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 Oxygan the Close Beta Test
나의 호들갑스런 반응에 BIG보스가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야. 나한테 탄생석 등급같은게 있을리가. 탄생석관리청에서도 NULL판정을 받았는데."
"NULL판정이라는게 뭡니까?"
"그건 NPC인 너따위가 알필요가 없는 얘기야!"
"아 대충 알겠습니다. 아마 탄생석 능력을 감정할 수 없자 무능력자 취급을 한거겠지요. 하지만 진짜 무능력자는 BIG보스님이 아니라 탄생석관리청의 공무원인듯 하군요. 아무리 제가 사회적 공헌도 보다는 전투에 비중을 두었다고 해도 SSS 탄생석 능력자를 몰라보다니요."
"마, 말같지도 않은 소리하지마! 내가 깡통 탄생석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지금까지 얼마나 벌레 만도 못한 쓰레기 인생을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SSS 탄생석이라니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애시당초 탄생석관리청의 전문 검시원이 3차 시기끝에도 감정하지 못한 탄생석을 네가 어떻게 그 잠깐 사이에 알아낸건데? 기껏해야 과학기술청에서 만들어낸 인공지능 주제에!"
그동안 탄생석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꽤나 차별을 받아왔는지 얼굴이 시뻘개진 BIG보스가 내게 삿대질을 해가며 따져물었다. 하긴 외눈박이 마을에선 두눈박이가 따돌림을 받는다고 모든 인간이 탄생석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프록시마에서 무능력자로 태어났다는건 지독한 불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화를 낸 시점에서 이미 반쯤은 넘어왔다는걸 인지한 나는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인공지능이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뭐 세간의 소문처럼 과학기술청에서 고용한 알바라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거야?"
"글쎄요, 알바는 맞지만 과학기술청에 고용된건 아닙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처음 들어올때 동의한 약관때문에 뭐 이거 구체적으로 뭐라 말을 못하겠네. 아무튼 이미 빅보스님께서도 느끼고 계셨겠지만 이 VOT 온라인은 결단코 평범한 게임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평범한 NPC는 아니구요. 그러니 지금까지 무능력자로 살아온 설움을 풀고 싶다면 그냥 속는셈치고 저를 믿어보시지요."
"하! 그래, 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 그래서 내 탄생석 능력명은 뭐고 감정은 둘째치고 왜 지금까지 한번도 발현할 수 없었던거지?"
"빅보스님의 탄생석 능력명은 미러 링크입니다. 이름 그대로 타인의 영혼을 단말처럼 연결해서 그의 능력을 고스란히 복사해서 쓸 수 있는 능력이지요. 이렇게 사기적인 탄생석 능력이 지금까지 한번도 발현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록시마의 모든 주민들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탄생석에서 기반한 것이지 자기 본연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제가 나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어릴때부터 강령술에 재능을 보여 부단히 그 능력을 쌓아온 저라면 빅보스님께서 충분히 미러 링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흑마술사 길드의 세분파중 강령술사 전직NPC인 제가 가장 강력하다는 점 추가로 말씀드리며 빅보스님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우아한 손짓에 허리까지 숙여보이며 말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었지만 탄생석 내부가 비어있는 스피릿 서킷 샘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였기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현실에서 게임직업인 강령술사의 능력을 사용한다라. 그거 아주 달콤한 얘기로 들리는군. 그런데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이득은 도대체 뭐지?"
"그것 또한 간단합니다. 탄생석 능력인 미러 링크를 사용할 경우 연결된 사람끼리 기억과 감정의 일부가 공유되는데 저는 그 과정에서 탄생석 능력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사실 그 목적으로 지금까지 많은 모험가분들의 탄생석 능력을 관찰해왔습니다만,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행인지라 그리 성과가 변변치 않았죠. 그런 맥락에서 봤을때 지금 이건은 빅보스님에게도 저에게도 아주 좋은 찬스라고 생각됩니다만?"
"...좋아.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그 얘기가 거짓을 밝혀졌을 경우 각오하는게 좋을거야. 기술관리청에 민원을 제보해서 너라는 인공지능을 아예 삭제하게 만들어줄테니까."
