들을 부리실 수 있으니 너무 낙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말인즉슨 옥사건 네 도움 없이 나 혼자 힘으로는 이런 잡귀 몇마리조차 제대로 부릴 수 없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럴 수 밖에 없을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르켜드린 수련법으로 꾸준히 영력을 키워 배터리 용량을 늘려나간다면 천우용진님 스스로 망령들을 집합 및 종속시키는 것도 꿈은 아니겠지요.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으니 너무 조바심을 느끼지 마시고 차근차근 능력을 키워나가시길 바랍니다.'

나는 혹시나 천우용진이 조루 배터리에 실망해 탄생석 능력 개발을 포기할까 염려되 마음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일평생을 무능력자로 살아온 천우용진이 고작 능력 발동 시간이 짧다고해서 금새 포기할리가 없었으니, 곧장 그 수련법이 뭔지 캐물으며 수련의지를 보이자 나는 올타쿠나하고 명상법 하나를 전수했다.

그 명상법 명옥공(冥玉功)은 3대 강령술 마도서중 하나인 귀혼강신법에 수록된 상단전 수련법의 일종이였는데 이미 영력이 성장할대로 성장한 내게는 계륵과 같은 공법이였으나 천우용진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자자 어서 빨리 성장해서 내가 좀 더 오래 영혼 회로와 감응할 수 있게 해달라고!

* * * *

"어이 젊은 친구 이 쌀포대만 마저 옮기고 오늘은 마감하지."

"예, 알겠습니다."

"어이쿠 이거 명절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베테랑인 나도 어깨가 살짝 뻐근할정도인데 이 젊은 친구는 땀 한방울 안흘리네. 혹시 탄생석 능력을 쓰고있는건가?"

"그렇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근로계약서에 딱히 탄생석 능력과 관련된 내용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무슨. 오히려 웃돈 주고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을 정도인걸. 요즘 꼴에 육체강화 탄생석 능력자랍시고 찾아오는 젊은 것들은 말이야 하나같이 순간 출력은 좋아서 3대500이니 3대600이니 SNS에 자랑질하고 다니는데 막상 보면 지구력이 영 꽝이란 말이지. 그것들이 30분도 채 못채우고 도망가느거 추노하느라 내 다리에 알이 다 배길정도야. 안그래도 이번 명절 대비로 택배유통청에서 보너스를 250% 인상하기로 결정했으니까 관심있으면 연락주라고. 여기 볼품없지만 내 명함도 있으니까."

천우용진이 '물류서비스센터 견우시점 부지점장 박리동우'라고 적혀 있는 손바닥만한 명함을 보는둥 마는둥 하더니 주머니속에 챙겨넣었다. 한국과는 달리 프로시마 행성은 내륙의 모든 물류를 통합정부 소속의 택배유통청에서 모두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어디 물류서비스센터를 가든간에 대우는 거기서 거기겠지만 약간이나마 일면식이 있는쪽이 편하긴 할터였다.

그래야 땀한방울 안흘리고 쌀 한가마니를 옮길 수 있는 이유를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것이고 일하다가 뜻모를 한기가 찾아와도 적당히 얼머부릴 수 있을테니까. 아무튼 오늘 일당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입금이 된 것을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확인했기에 천우용진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착용한 면장갑을 벗어던지고 물류서비스센터 밖으로 나섰다.

'115,000원이라 하루 일당치고는 꽤나 짧짤하군요. 이제 자취방에 가스도 들어오겠다 돼지고기라도 사서 삶아먹는게 어떻겠습니까? 힘들게 근육을 혹사 시켰으니 단백질 섭취를 좀 해줘야죠.'

"정작 혹사한건 내가 아니라 망령들인데 뭐하러. 시간이 좀 늦었지만 오늘도 적당히 초코바로 때우고 부업에 들어갈테니까 그런줄 알아."

'아아 또 그 부업말씀이십니까. 허허, 저는 그런 돈도 안되고 위험하기만한 부업을 굳이 사서하시는 천우용진님을 솔직히 이해할 수 가 없군요. 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일단 협력은 하겠습니다만...'

나는 말끝을 흐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천우용진이 말한 부업, 그것은 다름 아닌 학생들의 귀가 시간에 금품을 갈취하는 일부 불량아들을 징벌하는 일종의 히어로 놀음이였다. 내가 구태여 히어로 놀음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천우용진이 단순한 심심풀이나 새로 익힌 탄생석 능력의 시험지로서가 아니라 정말 정의감에 불타서 자경단을 자처했기 때문이였다.

탄생석 무능력자로서 그토록 오랜세월 고통받았으면 당연히 나처럼 빌런의 길을 걸을줄 알았건만 오히려 약소 탄생석 능력자의 고통을 알기에 그 고통을 저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천생 빌런인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사고방식이였지만 애초에 천우용진이 미러링크의 탄생석 능력으로 무엇을 하든 사실 따지고보면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였다.

그저 천우용진의 탄생석 능력 숙련도가 고도화 될 수 록 나의 영혼 회로 감응도 또한 덩달아 올라가는 것이였기에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뿐. 다만 최근에 그놈의 히어로 놀음을 하다가 양아치와 조직 폭력배의 경계상에 있는듯한 신체강화 능력계의 불량아와의 싸움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할뻔해 다소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였다.

아마 내가 천우용진에게 할당한 100마리의 이매망량외에 내가 운용하고 있는 900마리의 이매망량으로 급히 커버를 치지 않았으면 아마 갈비뼈가 최소 2개는 나갔으리라. 그만큼 아무리 등급이 높아도 단순무식한 능력으로 인지하고 있던 신체강화 능력의 반격은 제법 매서웠던 것이다.

"그때의 일을 말하는거라면 약간 방심했을뿐이야. 부릴 수 있는 잡귀들을 공격조와 방어조로 나눠서 적절히 밸런스 있게 운용했어야 했는데 그 녀석이 학생들을 괴롭히는걸 보고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지."

'뭐 그래도 그런 쓰레기 하나를 처리하고 그런 좋은 교훈을 얻었으니 다행입니다. 부디 앞으로 그 어떤 싸움에 임한다해도 망령의 최소 3할은 방어용으로 남겨두시길.'

"글쎄. 옥사건 네가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뭐 그래도 앞으로 이전처럼 잡귀들을 공격에 몰빵하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 맹세하지."

탄생석 능력을 통해 이매망량을 부리는게 조금 익숙해졌다고 시건방을 떠는 천우용진을 보고 있자니 다소 입이 씨거웠지만 미우나 고우나 한배를 탄 사이인지라 나는 억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제발 오늘도 성질 더러운 불량아 한명이 나타나서 이 새끼 참교육점 시켜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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