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다같은 말을 내가 하게 될줄은 몰랐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보다 적절한 단어는 없을터였다. 햇살조차 들어올려다 기겁할것 같은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원룸의 천장은 내 평생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명색히 저명한 생명공학계 박사의 아들인데 아주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단 한번도 궁핍하게 산 적은 없었다.
하지만 BIG보스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의 생김새로 보건대 굳이 통장사정을 보지 않아도 그가 지독한 가난에 쪄들어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뭐 탄생석 무능력자로 태어나 부모에게도 버려졌다고 하니 그 살림살이에 알만한 것이였지만 먹다 남은 라면 굴물과 함께 널부러진 녹슨 냄비 그릿을 보고 있자니 나조차 동정심이 들정도였다. 근데 이 새끼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셈이지? 얌마 네가 빨리 일어나야 내가 프록시마의 풍경을 볼 수 있을거 아니야!
'빅보스님? 제 말씀이 들리십니까?'
"누, 누구냐!"
'누구긴요. 접니다, 저. 강령술사 전직NPC 변태사ㅅ... 이 아니라 옥사건이요.'
"뭐야 너였냐. 배고파서 환청이라도 들리는줄 알았군. 아니 잠깐만! 그런데 왜 네 목소리가 현실에서도 들려오는거지? 설마 탄생석 능력을 각성시켜준다는 핑계로 내 몸에 뭔가 수작을!"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을텐데요. 미러 링크의 탄생석 능력을 사용할 경우 영혼의 단말을 이은 대상과 기억과 감정이 일부 공유된다고요. 정확히는 제가 잔류사념을 남겨 빅보스님께서 제 능력을 빌려쓰는걸 서포트하고 있는셈입니다만 아무튼 새로운 탄생석 능력 아니 원래 지니고 계시던 탄생석 능력을 각성하셨으니 한번 시험해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하지만 강령술을 사용하기 위해선 시체가 있는 묘지까지 가야할텐데 지금의 나는 그게 쉽지않을것 같군."
'왜입니까?'
"한동안 제대로 먹지도 않고 게임에만 열중했더니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말이야. 뭐 원래도 그렇게 잘 챙겨먹는 스타일은 아니였지만."
빅보스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나서야 그의 몸을 살펴본 나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아프리카 기부광고에나 나오는 영양실조 어린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였다. 뭐 나도 한때 식음을 전폐하며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을 플레이 해봤기에 이해하지 못할바는 아니였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잖아! 초코바정도는 중간중간 챙겨먹어줘야지.
'이건 지금 당장 수액이라도 맞지않으면 조금 위험한 수준이로군요. 그렇다면 묘지로 가서 좀비를 부활할게 아니라 바로 대기중의 망령들을 부릴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망령들을?"
'예. 아무리 탄생석 능력이라고 하지만 대낮에 시체들을 부활시키는건 다른 프록시마 주민들의 시선에 좋게 보일리가 없습니다. 법률상이나 청결상의 문제도 있을테고요. 그럴바엔 차라리 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망령들을 부리는 편이 십분 이득이지요. 설마 게임에서 좀비트리를 탔다고 현실에서도 좀비트리를 타실 생각이였던건 아니겠지요?'
"듣고보니 그것도 그렇군. 애초에 네가 했던 얘기 전부를 반신반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망령들이란건 어떻게 하면 부릴 수 있는거지? 어렸을때부터 헛것을 자주본다는 이야기를 듣긴했지만 그들은 내게 관심조차 없는것 같았다. 나도 그것들에 관심이 없었고."
'그부분은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아무리 미러링크의 탄생석 능력이 있어도 D랭크의 영력으론 망령들을 포집하는데 한계가 있겠지만 잔류사념인제가 보좌하면 그거야 아주 간단한 일이지요.'
나는 내집마냥 안락했던 탄생석 밖을 잠시 벗어나 빅보스의 왜소한 어깨위로 올라섰다. 겉보기엔 보잘것 없는 난쟁이처럼 보이는 나였지만 실제로는 본체의 잉여스텟을 긁어모아 무려 A급 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런 내게 영력망을 흩뿌려 주위를 배회하는 망령들을 긁어모으는건 갈퀴로 낙엽을 쓸어모으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였으니 금새 잡귀 10마리가 모여들었다. 개중에 겁대가리 없이 발버둥을 치거나 내게 겁을 주려는 잡귀가 있었지만 영혼의 족쇄를 냉큼 채워버리자 금새 얌전해졌다. 이것들이 아무리 외딴 행성이라지만 옥사건님을 몰라보고 말이야. 확, 씨!