"후후후. 인공지능이 아니라는데도 그러시네. 그러면 저도 영혼의 단말을 잇기위해선 몇가지 준비가 필요하니 내일 지금 이 시간에 다시 찾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
끝까지 음흉한 속내를 숨긴채 미소를 띄며 BIG보스를 배웅한 다음날,
나는 네크로노미콘의 금술(禁術)중 하나인 소울 아바타를 벼락치기로 습득하고 다시 강령술사 집무실을 방문했다. 기본적으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죽은자를 되살리는 네크로맨시의 극의가 담긴 마도서에 웬 금술인가 싶겠지만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소울 아바타라는 술법은 자신의 영혼 일부를 분리해 분신도 아닌 분혼을 만들어내는 아주 유니크한 보조술법이였는데 여기엔 몇가지 제약사항이 존재했다. 일단 영혼이란 것이 육체라는 그릇을 벗어나면 물처럼 흩어지는 성질이 있어 어둠의 정령왕관의 힘을 빌어 분혼만을 위한 임시 정신체를 만들어 줘야했으니 이는 솔직히 말해 그닥 어려운 작업은 아니였다.
진짜 문제는 아무리 영력 배분상으로 따지면 극히 일부라해도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였다. 이는 정신의학적으로 따져봤을때 게슈탈트 붕괴현상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였고 소울 아바타가 금술로 지정된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때문이였다.
즉 슈퍼로이드 세비앙처럼 숨쉬듯 자연스럽게 스레드를 만들었다가 지우면서 1인2역을 해나가는건 기본적으로 인간에겐 불가능한 영역이란 소리였다. 하여 나는 이러한 문제를 얼티밋 언데드 폼의 육체에 엘더 스프리건의 뇌를 이식하면서 생긴 사이킥 능력, 의식분할(意識分轄)로 해결을 봤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문제는...'
소울 아바타를 제작할때의 문제가 아니라 소울 아바타가 소멸했을때, 그러니까 내 분혼을 모종의 이유로 되찾을 수 없을때의 영력 스텟 손실 문제였다. 일부러 Ex랭크의 영력의 유지는 가능할정도로만 영력을 추출했지만 유니온 키네시스 ~데모고르곤의 너와 나~를 사용했을때의 영력 스텟 뻥튀기를 생각하면 영력 스텟의 감소는 필시 치명적이리라.
하지만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없을 수 없었다. 나의 친모인 김소령 여사 또한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헤비메탈 슬라임의 세포이식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통해 나름의 성과를 내지 않았던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늙고 싶어도 늙지 못하는 그 슬라임 육체가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아무튼 이미 각오를 다지고 BIG보스의 깡통 탄생석에 내 소울 아바타를 주입할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밤새 제작한 술법원진 위에서 얌전히 그의 방문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5분도채 남지 않았을때 아니나 다를까 다소 상기된 얼굴의 BIG보스가 나무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오셨습니까, 빅보스님. 이제와서 마음을 바꾸실 생각은 아니겠지요?"
"...시끄럽고 내가 빨리 미러링크란 탄생석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줘."
"후후후. 역시 그러시겠지요. 저도 그냥 예의상 한번 더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제가 앉아 있는 곳의 맞은편에 있는 원형진에 착석하세요.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면 빅보스님께선 SSS등급의 탄생석 능력자가 되실 수 있을겁니다. 듣자하니 탄생석 관리청에선 고등급의 탄생석 능력자에게 연금은 물론 집까지 공짜로 준다면서요?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겠군요."
털썩!
BIG보스가 구태여 대답할 가치를 못느꼈는지 아무말 없이 내가 지시한 자리에 착석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와 동골을 보면 그가 지금 얼마나 흥분한 상태인지 능히 짐작가능한 부분이였다.
나는 미약하나마 영력을 지니고 있는 BIG보스가 소울 아바타를 관찰하는걸 막기 위해 저주술사 전직NPC인 린다에게서 빌려온 장님 저주의 스크롤을 찢은뒤 마침내 미러링크 탄생석 능력을 발동하기 위한 의식을 시작했다. 물론 미러링크는 내가 임의로 지은 이름일뿐이고 실제로는 내 소울아바타가 그의 탄생석 내부로 들어가 스피릿 서킷의 코어가 될 예정이였다.
그렇게 마치 내 어렸을적을 떠올리게 하는 어둠의 정령꼬마가 술법원진의 힘을 빌어 BIG보스의 영혼내부로 침입해 들어갔다.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이 어둠의 정령꼬마는 무려 A랭크의 영력에 정령왕관에서 추출한 어둠의 마력까지 지니고 있었기에 얼마안가 탄생석 내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제 눈을 뜨면 BIG보스뿐만 아니라 나 정확히는 제 2의 아바타의 인생도 180도 바뀌게 되리라.