'빅보스님 여기 제 앞에 모인 10마리의 망령들이 보이십니까?'
"뭔가 있긴 한것 같군.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희뿌연 솜사탕같은 것들이 얽혀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이걸로 뭘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군."
'아주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요.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빅보스님께서도 한번은 들어보셨을겁니다. 망령들이 가구따위를 움직여 산사람들을 괴롭히는 현상을 말하는데 강령술사는 그 현상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해 염력처럼 다룰 수 가 있죠. 뭐 어느정도의 질량을 다루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염력 또한 꽤 상위랭크의 탄생석 능력 아니겠습니까? 일단 제가 한번 시험을 보일테니 먹을만한게 있는 장소를 알려주세요.'
"글쎄. 저쪽 캐비넷에 복지지원청에서 배급해준 쌀 1kg짜리 한봉지가 있었던것 같긴한데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콜록콜록."
자기집 살림살이도 가물가물한 BIG보스를 보고 있자니 그간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상에서 부단히도 쌘척을 해왔던 그의 행동들이 떠올라 애처롭다 못해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 이 피도 눈물도 없는걸로 유명한 옥사건님에게 동정심을 갖게 만들다니 아주 제법이군, 제법이야.
아무튼 지금 당장 BIG보스에게 뭐라도 먹이지 않으면 정말 아사할 판국이였기에 나는 이매망량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잡귀들을 부려 예의 쌀을 찾아헤맸다. 다행히도 캐비넷 한켠에 복지지원청에서 나왔다는 쌀이 실제로 존재했고 이제 쌀을 물에 뿔린 다음에 냄비에 담아 익히기만 하면...
티딕티딕!
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무리 레버를 돌려도 반응이없는 가스렌지와 씨름하다 방구석에 폐지와 함께 쌓여있는 가스요금 청구서를 발견하곤 뒷목을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먹다 남은 라면이 있길래 당연히 불은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지? 근처에 편의점이 있다면 잡귀를 부려 도둑질이라도 해보겠지만 창문밖의 풍경은 황망하기만했다.
그렇게 하릴없이 생쌀을 부여잡고 서 있었던 나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잡귀들을 부려 생쌀을 잘게 부순 다음 수돗물에 미숫가루처럼 타 먹이기로 한 것이다. 다소 무식한 방법이였지만 공복기간이 긴 환자에게 생쌀을 먹였다가 무슨 탈이 날지 알 수 없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씨바알! 내 평생 직접 밥을 지어먹은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보통 망령들의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집주인을 괴롭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집주인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생쌀을 가루가 될때까지 으깨고 있었다. 잡귀들이야 갑작스레 등장한 A급 영력 랭크의 소유자의 지시에 순순히 따를뿐이였지만 시키는 나로선 상당히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낀건 나뿐만이 아니였는지 BIG보스가 자조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래저래 폐를 끼치게 되는군."
'후후후. 너무 부담갖으실 필요없습니다. 미러링크의 탄생석 능력을 사용한 순간부터 빅보스님과 저는 한배를 탄몸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어서 미음이라도 챙겨먹어 기운을 차리세요. 그래야 폴터가이스트 능력으로 택배 상하차 알바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택배 상하차라... 그러고 보니 작년 겨울에 택배 상하차 알바를 3일하고 한달동안 앓아누었던 기억이 나는군. 만약 그때의 내게 폴터가이스트 능력이 있었다면 땀한방울 흘리지 않고 하루 일당을 챙겨갈 수 있었겠지. 역시 이 세계에서 탄생석 능력없이 살아가려고 했던건 무리였던거야. 그런데 왜 난 지금까지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남으려 애썼던 것일까?"
'당연히 저와 만나기 위함인게 아니겠습니까? 빅보스님께서 지금까지는 다소 모진 삶을 사셨다고 해도 SSS급 탄생석 능력인 미러링크를 재각성하신 이상 앞으로의 미래는 탄탄대로입니다. 방금 말한 상하차 알바야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임기응변일뿐 앞으로 제 능력을 하나하나 카피해 나가신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질겁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RPG게임의 보스급 몬스터인 리치나 사용할법한 스킬들을 자유자재로 쓰는 빅보스님의 모습을요.'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잘 실감이 가질않는다. 하지만 그저 사기꾼인줄로만 알았던 네녀석이 조금은 믿을만한 인간이라는건 알겠군. 사기꾼이 쥐뿔 가진것도 없는 나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잘해줄리는 없을테니까. 그러면 한배를 탄 기념으로 내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내 본명은 천우용연이다. 보잘것 없는 능력에 비한다면 참으로 거창한 이름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